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6095 vote 0 2003.03.12 (23:06:30)

사사로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욕을 먹더라도 눈치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믿습니다. 정치현실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직관력은 패턴을 읽는 능력이다

SBS드라마 올인의 실제 모델 차민수 4단은 한국기원 객원기사로 89년 후지쓰배 8강돌풍을 일으킨 유명한 바둑고수입니다. 승단대회를 치르지 않아서 4단일 뿐 실력으로는 15년 전부터 9단이었습니다. 문제는 이창호, 조훈현에 버금가는 실력을 가진 그가 엉뚱하게 갬블러가 되었다는데 있습니다.

여기서의 질문은 『과연 도박의 정답은 있는가?』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답은 있습니다. 전제조건은 속임수를 전혀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정답은 있습니다. 차민수 4단의 성공사례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역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창호가 도박사의 길을 걸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필자의 견해는 이창호가 프로도박사가 되었어도 챔피언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바둑과 도박은 다릅니다. 그러나 보통 야구선수가 골프도 잘 치듯이, 1등을 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비슷한 성적은 거두었을 것입니다.

바둑에 정석이 있듯이 포커에도 분명 정석은 있습니다. 그것이 도박의 정답입니다. 그렇다면 그 정답은 무엇일까요?

바둑에는 정석이 있고 정치에는 공학이 있다

저는 97년과 2002년의 대선 승리를 예언했습니다. 적중했습니다. 이 정도의 예측은 누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2002년 8월의 지자체 선거에 지는 정당이 대선에서 승리한다는 식의 고급한 예측을 적중시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예측을 적중시키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들은 직관력에 의존합니다. 그 직관에 개인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을 때 예측은 적중합니다. 주관이 개입하면 예측은 빗나갑니다. 자신의 이해관계가 결부되고 목적의식이 개입될 때 직관적 예측은 대부분 빗나갑니다.

직관력이란 무엇인가? 『패턴인식』입니다. 과거의 경험을 분석하여 패턴을 읽어낸 다음 그 패턴을 몇가지 종류로 모형화합니다. 모형화된 몇개의 패턴 중에서 주어진 상황과 일치하는 하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직관적 예측은 높은 적중률을 가집니다.

나는 어떤 사건을 경험하면 그 사건을 분석하여 본질을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그 본질과 상관없는 주변의 변수들을 철저하게 배제합니다. 여기에는 극한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중복을 배제하여 가장 단순한 형태로 만드는 거죠.   

이러한 세탁과정을 거쳐 모든 사건은 몇가지 간단한 형태로 유형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모든 사건은 그 유형화된 몇가지 모형 중 하나에 포함됩니다.

도박사가 승률을 높이려면 이러한 패턴읽기에 능해야 합니다. 게임을 거듭하는 동안 상대편의 배팅방법에서 일정한 패턴을 찾아내므로서 상대방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내는 것입니다. 상대의 패턴을 읽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패턴을 상대방에게 읽혀지게 합니다. 물론 상대방에게 읽혀진 그 패턴은 연출된 가짜입니다.

빗나가는 직관과 들어맞는 직관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직관력 의존이 참담한 실패로 귀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잘못된 모형을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번에 일어난 사건이 과거의 사건과 동일한 패턴으로 진행될 것으로 지레짐작합니다. 그러나 정치의 세계에서는 보통 과거의 사건과 다른 형태로 진행되려는 쪽으로 역사의 관성이 작용합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반복된다는 것은 일정한 패턴이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역사는 반복하지 않습니다. 역사는 진보하는 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반복되면서 반복되지 않습니다. 한나라당의 패배는 두번 반복되었지만 그 과정은 두번 다 다릅니다.  

역사에는 법칙이 있으며 정치에는 공학이 있습니다. 바둑에는 정석이 있고 도박사에게는 패턴을 읽어서 조금씩 확률을 높여가는 기술이 있습니다. 즉 분명한 답이 있는 것입니다. 단지 그 정답에 도달하기 어려울 뿐입니다.

하수는 좋은 패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립니다. 중수는 손기술로 상대방을 속이려고만 듭니다. 상수는 상대방의 배팅패턴을 읽어냅니다. 고수는 상대방을 속이기 위하여 거짓패턴을 연출합니다.

모든 예측이 맞는 것은 아닙니다. 맞는 예측과 틀리는 예측이 있습니다.  엔지니어가 다루는 기계는 항상 동일한 작업을 반복합니다. 예컨대 기기의 고장은 보통 기계의 움직이는 부분, 즉 관절부분에서 일어납니다. 엔지니어의 직관적 판단은 100프로 적중합니다.

점장이의 직관은 70프로 정도 적중합니다. 점장이를 찾는 사람은 대부분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치평론가의 직관적 예측은 대부분 빗나갑니다. 역사는 늘 진보하려는 관성을 가지는데 평론가들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조중동의 직관은 100프로 빗나갑니다. 그들은 단 한번도 미래를 예견하여 맞추어낸 적이 없습니다. 역사의 편에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문의 판매부수에 집착하는 한 조중동의 예측은 절대로 맞을 수 없습니다.

정치는 통째로 역설이다.

정치는 역설입니다. 정치에서 의도한 결과와 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일은 부지기수입니다. 힘을 소모하여 상대방을 이기려는 정치는 하수의 정치입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는 정치는 중수의 정치입니다. 힘을 길러서 조금씩 자신의 장점을 늘려가는 정치는 상수의 정치입니다. 자신의 약점을 장점으로 역이용하는 정치는 고수의 정치입니다.

