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시판 글을 펌을 환영하지 않습니다.(개인 블로그는 무관)
푸앙카레의 추측과 구조진화론
http://gujoron.com/xe/109304 자유게시판의 이 동영상은 보셨을 테고.
구조론은 새로운 수학이다. 리만이 리만공간을 토대로 유클리드기하학과 차별화 되는 리만기하학을 만들었듯이, 구조론은 밀도개념에 기반을 둔 새로운 수학을 제시하고 있다. 구조론이 제시하는 공간은 유클리드공간과 다르고, 리만공간과 다른 차원의 공간이다. 다른 공간이 발견되었으므로 다른 수학이 나온다.
리만이 계산을 위주로 하는 전통적 수학과 다른 추상적 사고 위주의 새로운 수학 개념을 제시한 사실은 고무적이다. 구조론 역시 지금은 개념화 단계라서 추상적 사고 위주로 기술되고 있지만 장차 계산으로 넘어갈 것이다.
추상(抽象)의 추는 뺄 추다. 뺀다는 것은 겹침과 섞임, 곧 중복과 혼잡을 배제하여 단순화 한다는 것이다. 수학이란게 뭔가? 간단하다. 지름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더 빠른 길이 있는데 먼 길을 둘러간다면 그게 틀린거다.
가장 빠른 형태의 플루차트를 제시해야 한다. 구조론에서 강조하는 극한의 법칙과 유체역학 개념이 구조의 중첩에 따른 추상화를 통하여 에너지의 진행에 있어서의 지름길을 제시하는 바와 통한다.
가장 빠른 길은 무엇인가? 어쨌든 비행기 조종사가 항로를 잡을 때는 유클리드기하학보다 리만기하학을 쓰는 것이 더 빠르게 정답에 도달할 것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으로도 어떻게든 뉴욕을 갈 수는 있겠지만 조종사는 중복된 작업을 해야 하는 불편을 겪는다.
예의 동영상에서 푸앙카레는 과연 지름길을 제시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리만은 결정적으로 에너지를 태우지 않았다. 리만 공간은 자연의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불완전한 공간이다. 우리는 눈을 통하여 자연의 사물을 관찰하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중력을 그림에 반영하지 않는 오류를 저지른다.
중력을 그릴 수 있는 화가는 없지만, 어쨌든 이 그림은 프랑스 혁명의 열기를 전하려 노력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표현하려고 애쓰고 있다. 확실히 우리는 불완전한 사실을 가지고 수학을 전개하고 있다.
구조공간은 에너지를 태우고 있기 때문에 더 빠른 길이 된다. 동영상 서두에 지구둘레 이야기와 우주형태 이야기가 나오는데 뻘소리로 본다. 그것은 본질과 무관한 것이며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곁가지 이야기가 되겠다.
원구라는 개념 자체가 틀렸다. 구조론은 심과 날로 모두 설명한다. 콤파스 안에 이미 심과 날이 있다. 원은 콤파스를 회전시켜야 탄생하는데 이건 이미 일이 투입된 거다. 즉 중복된 거다. 지름길을 제시한다는 수학원리에 맞지 않다. 더 빠른 길이 분명히 있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원이 없고 따라서 원구도 없다. 밀도가 있을 뿐이다. 물론 이 말을 고지식하게 듣고 원이 종이에 원을 그려대며 원이 있다고 부득부득 우긴다면 그건 대화가 안 되는 경우다.
그것은 위상기하에서 평행선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유클리드의 평면에서는 있던 평행선이 리만의 구면에서는 없어지는 이유는 공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다른 공간으로 차원을 이동하여 갔기 때문에 원이 없고 따라서 구도 없는 것이다. 구조공간에는 원이 없지만 에너지의 밀도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그러하고 리만공간에는 원이 있다. 그러니 걱정마시라.
