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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100 vote 0 2010.07.22 (19:17:36)

 
  아란도님의 반복되는 질문을 보니 제가 쉽게 말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쉽게 접수하는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tyu.JPG

 

  진보는 시스템의 교체 형태로 일어나며 그 시스템은 교육시스템, 산업시스템, 미디어 시스템 따위가 있는 것이고 그런 것이 보급될 때마다 혁신이 일어나며 그 이후는 점점 쇠퇴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어느 왕조든 초창기에 좀 잘 나가다가 점점 쇠퇴하게 되는데 그건 임금들이 멍청해서 그런게 아니고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게 되어 있다. 그 과정은 기계적으로 진행된다. 막연하게 임금탓 하는건 답이 아니다.

 

  예컨대 인터넷이 등장하면 사회의 의사결정구조가 변하고 그에 따라서 사회시스템이 재편되기 마련인데 문제는 천장을 뚫는 문제다. 인터넷이 5프로, 10프로, 30프로, 50프로, 70프로 보급되었을 때 각각 다른 이슈가 등장한다. 5프로의 전략과 10프로의 전략이 다른 것이다.

 

  5프로 보급되었을 때 우리 사회의 엘리트는 다 거기 모여있고 따라서 신속한 의사결정이 일어나며, 나머지 95프로와 수준차가 크기 때문에 95프로가 5프로를 지지한다. 이 경우 신속하게 사회를 바꿀 수 있지만 겉보기만 화장할 뿐 중요한 핵심은 건드리지 못한다. 이때가 밀월시대인데 대중은 엘리트를 좋아하고 엘리트 역시 대중을 좋아하며, 서로간에 사이좋게 행복하게 잘 돌아가지만, 껍데기만 바꾸고 본질은 건드리지도 못한다. 문제는 꼴통 좌파들이 이 좋은 시절의 환상에 빠져있다는 거다.

 

  인터넷이 점점 보급되어 30프로 보급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이때 대중과 엘리트의 갈등은 극적으로 첨예해진다. 인터넷을 선점한 엘리트는 뒤늦게 뛰어드는 대중을 상대로 텃세를 부리고, 대중은 완력으로 소수 엘리트를 제압하려고 한다. 그리고 무질서의 혼돈에 빠져버린다.

 

  중요한건 이 구간을 신속하게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앞에서 말한 천장을 뚫는 문제다. 여기서 뭉기적대면 죽도밥도 안 되는 사태가 벌어져서 개혁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인터넷을 예로 들어 말한건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고 우리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 유럽의 문명을 기준으로 우리 국민의 30프로는 대략 따라왔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를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머지 70프로는 여전히 중세 봉건시대를 살고 있다. 유럽이라도 덴마크나 네덜란드쯤 되어야 그 나라의 51프로 정도가 21세기를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왜 노무현인가 하면 이 구간을 신속하게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함이 방향을 전환하여 천장을 뚫으려면 힘을 결집해서 단숨에 치고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과정에서 어떤 전략모델을 만드는가다.

 

  문제는 대중화다. 인터넷이 30퍼센트 50퍼센트 70퍼센트 보급됨에 따라 점점 물이 흐려집니다. 처음 하나의 그룹에 모여있던 엘리트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서 대중들을 자기 휘하에 거느리고 대중속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이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물이 나빠진다. 원래의 장점인 신속한 의사결정은 불가능해지고 죽도밥도 안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대중화를 거부하고 엘리트들이 자기네들끼라만 모여 놀아도 역시 진보는 불가능해진다.

ty.JPG 

  그림의 중국, 러시아모델은 큰 대륙이 고립된 섬처럼 행세하는 현상인데 중국이나 러시아는 귀족이 너무 많아서 귀족만 모아도 국가 하나를 세울만 하다. 이 경우 사회변혁의 핵심인 민중의 신분상승욕구가 결집되지 못한다. 중국은 엘리트만 모아도 몇 천만이 되므로 엘리트 안에서 피라밋형 서열구조가 생겨나 대중과의 접점을 잃어버린다. 하층민들도 귀족들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기는 커녕 자신과 가까운 거리에 있고, 역시 하층민 출신이면서 자기 머리 꼭지 위에 군림하는 마름이나 세리를 미워할 뿐이다. 대중과 엘리트는 딴 세계에 살며 마주치지 않으므로 사회의 모순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림의 일본모델은 엘리트가 대중속으로 침투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파편화되어 구심력을 잃어버린 형태다.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따위의 수장이 되어 궁벽한 곳에 자기만의 성을 장만하고 성주놀이로 우쭐대며 힘을 하나로 합치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다. 딴나라 세력에게 각개격파 된다. 이는 일본과 같은 섬나라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영국섬만 봐도 월드컵에서 죽을 쑤는 이유는 잉글랜드성, 웨일즈성, 스코틀랜드성, 에이레성에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모델은 엘리트와 대중이 융합하였으면서도 엘리트 간의 연대가 이루어져 강력한 구심점이 만들어져 있다. 이는 유럽이 대륙도 아니고 섬도 아닌 중간 형태이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다.

