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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7641 vote 0 2010.08.10 (23:17:22)

화두란 무엇인가?

 

(다른 게시판에 리플로 쓴 글을 내용추가해서 올립니다.)

 

 화두, 공안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 리 없다. 이런 이야기 스님이 들으면 골 나겠지만 그건 스님들의 종교적 입장에 불과하다. 하여간 이곳은 대한민국 0.0001프로의 좀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까 까놓고 말하기다.

 

  화두 공안! 그거 백날 붙잡고 있어봐야 아무런 소득이 없다. 대개는 그렇다. 아 뭐 그렇다고 해서 전혀 의미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게 깨달음의 본질이 아니라는 말일 뿐. 아! 빗나간 거다. 과녁이.  

 

  원래 진리란 것은 ‘통’하는 것이어서 되면 1초만에 되고, 안 되면 영 안 되는 거다. 1초만에 되면 스님들이 하안거다 동안거다 하여 선방에 몇 달씩 틀어박힐 이유가 없고, 1초 만에 안 되면 더 기대할 필요가 없다. 육조 혜능은 2초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바로 나왔다. 나 또한 화두, 공안에 재미를 붙였던 때가 있었다. 너무 쉽게 깨져서 싱거웠을 뿐. 병안의 새 이야기는 그 중에서 내가 좋아했던 거. 뭐 깨닫겠다는 야심이 있었던게 아니고 상당히 재미있다. 시간 가는줄 모른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내가 스님도 아니었고, 학생이었을 뿐인데 대여섯시간씩 꼼짝않고 있어도 즐겁기만 했다. 터져 나오는 기쁨. 그래서 그랬던 거고. 하긴 나야 공안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도 10여년 동안 줄곧 생각했었지만.

 

  각설하고 본론으로 돌아와서, 결국 달마조사가 강조한 바 선종의 종지가 되는 ‘교외별전,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이 핵심이고, 그 1700 공안이라는 것은 그것을 증거할 요량으로, 여러 잡다한 사례를 수집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본질은 ‘염화미소 이심전심’이고, 이것이 선의 궁극적인 출발점이며, 혜능의 육조단경이 그 구체적인 전개이며, 그 중핵은 심(心)이고, 심은 마음이 아니라 구조론의 심과 날 갖춤이다. 완전성을 의미한다. 대승경전에서 심(心)자가 들어가는 모든 단어를 ‘완전성’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놓으면 한결 의미가 통한다. 그리고 그 완전성이 ‘소통의 완전성’을 의미한다는 사실까지 진도를 나가주면 더욱 좋다.

 

  심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면 90프로 나온 거다. 만가지 오류는 석봉 천자문에 심을 ‘마음심’이라고 써놓은데서 빚어진 거. 그게 착각이다. 마음이 그 마음이 아니다. 정신차리기다.

 

  1700공안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어떤 상황에서, 우연히, 찰나에, 그야말로 한 순간에 문득, 불현듯이 방아쇠가 격발되었다는 것이며, 이는 주어진 상황 안에서의 소통을 의미하고, 그 소통을 담보할 토대로서의 심은 이미 나의 내부에 완전성의 형태로 갖추어져 있었다는 거다. 그러니 구태여 깨달으려 할 필요도 없다. 그냥 방아쇠를 당겨주면 된다.

 

  1) 원리가 있으며 ≫ 원리는 금강경에 다 나옴.

  2) 그 원리는 소통의 원리인 것이며 ≫ 염화미소, 이심전심.

  3) 소통은 환경 안에서 완전성(心)과 완전성(心)의 감응이며 ≫ 달마조사의 교외별전,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

  4) 그 수행법은 마음이 일어나는 경로를 따라 내 안의 완전성을 포착하는 것이며 ≫ 육조 혜능의 육조단경 반야품 (我本元自性淸淨 若識自心見性 皆成佛道)

  5) 방아쇠가 격발된 실제의 사례들은 ≫ 1700 공안, 화두

 

  그러나 방아쇠를 조낸 들고 주물럭거리고 있다고 해서 격발될 리가 없다. 총이 없고 과녁이 없기 때문이다. 원래 이게 이렇게 된 것이 깨달음은 원리를 깨닫는건데 원리는 금강경에 다 나오니까 뭐 그건 다 해결된 거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어떻게 해야 부처가 되냐고? 아 누가 부처된대? 뭐 이건 종교인들이 고민할 사항이고.