왜 굳이 다른 공간으로 차원을 이동해 갔느냐고 따지면, 그것이 더 지름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원이 있다고 치는 리만공간보다 원이 없다고 치는 구조공간이 더 정답에 도달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달나라에 우주선을 보내려면 위상기하를 쓰는 것이 유클리드 기하보다 더 실용적이듯이 생명의 진화와 같이 변화하는 것을 설명할 때는 구조공간을 쓰는 것이 더 실용적이다. 더 적은 노력으로 더 정확한 답을 얻는다. 왜냐하면 구조론의 질 개념이 구조의 중첩에 따라 가장 집적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즉 가장 집적된 상태에서 계산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예컨대 병사를 이동시키되 한 명씩 한줄로 세워서 행군하여 이동하는 것보다 100명씩 트럭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빠르다. 100명이 탑승한 트럭이 더 집적도가 높기 때문에 더 빠른 것이다. 구조론이 가장 집적도가 높은 공간의 기술형태를 제시한다. 계에 에너지를 태웠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기술하면 지구가 왜 태양 주위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허벌나게 뛰어다니는지 제 2의 설명이 추가되어야 하므로 지름길이 아니다. 지구와 태양 사이를 붙들어매고 있는 보이지 않는 끈을 설명해야 한다. 곤란하다. 구조의 관점에서 ‘지구는 태양 주위의 원형궤도상에 존재한다’고 말하면 더 압축된 설명이 된다. 중력에 따른 태양과 지구의 밸런스만 설명하면 되기 때문이다. 더 합리적인 기술형태가 된다.
‘왜 사과가 떨어지느냐’고 물으면 ‘사과가 무겁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되지만 왜 사과가 무거운지를 또 설명해야 하므로 번잡하다. 만유인력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더 단축된 설명이 된다.
말하자면 구조론은 에너지를 태우고, 에너지의 밸런스 개념으로 더 압축된 형태의 고밀도화 된 정보를 제공한다. 그것은 마치 홍길동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헐레벌떡 뛰어가서 소식을 전하는 것보다, 그냥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쉬운 이치와 같다. 둘 다 소식을 전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전화선이 이미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공간의 차원이 다른 것이다. 에너지를 태운다는 개념은 미리 전화케이블을 가설해두는 것과 같다.
가운데 사람이 하나 서고 기준을 삼는다. 같은 거리의 둘레에 360도로 360명이 양팔간격으로 늘어선다면 축구장 두배 크기의 원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 앞쪽에 또 같은 방식으로 늘어선다면 양팔간격으로 설 수 없을 것이다.
기준에 가까이 갈수록 간격은 점점 좁혀진다. 조금 와서는 반팔간격이 되고 더 와서는 어깨가 부딪히는 간격이 되다가 마침내 짜부가 나고 말 것이다. 그것이 밀도다. 즉 기준점에 가까울수록 조밀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조밀해진다는 점이다. 예컨대 눈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눈을 뭉친다면 눈덩이의 무게에 의하여 눈은 압착된다. 그 힘은 눈뭉치의 중심에 가장 세게 전달된다. 지렛대의 원리에 따라 바퀴축에는 큰 힘이 도달한다. 힘의 밀도가 높은 것이다. 구조는 에너지를 태웠기 때문에 밀도가 있다. 유클리드든 리만이든 기존의 공간은 밀도가 없고 에너지가 없는 공간이다.
푸앙카레의 추측은 원구를 만드는 문제이지만 구조론의 관점은 그 반대로 그 중심점에서 사방으로 전개해 가는 문제다. 가운데의 한 점에서 출발하여 사방으로 전개해 간다면 모든 모양이 그 안에 들어간다.
도넛 이야기는 쓸데없는 소리가 된다. 위상이 같으냐는 것은 결국 한 점에서 출발할 수 있느냐다. 정육면체든 뭐든 한 점에서 출발하여 사방으로 균일하게 전개하면 그 안에 들어간다. 밀도 개념을 적용하면 한 점에서 출발하여 모든 형태에 도달할 수 있다.
구조진화론의 생장구조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원구의 바깥을 굴껍질이라 보고 내부의 굴이 성장할수록 굴껍질을 밖으로 밀어낸다. 정육면체든 어떤 형태는 그 성장의 방해물로 볼 수 있다. 굴이 성장해 가며 껍질을 밖으로 밀어내다가 바위나 돌을 만나 그 방향에서 멈추게 되면 정육면체가 되든 정사면체가 되든 쐐기모양이 되든 다양한 모양이 된다.
나무가 성장하는 것은 껍질을 밖으로 밀어내는 형태이다. 나무는 연리지가 되어 가지가 붙어버리는 수가 있지만 그건 나무라서 그렇고 공간의 개념으로 볼 때 연리지는 허용되지 않으므로 껍질이 막혀서 붙을 수 없으므로 같은 위상에서 도넛공간은 구조적으로 불능이다.
