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한국이 뜨자 외국인들은 한국인의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 중에 이게 다 한국의 무엇 덕분이지롱 하고 말하는 자가 없다. 영국인들은 말했다. 이게 다 영국의 신사도 때문이지. 일본인들도 흉내낸다. 이게 다 일본의 무사도 때문이지. 프랑스인도 거든다. 이게 다 루이 14세 시절에 발달한 프랑스의 궁정문화 에티켓 때문이지. 한국도 뭔가를 내놔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이익을 볼 수 있다. 그래야 남들이 한국을 배우려고 할 것이며 가르치는 자의 지위에 올라야 집단의 룰을 만들수 있고, 원래 세상은 룰을 만드는 자가 다 먹는 법이다. 그래서 영국이 왕립학회 중심으로 온갖 과학의 표준을 만들었고 프랑스도 뒤질세라 미터법을 만들었으니 그걸로 우려먹기가 상당하였던 것이다. 경제는 조만간 중국의 기술에 밀리게 된다. 저임금에 쪽수로 밀어붙이는 데는 당해낼 장사가 없다. 한국이 먹고 살려면 룰을 만드는 자의 지위에 올라야 한다. 룰에서 저작권이 나오고 로열티가 나온다. 선진국은 원래 그걸로 삥 뜯어서 먹고 사는 법이다. 우리도 그러려면 뭔가 내세우는 간판이 있어야 한다. 왜 한국은 강한가? 남탓주의로는 전진할 수 없다. 한중일의 강점은 의리에 있다. 결속에 있다. 한중일이 의사결정을 더 잘한다. 일단 의사결정 속도가 빠르다. 집단의 구성원 간 관계가 긴밀하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서로 친하기 때문이다. 의사결정구조가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회사와 노동자가 서로 적대하면 망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만만한 호구로 보면 망한다. 국가와 민간이 서로 불신하면 망한다. 한중일이 서구에 비해 구성원들 간의 관계가 긴밀하다. 의리가 있다는 거다. 그러나 양상은 다르다. 일본의 의리는 보좌관이 모시는 의원을 위해 대신 자살하는 의리다. 수백년 전부터 그들은 그래왔다. 사무라이는 주군을 위해 할복한다. 무사도는 죽는 것이라고 일본의 고서 하가쿠레에 정의되어 있다. 한국은 반대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위해서 자살한다. 중국인의 의리는 꽌시로 엮여서 위험하다. 저우융캉과 엮인 마윈과 판빙빙이 그러하다. 꽌시로 엮여서 서로를 보호하지만 부정부패가 만연한 현실은 그들이 폭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꽌시는 진보의 공격적 의리가 아니라 보수의 방어적인 의리다. 공산당 고위급 권력자와 엮여서 일신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꽌시라는 안전장치를 믿고 폭주하다가 멸망한다. BTS는 왜 성공했는가? 한국인도 모른다. 답은 밸런스에 있다. 의리는 일방적이면 안 되고 조절장치가 있어야 한다. 방시혁과 BTS와 팬들 사이에 삼각구도가 형성되어 있다. 방시혁은 팬들의 감시를 피해서 BTS를 통제할 수 있지만 팬 사이트의 힘이 워낙 막강해서 쉽지 않다. 팬이 안티로 돌아서는건 한순간이기 때문에 BTS는 비틀즈처럼 폭주할 수 없다. 의리는 중국처럼 집단 숫자가 많아도 안 되고 일본처럼 일방적이어도 안 되고 자체 밸런스를 갖추어야 하며 내부에 삼각구도로 축과 두 날개가 갖추어져 있어야 하며 국가라면 산맥과 바다와 항구가 있어야 한다. 조절장치가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후진국은 부족주의가 만연해서 그 조절장치가 없다. 부족원은 100명이 넘는데 그 숫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백 명의 비위를 맞추려면 나쁜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좋은 일을 해서는 사촌을 배 아프게 할 뿐이다. 좋은 일을 해도 배가 아프지 않으려면 친한 가족이어야 하는데 가족은 많아야 숫자가 7명이다. 의리에 속하는 인원이 수십 명 단위를 넘으면 누군가는 배가 아프고 반드시 뒷탈이 나고 만다. 의사결정구조에 속하는 팀의 인원이 너무 많으면 망하는 것이다. 애플시절 스티브 잡스는 TOP 100이라고 해서 정예 100명의 팀을 만들었는데 이들 숫자가 통제가능한 선을 넘어서 망한 것이다. 100명이면 부족이 된다. 이들은 서로 질투하고 모함하고 반목한다. 내부에 균형있는 구조를 갖추고 통제할 수 있는가에 유의해야 한다. 남의 일에 너무 참견해도 망하고 전혀 참견을 안 해도 망하고 조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명절날 너 언제 시집갈 거니 하고 물어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어야 한다. 그게 무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보통은 짜증을 내며 남이야 장가를 가든 시집을 가든 무슨 상관이람 이러지만 그 안에 균형점이 있다. 그렇게 관심을 가져주지도 않는 나라는 망한다. 서로가 서로를 소 닭보듯 하면 망한다. 너무 많은 사람에게 평판을 받으려고 해도 구조적으로 망한다. 고졸출신 저학력자가 기업을 하면 사방에서 태클이 들어온다. 보호자를 필요로 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곳저곳에 줄을 대면 그것이 도리어 약점이 된다. 김부선이나 낸시랭처럼 지나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주변에 말려줄 사람이 없거나 혹은 수준이 낮아서 말리지 못하고 있다.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다가 되레 집중하지 못하고 꼬이는 것이 보통이다. 구김살 없이 자란 황제의 조카 곽거병은 눈치보지 않고 전투에 올인했는데 미천한 양치기 노예 출신의 위청은 그러지 못했다. 황제로부터 책망을 듣지 않을까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했다. 신분의 차이가 방향의 차이를 만들고 이는 결과의 차이로 나타난 것이다. 알렉산더 역시 왕자신분으로 눈치볼 것이 없었다. 징기스칸은 고생했지만 그래도 귀족신분이다. 자무카는 노예 출신이라 애초부터 한계를 가지고 출발한 것이다. 관계가 긴밀해야 하며 그러면서도 자유로워야 한다. 거기에 균형이 있다. 친문을 외치며 민주당을 배신한 쓰레기들의 행동은 전형적인 부족민 행동이다. 관계가 긴밀하지 않은 것이다. 문재인 지지자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자부심이 없다. 불안해서 소동을 벌이는 것이다. 호르몬과 무의식 차원에서 틀어져 있다. 의리가 없다. 내부 균형추가 없다. 저울이 없다. 사촌이라서 배가 아프다. 폭주한다. 브레이크가 없다. 아닌 걸 알지만 멈추지 못한다. 삼촌이면 괜찮은데 사촌이라서 그런 거다. 위청도 황제의 친인척이지만 촌수가 약간 멀다. 약간의 차이가 방향을 바꾼다. 민주당이 남이 아니라고 생각하려면 공부를 더 해야 한다. |
" 관계가 긴밀해야 하며 그러면서도 자유로워야 한다. 거기에 균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