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한국의 착각 어원으로 보면 사과apology는 앞ap+말하다logy이니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 사과다. 사과는 곧 약속이다. 그런데 일본인의 사과는 다른 뜻이다. 야쿠쟈가 손가락을 자르면 과거는 없었던 걸로 된다. 일본인에게 사과는 징벌이다. 그러므로 일본인은 사과를 해도 아주 요란하게 도게자를 한다. 일본인에게 사과는 공개망신을 주는 행사다.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손가락을 자르거나, 도게자를 하거나, 부하를 할복시키면 그것으로 끝난다. 학봉 김성일이 풍신수길을 만났을 때다. 마루에 앉아있던 김성일이 가마를 타고 마당으로 들어오는 풍신수길을 크게 꾸짖었다. 사신은 임금을 대리해서 온 사람이다. 사신은 임금과 동급인데 관백 따위가 감히 가마를 탄 채로 마당으로 들어오다니 이는 무례한 짓이 아닌가? 풍신수길은 바로 가마꾼의 목을 베었다. 이 소식은 편지로 전해져서 며칠 사이에 조선 전역에 퍼져 나갔다. 대마도를 왕래하는 비선은 빠르면 한나절 만에 동래포구에 닿는다. 김성일은 단번에 스타가 되었다. 풍신수길이 가마꾼의 목을 벤 것은 풍신수길이 조선왕에 대해서 신하의 예를 갖춘 것이며 이것으로 조선과 일본의 상하관계는 확정된 것이다. 군신간의 예를 풍신수길이 배웠으므로 조선을 침략하지는 않을 것이다. '풍신수길이 무려 예의를 아는 사람이었어. 알고보니 귀여운 녀석이잖아. 학봉 김성일 멋쟁이!' 그리고 풍신수길은 보란듯이 조선을 침략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조선과 일본은 정확히 반대로 해석한 것이다. 학봉이 선조에게 은밀히 일본의 침략의도를 알리려고 했으나 이미 소문이 널리 퍼져서 수습불가 상태였다. 학봉은 그냥 뭉개고 말았다. 지금 일본은 여섯 번 사과했는데 또 사과를 해야하느냐고 항의한다. 그런데 황당하다. 사과라는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약속이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일본은 사과를 약속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계속 그 자세를 유지하겠다는게 약속이다. 그들은 사과를 공개망신을 주는 징벌이라고 생각하고 그걸로 해결되었다고 여긴다. 범죄자가 징역을 살면 죄값을 치렀다는 식이다. 여섯 번이나 사과를 해서 36년의 범죄에 대한 죄값을 치렀으니 끝났다. 위안부 문제도 10억 엔으로 끝내자. 편리한 발상이다. 일본인들은 이왕 사과를 할 바에는 요란하게 도게자를 한다. 기업의 사주가 회사의 잘못에 대해 머리를 조아리고 공개사과를 하는 일은 흔하다. 그런데 그걸로 땡이다. 용서받았다고 여긴다. apology로 보면 그들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은 것이다. 즉 그들은 사과하지 않은 것이다. 태연하게 2차가해를 저지른다. 일본인들은 원래 그렇게 한다. 야꾸쟈도 손가락만 자르면 없었던 일이 된다. 일본인에게 사과를 받는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힘으로 일본을 이기거나 중국과 연결하여 일본을 견제하는 수밖에. |
"일본인에게 사과를 받는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힘으로 일본을 이기거나 중국과 연결하여 일본을 견제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