 

  간단하다. 금강경에 답이 다 나오는데 뭘 더 말이 많아? 아 부처 되고 싶다고! 아 부처 되시라고. 아 누가 되지 말라고 했남? 아 금강경 읽고 부처되시게. 어서 어서 되시게. 뭐하나 얼렁 부처 안되고? 엥?

 

  이런 곤란한 사항이 생긴데서 이야기가 시작된거 아니겠는가? 하여간 부처되실 분은 금강경을 냠냠 씹어드시고. 이곳은 구조론연구소라 부처되는 곳이 아니니 죽어도 부처되실 분은 여기서 그만 퇴장해 주시고. 깨달음은 뭐가 되고 싶다고 되고 그런 것이 아니다.

 

  문제가 있고, 문제는 해결되어야 하며,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았느냐?'고 물으면 안 되고 '당신은 문제를 해결했느냐?'고 말해야 진실에 가깝다.

 

  여기서 문제를 해결한다 함은 대개 번뇌의 해결을 의미하는데 그건 소승적 태도이고, 구조론의 관점으로 말하면 깨달음의 의미는 더욱 넓다. 신의 완전성과의 소통이다. 말하자면 불교의 깨달음은 고장난 컴퓨터를 고치는 것과 같으며, 구조론의 깨달음은 문제가 있을 때 네트워크에 저장된 지식풀에서 답을 조달함과 같다. 그 네트워크와 통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와이파이를 신청하면 된다.

 

  지난번 글에서 이야기 했듯이 진정한 학자는 진리를 반듯한 제 모습으로 진리되게 하는데 의의를 두는 것이지, 내가 조낸 뭔가 되고 싶다거나 하는게 아니다. 되긴 뭘 돼? 개는 깨달아도 깨달은 개가 될 뿐이다. 소는 깨달아도 깨달은 소가 될 뿐이다. 인간은 죽었다 깨나도 인간 아닌 그 무엇이 될 수 없다. 본래의 완전성을 회복하는 거지 뾰로롱 변신 세일러문 수리수리 얍! 이런건 아니다.

 

  호두를 깨뜨리면 호두알이 나오는 이유는 깨뜨렸기 때문이 아니고 그것이 호두이기 때문이며,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오는 것은 심었기 때문이 아니고 그 곳이 밭이기 때문이다. 화두, 공안에 집착하는 것은 위 1), 2), 3), 4), 5)번으로 써놓은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남이 호두알을 깨뜨려서 호두를 취하니 나는 아무러나 기왓장이나 사금파리라도 하나 깨뜨려볼까 하는 것이며, 남이 밭에다 씨앗을 심어 싹을 취하니 나는 콘크리트나 아스팔트에다가 동전이라도 심어서 돈이 열리는지 볼까 하는 수작이며 그게 다 뻘짓이다.

 

  ###

 

  간화선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하나다. 첫째 매우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건 필자의 경험이다. 시간 가는줄 모른다. 똥꼬가 뻑적지근한 쾌감을 얻는다. 근데 안 그런 사람도 있다더라. 둘째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이건 간화선을 통하여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실제로 그 숫자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즉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에 간화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간화선의 수행법은 육조 혜능의 가르침을 따라 ◎ 마음이 일어나는 경로를 따라 내 안의 완전성을 포착하는 것(我本元自性淸淨 若識自心見性 皆成佛道)◎이라고 내가 써놓기는 했지만 구조론 미학원리의 성≫주≫미≫선≫진 원리에 따라, ‘생각해야 깨닫는다’가 아니고 ‘깨달아야 생각한다’는데 있다.

 

  1700 공안이라는 것이 대부분 스님의 일화인데 그것은 ‘사건’으로 되어 있다. 그 사건에는 액션이 들어간다. 실천이다. 행동이다. 이게 중요한 거다. 구조론이 늘 강조하는 바와 같다. 자전거를 타야 균형이 잡히고, 헤엄을 쳐야 물에 뜬다. 순서가 반대다. 그러므로 그냥 화두를 든다는 것은 일단 물에 뜨고 난 다음에 헤엄치려는 것과 같아서 시간낭비일 뿐이다. 그거 안 된다.

 

  정작 1700가지 깨달음의 사례에서 가만이 앉아 화두를 든 사례는 없다. 1700가지 깨달음은 모두 현장에서, 극적인 마주침에서, 액션에서, 실천에서, 행동에서 찰나에 방아쇠가 당겨져서 얻어졌다. 그 마주침의 찰나에 내 마음이 일어나는 경로가 포착된 거다. 그러므로 화두를 들고 앉아있는 것은 1700공안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공안을 든다면서 공안의 가르침과 정반대로 행동한대서야 말이나 되는가?

