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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304 vote 0 2019.01.30 (20:18:04)

      
    깨달음은 계를 설정하는 능력이다


    세상은 사건이고 사건을 지배하는 것은 에너지의 방향성이다. 에너지는 낙차를 따라간다. 낙차를 조직하려면 최소한 둘 이상이 있어야 한다. 그 둘을 연결하는 토대까지 셋이어야 한다. 둘 사이에는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으므로 다섯이다. 즉 항상 생각보다 규모가 커진다는 말이다.


    세상은 마이너스다. 마이너스는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1층에서 뭔가 일이 터졌다면 원인은 2층에 있다. 2층에서 벽돌이 떨어져 1층에 쌓이는 식이다. 답을 찾으려면 무조건 한 층 위로 올라가야 한다. 세나개를 예로 들어보자. 대부분 문제행동을 하는 개의 뒤에 문제견주가 있는 법이다. 세나개에 반복되는 패턴이다.


    개가 교통사고로 동료를 잃는 등의 사건을 겪고 트라우마를 입어 문제행동을 보인다. 아니다. 그 일로 인해 슬픔에 빠진 견주의 얼굴표정을 보고 개가 따라한 것이다. 견주가 밝은 표정을 짓자 문제행동이 사라졌다. 이런 식이다. 어린이도 같다. 문제 어린이의 뒤에는 문제 학부모가 있다. 무조건 환경을 바꿔야 한다. 


    인간의 사랑이라도 마찬가지다. 계가 있다. 2층이 있다. 2층은 집단이고 1층은 개인이다. 2층은 전체고 1층은 부분이다. 집단에서 개인으로 떨어지며 에너지 낙차를 발생시킨다. 전체에서 부분으로 좁혀지는 깔때기를 통과하면서 에너지는 강력해진다. 사랑은 에너지다. 운명의 갈림길에서 강한 의사결정을 하게 한다. 


    인간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은 사회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개인은 주변적 존재다. 사회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으려는게 연애다. 연애는 갑자기 여자 혹은 남자가 마음에 드는게 아니다. 사회의 의사결정중심에서 밀려난 주변부의 존재가 되어 사회 밖으로 튕겨져 나가려 할 때 손을 내밀어 사회를 붙잡는 것이다.


    페미니즘도 그러한 관점에서 고찰해야 한다. 과거에는 남자가 주로 튕겨나갔다. 여자는 사회 밖으로 튕겨 나가는 남자를 붙잡아주는 존재로 설정된다. 남자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수동적 존재로 설정되는게 보통이다. 소설이건 만화건 마찬가지로 여자는 안정적으로 사회 안에 자리 잡았고 남자는 밖에서 겉돌고 있다.


    설까치든 구영탄이든 마찬가지다. 무인도나 가서 지옥훈련이나 하며 사회로의 재진입을 노린다. 상전이 벽해되어 지금은 여자가 무인도로 가야 할 판이다. 남성이 여성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여성이 사회 재진입을 노리며, 여성이 남자를 두고 다른 여성과 경쟁하는 일본만화식 사회가 되어야 진정한 양성평등이 된다.


    마동탁과 설까치의 남남경쟁이 엄지와 검지의 여여경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때 여여경쟁이 남성이 탑포지션에 올라 축을 잡고 대칭된 여자들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여성이 축을 잡고 남성들 중에서 선택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까지 한국사회의 성별갈등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은 지식인들이 힘주어 계몽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는 여자가 사회활동을 하지 않았으니 사회 밖으로 튕겨나갈 일이 없었다. 지금은 반대가 된다. 인간을 움직이는 에너지는 여자나 남자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환경과의 긴밀한 관계에서 나온다. 계가 존재하는 것이며 계는 사회와 집단과 환경이다.


    집단과의 관계가 개인의 행동을 결정한다. 박경리가 일본에는 로맨티시즘이 있을 뿐 열렬한 사랑이 없다고 말한게 그렇다. 부족민은 원래 사랑이 없다. 부족 밖으로 튕겨나갈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의 강도는 튕겨 나가게 하는 사회 원심력의 강도와 비례한다. 21세기에 밖으로 튕겨나가는건 여자도 마찬가지다.


    소외가 일어난다. 가정주부가 되어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게 상당히 밀려나간 것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소외의 극복이 본질이며 양성평등은 그러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의사결정 중심에 소속되는가 혹은 소외되는가에서 에너지가 나와준다. 차별이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인 에너지 처리구조의 세팅이 본질이다.


