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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550 vote 0 2019.09.03 (22: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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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있는 일본


    '남아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이라는 영화가 있다. 2017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을 1993년에 영화화하고 있다. 6살 때 영국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일본문학의 영향이 거의 없다고 하지만 그 소설의 미학은 철저하게 일본적이다. 영국의 문화에 일본의 정신을 더한 것이다. 


    그 결과는 소설의 내용처럼 파멸이다. 서로 겉도는 것이다. 박경리가 말했나. 일본문학에 로맨스는 있어도 사랑은 없다고. 과연 남아있는 나날에서 엠마 톰슨과 안소니 홉킨스는 서로 좋아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키스신도 없다. 영국인이라면 이러지 않을 것이다. 원래 서구의 기사도는 공주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공주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공주로부터 미션을 받아 완수하고 돌아오는 것이 기사도다. 임무를 완수하고 와서 공주의 손등에 키스해야 한다. 기사도는 여성 중심이고 남아있는 나날에서도 여성인 엠마 톰슨이 적극 구애하는데 안소니 홉킨스가 거절한다. 이건 기사도가 아니며 명백히 젠틀맨의 행동이 아니다.


    여성을 울리는 일본인의 행동이다. 남주와 여주의 로맨스가 겉돌 뿐 아니라 주인과 집사와의 관계도 겉돌고 있다. 집사는 주인을 존경하고 복종하지만 주인을 망치는 결과로 된다. 그는 주인을 말려야 하는 결정적인 장면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주인은 유태인 하인을 내쳤다. 나치를 추종하는 매국노로 몰려 몰락한다. 


    70년 전 히로히또의 폭주를 말리지 못하는 일본인들과 같다. 아베의 폭주를 견제하지 못하는 현대의 일본인과 같다. 하인에게는 하인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극 중 안소니 홉킨스는 주인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 단지 완벽한 하인이 되려고 할 뿐이다. 일본인 특유의 지나친 역할분담 말이다. 철저한 불개입이다.


    https://news.v.daum.net/v/20190903160409943?d=y

   

    일본인이 놀란 것은 한국인이 모르는 사람과 정치이야기를 하는 장면이다. 한국인은 터놓고 말한다. 신분의 장벽이 없기 때문이다. 주인과 하인 사이의 넘으면 안 되는 선이 없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선 하인이 선을 넘다가 잘렸지만 원래 선을 넘는 게 한국인이다. 한국의 신하들은 마마 아니 되옵니다 하고 말린다.


    그러나 일본인은 말리지 않는다. 각자 자기 역할에만 충실하고자 한다. 그러다가 단체로 망한다. 서로 겉돌게 된다. 이시구로는 영국과 겉돌고 안소니 홉킨스는 주인과 겉돌고 엠마 톰슨은 안소니 홉킨스와 겉돌고 귀족들은 시대와 겉돌고 모두가 헛돌고 있다. 각자 자기 역할에 갇혀 후쿠시마 폭탄을 맞고 어쩔 줄 모른다.


    귀족이 집사에게 묻는다. 독일과의 전쟁을 앞두고 국제정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집사는 모른다고 대답한다. 세 번 질문하지만 세 번 다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귀족은 만족해한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민중에게 어떻게 정치를 맡길 수 있느냐고. 알 것을 아는 우리 귀족들이 나라를 통치해야지. 암만.


    그러나 그들은 아마추어였다. 나치의 선동에 솔깃해서 영국과 독일의 친선을 주장하다가 전쟁이 터지자 일제히 바보가 되었다. 물론 한국에도 많은 아마추어가 있다. 그들이 한국과 일본의 친선을 주장한다. 귀족들은 말한다.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정신이라는 것이 곧 탐욕에 가득 찬 부르주아들의 모험주의가 아니냐고. 


    그렇다. 역사는 부르주아의 탐욕이 이끌어가는 것이다. 에너지와 에너지의 투쟁이다. 에너지 낙차가 큰 쪽이 이긴다. 귀족은 에너지가 없다. 그들은 짐짓 도덕적인 체하지만 그것은 이튼스쿨에서 훈련된 것이며 가식이며 위선이다. 그것은 박근혜의 형광등 100개 아우라와 같다. 영화에는 형광등들이 단체로 대결을 한다. 


    아우라가 별거랴. 집사는 테이블 위에 놓여진 와인잔의 위치를 정확히 자로 잰다. 그게 아우라다. 박근혜가 등장하면 좌우에 도열한 문고리 바보들은 순식간에 동선을 맞춘다. 어쩌면 박근혜가 이 영화를 봤을지도 모르겠다. 잘 훈련된 하인들의 절도 있는 동작은 귀족이 보기에 상쾌하다. 그리고 망한다. 탐미적으로 망한다. 


    작위적인 아우라 만들기가 소통의 장벽을 쌓기 때문이다. 허심탄회한 대화는 없다. 소통은 없다. 에너지의 출구가 없다. 질식하고 만다. 탐미주의는 구멍을 파다가 말라 죽는다. 안소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의 소통은 차단된다. 집사와 주인의 소통은 차단된다. 귀족과 민중의 소통은 차단된다. 도처에서 차단되어 말라 죽는다.


    귀족의 캐슬은 결국 건방지고 교양 없는 미국인이 차지한다. 젠틀한 영국의 노귀족은 망하고 탐미주의 집사는 미국인의 시중을 들게 된다. 그렇다. 정확히 이것은 일본의 역사다. 지금 일본이 벌이고 있는 소동은 하인들이 단체로 결근하자 허둥대는 집사장의 모습이다. 그들은 더욱 아우라에 집착하겠지만 고립되어 죽는다.   


    아베는 트럼프의 집사 역할에 만족하겠지만 트럼프를 망치고 자신도 망친다. 엠마 톰슨은 떠나고 한국도 떠난다. 남아있는 것은 고립뿐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zuna

2019.09.04 (01:27:25)

일본에서는 정치와 종교와 야구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政治と宗教と野球の話はしない方がいい)라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주위와의 대립을 피하기 위해 지지정당을 밝히지 않는 것은 일종의 매너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9.04 (04:33:28)

"에너지와 에너지의 투쟁이다. 에너지 낙차가 큰 쪽이 이긴다."

http://gujoron.com/xe/1120199

프로필 이미지 [레벨:13]아나키(÷)

2019.09.05 (13:29:30)

야구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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