 

  우리가 민주당 노선을 따르면 중국, 러시아 모델이 되어서 대중은 대중끼리 노닥거리고 엘리트는 엘리트끼리 노닥거려서, 대중의 상승욕구를 끌어내지 못하므로 진보는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반면 꼴통 좌파노선을 따라도 일본처럼 산골의 작은 성에 고립되어 울산성, 창원성에서 성주놀이나 하며 혼자 우쭐하는 형세가 된다.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07.26 (02:55:11)

그림표를 보니
점점 좋아지는 것이 진보다.라고 생각했던 것과 현실에서의 모습은 그것이 아니어서 어떤 괴리감이 들어서 갈등을 느낀 것 같습니다.
그림2의 진보 그래프를 보니 오히려 조금은 희망적인 생각도 드네요.
생각해보니 진보에 대한 정의 역시 주입되어 있었고, 사회에서 보여지는 대로 학습된 결과였다. 그런데 어떤 모순이 보였는 것 같고,
과연 내가 생각한 진보는 무엇이었는가? 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진보에 대해 구체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도 의문이 드네요.
동렬님 글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과연 우리가 한번이라도 제대로 진보하면서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적어도 내가 세상에 태어나 지금껏 살아온 시간동안 지켜보아온 시간동안만 이라도...
우리 사회가 뭔가 변하기는 했는데 정신적인 것에서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정체되어 있었다는 생각도 들구요.
그냥 제자리에 있었다는 생각, 남의 것을 내것인냥 한 것 같다는 생각. 뭔가 착각을 하고 살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참 허무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한번도 변화해 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도 들고.... 먼저 변한 사람들 많이 답답했겠다.라는 생각도 들구요.

그리고 구조론으로 풀어내는 많은 얘기들 중에 그동안 일상적으로 써왔던 말들이 그 의미나 뜻이 참 많이 축소되어 있었구나, 혹은 그 의미들에 대해서 너무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도 같구요.
같은 말인데도 사용하는 방법론에 따라 전혀 생소하게 들리니 , 역설은 언어 사용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도 다시한번 느끼게 됩니다. 역설이 이해되어야 언어사용의 한계를 극복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진보한다는 것은 결국 망가진다는 것이다'
망가진다,라는 표현은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어떻게 저런 표현이 나오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다음은 별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멍 때렸다고 해야할까요?

그 전반적인 과정을 그려보니 그말이 당연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근본이 훼손되어 원형이 망가졌다. 뭔가로 결정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이 단계적으로 나아갈 때마다 경우의 수가 점차 줄어드는 것.'

이말의 의미를 제 방식대로 얘기해본다면...

점차로 훼손되어 간다는 것은 점차로 구체화 되어가는 방향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근본에서는 멀어지지만, 무한한 가능성에서 점차로 가능성의 범위를 제한해 가는것. 그것은 점점 폭을 좁혀 간다는 의미도 될 것이라고 봅니다.

보통은 꿈은 점차로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가지만, 역으로 어린이가 커서 나중에 대통령이 될 수도 있으므로...

꿈은 대통령에서 점차로 평범해져 가지만 ,역으로 평범한 어린이가 커서 대통령이 될 수도 있으므로...

그래서 근본이 훼손되어 원형이 망가졌다.라는 말은 가능성의 폭이 단계적으로 좁혀지고 있다는 의미이므로

그것은 쓰임이 변화 되었다.달라졌다. 혹은 가야할 길이 제한되었고, 있어야 할 위치가 점점 구체화.고정화 되었다.

꿈이 점차로 평법해진 것도 훼손이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차로 줄어들어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도 훼손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무하한 가능성에서 대통령이라는 마지막 하나의 길만 남은 것이므로....

이 말은 '진보한다는 것은 결국 망가진다는 것이다' ,근본이 훼손되어 원형이 망가졌다. 라는 것에 대입하여 풀어 유추해보면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무한한 가능성이 훼손되었다는 것에서요.

나무를 베어 깎아서 의자를 만든 것은 원형이 훼손된 것이지만 또한 쓰임의 용도가 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무를 베어서 연필도 만들 수 있고 종이도 만들 수 있듯이...근본이 훼손되어 쓰임의 용도를 달리했다(현실화 했다).

