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나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합니다. 나의 자연스러움은 미학적 의미에서의 자연스러움입니다. 닫힌 계 안에서 내적인 통일성과 전일성, 자기 일관성, 그리고 내재적인 완결성의 지향입니다. 그 안에는 물리적 등방성과 대칭성의 구조원리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좌파와 우파, 파병찬성과 반대, 시민단체의 입장과 청와대의 입장, 우리는 그 안에서 고민합니다. 그냥 좌파에 서고, 파병반대에 서고, 시민단체의 입장에 서서 목청만 높이면 속은 편하겠지만, 그것이 슬로건이 되고, 표어는 되고, 구호는 되는데, 앵무새처럼 동어반복이 될 뿐, 칼럼이 되지를 않고 서프의 철학인 『영양가 있는 글』이 되지를 않습니다.

서프는 슬로건만 거는 집단이 아닙니다. 앵무새처럼 구호만 외치는 집단이 아닙니다. 독자들에게 읽혀지는 글을 써야 합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어야 합니다. 그 수요를 파악해야 하고 또 의도적으로 창출하기도 해야 합니다. 무엇일까요?

중요한건 생산력입니다. 영양가있는 글을 쓰려면 그 쓸 거리들, 즉 자원과, 시장과, 자본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원도, 시장도 없는데 간판만 내건다고 장사가 되는건 아니죠. 글쟁이의 자원은 글감입니다.

글감을 얻으려면 왼쪽에 서야합니다. 세상을 향해 불만을 품고 시비를 걸어야 합니다. 좌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좌파는 원론 밖에 할말이 없습니다. 제목만 써놓고 내용을 못채우는게 좌파입니다. 그러다보니 자기편끼리 당파성 싸움으로 날을 보냅니다.

영양가있는 글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이면에 숨은 복잡한 이해관계를 노출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시장원리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보수쪽으로 가게 됩니다.

글쟁이는 기본적으로 왼쪽에 서는 것이 원칙입니다. 처음부터 오른쪽에 서면 원초적으로 문제제기가 안됩니다. 세상을 향해 시비를 걸 건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처음 싸움을 걸 때는 왼쪽에 서고, 구체적인 성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일정부분 현실과 타협하면서, 한걸음씩 오른쪽으로 옮겨가는 것이 정치의 공식입니다.

좌파들은 머리가 닭입니다. 그들은 이면에 숨은 복잡한 이해관계의 노출이 불가능합니다. 그들이 계속 왼쪽에 머물러 있는 것은 순전히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아는 사람이라면, 글을 쓰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글이 자꾸만 오른쪽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노출하기가 그 글의 내용으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왼쪽에 말뚝을 박아놓지 않으면 애초에 글이 써지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약간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왼쪽에 말뚝을 박아놔도 논의를 진전시키다 보면 자꾸만 글이 오른쪽으로 가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뇌세척을 하고, 머리를 다시 포맷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뇌세척을 해주지 않으면, 점점 오른쪽으로 가서 또 쓸 거리가 없어져버립니다. 글을 쓴다는건 본질에서 세상을 향해 시비를 거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세상에 크게 불만을 품고,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선언해놓고, 그 잘못을 한 100가지 쯤 발굴해놓고 그걸 하나하나 검토해나가다 보면 그 중에 고작 한두개 쯤 건지는 것입니다. 그 한두가지를 개선하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처음 깃발을 꽂을 때는, 『세상을 왕창 뒤엎어야 된다, 혁명을 해야된다, 이거이 절단이다』 이렇게 화끈한 전면전을 선포해놓고, 근데 현미경 대고 하나하나 찾아보니, 이거 하나나 둘 밖에 건질게 없네.. 이렇게 됩니다. 하여간 인생이란 그런 거에요. 뜻대로 잘 안됩니다.

