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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방안은 휴전이다. 부시는 UN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고, UN은 평화유지군을 보내야 한다. 후세인 일가는 망명해야 하고 이라크는 과도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과도정부는 UN의 감독아래 민주선거를 치르고 새정부에 정권을 이양해야 한다. 과도내각에 후세인의 측근이 어디까지 참여할 수 있는지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사실은 이런 내용의 협상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었는데, 4월의 모래폭풍을 앞두고 시간에 쫓긴 부시의 성급한 전쟁결정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한다.

전쟁은 장기전 아니면 단기전이다. 단기전이면 먼저 공격하는 쪽이 이기고, 장기전으로 가면 보통 방어하는 쪽이 이긴다. 동맹군이 고전하고 있다. 막대한 인명피해를 내고 우격다짐의 승리를 거둘 수도 있으나 그 후과가 큰데 비해 실익은 적다. 그렇다면 휴전 뿐이다.

요는 『누가 휴전협상의 주도권을 쥐는가』이다. 부시는 먼저 바그다드를 포위하여 전쟁의 주도권을 잡은 다음 협상을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동맹군이 효과적으로 바그다드를 포위하려면 100만병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시는 『다섯 개의 전쟁』을 해야 한다. 세계 여론과의 전쟁, 사막의 기후와의 전쟁, 이라크 민심과의 전쟁, 전쟁비용과의 전쟁, 그리고 후세인과의 전쟁이 그것이다. 이 다섯가지 전쟁들에 모두 이겨야 한다. 우격다짐으로 이 중 하나나 둘에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경우 이기고도 지는 전쟁이 된다. 후세인은 생존과의 전쟁 하나만 승리하면 된다.

부시가 동시에 치러야 하는 다섯 개의 전쟁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 전쟁의 상식 중 하나는 섣불리 상대방의 지도부를 파괴하지 않는 것이다. 전쟁은 끝나도 정치는 남아있다. 승전후 상황을 장악하고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있어줘야 한다. 항상 차선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전술운용의 폭을 넗히는 방향으로 결정해야 한다. 협상할 경우를 대비해서 후세인 일가 중 한두명은 살려두어야 한다.

부시가 개전 첫날에 후세인의 목숨을 노린 것은 협상의지가 없음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말하자면 배수진을 친 것이다. 후세인은 일단 장기전으로 끌고가서 미군을 피로하게 한뒤 협상하려 한다. 이 점을 간파하고 협상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어 압박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쟁은 정석대로 가고 있다. 천만에! 다 틀어졌다.

이락은 아프간이 아니었다
동맹군이 오판을 한 이유 중의 하나는,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손쉬운 성공에서 얻은 자만심 때문으로 보인다. 아프간에서 손쉽게 승리한 이유는, 결과적으로 오마르와 빈 라딘이 도망갈 퇴로를 열어준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마르와 빈 라딘은 카불을 내주고 남부 산악지대로 숨어들었다. 후세인은 바그다드를 내주고 도망갈 곳이 없다. 충격과 공포 작전은 독안에 든 쥐의 독을 흔들어 쥐구멍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도망갈 퇴로 하나는 보장해주어야 한다. 쥐는 그 안전한(?) 퇴로를 믿고 기어나오다가 매복에 걸려 죽는거다.

전쟁의 상식은 항상 차선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차선을 감추는 것이 또한 전쟁의 속임수다. 미국의 차선은 협상이다. 후세인도 협상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은 충격과 공포 작전으로 후세인의 목숨을 노리므로서 협상가능성을 감추었다. 요기까지는 정석대로다.

문제는 퇴로를 열어놓고 목숨을 노려야 쥐구멍의 쥐가 빠져나오는데, 퇴로를 닫아놓으니 충격과 공포작전이 먹히지 않았다는 거다. 결과적으로 최악의 어설픈 작전이 되었다.  

생존의 달인 후세인은 정석대로 가고 있다
후세인은 비교적 전쟁의 기본을 지켜왔다. 예컨대 생화학무기를 사용하여 빌미를 잡혔다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다. 공화국수비대를 투입하여 정면대결을 벌였다 해도 참패를 면할 수 없다. 빈 라덴과 오마르처럼 수도를 포기하고 산악으로 숨는다든가 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후세인은 내리지 않았다.(도망가 숨을 곳도 없지만). 특히 아직까지 이스라엘을 건들지 않고 있는 것은 후세인의 작전지시가 즉흥적인 결정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심리전에서의 승리다. 미국의 언론보도가 대부분 허위로 밝혀지고 있는 반면 이라크측의 발표는 비교적 진실에 가깝다. 미국은 허위보도로 심리전에서 자멸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후세인은 지금까지 동맹군이 희망해온 『다섯가지 실수』 중 하나의 실수도 저지르지 않은 것이다.

