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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품사의 세계를 탐사해보자. 오늘부터 두 차례에 걸쳐 생각해볼 주제는 동사와 형용사의 관계다. 두 품사를 구별하는 방법은 교실에서 배웠을 텐데, 그 중에서 네 가지만 되짚어보자.
첫째, 동사는 현재시제 서술형일 때 바탕꼴(사전의 표제어에 올라 있는 형태)로 쓰이지 못하고 ‘간다’ ‘먹는다’처럼 ‘-는다’가 붙는다. 물론 ‘우승 고지에 오르다’처럼 기사의 제목으로 쓰이는 일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상적인 대화나 일반적인 글에서는 이런 표현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반해 형용사는 ‘키가 작다’ ‘얼굴이 예쁘다’ ‘꽃이 아름답다’같이 바탕꼴이 그대로 쓰인다.
둘째, 현재시제로 체언(명사, 대명사, 수사)을 꾸밀 때 동사는 ‘먹는’처럼 ‘-는’이 붙지만 형용사는 ‘예쁜’처럼 ‘-ㄴ’이나 ‘작은’처럼 ‘-은’이 붙는다. 셋째, 현재시제 감탄형으로 쓰일 때 동사는 ‘자는구나’처럼 ‘-는구나’가 붙지만 형용사는 ‘작구나’처럼 ‘-구나’가 붙는다. 넷째, 어미 ‘-아라’나 ‘-어라’가 붙었을 때 동사는 ‘먹어라’처럼 명령형이 되지만 형용사는 ‘아름다워라’처럼 감탄형이 된다. 이 밖에도 형용사에는 동사에 붙을 수 있는 어미 중의 일부가 붙지 못한다든가 하는 등의 차이가 몇 가지 더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분 스스로 탐구해보기 바란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동사와 형용사는 사뭇 다르다. 동사는 움직임이나 작용을 나타내고, 형용사는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낸다. 이렇게 두 품사는 내용이나 기능 면에서 전혀 다른 것 같지만, 의외로 둘 사이의 거리는 무척 가깝다. 사실 두 품사 사이에는 다른 점보다 같은 점이 훨씬 더 많다.
가장 큰 공통점은 어미를 붙여서 활용한다는 점이다. 한국어의 품사에는 모두 아홉 가지가 있는데, 이 중에서 어미가 붙을 수 있는 것은 동사와 형용사뿐이다(단, 서술격조사 ‘이다’는 예외다). 어미가 붙는다는 것은 곧 이 두 품사가 주로 서술어로 쓰인다는 말이다. 한국어에서 서술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면(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얘기하겠다), 동사와 형용사의 이런 공통점은 그 무게를 따지기 힘들 정도다. 이렇게 두 품사의 쓰임새에 같은 점이 많기 때문에 둘을 한데 묶어 ‘용언’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사와 형용사가 닮은꼴이라는 점은 일부 지방의 사투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앞에서 두 품사의 차이점 가운데 하나로 ‘-는구나’가 붙으면 동사요 ‘-구나’가 붙으면 형용사라고 했는데, 사실 이런 설명은 전라남도 방언을 쓰는 사람들한테는 해당사항이 없다. 이 사람들은 표준어 사용자들이 ‘먹는구나’ 할 것을 ‘먹구나’ 하고, ‘가는구나’ 할 것도 ‘가구나’ 한다. 동사를 형용사처럼 활용하는 것이다. 또 반대로, 형용사를 받아서 ‘그렇죠’ 할 것을 동사처럼 ‘그러죠’ 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두 품사 사이의 경계선이 모호한 것이다.
동사와 형용사가 이렇게 비슷한 점이 많고 때로는 둘을 구분하기가 어렵기도 해서, 학자들 중에는 두 품사를 하나로 합치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둘을 ‘동사’로 묶고, 기존의 동사는 ‘동작동사’로, 형용사는 ‘상태동사’로 작게 나누자는 것이다. 아무튼 품사의 세계에서 동사와 형용사는 형제지간만큼이나 가까운 사이다.(기사 본문 중)
이런 설명은 동사와 형용사의 차이를 현상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설명하는 것이고, 제대로 설명하려면 발생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동사와 형용사가 문장에서 유사한 기능을 가진 것을 보고 동사를 동작동사로 형용사를 상태동사로 바꾸자고 제안하기도 한다는데 어째 이런 방식은 일부 수긍이 되지만 완전히 납득되지는 않습니다. 대강 보면, 동사와 형용사의 차이를 동작과 상태의 차이로 두는 것 같은데, 왠지 이 설명을 관점의 맥락으로 보면 좀 이해될 것 같지 않습니까?