천년이 흘러도 정석은 변하지 않습니다. 정치의 정석은 손자병법의 손빈이 제나라 장군 전기(田忌)와 위왕(威王)의 마차경주에서 전기의 승리를 이끌어낸 방법과 다르지 않습니다. 세마리의 말이 겨루되 자신의 강한 말로 상대의 중간말과 겨루게 하며, 자신의 중간 말로 상대의 약한 말과 겨루게 하고, 자신의 약한 말로 상대의 강한 말과 겨루어 2승 1패를 하는 전략입니다.

자신의 약으로 상대방의 강을 치며, 자신의 중으로 상대방의 약을 치고, 자신의 강으로 상대방의 중을 치는 것입니다. 2승 1패로 약간의 확률을 높입니다. 살을 내주지 않고 뼈를 벨 수는 없습니다. 한판도 져주지 않고는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고수는 가장 효과적으로 져주는 사람입니다. 싸워서 지되 패배의 부담을 최소화 시키는데 성공하는 사람이 최고의 전략가입니다. 2500년전 손빈은 자신의 가장 약한 말을 버려서 상대의 가장 강한 말을 소모시켰습니다. 지기는 지되 부담을 최소화 한 것입니다. 특검정국에서 지금 우리가 내려야 하는 결단도 본질에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구조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정석이 있다.

엔지니어가 자동차의 소음만 듣고도 고장난 데를 알아맞히는 것은 자동차 내부에 구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둑에 정석이 있는 것도 역시 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포커에 패턴읽기가 있는 것 역시 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에 공학이 있는 것도 역시 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구조가 있는 모든 곳에는 반드시 정석이 있고 정답이 있습니다.

물론 정답이 하루아침에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바둑의 정석은 상대방을 일거에 거꾸러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승리의 확률을 높여가는 것입니다. 히딩크가 결전 1백일을 앞두고 하루에 1프로씩 승리의 확률을 높여가듯이, 바둑 정석의 돌 하나는 1프로의 확률을 높일 뿐입니다.

정답은 최적화입니다. 확률을 높여서 최적화된 상태에 근접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정치가 가는 길 역시 공동체의 최적화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과학적 의미에서의 진보입니다. 물론 그 진보는 좌파들이 말하는 진보와 다를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역사는 늘 진보하려는 관성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특검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정치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약한 말로 상대방의 강한 말을 최대한 끌어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판을 키워야 합니다. 지더라도 쉽게 져주는 것이 아니라 긴장을 높여서 상대방을 완전히 탈진시키는 것입니다.

명백한 자신의 단점을 가지고 상대방의 강점을 끝까지 물고늘어지는 것입니다. 이회창이 DJ라는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하다 행동반경이 좁아져서 망했듯이, 자신의 드러난 약점을 부각시켜 상대방이 그 약점 하나만을 물고 늘어지게 유도하는 방법으로 상대방의 외연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바둑은 이으면 살고 끊기면 집니다. 정치는 외연이 차단되면 집니다. 외연을 넓히려고 간격을 벌리다가는 끊겨서 집니다. 끊기지 않으려고 뭉치다가는 포위되어 역시 외연이 차단됩니다. 그렇다면 곡예를 해야합니다. 정석대로 가는 겁니다.

특검을 하면 동교동과 끊겨서 외연이 차단됩니다. 특검을 거부하면 포위되어 고립됩니다. 역시 외연이 차단됩니다. 특검을 해도 죽고 안해도 죽는거죠. 고수는 이럴 때 일단 특검을 합니다. 왜냐하면 아직은 초반의 포석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끊긴 것이 각자 살아서 다시 이어지면 하나의 대세력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한국인은 정치성향은 1년에 1프로씩 왼쪽으로 갑니다. 1년에 1프로씩 진보성향의 유권자가 증가합니다. 5년후 우리는 5프로 더 유리한 환경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이창호가 뒷심을 믿고 초반에 무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고수라면 유권자를 믿고 낙관합니다. 판을 더 아슬아슬하게 가져가는 것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특검을 하든 안하든 우리가 상상하는 최악의 경우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이 최악이며 더 나빠지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서프라이즈 서버증설 기념 한방에 참여하실 분은 아래 배너를 눌러주십시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647 안희정의 경우는 이렇게 생각하세요. 김동렬 2003-03-26 18722
646 안희정은 무슨 배짱으로 .. 미친 넘 image 김동렬 2003-03-26 21933
645 수렁에 빠진 부시 image 김동렬 2003-03-25 13778
644 조선일보가 비판받아 마땅한 100가지 이유(한겨레펌) 김동렬 2003-03-25 14035
643 아카데미시상식 난리(펌) 김동렬 2003-03-24 14904
642 전쟁의 참상 김동렬 2003-03-23 14987
641 어이없는 전쟁 김동렬 2003-03-21 18100
640 나무 image 김동렬 2003-03-20 16107
639 걸프전 문답 김동렬 2003-03-19 19002
638 노무현과 호남정치 문제있다. image 김동렬 2003-03-19 16458
637 [파병반대] 대한민국이 만만한 홍어※이냐? image 김동렬 2003-03-18 14412
636 진중권이 서프를 건드는 방식에 대해서 김동렬 2003-03-17 13242
635 상생의 정치 좋아하네! 농담하자는 거냐? image 김동렬 2003-03-15 17933
634 한나라당 강아지를 다루는 방법 김동렬 2003-03-14 14849
633 문제의 H양 image 김동렬 2003-03-13 16102
» 직관력은 패턴읽기다 image 김동렬 2003-03-12 16095
631 씹새발굴은 계속되어야 한다. image 김동렬 2003-03-11 17883
630 개그콘서트가 성공한 진짜 이유 김동렬 2003-03-10 14718
629 국민을 울게하지 말라! 검사새끼들아. 김동렬 2003-03-09 15035
628 검찰청 영감들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image 김동렬 2003-03-07 155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