 

  깨달음은 마음이 일어나는 경로를 관찰하는 데서 얻어지며, 그 마음은 현장에서의 극적인 마주침에 따른 구체적 액션에서 일어난다. 그 액션은 소통의 액션이다. 소통은 환경과의 극적인 조우다. 환경과의 극적인 조우 없이, 소통의 액션을 취하지 않고, 그냥 장판에 궁뎅이가 눌어붙도록 구들장만 짊어지고 앉아 있어서 깨달을 가능성은 없다.

 

  결론적으로 깨달음은 소통의 깨달음, 완전성의 깨달음이며, 마주침의 현장에서 마음이 일어나는 경로의 깨달음이며, 그 완전성은 자동차를 열심히 조립한다고 되는게 아니고, 그 자동차에 승객을 태워 운행해야 얻어진다. 그러므로 덜 조립된 자동차라도 일단 현장에서 운행해봐야 한다. 즉 현장에서 타인과 소통해봐야 소통이 일어나는 경로가 포착되는 것이다. 우주는 완전한(心) 것과 완전한(心) 것이 만나 더 큰 층위의 완전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며, 그 더 큰 단계의 완전성은 성≫주≫미≫선≫진 의 전개원리에 따라 나와 마주치기 전에 이미 우주적으로 구축되어 있었던 것이며 그것을 깨닫는 거다.


  비유하여 말하면, 완전한 나와, 완전한 너가 만나, 완전한 가족을 이루는 것이며, 그 완전한 가족은, 결혼식장에서 주례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그렇게 믿는다면 착각이고), 실은 내가 태어나기 전 부터, 사랑이라는 형태로 이미 우주적으로 충만해 있었으며, 내 안의 사랑을 발견하는 형태로, 그 본래의 완전성과 소통하는 것이다. 하여간 내 안의 사랑으로, 네 안의 사랑과 충돌하여, 서로간에 반응하여, 서로의 완전한 사랑을 끌어내는 것이, 완전한 가족을 이루는 것이며, 그 완전한 가족은, 내가 너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주적으로 충만해 있었기 때문에 내 안에서 문득 격발된 것이다. 완전한 가족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다가 문득 내 안에서 격발되어 그 존재가 확인된 것이다. 


  ◎ 원리..
  이건 구조론을 읽거나 금강경을 보면 답이 다 나와 있다. 물리학을 공부하는 것도 좋다.

  ◎ 위빠사나 수행..
  이건 자동차를 조립하는 것과 같아서 부품이나 헤아릴 뿐 운행하지 않으므로 불완전하다. 결정적으로 소통의 개념, 완전성의 개념이 없다. 완전성 개념이 없으므로 하다가 어디서 끝내야 할지 모르고 끝없는 미로를 헤매게 된다. 그냥 중간에서 적당히 눈치보고 내리는 수 밖에 없다. 또 주요내용이 동서고금의 철학 책에 다 나온다. 굳이 명상 안해도, 도서관에서 심리학 책만 읽어도 대략 알게 된다. 물론 아주 무개념인 사람은 공부를 하는 것도 좋다.

  ◎ 간화선 수행..
  소통의 개념이 도입되어 있어서 이건 실제로 자동차를 현장에서 운행하는 것이다. 즉 사건이 있고 끝단이 드러나 있다. 소통은 통하는 순간 완성되므로 완결형태가 있다. 이쯤에서 하차해도 된다는 그런게 분명하게 적시되어 있다. 그러나 대개는 엉뚱하게 이걸로 금강경에서 다루는 원리를 이해하려 하거나, 혹은 이걸로 위빠사나에서 다루는 심리학적 문제, 인식론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하는 식으로 본질에서 벗어나 뻘짓하고 있다. 이 방법이 실패하는 이유는 구조론의 성≫주≫미≫선≫진과 반대로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1700공안들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이심전심 소통의 사건 형태로 되어 있으며 성≫주≫미≫선≫진과 일치한다. 즉 화두를 드는 사람이 대개 반대로 역주행을 하는 것이다. 이는 큰스님들이 귀찮아서 사고치지 마라고 선승들을 모다 선방에 잡아가둬 놓았기 때문에 빚어진 웃지못할 해프닝이다.