결론적으로 구조론의 밀도개념은 한 점에서 출발해야 하며, 한 지점에서 성장을 시작하여 밀도가 높은 지점에서 낮은 방향으로 전개하여, 모든 형태를 만들 수 있지만 도넛은 그 접점에서 껍질과 껍질이 만나 벽을 만들므로 불능이다.
이를테면 쇠뿔 둘이 자라다가 하트모양으로 동그랗게 말려서 가운데서 쇠뿔이 붙어버리는 경우는 없는 것이다. 아직 지구상에서 그런 얄궂은 소는 발견되지 않았다. 인간들은 이 문제를 용접의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지만 공간의 위상에서는 선을 그을 때 종이에서 볼펜을 떼지 말아야 하므로, 즉 하나의 심을 가져야 하므로 그렇다. 볼펜을 종이에서 떼면 두개의 심, 두 사건이며 이는 구조론의 닫힌계 개념에서 배척하는 바다.
나무나 굴은 껍질을 밖으로 밀어내는 형태로 자란다. 귤이나 호박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동식물의 꽃가루받이는 명백히 도넛형으로 일어난다. 즉 생물의 진화는 원구형으로 자라던 세포가 외부의 공격을 받아 도넛형을 이루면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말미잘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생명체는 입에서 항문까지 하나의 파이프가 된다.
이때 심은 1이 아니므로 위상이 다르다. 즉 정자가 난자속을 침투하면서 단 한번 원구가 도넛으로 변하며 그 결과 인류가 지구에 탄생한 것이다. 종유석이나 별사탕이 자라는 원리도 비슷하다. 어쨌든 푸앙카레의 추측은 구조진화론의 생장구조이론에 모두 반영되어 있다.
푸앙카레는 고리가 축소하여 원구에 도달할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구조론은 점에서 밀도로 전개하여 고리가 아닌 모든 형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단 위상의 변화는 없다. 구조진화론의 생장구조이론은 원구형의 세포가 뚫려 도넛형을 이룸으로써 원핵세포에서 진핵세포로의 진화가 일어나고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어 오늘날의 포유류로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푸앙카레가 100년 전에 묻고 페렐만이 10년 전에 답한 것을 구조론은 30년 전에 생장구조 이론에 적용하여 이미 응용하고 있었다. 물론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지만. 공학분야에 이미 적용되고 있지만 수학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난제들은 더 있다고 알고 있다.
∑ |
^^이것은 그냥 생각해 본 것입니다. 제가 뭐 정확한 사실을 아는 것도 아닌만큼 재미로 생각해 본다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에게 모든 우주적 개념이 축약되어 집적되어 있다고 본다면...
우주의 커짐은 체세포분열과 같고, 모든 생명체의 탄생은 감수분열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체세포 분열에서 난할을 거듭하여 상실배가 되면 각각 알맞은 조직으로 분화됩니다. 뼈도되고, 장기들도 되고....
그렇다면 우주의 형태도 일단은 원의 형태가 되어야 하나...
우주도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우주도 짝짓기를 한다는 얘기가 되는 걸까요?
그리고 식물은 계속 성장하기는 하지만 이 또한 수명이 있습니다. 동물도 마찬가지이구요.
모든 생물체는 수명이 있는 것이므로... 지구도 우주도 수명이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낳음이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음으로 우주도 무엇인가를 낳는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지금 우리 지구가 속해있는 우주도 작은것에서 점차 커졌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요.
아주 작은 것에서 무엇인가의 촉발로 인해서
정자가 난자로 침투하는 형태로 무엇인가 침투했다는 것인데... 그것은 어떤 것이고 어떤 형태일까...?
아마도 가스형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둥굴게 뭉친 형태의 가스와 날카로운 형태로 뭉친 가스의 충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어쨌든 최초의 어떤 물질이 있었고 그것에서 사건은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체는 단백질이라는 물질로 추측을 하지만...우주 자체의 모습은 가스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인간은 수정란을 통해서 나타나지만...수정란에서 체세포 분열로 인간의 모습이 되고나서, 남녀로 구별되고 , 그 다음 생식세포 분열인 감수분열이 일어나고 거기서 정자와 난자를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과정을 보아도 체세포 분열이 먼저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우주는 생명체보다는 우주의 형태가 먼저이고 그안의 별들이 자리잡고 다시 태양계가 있고 그안에 행성이 있고, 생명체의 탄생의 조건을 갖춘 지구가 있고 지구안에 다시 자연이 있고 맨 나중이 인간입니다.
