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적 확신 초등학교 1학년 때는 교실 하나에 학생이 무려 80명도 넘게 있었다. 나는 안면인식장애 때문에 두어 달이 지났는데도 얼굴을 익힌 애가 십수 명에 지나지 않았다. 80명은 많은 숫자이고 그 숫자 속에 숨으면 안전하다고 여겼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무슨 짓을 해도 선생님은 모를 것이다. 교실은 안전한 공간이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지내면 괴로울 일은 없을 터였다. 그렇지 않았다. 하루는 받아쓰기 시험을 치렀는데 짝과 시험지를 바꿔 채점하는 방식이다. 선생님이 알아채지 못할 것이라며 0점인 점수를 100점으로 올려달라길래 오답을 정답으로 고쳐 점수를 올려줬는데 선생님이 귀신같이 알아채고 싸대기를 때렸다. 어떻게 알았지? 설마 이 많은 학생의 이름과 성적을 선생님이 다 알고 있다는 말인가?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나만의 착각이었다. 한 번 얼굴을 본 사람은 모두 기억하는 사람도 있더라. 얼굴을 한 번 보고 기억한다면 교과서도 한 번 펼쳐보고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천재네. 그런데 교과서는 기억 못 하고 한 번이라도 대화를 나눈 사람 얼굴은 죄다 기억한다고. 교과서를 눈으로 찰칵 찍어서 기억하는 사람도 있더라. 서번트 증후군인가? 그런 암기력 천재만 법조계에 모두 모여있다면 나라가 망할 위기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생각 없는 사람만 한곳에 쏠려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숫자 속에 숨으면 안전하다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한 나라 안에서 여섯 단계만 거치면 모두 연결된다는 이론이 있다. 범위를 좁혀 보자. 왜 사람들이 지역주의에 예민한가 하면 지역에 따라서는 세 다리만 걸치면 대통령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섯 다리는 멀다. 여섯 다리를 거쳐 연결할 일은 없다. 보통은 내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까지도 연락하지 못한다. 세 다리도 벅차다. 그런데 여섯 다리의 절반인 세 다리를 거치면 대통령과 연결할 수 있다면 어떨까? 집념을 가지고 연결을 시도해볼 만하다. 내 스마트폰 전화번호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카톡을 보내고 그 사람이 또 카톡을 보내는 거다. 청와대 직원이 700명이라면 그 안에 들어갈 확률이 상당히 있다. 예민한 문제가 된다. 어느 지역에서 대통령이 나오느냐에 따라 세 단계 안에 연결되거나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반반까지 간다. 세 다리 안에 대통령과 연결이 된다고? 이 정도만 되어도 심쿵하는 사람 있다. 한 사람이 집념을 가지고 덤빌 만하다. 박빠부대라면 어떨까? 뭐시라? 세 단계 안에 우리 근혜님과 연결이 된다고? 태극기부대 나가야 된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만 심쿵해 버리는 거다. 목숨 걸고 덤빌 사람 천지다. 세상은 의외로 좁다. 여의도 주변 얼떨리우스들이 정치중독에 걸리는 이유다. 의외로 청와대와 가깝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는 역으로 내가 경찰이라면 범인을 압축시키기도 쉽다는 거다. 한 가지 단서만 잡아도 세 번 정도 추리고 보면 범인은 대략 용의선상에 올라 있다. 성별에 나이에 직업만 추려도 대략 윤곽이 나와주는 것이다. 우리는 막연히 숫자에 숨고 익명성 속에 숨으려 하지만 안전하지 않다. 관심을 끌면 금방 추적된다. 세상에 별일이 다 있으므로 초능력도 있고, 텔레파시도 있고, 외계인 소행도 있고, 타임머신도 있고, 무한동력도 있고, 귀신도 있고, 유령도 있고, 요정도 있고, 심령술에 내세, 천국, 환생에, 일루미나티에, 초자연현상에, 초고대문명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거 없다. 이렇게 일일이 열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렇게 많으니까 이 중에 하나쯤은 있지 않겠나 하겠지만 그 반대다. 황교안이 자식의 취업에 먹혔다는 결정적인 한 방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건수가 많다는 게 오히려 숨을 곳이 없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백사장에 모래알이 많으므로 그 숫자 속에 숨을 수 있지 않겠나 싶지만 죄다 모래라서 금방 들통난다. 사막에는 숨을 곳이 없다. 숫자 속에 숨는다는 생각은 현명하지 않다. 왜?