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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700 vote 0 2019.11.30 (08:03:53)


    본질에는 본질이 없다


    "본질은 사물의 존재와 발전의 기초로 되는 상대적으로 공고한 내적 측면이며 현상은 본질의 발현으로서 상대적으로 가변적인 외적 측면이다. 본질이 내적이면 현상은 외적이고 본질이 견고하면 현상은 가변적이고 본질이 항구적이면 현상은 일시적이다. 일정한 대상을 대할 때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 현상이고 현상 속에 숨어 있는 것이 본질이다. 본질은 현상을 통해 드러나며 현상은 본질을 표현한다. 본질은 현상을 규정한다. 본질은 반드시 그에 상응한 현상으로 나타나며 현상은 본질에 의하여 규정된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웹검색]


    본질과 현상의 빌어먹을 이원론에 대해서는 다들 한 번 쯤 들어봤을 것이다. 플라톤 이래의 전통적인 철학이 본질 곧 영혼과 이데아를 강조하는 입장이고 칸트나 마르크스나 다 그와 같은 똥의 족보에 속한다. 실존주의 이래 구조주의까지 현대철학은 본질을 부정하는 것이다. 영혼을 부정하고 이데아를 부정하고 이원론을 부정한다. 퇴계와 율곡의 대립 또한 마찬가지다.


    퇴계의 입장은 이러하다. 양반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상놈에게는 없다. 그것은 리다. 일반인도 수양하여 리를 갈고 닦으면 양반이 되는데 그것이 경이다. 경하라. 그리하면 당신도 양반이 될 수 있다. 이런 거다. 자사는 성을 주장했다. 정성을 바치면 하늘이 감동해서 뭔가 엑기스가 생겨나는데 부처님의 사리같은 똘똘한 것이 생긴다. 율곡은 그런 개소리를 부정한다.


    리라는 본질이 기라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기가 멈추면 리로 보이는것이다. 그것은 착시다. 그러므로 수도하여 리를 닦을 필요는 없고 선비들이 모여서 공론을 일으키면 곧 리가 되는 것이다. 보통은 이원론을 좋아한다. 본질이 따로 있고 이데아가 따로 있고 영혼의 급수가 있으며 어떤 사람은 양반의 영혼을 가지고 태어나고 일반인은 상놈의 영혼으로 태어난다.


    수도하고 십일조를 바치고 회개하여 영혼이 맑아지면 천국에 가게 된다. 플라톤부터 마르크스까지 서양철학은 이러한 본질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율곡이 500년 전에 깨버린 잘못된 사상이 악착같이 살아남아 인간을 핍박하고 있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이 여럿 있으면 교착되어 울혈이 생기고 덩어리가 생기는데 그것이 본질이고 리고 이데아고 영혼이고 그런 것이다.


    메뚜기가 평당 30마리 정도의 일정한 숫자에 도달하면 메뚜기떼가 되어 일제히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스트레스를 받아 호르몬이 작용하므로 몸이 날씬해지고 날개가 크게 자란다. 다른 종이 되어버린다. 움직이는 민중이 일정한 숫자에 도달하면 혁명을 일으킨다. 움직이는 에너지가 일정한 숫자에 도달하면 은하계를 만든다. 태풍의 탄생이나 물고기떼의 이동이 그러하다.


    양떼나 소떼도 마찬가지다. 움직이는 것이 숫자가 많아지면 형태를 이루는 것이다. 바보들은 거꾸로 생각한다. 어떤 본질, 혹은 이데아, 혹은 영혼, 혹은 리가 현상으로, 혹은 운동으로, 혹은 존재로 모습을 드러낸다고 믿는다. 정확히 반대다. 움직이는 것이 일정한 숫자가 되면 반드시 형태를 이루고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무언가 있고 그것이 움직인다는 생각은 틀렸다. 


    움직이는 것이 많으면 계가 만들어진다. 닫힌계이며 구조론의 질에 해당된다. 본질이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이 본질로 응집하는 것이다. 있는 것이 어떤 계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 몰려서 교착되면 그것을 있다고 부르는 것이다. 바보 중권들은 엘리트인 자신이 본질을 맡고 우매한 대중을 모아 현상을 연출하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엘리트가 대중을 모으는게 아니라 반대로 대중이 많아져야 지도자가 등장하는 법이다. 정의당이 망하는 공식이 그렇다. 엘리트는 있는데 대중이 없다. 민주당이 흥하는 공식이 그렇다. 대중을 모으면 노무현이 출현한다. 노무현이 훌륭해서 대중이 모인게 아니라 대중이 모였으므로 노무현이 뜰 타이밍이 되었다. 대중이 많으므로 문재인이 도출된다. 엘리트냐 대중이냐다.