후세인은 왜 티그리스강의 다리를 끊지 않았을까?
초반의 관심사 중 하나는 후세인이 1차 방어선을 어디에 칠 것인가이다. 군대는 보통 이동 중에 깨지는 법이다. 제공권이 없는 이라크는 전술적 선택의 폭이 좁다. 티그리스강의 다리를 끊고 중부지역에 방어선을 친다면 공군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전멸이다.

다리를 그대로 놔두어서 미군을 바그다드 코앞까지 유인한 뒤 모래폭풍을 이용해 포위 고립시키는 거대한 작전을 세웠다면 위험천만이다. 이라크로서 최고의 방안은 군대의 주력을 보존하여 내부반란을 막고, 주민들이 심리적 공황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전쟁초반에 너무 밀려도 민중들 사이에 심리적인 공황이 일어난다. 초반에는 좀 깨지더라도 접전을 벌여 시간을 끌어주는 방법으로 주민들을 전쟁에 익숙하게 해야한다. 그러므로 공화국수비대 일부의 남진이 아주 잘못된 결정은 아니다.

중요한건 도박을 하지 않는 것이다. 모험적인 전술구사는 안된다. 후세인의 최고선은 휴전이며 그 휴전의 주도권을 쥐는 것이 최고의 목표다. 그렇다면 인내심과의 싸움이다. 어떤 전술이든 전술을 구사하는 그 자체로 이쪽의 전술을 적에게 알려주는 이적행위가 된다.

적에게 이쪽의 전술을 다 알려주는 바보 부시
부시가 대통령궁을 직접 공격한 것은 장기전을 바라는 후세인의 허를 찌른 셈이 된다. 문제는 실패했다는거다. 그걸로 이쪽의 전술이 전부 노출된 것이다. 부시는 26일의 연설로 장기전을 각오하고 있다고 큰소리치고 있지만, 이는 역으로 미국이 초조해하고 있음을 노출한 결과가 된다.

개전 직전의 대규모 전단살포, 대통령궁 정밀폭격, 방송국 폭격, 허위보도를 통한 심리전, 등은 이라크 지도부의 분열과, 민중의 심리적 공황에 의한 내란 발생 등 미국의 원하는 바를 분명히 노출하고 있다. 미국이 무엇을 원하는지 드러났으니 후세인은 그 반대로만 가면 된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대통령궁을 폭격하여 협상가능성을 차단하므로서 전술운용의 폭을 좁혀놓았다는 사실이다. 만약 미국이 후세인의 목숨을 노리지 않았다면, 후세인은 혹시 미국이 협상을 원하는가 해서, 비밀리에 사절을 보낸다거나 혹은 망명처를 알아보는 등 뭔가 액션을 취했을 것이고 이 경우 미국의 밥이 된다.

적을 안심시켜 적을 움직이게 하고, 적이 안심하고 굴 밖으로 고개를 내밀때, 목을 날리는 것은 전쟁의 상식이다. 부시는 전쟁의 상식을 모두 어기고 너무 많은 『안되면 말고』식의 작전을 펼쳤다. 전쟁에서 『안되면 말고』 식의 도박을 해서 안되는 이유는 이쪽의 전략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라크 민중의 봉기를 기대하면서도 반후세인 과도정부를 구성하지 않고, 미군이 직접 통치하겠다는 계획은 한마디로 엽기적인 발상이다. 이 외에도 무수한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뻔하다. 아프간의 손쉬운 승리가 우연한 행운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최종결론
전쟁은 단기전 아니면 장기전이며 중기전은 잘 없다. 단기전의 경우 『적의 전의상실, 내란, 지도부분열, 비밀협상, 도주』 등이 반드시 있어주어야만 한다. 문제는 이들 상황은 이쪽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결정한다는데 있다. 자기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해서는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다. 최종적으로 항복문서에 사인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다.

전쟁의 기본을 지키는 방법으로,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이되 대신, 결정적인 시기에 단 한번 반대방향으로 움직여서, 적으로 하여금 틀린 예측을 하도록 유도하고, 적이 오판할 때 응징하는 것이 전쟁의 속임수다. 초장부터 예상 밖의 행동으로 후세인의 목숨을 노린건 최악이다.

전쟁의 기본은 두개 이상의 카드를 손에 쥐고, 한 개의 카드를 보여주어 적이 이쪽의 움직임을 예측하게 하고, 두 번째 카드를 감추어서 적의 예측이 빗나가게 하는 것이다. 미국은 초반부터 히든카드를 보여주고 말았다. 지금까지 드러난 동맹군의 여러가지 결정들은 모두 적의 실수와 자멸을 기대하는 것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다. 하긴 전력이 압도적이니 그래도 우격다짐으로 이기긴 하겠지만 지불해야 할 반대급부가 너무 크다.

별 짓 다해보고 먼 길을 돌아서 결국은 휴전협상을 하지 않겠나 싶다. 지금까지 나타난 결과로 보면 미국의 헛짓거리 때문에 원래의 『쿠사이 없는 과도정부 수립안』에서 후퇴하여, 『쿠사이가 주도하는 과도정부』로 가닥을 잡아가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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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전쟁이라도 서프는 먹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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