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능력을 입증하여 랜디 아저씨의 백만불 상금을 받아간 사람은 없다. 자신의 운명을 알아맞춘 점쟁이는 지구상에 한 명도 없다. 로또복권의 당첨번호를 알고 복권을 구입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과거에 없었을 뿐 아니라 미래에도 없다.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느냐고? 단정할 수 있다. 확실히 단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큰 틀에서의 방향설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정답을 찍어주는 게 아니라 오답을 제거하는 것이다. 오답을 제거하면 정답을 맞출 확률이 급속하게 올라간다. 사지선다형 문제다. 셋만 제거하면 정답을 찾은 것이다. 정답을 떠올리려고 머리를 싸매기보다 오답을 추리는 것이 훨씬 빠르다. 일단 긴 것은 아니다. 거짓을 꾸며내느라 문장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짧은 것도 아니다. 숫자 채우려고 성의 없이 대충 끼워 넣은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 50퍼센트 이내로 좁혀졌다. 답은 이 안에 있다. 오답 둘과 비슷한 패턴으로 대칭된 것이 가짜다. 높다. 낮다. 아름답다. 부지런하다. 이 중에 높다와 낮다는 대칭되므로 일단 빼자. 이런 식으로 짱구를 굴리면 금방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서너 번 추리면 의외로 정답에 근접할 확률이 급속하게 올라간다는 점이다. 자신이 직접 문제를 출제해보면 패턴을 안다. 무엇인가? 당신은 청와대와 연결할 수 없다. 아는 사람이 있어도 연결해 달라고 부탁할 수 없다. 왜냐? 상대가 당신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안면이 있지만 당신의 전화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황교안이라면 어떨까? 부탁을 안 해도 KT에서 알아서 정규직으로 뽑아준다. 정치중독자들이 나대는 이유가 그거다. 왜 안철수가 망가졌을까? 당연히 안될 줄 알았는데 어 되네? 전율한다. 감격한다. 심쿵한다. 맛이 간다. 교안이도 경원이도 다들 심쿵해 있는 것이다. 자신의 파워를 알고 흥분한 거다. 사실 당신도 여섯 다리 건너기 전에 대통령과 연결될 수 있다. 다만 당신이 그다지 잘난 사람이 아니라서 부탁을 못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국정원 직원쯤 된다면? 당신이 국회의원이라면? 당신이 유명인이라면? 여섯 다리는커녕 두어 다리도 건너기 전에 대통령과 연결된다. 당신이 숫자 속에 숨으려는 것은 당신이 학생 신분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숫자 속에 숨으려 한 것은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알고 있다. 80명의 학생을 죄다 파악한다. 위치선정이 중요하다. 교탁에서 보면 보인다.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절대로 안 보인다. 당신이 과학자라면 지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훤하게 꿰뚫고 있다. 당신이 의사라면 환자의 안색만 보고 어디가 탈이 났는지 안다. 당신이 카센타 기사라면? 소리만 듣고 자동차의 어디가 고장 났는지 귀신같이 알아맞춘다. 당신은 높은 위치에 있지 않으므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과학자라면 초능력, 텔레파시, 외계인 방문, 타임머신, 무한동력, 초자연현상, 귀신, 유령, 요정, 심령술, 내세, 천국, 환생, 일루미나티, 초고대문명 이 열다섯은 절대 많은 게 아니다. 거의 하나로 좁혀진다. 죄다 같은 것의 반복이다. 찌질이의 도피처 이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구조론은 마이너스법을 쓴다. 죄다 한곳에 모아놓고 추려내는 것이다. 그런데 급속하게 추려진다. 잘 압축된다. 황교안 아들이 빽 써서 KT에 취직하기만큼 쉽다. 그냥 얼굴에 철판만 깔고 있으면 이미 취업되어 있다. 만약 당신이 성공한다면 당신이 대단히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경쟁자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벌써 절반이 추려진다. 만약 당신이 사자에게 쫓기고 있다면 맨 뒤에 처지는 사람보다 반걸음만 앞서면 된다. 이걸로도 왕창 추려진다. 어? 세상 쉽잖아. 별거 아니네. 반대로 추려지지 않기도 연습하자. 단기적으로는 튀는 행동을 하는 자가 대중으로부터 주목을 받아 성공할 확률이 높지만 장기적으로는 실수를 줄이는 자가 성공할 확률이 높다. 튀는 행동은 스스로 추려내는 짓이기 때문이다. 