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과 오은선
친한 친구가 갑자기 존칭을 쓰며 정색을 하면 조심해야 한다. ‘거리를 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높이는 것이 곧 상대방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필자의 주장은 ‘상대방과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자’는 거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배경으로는 첫째 차기 대선에서 후보단일화 전술의 실패 예상이 있고, 둘째 대안으로 제시하는 공동정권 창출계획이 있다. 막연하게 후보단일화만 하면 어떻게든 될거라는 망상을 버리고, 지금부터 구체적인 공동집권, 공동권력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냥 ‘내 밑에 들어오라’고 우기는 식의 ‘아전인수 전술’로는 실패할 뿐이다. 대범하게 신사협정을 맺어야 한다.
왜냐하면 쪽수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이기지 못한다. 우리표 다 모아도 숫자가 과반이 안되므로 진다. 우리표 다 모으고 플러스 알파로 저쪽표를 둘로 쪼개야 비슷하게 승부가 된다. 지난 두 번의 승리도 그랬지만 최선+기적이라야 한다. 그래서 판을 세팅하는데 절차가 복잡하다.
우리는 인물이 있되 세력이 없고, 민주당은 세력이 있되 인물이 없다. 우리의 인물과 민주당의 세력을 합쳐야 한다. 그럴 때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서 플러스 알파로 한나라당의 기반이 붕괴된다. 우리는 민주당과 신사협정을 맺어야 하면서 동시에 한나라당 일부를 쪼개서 중립화 시켜야만 한다. 97년에 DJ가 종필과 협약을 맺으면서 동시에 인제를 빼서 중립화 한 것과 같다.
민주당을 비판하거나 혹은 동영을 비판하는 글들은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동영과, 혹은 민주당과 친근하다는 느낌이 든다. 애정어린 비판이다. 지금은 애정있는 비판보다 애정없는 존중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애정을 버리고, 감정을 버리고, 쿨하게 신사적으로 가자는 거다.
그들은 타인이다. 한 식구 아니다. 남남이다. 정중하게 대해야 한다. 사돈집 대하듯이 어려워야 한다. 그게 경우라는 거다. 경우없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예컨대 유시민이 동영을 비판한다면, 정치인 동영 개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동영을 대표자로 내세운 호남표 전체에 대한 공격이 된다. 이게 문제다.
호남이 유시민을 한 식구라고 여긴다면, 유시민의 동영 비판이 동영 개인에 대한 비판으로 되겠지만, 호남이 유시민을 거리감이 느껴지는 즉, 남남과 같은 존재라고 여긴다면, 유시민의 동영 비판은 호남에 대한 공격으로 된다. 그러므로 처신을 잘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DJ와 차별화 하지 않았듯이 말이다. 주변에서 영남표를 얻으려면 홍삼비리로 인기가 떨어진 DJ를 비판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DJ를 공격하지 않았다. 반대로 동영은 배신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공격했다. 그 차이다.
지금 유시민은 근혜와 동영을 비판할 수 없는 포지션에 와 있다. 어떻게든 근혜를 한나라당에서 끌어내어 중립화 시키고, 동영을 고리로 호남표의 마음을 돌려놓아야 한다. 그런다고 근혜가 한나라당을 기어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런다고 호남표가 유시민을 달리보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길은 그곳에 있고, 그쪽으로 가야 수가 나도 난다. 구조원리가 그렇다.
에너지가 가는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뜻밖의 도움을 받게 되지만, 그 반대쪽으로 가면 계획대로 다 되었는데도 결과적으로는 남 좋은 일 시킨다. 그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지금 근혜, 동영이 유시민 뜻대로 움직일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그 방향으로 가면 소통의 코드를 얻게 되고 또다른 기회가 포착된다. 왜냐하면 그 상대방들도 유시민의 도움 내지 중립을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게 뒷맛이다.