동작은 주관적인 것이고, 상태는 객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해봅시다. 사실 상태라는 것은 꼭 움직이지 않은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움직이는 상태도 있잖아요. 인간이 동작과 상태를 구분하는 기준은 관점입니다. 내가 하면 동작이고, 내가 남의 동작을 보면 상태인 거죠. 문제는 한국어는 관점의 전환을 잘 사용하지 않는 연역적인 언어라는 겁니다.
https://youtu.be/SQg2yWp-_RM
그런데 영어를 보면, 둘이 왜 차이가 나는지 잘 보이기 시작합니다. V+ed(과거)형태가 형용사로 쓰이기 때문이죠. 즉 수동태(객관어법)가 형용사로 쓰인다는 겁니다. 근데 왜 과거형이 수동태로 쓰일까요? 언어학자들이 그렇게 정해서? 그럴 리가 없죠. 언어는 그럴듯하기 때문에 그렇게 쓰인 겁니다. 근데 과거가 뭘까요?
과거는 인간에게 객관적인 기억입니다. 역사적으로 과거 어법이 먼저 생겼는지, 형용사형이 먼저 생겼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둘은 분명히 통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객관적인 관점입니다. 이러한 언어적 습관은 한국어에서도 흔히 나타납니다. “~된“처럼 쓰는 거죠. 특히나 ‘ㄴ’이 쓰였다는 게 재밌는 겁니다. 영어에서도 이런 현상은 흔히 나타납니다.
gone처럼 말이죠. 영어에서 l이 미래적 의지를 나타내는 것처럼 한국어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ㄹ을 쓰는 거죠. “될“ 근대 국어학자가 영어법를 참고해서 어법을 만들었을 리도 없는데, 왜 이런 현상이 보편적으로 나타날까요? 역시나 그럴듯하기 때문입니다. ㄴ은 끊어진 현상을 표현하고, ㄹ은 이어지는 현상을 표현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죠. 발음이 그렇잖아요.
물론 영어법에서는 ed도 사용합니다. 근데 발음해보면 이것도 d 발음이 끊어집니다. 하여간 n이건 ed건 과거형은 대상을 시간적(순서적)으로 뒤에서 바라보는 걸 표현하려고 하는 거죠. 종결된 걸 의미합니다. 반면 ㅇ이 좀 독특한데, 현재 또는 진행을 의미하는 단어에 잘 쓰입니다. “항상” “형상” “영상” “공상“ ”진행“ "향" 뭐 이런 식이죠.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이 느껴지나요? 잘 생각해보면 한국어에 이응 받침이 들어간 단어가 흔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ing는 어떤 현상을 표현하고자 진행이나 현재를 완전히 객관화 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사실 진행이라는 것도 불분명한 표현이고, 완결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제가 ing를 두고 완전히 객관화라고 하는 이유는 대상에서 내가 완전히 떨어져 대상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상태를 표현하고자 함입니다.
언어는 관점이다
고등학교를 나오신 분이라면, 1, 2, 3인칭 및 전지적 시점을 잘 아실 겁니다. 굳이 말하면 ing는 3인칭의 관점입니다. 대상에서 한발짝 떨어진 걸 표현하는 거죠. 이는 단순히 진행중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상의 어떤 행위가 그걸 말하는 화자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을 표현합니다. 이는 돌고 있는 바퀴를 만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 동사에 ed를 붙여 만든 형용사는 2인칭에 주로 사용됩니다. 내가 대상과 접촉하여 수동과 능동의 관계로 엮인 거죠. 그리고 원형은 1인칭이나 명령형으로 사용됩니다. 이건 사실 전지적 시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간단히 비유하자면 신이 말하는 겁니다. 신이 내 안에 있으면 1인칭이고, 외부에 있으면 명령형이 되는 거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로 신이 있다고 생각하면 초딩입니다.
“아니 우리는 일인칭으로 말하더라도 형용사를 쓰지 않냐?” 하실 수 있는데, 뭐 가능합니다. 그런데 형용사를 쓸 때 화자의 관점이 어디에 있는 지를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나를 표현하더라도 남에게 보이는 걸 고려해서 말할 때 형용사를 사용합니다. 형용사는 “상태”라니깐요.
동사의 과거형은 흔히 형용사로 사용됩니다. 근데 ing형 형용사와는 관점적 차이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ed는 2인칭, ing는 3인칭의 관점에서 사용됩니다. 3인칭의 관점은 곧 명사형을 만드는데, 한국어에서는 ㅁ으로 사용되죠. 삶, 됨 뭐 이런 식으로요. 삶과 living은 느낌이 다른데, 굳이 차이를 두자면 삶은 living 보다는 life에 더 가깝겠죠.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한국어의 어휘 부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용인구가 적어서 아직 적절한 조어가 되지 않은 거죠.
동사를 이렇게 해석하면 영어의 수동태, 형용사형(분사), 현재완료형, 현재진행형 등의 문법을 공식 없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have + p.p를 외운다는게 좀 어처구니 없잖아요? 형용사를 품었다라고 해석하는 게 맞지. I have been there.을 현재완료의 경험적 용법이라고 외우면 마음이 좀 불편하지 않으세요?
대강이 이렇다는 거고, 실제로는 1, 2, 3인칭과 전지적(주체적)관점, 주체와 대상, 직접과 간접, 시점 등이 다양하게 조합되며 복잡하게 전개됩니다. 또한 하나하나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 독자가 이해하기 좋겠지만, 제가 언어학자도 아니고, 이 정도 말하면 대강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 봅니다. 하나하나 예시를 들으려니깐 감당이 안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