바둑이라도 하수들 게임이라면 과감하게 뛰어드는 사람이 이기지만 고수의 세계는 오직 실수를 줄이는 사람이 이긴다. 왜? 하수들 간의 대결이라면 내가 흔들면 상대가 덩달아 실수할 확률이 높다. 즉 나의 공세와 상대의 대응이 동시에 일치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러나 고수의 대결이라면 뭐든 일치할 확률이 극도로 낮다. 고수는 훨씬 더 많은 부분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딘가에 두면 하수는 보나마나 그 근처에 둔다. 고수는 361로를 보고 있기 때문에 361분에 1의 확률로 그곳에 둔다. 플러스로 세상을 바라보는 하수는 상대의 바둑알 하나를 보고 판단하므로 50퍼센트 확률로 작전이 맞지만 마이너스로 세상을 바라보는 고수는 361로를 죄다 보고 있기 때문에 361분의 1의 확률로 작전이 맞는다. 거꾸로 자신이 추려진다. 원심분리기처럼 분리해낸다. 솎아낸다. 숫자는 거의 안전하지 않은 도피처다. 당신은 과학을 모르므로 세상의 벼라별 것들 속에 숨으려 하지만 과학자의 눈에는 그게 그거다. 서너 단계만 추리면 거의 드러난다. 석발기로 쌀알 속의 돌을 골라내듯이 순식간에 골라낸다. 바둑 고수들은 세상을 대칭으로 바라본다. 거미줄처럼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다. 거미는 거미줄의 진동으로 위치를 파악한다. 대번에 안다.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 A는 비A가 아니다. 진술은 전제를 칠 수 없다. 이 근본법칙들이 진리의 체가 되어 순식간에 오답을 골라낸다. 서너 번만 추리면 정답에 근접해 있다. 바둑판은 죄다 연결된다. 바둑의 복기와 같다. 프로 바둑기사는 어떻게 자신이 둔 수를 정확히 기억하지? 특별히 기억력이 좋은 게 아니다. 바둑은 대칭을 따라가므로 내가 이곳에 두었다면 상대방은 그 대칭된 위치에 둔 것이다. 당연히 복기에 성공한다. 바둑알 숫자가 많으므로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당신의 기대는 빗나간다. 범죄가 일어났다면 보나마나 면식범이고 상습범이고 그 수법을 가진 자는 한두 명이다. 순식간에 수사망이 좁혀지는 것이다. 하늘 아래 숨을 곳은 없다. 범죄를 저질러 놓고 딱 잡아떼면 된다고 믿는 자는 이런 부분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다.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다. 교도소 재소자들은 대개 지능이 낮다. 플러스냐 마이너스냐가 중요하다. 플러스는 기하급수적으로 갈 수 없다. 그냥 하나씩 주워섬긴다. 그러나 마이너스는 죄다 한곳에 모아놓고 시작하므로 급속하게 추려진다. 그러므로 과학자의 눈에는 우주 전체가 한눈에 다 조망되는 것이다. 과학자가 절대로 그런 일은 없어. 라고 말하면 실제로 없는 게 맞다. 플러스로 바라보는 당신의 눈에는 수억 가지 변수 중에 하나지만 전부 연동시켜 대칭으로 보는 과학자의 눈에는 이거 아니면 저거다. 이창호 국수와 바둑을 둔다고 치자. 이창호가 화장실을 갔을 때 당신이 바둑알 한 개를 슬그머니 옮겨놓는다면? 이창호 국수는 1초 만에 알아차린다. 361로를 한 덩어리로 본다. 바둑판의 형세를 두고 머리와 몸통과 팔다리와 꼬리를 정해놓았기 때문에 어? 꼬리가 없어졌네. 하고 알아보는 것이다. 어린이와 숨바꼭질을 해보면 안다. 어린이들은 자기 눈만 가리면 상대방이 못 알아볼 것으로 착각한다. 어린이의 지능이 낮아서 자기 눈을 가려놓고 상대방 눈이 가려졌다고 착각하는 게 아니다. 어린이는 상반신만 숨겨도 형태가 다르므로 상대방이 못 알아본다고 여기는 것이다. 즉 어린이는 일부만 달라도 다른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이 어린이 수준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A와 B가 다르다고 여기지만 과학자는 류가 같고 종이 같다고 안다. 수백만 종의 동물이라도 종속과목강문계 안에 다 들어간다. 요즘은 구분이 늘었더라만. 마이너스로 보면 세상은 이거 아니면 저거다. 세상 모든 것이 50 대 50으로 팽팽하게 대칭되어 있으며 약간만 어그러져도 눈에 띈다. 결을 보기 때문이다. 결은 연결되어 있고 전부 한 줄에 꿰어져 있고 모두 연동되어 있다. 300명의 학생이 운동장에 줄을 맞춰 서 있다. 한 명이 슬그머니 줄 밖으로 빠져나가면 그게 교장 눈에 보이지 않을까? 보인다. SNS 세상이다. 트위터로 페북으로 인공지능으로 순식간에 찾는다. 소거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세상이 조막만 하게 보인다. 손바닥 안에 다 들어온다. 손금보듯 낱낱이 읽는다. |
"단기적으로는 튀는 행동을 하는 자가 대중으로부터 주목을 받아 성공할 확률이 높지만 장기적으로는 실수를 줄이는 자가 성공할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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