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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6002 vote 0 2010.08.25 (18:03:09)

 

 

  2. 지성이란 무엇인가?

 

  자기 바깥에 뇌가 하나 더 있다면 좋은 거다. 지성은 바깥뇌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로 설명할 수 있다. 구조론의 밸런스 원리에 따라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제어한다. 문제의 해결은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끌어들이는 방법과 내부에서 에너지를 제어하는 방법이다. 전자는 상부구조, 후자는 하부구조다. 전자는 지성의 바깥뇌이고 후자는 지식의 안쪽뇌다. 지혜가 중간에서 그 안과 밖을 연결한다. 창의하는 지성이 제어하는 지혜에 앞서고, 제어하는 지혜가 소비하는 지식에 앞선다.

 

 

     지성(상부구조)

      ◇

     지혜

      ◇

     지식(하부구조)

 

  물질을 운영하는 것은 에너지다. 지식을 운용하는 에너지는 창의와 혁신이다. 오직 에너지에 의해서만 문제가 해결된다. 창의와 혁신이 없이 과거의 텍스트를 암기만 하는 단순 지식은 호흡하지 못하고 죽는다. 살아서 호흡해야 한다. 진보하고 발달해야 한다. 창의와 혁신으로 외부에서 자원을 공급하는 것이 상부구조, 내부에 축적된 지식을 쥐어짜서 쓰는 것이 하부구조다. 상부구조는 외부의 환경과 교감하여 하부구조에 비축된 지식의 쓰임새를 결정한다.

 

  우리는 지식을 ‘아는 것’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행하는 것’이다. 행하기 위하여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판단과 결정이 우리의 뇌 안에서 일어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바깥 환경과의 교감에 의해서만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뇌 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반복작업 뿐이다. 과거에 판단해 둔 일과 같은 일이 반복될 때 뇌 안에서 쥐어짤 수 있을 뿐 새로운 상황에서는 결코 쥐어짤 수 없다. 그럴 때 지식은 소용이 없다. 지혜가 필요하고 지성이 필요하다. 바깥뇌가 필요하다.

 

  바깥뇌는 개인에 의해 독점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도서관처럼 공중에 의해 공유되는 뇌다. 그러나 도서관은 인격이 없다. 소통의 코드가 없다. 흐름이 없고 트렌드가 없고 방향성이 없다. 역사와 함께 호흡하지 않는다. 다만 우두커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인터넷도 공공도서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역시 인격이 없다. 그 바깥뇌가 독립적인 인격을 획득할 때 그것이 바로 지성이다.

 

  지식인집단이라는, 강단학계라는, 인터넷이라는, 지적 공유자산이라는 형태의 바깥뇌가 시대정신과 교감하는 소통의 코드를 얻고, 역사의 트렌드를 얻고, 진보의 방향성을 얻어 집단의 의사결정 속도와 의사결정의 정확도를 높일 때 그 지성의 인격은 이루어진다.

 

  곳간에서 양식을 퍼온다면 문을 따고 들어가서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다가 여러 독들 중에서 원하는 좁쌀이나 기장이 든 항아리를 찾아 뚜껑을 열고 자루에 퍼담으면 된다. 그러나 그 곳간이 독립적 인격을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근대의 지성개념은 스페인내전 시기 국제여단의 활동에서 정립된 것이다. 피아구분을 해야 한다. 암호를 대야 한다. 지성은 달리는 버스와 같아서 정해진 정거장에서 기다려야 탈 수가 있다. 행선지가 일치하지 않으면, 호흡이 맞지 않으면, 코드가 맞지 않으면, 버스를 놓치고 만다.

 

  지성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그 생명체를 살찌우는 형태로만 소통할 수 있다. 지성 뿐 아니라 자본도 그러하고 회사도 그러하고 세상의 모든 조직과 생명체가 그러하다. 우리는 개인의 경제활동이 모여서 시장을 형성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본이라는 괴생명체가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하며 문어발로 확장하여 주변의 환경을 점차 장악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경제활동은 그 자본이라는 괴생명체의 성장에 기여하는 형태로만 성립된다. 만만이 보아서 안 된다. 곳간에서 쌀 퍼가듯 필요한 만큼 원하는대로 가져갈 수 없다. 주식에 투자하듯 기여한 만큼 가져갈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참여지성이 아니면 안 되고, 실천지성이 아니면 안 되고, 행동하는 양심이 아니면 안 된다. 지성에는 지분이 있다.