    여자가 과거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획득한 것이 진실이다. 더 많은 차별이 문제를 일으키는게 아니라 더 많은 에너지의 획득이 문제를 일으킨다. 원인측의 에너지와 결과측의 혜택 중에서 결과측의 혜택을 바라면 기회를 잃고 주도권을 놓치고 에너지를 잃어서 소외가 일어난다. 에너지를 얻으면 사건이 일어난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관점을 버리고 사건을 촉발한다는 관점을 얻어야 한다. 결과의 이득과 상관없이 사건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사건이 없는 조용한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보고 사건을 없애자는 관점에서 페미니즘에 접근하면 망한다. 사건이 일어나서 떠들썩한 상태가 사회의 활력이다. 활력이 좋은 거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1.31 (04:21:08)

"결과의 이득과 상관없이 사건의 주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http://gujoron.com/xe/1058610

[레벨:2]말시인

2019.01.31 (12:46:59)

'세상은 사건이고 사건을 지배하는 것은 에너지의 방향성이다. 에너지는 낙차를 따라간다. 낙차를 조직하려면 최소한 둘 이상이 있어야 한다. 그 둘을 연결하는 토대까지 셋이어야 한다. 둘 사이에는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으므로 다섯이다. 즉 항상 생각보다 규모가 커진다는 말이다.' 

토대까지가 3이고,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 5이면, 
중간에 빠진 4는 무엇이지용?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9.01.31 (13:01:19)

메커니즘이 4입니다.

메커니즘+에너지 = 메커니즘의 작동이 5


자연에는 5만 있고 4 3 2 1 은 없습니다.

단 인간이 눈이 삐어서 에너지를 직접 보지 못하므로 


메커니즘만 보고 그 작동은 모르는 거지요.

돌지 않는 물레방아는 메커니즘만 있고 작동은 없으므로 4입니다.


자연에는 돌지 않는 물레방아 같은게 없습니다.

인간이 임의로 명명할 수는 있겠지만.


인간이 어리석어서 자연의 5를 보지 못하므로 

그 중에 일부를 발췌해서 4 3 2 1을 논하는 것이며 


어떤 대상>대상의 운동>운동하게 하는 구조>구조하게 하는 메커니즘>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에너지

까지 1 2 3 4 5 중에서 인간이 일부분만 가리켜 지목합니다.


자연은 모두 5로 존재하지만 

인간이 그 5를 보지 못하므로 그 중에서 일부만 가리켜 언어로 나타내는 것이며


예컨대 물체>컵>물이 든 컵>컵에 물을 따르는 중>컵에 물을 따라마시는 전체과정으로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자연에서는 그런게 없습니다. 


컵으로 사용하지 않고 공장에서 제작되는 순간 깨져도 컵으로 치지만

그것은 언어의 편의일 뿐 자연의 질서가 아닙니다.


명박과 같은 짐승은 인간이 아니지만 일일이 따지기 피곤하니까 인간으로 쳐주는 거지요.

자연에는 5만 있으므로 나머지는 제가 명명한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4의 메커니즘과 거기에 에너지를 태운 5의 시스템이 별도로 있는게 아니고

메커니즘만 있는 경우는 자연에 없습니다.


멈추어 있는 자동차와 달리고 있는 자동차를 구분하려고 4와 5를 나눈 것이며

멈추어 있는 자동차에도 달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모두 5를 갖추고 있습니다.


멈추어 있는 물레방아는 4의 메커니즘이고 작동하는 물레방아는 5의 시스템인데

멈추어 있는 물레방아도 작동할 때를 대비해서 물이 들어오는 에너지 출입구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문제는 인간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입니다.

멈추어 있는 물레방아에서 물이 들어오는 입구부분의 존재를 까먹는 거지요.


가만있는 물체도 지구의 중력과 교섭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걸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냥 있다고만 알지 중력과 교섭하는 까닭으로 뭉쳐서 대칭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나무가 그냥 서 있는게 아니고 지구와 결합해 있고 태양을 마주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지요.

우주 안에 5 아닌 것은 없으며 우리는 보통 거기서 에너지의 작동을 빼놓고 말합니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 전선은 전선이 아닌 것이며

물이 나오지 않는 수도관은 수도관이 아닌 것인데


죽어서 흙이 된 사슴은 사슴이 아닌데

컵은 물이 담겨져 있지 않아도 그냥 컵이라고 생각합니다.


컵은 언젠가 물이 담길 때를 대비하여 

질 입자 힘 운동 량에 해당하는 모든 요소를 구비하고 있습니다.


시스템과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아도 작동할 때를 대비하여

거기에 해당하는 요소들을 내부에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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