중요한건 처음부터 그 확실한 건수 하나만 찾아내려고 하면 결코 찾을 수 없다는 거에요. 그거 눈에 잘 안보입니다. 설사 된다 해도 그게 계획대로는 안되고 돌발적으로 터져나오는 거죠. 운 좋으면 찾고 운 나쁘면 못찾지요. 그러니 확률게임입니다.

그러므로 왼쪽에 서야 그 건수가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겁니다. 처음부터 오른쪽에 서면 확률이 0입니다. 그래서는 세상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계속 왼쪽에 머물러만 있으면 그 하나나 둘도 건지지 못하고 전부를 요구하다가 전무가 됩니다. 불쌍한 장기표아저씨처럼.

좌파들이 계속 왼쪽을 고집하는 것은, 그 하나나 둘도 건질 재주가 없기 때문에, 어차피 실패할 바에 야 더 덩치 큰 골리앗과 붙어서 깨지는 방법으로, 세상에 이름 석자나 내고 가겠다는 패배주의 때문이기도 하지요.

결국 우리는 왼쪽에 서서 세상을 향해 100가지 쯤 싸움을 걸고, 오른쪽으로 포지션을 옮겨서 그 중에 운좋으면 하나쯤 건지는 것이며, 그 하나를 위해 낙관하고 또 싸움을 걸어가야 하는 거죠.

노무현도 마찬가지입니다. 김대중이 100가지 쯤 바꾸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대서 『아 정말로 100이 바뀌는구나』 하고 순진하게 믿었다면 닭입니다. 김대중에게 실망했다는 분들 많죠. 전부 닭입니다. 노무현에게 실망했다는 분들 벌써 나오고 있죠. 닭입니다.

노무현이든 김대중이든 왼쪽에 서야 세상에 100가지 쯤 싸움을 걸어서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고, 오른쪽으로 와야 그 중에 하나라도 건지는 겁니다. 공식을 따라간거죠. 『파병하면 지지철회 하겠다?』 이건 노무현이 100을 다 건지라는 말인데 물리적으로 불능이죠.

노무현 입장에서는 하나 정도만 건져도 많이 한겁니다. 세상이란게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그 하나로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해, 나중 발목을 잡힐 수 있는 소지를 줄인다는 차원에서, 파병을 결정하는건 대통령입장에선 당연한 겁니다.

그렇다 해서 네티즌인 우리가 대통령을 두둔만 하고 있어서는 그 하나가 안보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파병을 반대하고 100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밑바닥에서의 확률을 높여놔야 나중에 운좋으면 하나라도 건지는 거지, 노무현을 추종한다면서 노무현이 『선택과 집중』으로 선별해낸 그 하나에만 집중하자고 하다간 결국 그 하나도 놓칩니다.

곧 죽어도 네티즌은 저변에서의 확률을 높이는 역할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100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노무현이 그 중 하나나 둘에만 선택과 집중하고, 나머지 98을 버렸다 해서 실망해서 안됩니다. 세상이란 원래 그런 거에요. 하나씩 바꿔가는 겁니다.

그리고 노무현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그 하나도 보통은, 자신이 계획하고 겨냥한 것이 아니라 우연한 행운으로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김대중이 IT산업을 잘 키운것도 계획이라기 보다는 행운이었을 소지가 높습니다.

DJ가 『IT는 나의 작품이야』하고 떠벌인다면 대단한 착각이죠. 그런 식으로 노무현에게도 몇가지는 행운이 올 것입니다. 그 행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뇌구조를 기본적으로 좌파방식으로 세팅해놔야 합니다. 글고 일단 건수를 잡은 다음에는, 우파적 시장논리로 경영해가야 합니다. 좌파적사고는 건수를 잡는데 도움이 되고, 우파적사고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저는 저의 방식으로 갑니다. 최근에 좋지 않았습니다. 부시감기에, 석유전쟁위장장애에, 몸살에, 우울증에.. 이런때 저는 내 뇌를 다시 포맷하고 정기적으로 뇌세척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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