하지만 연필은 종이는 의자는 쓰고나면 닳아지고 망가지듯이(물론 재활용도 가능하지만)...하지만 원형으로 연필과 종이와 의자가 다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그래서 교체되는 것이구요. 새로운 나무를 베어 다시 연필 종이 의자를 만들듯이....

 

이것이 '이는 진보에 의한 원형의 훼손으로 상처입었을 때 치유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 된다.' 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구조론에서 글을 읽다가 요즘 새삼스레 느끼는 건데요.

하부구조인가? 하면 상부구조이고,  힘을 얘기하고 있는가? 하면 밸런스이고, 밸런스인가? 하면 포지션이고...
질 입자 힘 운동 량 에서 자유롭게 글의 내용이 왔다갔다 하는 경우들도 있어서 글 전체를 읽어보지 않고는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도 있구요. 상황에 따라서 얘기의 판도가 바뀌고 그 판도에 맞춰서 위치가 정해져 그 안에서 글의 밸런스가 유지되고 글의 포지션이 판가름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글을 쓰기전에 미리 무엇을 쓸 것인지 결정이 되었겠지만 읽는 저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는 의미입니다.

 

일반적 혹은 특정한 언어의 쓰임도 중요하지만,

구조론적 언어의 쓰임이 내게는 많이 익숙하지 않았다는 생각과 동시에 내게는 생소했구나를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이미 생소했는데 이제서야 그것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읽고 마는 것과 생각으로 경험하고, 뛰어들어 체험을 하는 것은 다른 것 같습니다. 구조론을 풀어내는 언어도 직접 현실화 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물론 모든 것이 읽을 때와 쓸때,표현할 때가 다르기는 하지만은요.)

 

그동안의 구조론이 내게 관념이었다면 요즘은 조금 현실화 되어 내게로 왔다고 생각이 됩니다.

흠..^^;...지적할 부분이 있으시면 해주세요.  갈길이 머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07.26 (10:33:02)


중요한건
'진보가 하나의 시스템이고
과학적인 메커니즘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는가?'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진보 운운한다면 실패죠.
막연히 '우리것이 좋은 것이여' 하는 수준으로 접근한다면 곤란하죠.
입체적 모형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냥 좋은것과 나쁜것 중에 좋은걸 선택하는게 진보이고
사람들이 나쁜걸 선택하는건 바보라서 그렇다는
안이하고 낭만적이며 감상적인 인식은 실패로 귀결됩니다.
냉철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진보는 시스템의 진보이고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보수입니다.
시스템은 어떻게 건드리든 건드리면 무조건 탈이 납니다.
진보는 백퍼센트 탈이 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보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 진보하지 않으면 죽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진보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인간은 날아가는 화살과 같아서 용을 써서 조금 더 가보고 죽든가
아니면 그냥 떨어져 죽든가입니다.
둘째 외부에서 닥치는 재난 때문입니다.
생태계의 진보는 대부분 운석의 충돌, 빙하기의 도래, 지구온도 상승 등
외부에서 온 충격과 재난 때문이었으며
인간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독립전쟁 남북전쟁 대공황 세번의 재난때 세번 진보하고 말았습니다.
미국사 200년 중에 그 세번의 재난때 세번의 진보 외에 진보한 적 없습니다.
일본은 오일쇼크 재난 때문에 떴고 김대중 대통령은 IMF 재난 시기에 당선되었습니다.
지금의 세계적인 불경기도 한국에게는 큰 기회입니다.
진보는 재난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재난이 없으면 진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보에 따른 실이 득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구조를 잘 알아야 합니다.
한국의 토지개혁이나 초등의무교육, 경제성장 역시 625와 남북대결 과정에 일어났고
일본의 근대화 역시 미국 흑선의 함포가 도꾜 시내를 때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진보는 시스템의 진보이며 시스템은 어떻게 건드리든 건드리면 반드시 탈이 나기 때문에
재난을 당하여 탈이 났을 때 그것을 기회로 삼아 진보하는 일이 많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진보에 더딘 이유도
대륙이라 재난을 당해도 그 충격이 중앙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순풍에 돛달고 편하게 가는 진보는 없으며
온갖 충격과 재난과 피터지는 경쟁 가운데 진보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진보는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망가지는 것이며
그 가운데 외부와 관계를 맺고 외부의 것을 끊임없이 내부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예컨대 결혼을 한다면 진보지만
그것은 타인에게 자기 영역을 침범당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혼자 맘대로 하던 것을
상대와 공유하며 상대 눈치를 보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진보는 자기 한쪽 팔을 떼주고
대신 친구를 얻는 것과 같은 것이며
지속적으로 자기를 파괴하고 희생시키고 망가뜨리며 조금씩 외연을 넓혀가는 것입니다.
그냥 가만이 앉아서 입에 떡이 들어오는 진보는 없다는 말이지요.
한 개인이 사회와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처음 자기 자신과 다음 가족과 다음 부족과 다음 국가와 다음 세계와
관계의 지평을 넓혀가는 반대로 자기 희생은 점점 커져서
만약 우주를 통째로 아우르게 되면
예수처럼 성자가 되어 죽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노무현처럼 말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07.26 (14:14:33)


