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의 가르침은 둘이다. 하나는 정신주의를 버리라는 거다. 둘은 건축가의 시선을 가지라는 거다. 이기려면 막연하고 추상적이고 심리적인 관념론으로 도피하지 말고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수단을 가져와야 한다. 적을 이기려면 총을 가져오든 대포를 가져오든 뭔가를 가져와야 한다. 빈손으로 와서 단결과 충성을 외치며 정신적 요소로 어떻게 해보겠다면 개수작이다. 무기가 있고 기술이 있고 역량이 있어야 한다. 그런 가치들은 대부분 외부에서 들어오기 마련이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방에 가만 앉아서 목청만 높인다면 사기다. 명성을 탐하는 무뇌좌파의 오류다. 답은 에너지에 있다. 에너지는 외부에서 들어온다. 배수진을 치면 뭉쳐라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뭉친다. 바깥의 배후지를 가리키면 내부에 위계서열을 정하지 않아도 저절로 위아래가 정해진다. 100미터 선착순을 시키면 실력대로 정렬된다. 집단이 한 방향으로 가면 질서가 생겨난다. 질서를 지켜라고 말로 외치면 이미 틀린 것이다. 집단에 저절로 질서가 지켜지도록 상황을 만들어가야 한다. 외부에 있는 황금을 가리키면 먼저간 사람에게 우선권이 있으므로 내부서열이 정해진다. 고인 물이 썩듯이 안방에 죽치고 있으므로 세습하고 협잡하고 비리를 저지르는 거다. 외부의 신기술을 들여온다면 반칙도 없고 부패도 없고 특권도 없다. 예술가의 창의도 계 바깥의 것이다. 세습재벌은 있어도 세습작가는 없다. 창의하는 공간에는 저절로 질서가 만들어진다.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국가의 녹봉을 받는다. 바깥에서 가치를 들여오므로 누구도 불만이 없다. 문제는 귀족의 자식이 물려받을 때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 지점에서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에너지가 외부에서 들어올 때는 언제라도 대칭의 축을 지나며 그 축은 하나의 좁은 관문이고 거기서 걸러진다. 묻어갈 수 없다. 뒷문이 없다. 속임수가 먹히지 않는다. 말로 청렴결백을 외치는건 가짜다. 고을에 청백리가 하나 나면 인근 일만 호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모든 움직이는 동을 움직이지 않는 정으로 바꾸면 청백리가 될 수 있다. 물산의 유통을 멈추어 버리면 청백리가 될 수 있다. 자신은 칭송을 듣고 명성을 얻겠지만 나라는 이미 거덜 나 있다. 정신적 요소가 아닌 물질적 요인에서 더 나아가 에너지적 요인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구조론의 첫 번째 가르침이다. 에너지 요인은 바깥과의 긴밀한 연결과 상호작용에 있고 움직임에 있고 동에 있으며 정에는 없다. 움직이다 보면 반드시 되는게 아니라 확률적으로 되는 것이다. 두 번째 가르침은 선택하지 말고 건축해야 한다는 거다. 갈림길에서 진보냐 보수냐. 민주당이냐 자한당이냐. 마초당이냐 미투당이냐. 기독교냐 불교냐. 서울대냐 지방대냐. 선택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은 퇴행적인 사고다. 건축가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 하나씩 단계적으로 쌓아가는 거다.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선의 대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보로 가든 보수로 가든 어느 길이든 답은 있다. 어떤 상황이 주어져도 그 안에 해답이 있다. 축구로 말하면 선택의 관점은 축협을 비난하고 유소년을 강조하며 인맥축구를 질타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남탓으로는 이길 수가 없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 상황에서의 답은 있다. 미리 줄을 잘 서야 한다는 생각이 틀렸다. 병사가 많으면 포위해서 이기고 병사가 적으면 돌파해서 이긴다. 물론 선택이 중요한 때도 있다. 노예들은 선택이 중요하다. 주인을 잘못 만나면 인생이 꼬인다. 군인들도 자대배치 선택이 중요하다. 뺑뺑이를 돌려 자대를 정하는데 재수가 없으면 전방부대로 가고 운이 좋으면 후방부대로 간다. 인제, 원통, 양구에 걸리면 죽었다고 복창해야 한다. 부산에 있는 후방기교육 학교들이 가장 좋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있다. 봉건시대는 그랬다. 남자추첨이 잘 돼야 한다. 여성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여지가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선택하는 시대가 아니다. 남자가 여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아니다. 물론 지금도 지위가 낮은 사람은 윗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부장님이 하필 또라이라면 재수가 없는 거다. 그러나 근본적인 자세가 틀려먹었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상사가 누구든 실력으로 이겨낸다. 사회 어느 분야를 가든 밑바닥에 있으면 선택이 중요하다. 위로 올라갈수록 선택보다는 대응이 중요하다. 승객은 선택이 중요하고 운전기사는 대응이 중요하다. 승객이 아닌 운전기사가 되어야 한다. 상황에 맞게 대응하면 된다. 예술가는 선택이 아니라 대응에 따라 실적이 결정된다. 엘리트일수록 그러하다. 만약 선택하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보나마나 직업이 노예에 가까운 자다. 선택하려는 마음을 가질수록 점점 노예에 가까워진다. 건축가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실패해도 데이터를 얻고 경험치를 쌓는다. 건축할 벽돌 하나를 얻은 셈이다. 어떤 경우에도 손해보지 않는다. 그것이 건축가의 자세다. 축구를 하든 야구를 하든 그러하다. 손흥민이 해주겠지. 아냐 이승우가 답이라구. 이런 식으로 선택하는 마음을 가지면 이미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전반에 이랬으면 후반은 이렇게 가야 한다. 이런 식의 맞대응이 건축가 자세다. 전반에 밀렸으면 상대편이 지쳤을 것이다. 적절한 선수교체로 밀어붙이면 된다. 상황에 맞게 예비전력을 운용하면 된다. 야구를 해도 그렇다. 커쇼가 잘해줘야 할텐데. 이런 마음이면 이미 패배해 있다. 모든 경우에 대응할 카드가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에너지원이 없기 때문에 선택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동력원이 있어야 한다. 언제라도 정상에서 보면 다른 것이 보인다. 기슭에서 보면 선택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지만 정상에서 보면 다음 카드와 그다음 번 카드가 보인다. 정상에서 사건의 전모를 보는 자세라야 한다. 첫 번째는 총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사격술이 있어야 한다. 정신적 요소를 들먹이지 말라. 무조건 총부터 구해와야 한다. 총은 바깥에 있고 창의하는 진보에 있고 움직임에 있다. 안에는 없고 머무름에도 없고 주저앉는 보수에도 없다. 두 번째는 의리다. 포메이션이다. 팀플레이다. 우선순위를 잘 정하면 된다. 막연하게 신념, 애국, 충성, 정의, 평등, 사랑, 선악, 청렴결백, 도덕, 윤리 따위의 정신적 요소를 들먹이는 자는 주목을 끌어 명성을 탐하려는 자이며 언제나 그런 자들이 판을 망치는 것이다. 언제라도 에너지와 그 에너지의 운용기술에 답이 있다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