남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포지션에 가 있음으로 해서, 단기적으로 남들에게 이용당하는듯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거꾸로 남들이 이쪽의 주도권에 길들여지게 하는 것이다. 정몽준이 후단협과 내통하여 노무현 후보를 이용해 먹으려다가 이용당한 이치다. 겉으로는 세가 있는 쪽이 유리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개인의 전투력에 의해 승부가 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근혜나 동영이 세를 가지고 있지만 세 사람을 무인도에 던져놓고 그 중에서 한 사람만 살아나오게 한다면 그 한 사람은 유시민이다. 막판에는 깡이 있는 사람이 이긴다. 이인제의 세가 노무현의 깡에 잡아먹혔듯이 말이다. 근혜가 명박에게 진 것이나, 회창이 DJ에게 지고 노무현에게 진 것이나, 동영이 명박에게 진 것이나 같다. 무인도에 던져놓고 일대일을 벌이면 DJ승 회창패, 노무현승 회창패, 명박승 근혜패, 명박승 동영패다. 대선에서는 일대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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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을 인터뷰한 엘리자베스 홀리 여사의 이중플레이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아마 홀리 여사는 처음부터 오은선을 인정하지 않았을 거다. 그 정도 안목이면 척 보고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오은선은 홀리를 만나서 유리한 인터뷰를 따왔다. 홀리는 자신의 발언이 오은선에 의해 악용될줄 알면서도 소스를 제공했다. 이번 SBS 인터뷰에서도 홀리의 이중플레이는 계속된다.
한 마디로 ‘나는 오은선을 믿는다. 그러나 확증은 없다. 증명은 한국인 니들이 해라.’ 이거다. 세치 혀를 놀려서 교묘하게 발을 빼버린 것이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홀리는 오은선에게 신사적으로 대했을 뿐 아니라 SBS에게도 정중하게 대했다. 이건 어느 면에서 극도의 불신을 나타낸다. 홀리는 정중하게 한국을 엿먹인 것이다. 이건 뭐 인류학 책에 나오는 원주민 길들이기 공식이다. 그는 문명국가의 학자가 원주민을 구슬리는 방식으로 한국인을 갖고 논 것이다.
정중하고 신사적이다. 이게 고수가 하수를 다루는 방식이며, 선진국이 후진국을 갖고 노는 방식이며, 전문가들이 귀찮게 하는 아마추어를 따돌리는 방식이다. 유시민의 동영 다루기, 근혜 다루기도 이래야 한다. '나는 동영을 백퍼센트 믿는다. 그런데 증거는 없다.' 요런거 써먹어야 한다.
만약 홀리가 한국에 관심과 애정이 있고, 한국을 잘 알고, 오은선과 친했다면 오히려 현미경을 들이대고 트집을 잡아가며 비판했을 것이다. 박노자가 노상 한국을 비판하듯이 말이다. 충고도 애정이 있어야 해주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온 상업등반가’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안다는 식으로 오은선을 대했다. ‘원하는게 뭐야? 니가 원하는 말을 해주겠어’ 하는 식으로 정중하게 엿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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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원 중에서 가장 한나라당과 가까운 노선을 걷던 동영이 갑자기 부유세를 주장하고 나섰다. 내놓고 민노당원 행세를 하는 천정배와 손을 잡더니 이재오 찜쪄먹을 카멜레온 변신솜씨를 자랑하고 있다. 어쨌든 신선하다. 마땅히 박수쳐주어야 한다. 그는 적어도 대권욕망을 보였다. 중요한건 욕망을 보였다는 거다.
항상 문제는 저쪽은 욕심이 많은데, 이쪽은 욕심이 없어서 문제라는 거다. 유시민은 욕심있는 사람의 행보가 보이지 않는다. 욕심있는 사람은 말을 앞세우지 않는다.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게 아니라 남의 말을 진득하게 듣고 있다가, 남의 생각을 마치 아이디어인 것처럼 슬쩍 훔쳐서 말하거나, 아니면 다수의 의견을 마치 원래부터 자기 의견이었던 것처럼 슬쩍 정리해서 말한다.
