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ahmoo
read 1793 vote 0 2019.08.06 (10:13:43)

얼마 전 지붕의 목조 부분이 불에 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고딕건축의 위엄을 전세계에 다시 상기시켰다. 랭스 대성당이나 독일의 쾰른 대성당까지 고딕 성당을 보면 신의 영역에 닿으려는 인간의 극단적 욕망을 보여준다. 빈틈 없이 수많은 조각상으로 뒤덮여 보는 이를 압도하는 파사드와 실내공간뿐 아니라, 하늘에 닿을 듯이 솟아오른 첨탑과 아득히 높은 천정 궁륭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초월적 집중력에 입을 다물 수 없다.
 
그러나 눈길 둘 곳 찾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고딕건축은 단순하기 그지없는 기둥과 아치라는 구조적 핵심을 감추고 있다. 덫씌워진 구조를 하나둘 해체하고 나면 오벨리스크와 파르테논 신전의 열주와 같은 기둥 요소와 아치로부터 확장된 돔 요소만 남는다. 그렇다면 이것을 만든 시대는 무슨 의도로 단순한 것을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엮어내었을까.
 
이들은 세속을 초월하는 표상을 통해 모든 인간적인 조건을 교황 권력의 통제권에 두려했다. 하늘을 찌를듯이 솟은 첨탑과, 빈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 조각 장식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는 신의 권위를 가져와 대중을 무릎 꿇리려는 위용을 표현한 것이다. 18세기 프랑스에서 혁명이 있기까지 '신의 건축'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건축, 특히 조선시대 한옥 건축은 그 태도와 지향점이 사뭇 다르다. 한옥의 본질을 기와나 목구조와 같은 재료로 규정하면 안 된다. 한옥의 본질은 재료가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있다. 예를 들어 볕이 잘 드는 앞마당과 숲이 있는 서늘한 뒷마당을 건축물이 막아서지 않는다. 툇마루를 열자 온도 차에 의해 공기가 저절로 흐르게 되는 것이다.


대체로 한옥은 공간을 채우지 않고 적절히 비워놓아 시선이나 공기나 사람의 움직임을 순환시킨다. 고딕건축이 압도적으로 채우고 솟아오르게 하고 시선을 독점하려고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현대 건축의 대가인 안도 다다오는 동양 건축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잘 해석했다. 빛과 바람과 안팎을 연결하는 풍경을 조형적으로 담아내는 일이 건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준 것이다.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철학이다. 본질을 감추고 포장하면 철학이 없는 것이다. 고딕의 복잡함은 그저 오벨리스크와 아치 하나로 끝난다. 현대 한옥도 기와와 공포 서까래를 얹어 구조를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다. 단순하게 해야 아슬아슬한 조형적 긴장과 구조적 도전이라는 본질이 더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 오히려 비워서 사람이 소통할 작은 공간 하나 이끌어낼 때 건축의 본질에 더 가깝다.

자연 동굴을 벗어나 인간이 스스로 기둥을 세우고 중력에 맞서려고 시도하면서 인간은 신의 권력을 맛보았다. 자신의 힘을 모두 모아 더 높고 더 우뚝 세워 100층 500m가 넘는 마천루를 만들어냈다. 고딕 대성당의 권위를 만들어낸 종교의 권위는 이제 자본의 권위로 대체됐다. 신의 건축은 사람이 마주 앉을 자리 대신 권위와 경외감으로 채우려 한다.


반면 인간의 건축은 사람과 환경이 만날 수 있는 여지를 두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가 복잡다단해짐에 따라 사람이 만나는 자리도 무척 섬세하게 배려해야 한다. 마치 한옥을 짓는 사람이 공기의 흐름과 습기의 영향과 빛의 상호작용을 살피고, 바깥 풍경을 액자에 담을 요량으로 창 크기와 위치를 고민하듯이 그렇게 섬세하게 공간에서 벌어질 다양한 관계의 국면을 살펴야 한다.

현대는 '인간의 건축'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권력이 대중들에게 넘어오는 시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여 스스로 권력을 만들고, 그 권위로 자신들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척할 수 있게 됐다. 사용자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는 사용자 연대의 형성과 발전이 더욱 중요하다. 권력을 가진 대중들이 자각할 때 권력이 소수에 독점되지 않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요구가 섬세하게 반영되는 인간의 건축이 태어날 수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수원나그네

2019.08.06 (18:09:14)

~오히려 비워서 사람이 소통할 작은 공간 하나 이끌어낼 때 건축의 본질에 더 가깝다.~

심오한 미학이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공지 구조론 매월 1만원 정기 후원 회원 모집 image 29 오리 2020-06-05 82349
2166 안녕하세요 강도혁입니다 1 강도 2005-10-30 10782
2165 김동렬님께 강도 2005-11-29 11683
2164 김동렬님..이 사이트의 글 좀 읽어주십시요. 1 날다 2005-12-19 10076
2163 가족 혹은 우리의 결혼제도에 대한 의견... 1 강도 2006-01-17 8963
2162 동렬님께... 3 kkh 2006-01-24 8906
2161 '차길진' 이라는 재미있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1 송파노을 2006-02-22 12658
2160 동렬님 1 송파노을 2006-02-22 8172
2159 대중의 한계와 인터넷 2 송파노을 2006-02-27 7443
2158 즐거움이 없는 베품이랄까? 3 프로메테우스 2006-02-27 7721
2157 문명과 대중 그리고 지식 송파노을 2006-03-01 9257
2156 [re] 문명과 대중 그리고 지식 1 김동렬 2006-03-01 8542
2155 문명과 지식 1 김동렬 2006-03-02 8174
2154 고수와 하수 김동렬 2006-03-02 9895
2153 굿을 어떻게 이해할수 있을까요? 1 프로메테우스 2006-03-19 9240
2152 질문있습니다 ^^ 강도 2006-05-06 8742
2151 [re] 질문있습니다 ^^ 2 김동렬 2006-05-06 8642
2150 전기로 물을 염색해보려고 해요... 강도 2006-05-17 9243
2149 [re] 전기로 물을 염색해보려고 해요... 1 김동렬 2006-05-17 9185
2148 욕망을 혁명하기 6 강도 2006-06-05 8912
2147 구조론 부적응 1 아티스 2007-11-18 5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