즉 인간은 우주의 끝없는 도전과 실패속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최종적으로 우주의 모든 진화를 담은 지도(맵)로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인간을 때로는 완전하다고 하고 때로는 불완전하다고 하는데...대충 이해는 되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자니 그 기준점이 모호해집니다.
그래서 인간의 완정성과 불완전성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우주라는 개념, 진공이라는 개념,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 이런 개념들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은 하부구조이고 그 위에 상부구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존의 우주 개념은 그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를 분간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 간극을 메꿀 새로운 개념들이 많이 필요하다는 거죠.
푸앙카레의 추측을 비롯한 난제들을 푸는데 전문가들이 그 답이 맞는지 검토하는 데만 2년씩 걸린다고 하는데,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는 이유는 답을 푸는 사람들이 그냥 계산을 해서 문제를 푸는게 아니고, 새로운 개념과 방정식들을 만들어 냅니다. 중간에 몇 단계를 거친다는 말이지요. 그 개념들을 검토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이건 우리가 아는 수학과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리만 기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리만공간을 만들어 내고 그 공간을 설명할 언어들을 만들어 냅니다. 즉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라든가 이런건 리만공간에서만 통용되는 리만기하학의 언어로 되어 있습니다. 기존에 없는 새로운 언어의 탄생이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걸 간과하고 기존의 유클리드 공간에 통용되는 유클리드 언어로 상대성이론을 이해하려는 무리를 저지르거든요. 즉 상대성이론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 어쩌구 하는 소리들은 대개 구라라는 말이지요. 그 언어 자체가 리만공간에 적용되는 특수어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우주라는 기존의 용어를 써서 말하는데 무리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거의 양자역학을 도맡아서 만들었는데 정작 본인은 자기가 만들다시피 한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모형이 있거든요. 아인슈타인 모형과 양자모형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모형이 없이 실험결과만 가지고 말하지요.
저는 모형을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실험결과는 제게 없어요. 어쨌든 구조론 모형은 양자역학이고 아인슈타인이고 다 수용됩니다. 하여간 모형은 구조론에 있지만 확보되어야 할 구체적인 데이터나 탄생되어야 할 개념들, 조직되어야 할 방정식들은 빈약합니다. 결론적으로 구조우주모형은 구조공간 - 구조언어 - 구조방정식 - 구조계산을 거쳐서 설명되어야 하는데 조직되어야 할 여러 단계가 현재로는 미비하기 때문에 의사전달이 불능이라는 거지요.
● 우주도 짝짓기를 한다는 얘기가 되는 걸까요?.. ◎ 우주가 짝짓기를 하려면 우주가 두개여야 하는데 이건 기존의 우주 개념과 안 맞는 겁니다. 우리 우주와 짝짓는 우주를 포함할 또다른 우주개념이 나와야 하는 거지요. 이건 쉽게 단정하여 말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 아마도 가스형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 가스가 있다면 이미 우주가 탄생되어 있는 상황이니 이건 안맞지요. 물질이 하부구조이면 상부구조는 물질이 아닌 무엇인데 확실한건 그것이 균일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상태는 물질은 없고 그 물질을 낳는 베이스는 있고 그 베이스가 사방으로 균일한 상태이며 가스니 뭐니 하고 구체화 하면 이미 아니지요.
● 가스의 충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 가스의 충돌은 그냥 은하계의 탄생이고 초기 우주의 탄생은 물질의 탄생 이전입니다.
● 어쨌든 최초의 어떤 물질이 있었고 그것에서 사건은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어쨌든 최초에 물질은 없었고 물질이라고 명명하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있었으며 크기는 없었고 사방으로 균일했습니다.
● 인간의 완정성과 불완전성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 개체로서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눈의 망막까지를 뇌로 치는데 구조론적으로는 눈으로 전하는 빛이 닿는 거리까지를 뇌로 칩니다. 즉 인간의 신체감관과 접촉하는 한계가 인간 뇌의 바깥테두리입니다. 즉 인간이 1억광년 거리의 빛을 본다면 뇌의 크기는 1억광년이지요. 구조론으로 보면 작용반작용의 범위가 그 개체의 범위입니다. 즉 인간에 작용하는 범위가 인간에 포함되는 범위입니다. 즉 인간은 매우 크고 그 경계면은 희미하며 불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인간은 움직이는 인간, 진화하는 인간, 발전하는 인간, 진보하는 인간입니다. 즉 공동체적 인간이지요. 그냥 고립된 한 개인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한 남자 혹은 여자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인간이 우주로 이주한다면 한 남자나 한 여자는 갈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인간으로 기능하는 단위이며 그 범위는 작용반작용 범위이므로 인간 개인보다 큽니다. 인간의 속성이 진보라고 볼 때 진보를 끌어내는 작용반작용범위가 인간이며 이는 우리가 아는 인간보다 큽니다.