 

  도서관이 있어도 글을 모르는 사람에겐 소용이 없다. 지성인은 바깥뇌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지성인이라면 다른 사람의 뇌도 내것이 된다. 그럴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호환성을 가져야 한다. 표준화 되어야 한다. 도량형이 통일되어야 한다. 마땅히 세계시민 의식을 가져야 한다. 깨어있는 시민의 교양을 쌓아야 한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나약한 군중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사유하는 강한 개인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대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아야 한다. 역사의 편, 진보의 편, 공동체의 편, 문명의 편, 진리의 편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지성은 피아구분을 한다.

 

  도서관은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지만 지성은 버스와 같아서 정거장을 옳게 찾아가지 않으면 탑승할 수 없다. 마땅히 소통의 코드를 얻어야 한다. 당신은 그것을 이미 얻었는가? 아니면 아직 얻지 못하였는가? 어쨌든 지성의 버스는 지금 출발하고자 한다.

 

 

 지식소매상 유시민

  

  지식 소매상! 좋은 표현이다. 부러움을 느낄 만큼. 유시민의 이 한 마디가 내게 이 글을 쓸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내게 구조론의 지혜는 있는데 강단의 지식이 없다. 지식은 소매하여 바로 팔아먹을 수 있겠으나 지혜는 덩어리가 커서 바로 팔아먹을 수가 없다. 소매는 어렵고 도매가 낫겠다. 지혜는 지성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야 자동차가 달릴 수 있듯이. 구조는 공간에 에너지를 태운 것이다. 그 에너지가 가는 길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먼저 댐을 막아 물을 가두어 낙차를 얻어야 그 에너지를 쓸 수 있다. 내부에 자체엔진이 장착되어 있어야 한다. 독립적 인격을 가지고 피아구분을 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하는 지성의 세력을 출범시켜야 한다.

 

  지식은 현장에서 직접 문제를 해결해 주지만, 지혜는 배후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툴을 제공한다. 그 툴을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지성이다. 전구는 현장에서 불을 켜고, 전선은 라인을 연결하여 그 빛을 공급하고, 발전소는 그 에너지를 생산한다. 지식은 전등과 같다. 전기가 없을 때도 촛불이 있고, 관솔불이 있고, 횃불이 있었듯이 구조론의 지혜가 없을 때도 지식소매상은 있었다. 구조론의 전선망은 조금 더 합리적인 수단을 제공한다. 결정적으로 발전소가 있어야 한다. 구조론의 지혜가 작동하는 지성의 시스템이 건설되어야 한다.

 

  지성없는 지혜는 총 없는 총알과 같아서 소중하지만 쓰이지 못한다. 농부는 수확한 곡식을 팔아먹지만 나는 그 농부가 필요로 하는 물을 공급한다. 그 물을 논밭으로 인도할 수로가 없다. 대규모 치수사업을 벌여 수로를 건설해야 나의 물공급 사업은 성공할 수 있다. 지성이라는 대규모 치수사업이 필요한 거다. 인류가 힘을 하나로 모으는 시스템을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이미 갖추어져 있다. 공공도서관이 있고, 강단학계도 있고, 언론도 있고, 인터넷도 있다. 그러나 미비하다. 인격이 없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식물화 되어 있고, 강단학계는 노쇠화 되어 있고, 언론은 수구와 좌파에 의해 찢어져 있고, 인터넷은 대표성이 없다. 결정적으로 의사결정을 못한다.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한다. 분명히 말한다. 인격을 얻어야 지성이다. 역사의 편, 진리의 편, 문명의 편, 공동체의 편, 진보의 편에 서서 피아구분을 해야 지성이다. 방향성을 제시해야 지성이다. 실천을 투자하여 기여한 만큼 꺼내쓸 수 있어야 지성이다.

 

  유시민의 지식소매상 개념은 90년대 강준만의 1인 미디어 운동을 연상하게 한다. 강준만은 거의 혼자 작업으로 잡지를 발행했다. 요즘은 1인 미디어 개념이 인터넷 블로그로 옮겨가 버렸다. 이제 누구나 자기만의 미디어를 갖출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아프리카를 이용하여 1인 방송국을 운영할 수도 있다. 바야흐로 스마트 TV가 논의되는 시대이다. 개인의 영역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갈수록 고립되어 간다. 예전에는 블로그가 번화한 시내의 장터거리였는데 지금은 궁벽한 산골이 되어버렸다. 궁벽한 산골에서 홀로 메아리없는 고함 그만두고 도시로 나와야 한다. 세력화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도처럼 밀고 나가는 방향성을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대정신과의 교감이 선행되어야 한다.