위의 말들을 개념지어 본다면
존재론적인 측면에서는 지속적으로 망가지는 것이고 인식론적인 측면에서는 관계맺기를 통하여 계속 외연이 확대된다는 의미라고 생각해봅니다.

개체를 희생하여 관계맺기 .물리적 외연을 넓힌다는 의미.
존재론적인 측면은 진보가 선택사항이 아닌 필연적.자연적으로 세팅되어 있는 구조.
인식론적인 측면에서는 관계맺기로 소통의 폭을 넓혀 가는 것.
존재론과 인식론 사이에는 반드시 개체의 희생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
생태계의 진보는 외부에서 오는 재난과 관계가 있고, 인류의 역사 역시 삶의환경이 위기에 닥쳤을 때 일어나고,
개인에게도 개인에게 일어난 사건, 집단에서 일어단 사건,사회에서 일어난 사건 , 국가에 일어난 사건,세계에서 일어난 사건 등으로
관계맺기가 확대되어가지만,
개인에게서만 본다면 개인에게 일어난 사건에 따라서 진보가 일어난다는 의미인듯 하고,
개인은 관계맺기를 위하여 지속적으로 희생시키며 망가뜨리며 외연을 확장한다는 말씀이시고,

'진보는 시스템의 진보이고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보수입니다.
시스템은 어떻게 건드리든 건드리면 무조건 탈이 납니다.
진보는 백퍼센트 탈이 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보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 진보하지 않으면 죽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생태계의 진보는 모든 생태계가 파괴될 것이라는 위기에서 비롯되어 새로운 변이의 시스템을 만들게 되어 한번의 진보가 일어나고,
인간의 시스템의 건설은 진보이지만 건설된 시스템은 누구나 함부로 건드릴 수 없기에 그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보완하면서 가꾸어 가는 것인가 봅니다. 이것은 개인이 마음에 안든다고 해체하고 수선하는 상황은 결국 진보의 탈이 난것과 같다는 말슴이신것 같습니다.

역사의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은 모두 그것을 인식하였을 때, 진보하지 않으면 모두 같이 죽는다는 것을 인식하였을 때 , 혹은 모두가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진보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때 일어나는 것이고 혹은 선동을 하여서라도 같이 진보하게 하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의 진보는 개인에게 일어나는 위기와 상황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역사적 인물들도 생의 전 과정을 보면 많은 위기 상황들이 닥치는데 그러한 것을 뚫고 나가려다 보면 진보하게 되어 있는 것이고,
개인에게는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는 것과 같기에 그 시스템을 관계맺기로 소통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고,
기존의 시스템과 반하는 것은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어서 개인의 희생과 지속적 망가짐은  반드시 전제되는 것인가 봅니다.
결국 외부와 관계맺기를 통하여 개인의 변화된 시스템을 나누는 것인데 그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일 수도 있을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혹은 자신의 위치가 국가적 재난과 맞물려 있다면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치루어진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었구요.

이것은 존재론 적인 측면에서는 개체는 지속적으로 망가질 수 밖에 없지만, 의식의 변화로 인하여 인식론적인 측면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그러나 개인에게 있어서 의식의 성장은 이루어졌지만 개체의 희생은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개체를 희생하여 외부와 관계맺기는 성공한 것이고 시스템 전이는 성공한 것이라고 보기에 개체를 희생하여 진보한다. 진보는 위기에 닥쳤을 때 일어난다. (생태계든, 인간의 역사든, 개인에게든...)

그러므로 진보의 속성은 존재론을 따르므로 진보는 지속적으로 망가진다. 한번의 진보로 건설된 시스템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시스템의 변화는 환경이 위기에 닥쳤을 때 일어난다. 그때 진보하게 된다. 그렇게 진보는 단계적으로 일어난다.
존재는 지속적으로 망가진다. 개체는 희생을 통하여 외부와 관계 맺을수록 망가지는 것이지만 외연은 넓혀지는 것이다. 희생과 망가짐을 통해서 외부와의 관계 맺기는 활발해진다. 존재론의 방향과 인식론의 방향을 알아야 한다.

대략 이렇게 동렬님 글을 이해해 보았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07.31 (15: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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