   깨달아야 할 것이 금강경, 위빠사나, 간화선 셋이 있는데,  금강경은 교과서 비슷해서 이론적으로 공부하면 되는 것이라 굳이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표현할 이유가 없고, 위빠사나는 심리학 비슷한 건데 역시 동서고금의 무수한 책에 비슷한 내용이 중복되어 나오므로 그것을 굳이 불교적 방식, 명상의 방식으로 접근할 이유가 없고, 간화선은 미학과 가까운데 미학은 현장에서 실천되는 것이다. 문제는 화두를 들고 앉아있는 사람이 전혀 실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 1700가지 이야기는 대부분 어딘가 돌아다니며 만행을 하다가 일어나는 사건에 관한 내용이다. 사건이 없으면 깨달음도 없다.

  깨달음이 부처가 되거나 뭐가 되는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한다. 깨달음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거다. 그 답은 소승에서 번뇌를 해결하는 것이고, 대승에서 존재를 완성(실존적 의미에서)하는 것이다. 그 답은 구조론이 말하는 바와 같이 항상 상부구조의 개입에서 찾아진다. 공동체에서 찾아지고, 문명의 진보에서 찾아지고, 세력에서 찾아진다. 자동차를 공간상에서 조립하는건 하부구조고 그 자동차를 시간상에서 운행하는게 상부구조다. 행하는게 먼저다. 항상 전체가 먼저다. 현장에서 마주치는게 먼저다. 시간을 지배하는게 중요하다.


###

  금강경, 위빠사나, 간화선 셋이 있는데 금강경은 자동차 설계도와 같아서 설계도는 하나만 있으면 된다. 즉 모든 사람이 새로 설계도를 만들 필요는 없고 그냥 석가의 설계도를 빌려 쓰되 '석가형님 감사해요' 한마디 해주면 된다. 금강경은 깨달음의 결과물이지만 지금 그것을 재탕하여 깨달을 필요는 없다. (실제로는 석가가 금강경을 지은 것이 아니고 제자들 중에 누가 지은 것이며 석가 이름을 가탁한 것이다.) 처음 길을 개척하는 사람은 깨달아야 도달가능한 경지이지만 두번째로 가는 사람은 그냥 앞에간 사람 발자국을 따라가면 된다. 더욱이 금강경의 중핵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다 나온다. 그냥 현대 물리학을 공부하는게 빠르고 정확하다. 하여간 석가가 이미 깨달았는데 내가 중복하여 또 깨닫는다는 것은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위빠사나는 자동차 제작과 같아서 다 필요없고 그냥 '현대자동차 노동자 아저씨 감사해요' 한마디 던져주면 된다. 그 내용이 동서고금의 철학책에 다 나온다. 이걸 해야되는 사람도 있는데 그 경우는 이걸 해야할 정도로 책을 안 읽은 무식한 사람이다.

  간화선은 자동차 운전과 같아서 남에게 맡길 이유가 없고 결국 자신이 운전해야 한다. 직접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인이 깨달아야 한다. 남에게 맡길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자동차 설계, 자동차 제작, 자동차 운전 중에 제일 쉬운 것이 자동차 운전이라는 거다. 그래서 1700공안을 만든 1700인의 옛 사람들은 대개 3초만에 깨닫고, 빠른 경우는 2초만에 깨달았으며, 그 경우도 대개 1초만에 깨달은 혜능을 의식해서 속도를 늦추어 준 것이고, 혹 미욱한 자라도 10초를 넘어간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 개명한 시대에 이걸 무려 3개월 이상 그것을 붙들고 앉았다는 것은 역주행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아직 자동차를 구경도 못했거나다. 자동차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자동차 핸들도 쥐어보지 않은 채로 운전을 배우겠다면 그거 꽝이다. 하여간 옛 사람들은 과학적 지식이 없고 근대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무식한 상태에서도 대개 3초 안에 깨달았는데, 배울거 다 배운 현대인이 4초를 넘어간다면 아주 잘못된 거다. 그건 뭐 처음부터 번짓수를 잘못 짚었다고 봐야 한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그 자동차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손수레를 운전하는 정도였다. 이제는 달나라에 우주선을 보내는 문제로 되었다. 이제 깨달음은 러시아 우주정거장을 방문하는 우주인이 되는 정도의 기술이 필요한 문제로 되었다. 그러나 기죽을 이유는 없다. 하드웨어가 발달할수록 소프트웨어도 발달하기 때문에 처음 가는 사람이 어렵지 두번째 부터는 자동항법장치로 간다. 깨달음의 문제는 소통의 문제고 소통은 양식화 되며 문제는 양식화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고 석가의 제자 500비구는 다 깨달았고 혜능이 선풍을 일으켰을 때도 그러했으며 그때는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 양식이 세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양식이 세팅되면 모든 사람이 깨닫게 되며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 된다. 그것은 자동차가 스틱에서 자동으로 변하고 후방카메라에 자동주차시스템까지 나와서 초보자도 쉽게 운전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 결국 구조론이 그 양식을 세팅하는 거다.