 

  글을 구상하면서 혹시 선점이 되었는가 해서 ‘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리타분한 제목으로 검색을 하여보니 ‘찰스 리더비터’의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책 한 권이 뜨더라. 너도 나도 지성을 말하는 세태이다. 그런데도 정면으로 ‘지성이란 무엇인가?’를 논하는 사람은 없었던 거다. 하여간 ‘지성’도 모르면서 ‘집단지성’을 어이 찾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찰스 리더비터의 말대로 지금은 집단지성의 시대이다. 그러나 집단의 지성도 좋지만 먼저 개인의 지성부터 챙겨야 하지 않을까? 우르르 몰려 다니기 잘하는 나약한 군중으로는 집단지성을 이룰 수 없다. 먼저 강한 개인으로 우뚝서지 않으면 안 된다. 강한 개인들의 수평적 연대로만이 제대로 된 집단지성을 이룰 수 있다. 아니 그 전에 지성이라는 말 안에 이미 집단지성의 의미가 들어있다. 참된 지성은 집단화 될 수 있는, 호환될수 있는, 소통할 수 있는,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대정신을 타고 가는 인격이어야 한다. 자기 한 사람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괴벽한 태도는 지성이 아니다.

 

  지성 개념은 우리에게 친근하다. ‘문학과 지성’이라는 출판사도 있고 대학을 지성의 전당이라고도 하더라. 지성! 좋은 말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있게 ‘지성은 이거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없더라. 왕조시대의 군자 개념이나 혹은 그 군자를 자처하는 선비집단이나, 서구의 신사 개념이나 다 지성을 추구하는 표현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지성을 추구한다. 그런데 지성을 모른다. 그래서 말한다. 지성이란 다른 사람과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널리 소통할 수 있는, 자기와 생각이 다르고 가치가 다르고 지향점이 달라도 포용할 수 있는 그러한 포지션에 가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포지션이다. 포지션을 선점하지 않고 다른 것에 종속되어 있으면 결코 소통할 수 없다. 높은 인격을 가지고 있어도 한국말을 모르면 대화할 수 없다. 시대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열없다. 창조하지 못하고 혁신하지 못하는 지식은 에너지가 없는 것과 같아서 어색할 뿐이다. 그 지식은 버려진다. 우일신 할 수 있어야 한다.

 

  세력화 되어야 한다.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카피가 눈에 띈다.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고 씌어져 있더라. 과연 똑똑할까? 그 똑똑함이 신속한 의사결정을 보장할까? 천만에. 혼자서 잘 결정하는 사람도 여럿이 되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 한다. 인격은 의사결정 능력이다. 똑똑하다 해도 폭력적 상황 앞에서 과단성 있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다면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것이며 그 인격은 보잘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고 말하더라만 우리가 나보다 의사결정을 못하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다. 지성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소통은 의사결정을 위한 소통이며 의사결정은 똑똑함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포지션에서 얻어진다. 곧 주도권이다. 에너지를 장악하고 있는 자가 의사를 결정할 수 있다. 독립적 인격을 가진 자가 의사를 결정할 수 있다. 우리가 나보다 의사결정을 못하는 비지성적 현상은 작은 동아리 모임에만 참여해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인격이 중요하다. 신중함과 결단력을 동시에 갖춘 의사결정능력이 그 사람의 인격이다. 폭력적 상황에서 주눅들지 않고, 남들이 다 YES라고 해도 위축되지 않고, 지식인 특유의 냉소와 허무에 빠지지 말고, 대중의 위압에 흔들리지 않고 바른 길을 갈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자신의 아이디어로 말하지 않고 서구의 지식을 번역하여 거간하는 한국의 지식 중개상들은 대중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져 있다. 창조능력, 혁신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내것이 아닌 남의 것을 가지고 장사를 하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나온 지식, 내 배 아파서 낳은 진짜배기 지식을 가졌다면 결코 위축되지 않는다. 주도권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에너지의 길목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내 손 안에 스위치가 있기 때문이다.