유시민이 욕심이 있다면 노인층 표를 의식하는 행보를 보여야 한다. 동영은 자기를 싫어하는 진보표를 잡으려고 맘에 없는 소리를 한 것이다. 쇼를 한 거지만 쇼를 하는 것도 유권자에게 성의를 보이는 거다. 유시민은 노인표를 위해 어떤 성의를 보이고 있나? 경로당 찾아가서 노령연금 홍보하는건 도움이 안 된다. 노인표를 잡으려면 노인표를 쥐고 있는 사람과 연대를 해야 한다. 어쨌든 동영은 왼쪽표를 쥐고 있다고 믿어지는 천정배와 연대하고 있다. 그래봤자 호남우물 안에서 맴도는 짓이라 효과가 없지만.
동영은 영남표를 잡고 있는 사람과 연대함으로써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 이게 공식이며 공식대로 가는 것이 유권자 앞에서 성의를 보이는 겸손한 태도다. 그리고 이러한 겸손은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본인이 먼저 욕망을 보여야 주변에 인재가 꼬인다. 유시민은 노인표를 잡고 있는 인물과 연대하고 또 호남표를 잡고 있는 인물과 연대하는 방법으로 약점을 보완할 수 있고, 그러한 행보를 보일 때 욕망이 드러나며 욕망을 과시해야 인재가 모여든다.
필자의 주장은 서로 친한 척 하지 말고, 서로 아는 척 하지 말고, 서로 간에 거리를 두고, 사돈집 대하듯이 서로 어려워 하며, 자기의 약점을 보완하는 상대쪽 인물과 연대를 하되, 차기에는 그냥 여론조사로 단일화 해서 ‘내밑으로 들와라’가 아니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권력분점, 공동권력, 공동집권 시스템을 도출하라는 거다. 그러기 위하여 지금부터 신뢰를 축적하자는 거다.
단일화? 아마 동영은 지금쯤 단일화 여론조사 게리맨더링 필승공식 백개쯤 만들어놓고 있을 거다. 자신이 무조건 이기도록 세팅된 단일화룰을 강요할 거다. 이 상황에서 여론조사는 의미가 없다. 공동집권이 정답이며, 공동집권을 위해서는 서로 친하지 말고, 서로 아는 척 하지 말고, 엘리자베스 홀리의 “나는 당신을 100퍼센트 믿는다. 그러나 증거는 없다. 해결은 너의 문제다.”는 식의 애매한 이중플레이를 해야 한다. 신사적으로 가는 거다. 그런데 이거 아는가? 원래 신사란 것들이 참으로 음흉하다는 것을. 고수들은 다 음흉하다. 하여간 영국넘들이 제일 음흉하다. 더 음흉해져야 한다. 표정을 읽을 수 없도록 낯은 두꺼워져야 하고, 속을 알 수 없도록 뱃속은 시커매져야 한다. 이게 공식대로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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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증명을 해야하고 인증을 해야하고 검증을 받아야 하는 일들이 많군요.
그냥 하면 한 것이고 안하면 안한 것인데... 모두가 관심을 갖고 인간이 도전하기 어려운 것들에 있어서는 꼭 증명과 인증과 검증의 절차가 따라다니는군요. 먼저 가본 사람에게서.... 혹은 먼저 선점을 하고 있는 세력에게서...
대권에 욕망이 있다면 욕망을 드러내야 하겠지만, 대권에 욕망이 없다면,혹은 나 아니어도 괜찮다.라는 생각을 갖는다면 욕망을 드러내지 않겠지요. 일반적으로 균형을 갖고 있는 사람은 책임질 수 없는 욕망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기에...
대권에 욕망이 있다면 어느방향으로 욕망을 드러낼 것인가? 어디와 손을 잡을 것인가의 방향을 처음부터 잘 잡아야 하는데...
대권에 욕망이 있다면을 전제하여 이런 방향으로 가야한다라는 조언의 글이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체로 욕망자체를 저급한 것이라고 인지하는 경향이 많기에 욕망에 대한 속성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급한 욕망과 순수한 욕망의 열정은 조금 다른 것이니까요.
저급한 욕망은 우리가 느끼기에 뭔가 합당하지 않고 그것이 보기에 좋지 않기에 뭔가 밸런스가 맞지 않기에 저급한 욕망이라고 느끼는 것이고 보면... 순수한 열정의 욕망은 우리가 보기에 밸런스가 맞고 보기에 좋게 보이기에 순수한 열정의 욕망이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