  하여간 결론은 금강경이고 위빠사나고 간화선이고 다 필요없다는 거다. 이 말은 역으로 그것이 필요없도록 우리가 문화의 양식을 새로 세팅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필자가 그 일을 한다는 뜻도 된다. 하여간 조만간 자동 영어번역기가 나와서 영어공부 안 해도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또 공부한다고 해도 누구나 국내에서 적은 비용으로 외국유학 간 이상으로 쉽게 학습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구조론으로 접근하면 이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깨달음도 마찬가지다. 구조론으로 보면 한 사람이 개척하고 그 다음 대량으로 복제하는 거다. 복제가 안 되는 이유는 도량형이 통일되지 않고 양식이 세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깨달음의 문제는 소통의 문제이고 소통의 문제는 미학의 문제이며 미학의 문제는 양식의 문제이며 그 양식이 개발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14]곱슬이

2010.08.11 (10:02:04)

동안거 하안거 그거 참 부러웠다오.   아무일도 안하고 휴식만해도 되는 특혜받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일종의 특권층의 일이니말이요.
위빠사나던 간화선이던 뭐던  다  아주 좋은 휴식이므로 자주기회 같는것이 좋다고 사료되는 1인.   사고칠 시간을 줄인다는데도 큰 의미가 있소. 
다만 거서 뭐 찾으려른 사람은 그냥 계곡텐트치고 능선마다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가끔 뱀도 만나고 그런게 훨 좋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08.11 (10:55:53)


본문에 추가해놨소.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들을 것이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08.11 (16:00:56)



이글을 읽고나니 흠...명쾌합니다.
내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하는 생각도 들고...글 괜히 썼다는 생각도 들고....하하^^


화두를 하나의 사건으로 시간단위로 재구성해본다면...
화두는  이미 현장에서 마주친 것을 개념지어보니 천칠백 공안에 별로 비껴가는 것이 없기에 그 공안의 하나를 취한다는 생각이 들구요.
현장에서 이미 문제를 마주쳤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나, 그것은 문제인식에 가깝다고 생각되구요.
그 개념지어진 화두를 들고 앉아있는 것은 마음의 경로를 보기 위함인 것 같고,
아! 이거다! 란 마음이 들지 않기에 끝까지 밀어부쳐보는 것이나... 그 과정에서도 다시 환경과의 조우는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현장에서 취해진 화두(문제인식)를 개념지어 구체화하고 다시 극적인 마주침과 조우해야 방아쇠가 당겨진다(문제해결).  

<문제인식> 현장- 사건 -마주침- 행동-실천 
<문제해결> 개념화 - 구체화 - 나와 환경과의 극적인 만남 - 방아쇠 당겨짐 
= 자기스타일 완성
물론 현장에서 바로 극적인 마주침에 의해 깨달은 사람도 있지만은요.

문제인식이> 문제해결보다 선행하고, 사건이 >결과보다 선행한다.

화두참선의 문제는 현장에서 취해진 것이 무엇인가? 즉 그것이 그토록 간절한 것이었는가? 혹은 그것이 마음에 울림을 주는  것인가?
그러한 것을 화두로 취하는냐 취하지 못하느냐, 그러니까 직접 자기안에서 그 무엇이 현장에서 제대로 감흡했는가? 아닌가? 에 따라서 화두타파여부는 결정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변화된 환경도 고려해야 하구요. 이 시대에 맞는 문제인식을 해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구요.

모든 자신들의 문제도 일종의 이런 맥락을 따른다는 것이구요.
진행방향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지 그것에 매달린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구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9]로드샤인

2010.08.11 (23:02:01)


아... 이렇게 통쾌한, 명쾌한 글이 있을 수 있을까?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한국에 김동렬님이 있습니다그려!

곧 이 땅에 문화 르네상스가 올 날이 임박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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