 

  인격을 갖춘 지식이 지성이다. 그리고 그 인격은 소통을 위한 인격이며, 그 소통은 게임의 법칙이 작동하는 포지션 구조 안에서 이심전심 형태로 일어나고, 창조와 혁신이라는 에너지 투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산업이라면 에너지를 가진 자가 주도권을 잡는다. 지식이라면 역시 혁신하는 자가 주도권을 잡는다. 한국의 지식인 중에 진짜는 없다시피 하다. 현재로는 한국에서 지식을 창조하는 것보다 서구의 것을 번역하는 것이 더 효율성이 높기 때문이다. 모든 지식인이 내것이 아닌 남의 것을 판다. 진중권이 미학을 팔아도 남의 나라 미학이고, 유시민이 청춘의 독서를 팔아도 남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도권이 없다. 소통의 대표자로 나설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그 안에 인격이 없다. 핵심인 의사결정 부분이 없다. 다른 사람이 결정한 것을 통보할 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카더라 방송’이다. 당연히 지성은 없다. 내가 창조한 지식 안에서 내가 왕이 되는 것이며 그것이 포지션의 우위다. 지성은 그 안에 있다.

 

  지성은 곧 집단지성이며 집단지성은 집단인격이며 집단인격은 집단의 의사결정능력이며, 집단의 의사결정은 이심전심 원리에 의한 포지셔닝 게임에 의해 일어난다. 집단 안에서 자기에 맞는 포지션을 찾아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데서 인격이 얻어진다. 종속되어 명령대로 수행할 뿐인 노예에게는 인격이 없다. 대표자의 권한이 없다. 예술가는 자신이 낳은 작품의 가치를 자신이 임의로 결정한다. 그것이 포지션의 우위에 따른 의사결정능력이다. 그것이 인격이고 지성이다.

 

  지성은 공유된 지혜이지만 그 지혜는 달리는 지혜, 진보하는 지혜, 움직이는 지혜, 발달하고 성장하는 지혜이므로 의사결정에 따른 포지션이 있다. 주도권이 있다. 왜냐하며뉴 진실로 말할 때 그 의사결정은 인간의 임의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이라는 생물체 자신의 성장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집단지성이라는 생물체 그 자체를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지성인은 큰 고목나무에 까치가 집을 짓고 깃들어 살듯이 지성은 개인이 인류의 집단지성이라는 생물체에 깃들어 사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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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08.26 (16:10:22)


철학자는 지혜를 끌어와 주는 사람이고
지식소매상은 지식을 말 그대로 넘겨주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네요.
그러니 철학자와 학자의 간극은 있는 것이겠지요. 역할도 분명히 다르구요.

역사를 살펴보면 BC 2500~ 2100년까지 철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동서를 막론하고 나타났고(부처,공자,맹자,소크라테스,플라톤등등)  그 이후로 예수가 나타났고....그 이후로 2000년간 인간들은 그것을 우리고 삶고 볶고 지지고 재탕 삼탕하여 계속 그것에서 무엇인가를 빼먹었구요.
이제 2000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서 다시 철학이라 할만한 것이 나타났으니 그것이 구조론이라 생각됩니다.
그동안 2500년동안 지금처럼 역사에서 세상이 완전히 바뀐적은 없었기에 이 시대에 맞는 철학의 등장은 필연이었다고 생각도 되구요.
그래서 이 시대에 맞는 철학이 나와 주어야 인류는 다시한번 진보하는 것이고 도약하는 것이라고 생각도 되구요.
인류가 2000년전에 나온 철학으로 지금까지 살았다면 앞으로는 얼마간을 구조론으로 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새로운 철학이 나온 것은 사실이고,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거나 해왔다면 그 과정을 살피면서 구조론적으로 대입해보면 거의 안맞아 떨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간과되었는지도 알게 될 것이구요.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겠으나...
큰 역사의 테두리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구조론이 마음에 안든 사람들이 어떻느니 저떻느니...하는 것에 앞서서 역사의 테두리에서 볼 때 구조론이 나온 것은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새로운 시대를 살기 위해서, 혹은 새로운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철학의 관점이 재정립되어야 방향이 정해지고 에너지가 나오기에
그것으로 인하여 추진기 역할을 하게 되니까요.

단지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하여도 ,완벽하게 세상에 적용을 내가 시키진 못한다 할지라도 일단은 그것을 알아보았다는 것에 의의가 있기에 만족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2]wisemo

2010.08.26 (18:33:29)

구조론 선언에 추가해야 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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