한 인간이 갖는 바운더리 범위까지를 인간으로 친다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한 인간이 커지면 그 인간이 커지는 범위가 같이 커지는 것이기에... 눈에 보이는 고립된 개체 자체만을 규정하는 것은 한정된 범위고 인간의 의미가 축소되었다는 의미 인것도 같구요.
개체로서의 인간은 불완전하고 고립된 인간은 완전할 수 없다.
구조론으로 보면 작용반작용의 범위가 그 개체의 범위이다.
인간에 작용하는 범위가 인간에 포함되는 범위이다.
인간은 매우 크고 그 경계면은 희미하며 불분명하다.
완전한 인간은 움직이는 인간, 진화하는 인간, 발전하는 인간, 진보하는 인간입니다. 즉 공동체적 인간이지요. 그냥 고립된 한 개인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한 남자 혹은 여자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인간이 우주로 이주한다면 한 남자나 한 여자는 갈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인간으로 기능하는 단위이며 그 범위는 작용반작용 범위이므로 인간 개인보다 큽니다. 인간의 속성이 진보라고 볼 때 진보를 끌어내는 작용반작용범위가 인간이며 이는 우리가 아는 인간보다 큽니다.
다른 의미나 개념들도 그러하지만 인간의 대한 개념 역시 그 의미가 확장되는군요.
기존에 갖고 있는 모든 개념들에 대해서 어떻게 확장되어야 하는지... 갈길도, 알아야 할것도 무궁해지네요.
감사합니다.^^()
모든 개념들이
의미가 확장되는 것이 아니고
그냥 개념을 챙기게 되는 거지요.
세상에 개념이 없는 사람들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안드로메다에 개념이 태산처럼 쌓여 있답니다.
명박 이후 더 심해졌습니다.
개념이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동차는 공장에서 제작되면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고 운전자가 타고 달려야 완전해집니다.
자동차만 그런게 아니고 모든 것이 그렇지요.
수학도 에너지를 태우고 운행해야 하는데 기존의 수학은 에너지 개념이 없습니다.
불완전한 수학입니다.
인류는 공동체를 형성하여 문명의 진보를 태우고 달려야 완전해지고
다른 모든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호흡하지 않고 정지해 있는 것은 죽은 것입니다.
그게 깨달음입니다.
저에게는 확장되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안그런다고 생각했지만 언어가 주는 의미들, 그리고 단어가 갖는 의미들 또한 그 단어속에 갇혀서 해석되는 경우들도 많았고
알게모르게 그렇게 받아 들이고 있었던 것 같구요.
그렇다고 뭔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작은 각도의 틀어짐이 크게 변화를 준다는 의미에서...
기존의 갖고 있는 개념들에 대해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그안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에서...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개념들은 모두 그 의미가 축소되어 있고 한정되어 있었는데..아니 그렇게 나도 모르게 받아 들이고 있었는데...이제는 그렇게 보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기존의 갖고 있었던 개념들에 대한 범위들이 작게 여겨지고 축소되었다 여겨지기에 저에게는 개념에 대한 폭이 넓어지는 것이고 범위가 확장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받아들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개념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살았나 봅니다. 이제라도 제대로 챙겨보려구요...ㅎ~
첨부하자면 기존의 개념들에 비해서 동렬님의 개념 바운더리가 넒고 깊어요. 그리고 그것을 제시하는 기준이 분명하게 서 있다는 것에서도...그래서 더 제가 갖고 있는 기존의 개념들이 혼동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사고의 각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많이 느끼기에 그런쪽으로 나름대로 훈련을 하는 것일지두 모르구요.
어찌보면 동렬님 이론을 동렬님 스스로가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여기모인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 나름대로의 것으로 동렬님의 이론을 증명하려고 시도하는 것일 수도 있구요. 또한 다음 사람들이 증명하기도 할 것이구요. 증명 자체에 초점이 맟춰지기도 하지만, 필요에 의해 증명이 되는 것일 수도 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