    중권들이 노무현을 혐오하는 이유는 노무현이 대중에 속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인격이 훌륭할 이유가 없다. 노무현의 몸에 부처님의 사리나, 자사의 성이나, 퇴계의 경이나, 기독교의 영혼이나, 칸트의 이성이나, 플라톤의 이데아가 빵빵하게 들어차 있어야 할 이유 따위는 없다. 어떤 순수하고 고상하며 고결한 엑기스가 혈관 속에 잔뜩 흘러다니고 그런 것은 없다. 


    대중이 중요하다. 먼저 지도자를 만들고 다음 대중을 모은다는 정의당 노선은 조선시대 제승방략처럼 필망의 공식이다. 어처구니 없는 초딩전술이다. 병사를 모아놓고 장군을 내려보내 지휘하게 하면 된다는 멍청한 생각이다. 절대 말 안 듣는다. 현재도 군대는 직속 아니면 인사를 하지 않는다. 중대만 달라도 생깐다. 병사는 원래 자기 직속상관에게만 경례하는 것이다. 


    일단 싸우다보면 상승부대가 출현하고 저절로 장군이 나타난다. 정의당의 엘리트노선은 절대 망하는공식이다. 이원론은 틀렸다.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본질에는 본질이 없다. 예컨대 이런 거다. 인삼은 성질이 덥고 당신은 체질이 차가우므로 당신에게는 인삼이 맞지 않다. 이런 식의 멍청한 사고가 본질주의다. 그러한 본질은 없다. 체질 같은건 운동하면 금방 변한다.


    실존주의나 구조주의는 이러한 본질주의, 영혼주의, 이데아주의, 퇴계사상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것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이 그러하다. 입자가 본질이라면 질은 입자에 앞선다. 민중은 엘리트에 앞선다. 국민은 지도자에 앞선다. 지도자는 절대 국민의 수준을 능가하지 못한다. 고결하고 순수한 뭔가 엑기스가 있다고 믿는 바보들이 박근혜를 찍어준 것이다.


    본질은 없고 어떤 에너지의 움직임이 일정한 숫자에 도달하면 저절로 계를 이루고 형태를 갖추고 존재로 도약한다. 우리는 흐르는 물이나 부는 바람이나 물고기떼나 새떼나 사람떼에서 그것을 관측할 수 있다. 물론 중국인은 숫자가 많아도 지도자가 뜨지 않는다. 움직이는 인간이라야 한다. 중국인은 홍콩인과 달리 움직이지 않으므로 지도자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움직이는 사람은 보통 중산층이다. 물론 시골사람도 모택동이 격동시키면 움직인다. 노동자도 레닌이 선동하면 움직인다. 그러나 언제나 움직일 에너지를 가지고 준비된 사람은 부르주아 계급 중에도 젊은이 뿐이다. 돈은 원래 움직이는 존재이고 돈이 있어야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일정한 액수의 돈을 지불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돈이 없어서 혁명을 일으키는게 아니라 돈맛을 본 사람만 혁명에 가담한다. 구조론은 항상 본질을 강조한다. 그러나 진짜 본질은 에너지에 있고 움직임에 있고 무리에 있고 구조에 있다. 본질에는 본질이 없다. 퇴계의 본질과 현상 이원론은 틀렸다. 율곡의 에너지 일원론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본질은 엘리트가 아니라 민중이다. 본질은 지도자가 아니라 국민의 수준이다. 


    ###


    구조론으로 보면 질 입자 힘의 상부구조가 본질, 힘 운동 량의 하부구조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본질은 시스템이다. 고유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관계에 의해 일정한 조건에서 도출되고 의사결정을 거치며 해제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를 고유한 속성이 아닌 사건 속에서의 하나의 연속적인 에너지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계 내부의 에너지 모순을 처리할 뿐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11.30 (09:56:00)

"본질은 엘리트가 아니라 민중이다. 본질은 지도자가 아니라 국민의 수준이다."

http://gujoron.com/xe/1144993

[레벨:9]회사원

2019.11.30 (12:43:21)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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