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가 곧 메시지다』는 말을 기억할 것이다.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 개혁당의 존재형식이 개혁당의 정체성을 100프로 결정한다.
개혁당은 오프라인에 존재한다. 개혁당의 존재형식은 민주당과 다를 바 없다. 그것으로 이미 개혁당은 민주당과의 차별화에 실패한 것이다. 개혁당이 민주당보다 더 인터넷과 가깝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여러분들은 오마이뉴스를 방문해 봤을 것이다. 또 디지탈 조선일보를 방문해봤을 것이다. 오마이뉴스와 디지탈조선은 존재의 형식이 다르다. 미디어가 다르다. 그러므로 메시지가 다르다.
그와 같은 차별화의 느낌을 개혁당사이트를 방문해 보고 느낀 사람이 있는가? 없다. 개혁당사이트와 민주당사이트의 차이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차이와 같다. 형식은 같은데 내용이 다르다는 말이다.
맥루한의 말을 빌어보자. 미디어가 메시지다.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 형식이 같으면 내용도 같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형식이 같다. 따라서 내용도 같다.
물론 중앙일보 기자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다른 점 100가지를 말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엔 같다. 조중동은 같다.
형식은 같은데 내용이 다르다는 말은 오십보백보에 불과하다. 형식이 같으므로 내용이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형식을 바꿔야 한다.
출범 당시에 개혁당은 두가지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노무현의 당선이다. 노무현이 민주당을 탈당할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이 목적은 노무현의 당선으로 해소되었다.
다른 하나는 개미당의 건설이다. 그야말로 인터넷당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형식이 다른 다을 꿈꾼 것이다. 이 목적의 좌절되었다.
개혁당은 인터넷당이 아니다. 미디어가 메시지다. 개혁당은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와 결별하므로서 인터넷이라는 메시지를 상실하였다.
개혁당의 개혁이 의미하는 것은 정치개혁이다. 이는 곧 정계개편을 의미한다. 현재로서 개혁당의 존재이유는 한나라당의 와해에 대비한 정계개편용이다. 즉 실험으로서의 개혁당은 용도폐기 된 것이다.
개혁당의 미래는 없다. 물론 김원웅과 유시민은 개혁당의 찬란한 미래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의 차이가 아니라 내용의 차이에 불과하다.
껍데기는 같은데 알맹이가 다르다? 우리는 알맹이가 아니라 껍데기를 원한다. 개미에게 필요한 것은 개미집이다. 개혁당은 정계개편당이 아니라 개미당이어야 한다.
개미들은 개미들이 들어가 살 껍데기로서의 개미집을 원한다. 김원웅 유시민 정도의 개혁성을 가진 사람은 민주당에 수도 없이 많다.
우리는 민주당과 비교해서 약간의 비교우위를 가진 당이 아니라 본질에서 다른 당을 원한다. 당신네들의 당 말고 우리들의 당을 원한다.
정치개혁은 원내정당을 지향하고 있다. 원내정당은 지구당없는 정당을 말한다. 지구당이 없다는 것은 당의 주인이 당료가 아니라 의원이라는 말이다.
개혁당은 정치개혁을 지향한다. 즉 당료들의 당이 아니라 의원들의 당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의원들 봉노릇 하려고 당을 하는가? 나는 의원없는 당을 원한다.
개혁당은 정치인을 양성하고 배출할 뿐 정치하지 말아야 한다. 개혁당 출신 국회의원은 있어도 개혁당 소속의 국회의원은 없어야 한다.
그렇게 컨셉을 잡아가지 않는다면 인터넷당, 개미당, 형식이 다른 당, 미디어가 다른 당으로서의 개혁당은 의미가 없다. 그냥 기성정당이 하나 더 있는 것이다. 민국당도 있고 개혁당도 있고 몽준당도 있고.
하긴 정계개편 때 까지 개혁당은 존재할 것이다. 그것도 성과라면 성과다.
개혁당은 오프라인에 존재한다. 개혁당의 존재형식은 민주당과 다를 바 없다. 그것으로 이미 개혁당은 민주당과의 차별화에 실패한 것이다. 개혁당이 민주당보다 더 인터넷과 가깝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여러분들은 오마이뉴스를 방문해 봤을 것이다. 또 디지탈 조선일보를 방문해봤을 것이다. 오마이뉴스와 디지탈조선은 존재의 형식이 다르다. 미디어가 다르다. 그러므로 메시지가 다르다.
그와 같은 차별화의 느낌을 개혁당사이트를 방문해 보고 느낀 사람이 있는가? 없다. 개혁당사이트와 민주당사이트의 차이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차이와 같다. 형식은 같은데 내용이 다르다는 말이다.
맥루한의 말을 빌어보자. 미디어가 메시지다.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 형식이 같으면 내용도 같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형식이 같다. 따라서 내용도 같다.
물론 중앙일보 기자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다른 점 100가지를 말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엔 같다. 조중동은 같다.
형식은 같은데 내용이 다르다는 말은 오십보백보에 불과하다. 형식이 같으므로 내용이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형식을 바꿔야 한다.
출범 당시에 개혁당은 두가지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노무현의 당선이다. 노무현이 민주당을 탈당할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이 목적은 노무현의 당선으로 해소되었다.
다른 하나는 개미당의 건설이다. 그야말로 인터넷당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형식이 다른 다을 꿈꾼 것이다. 이 목적의 좌절되었다.
개혁당은 인터넷당이 아니다. 미디어가 메시지다. 개혁당은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와 결별하므로서 인터넷이라는 메시지를 상실하였다.
개혁당의 개혁이 의미하는 것은 정치개혁이다. 이는 곧 정계개편을 의미한다. 현재로서 개혁당의 존재이유는 한나라당의 와해에 대비한 정계개편용이다. 즉 실험으로서의 개혁당은 용도폐기 된 것이다.
개혁당의 미래는 없다. 물론 김원웅과 유시민은 개혁당의 찬란한 미래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의 차이가 아니라 내용의 차이에 불과하다.
껍데기는 같은데 알맹이가 다르다? 우리는 알맹이가 아니라 껍데기를 원한다. 개미에게 필요한 것은 개미집이다. 개혁당은 정계개편당이 아니라 개미당이어야 한다.
개미들은 개미들이 들어가 살 껍데기로서의 개미집을 원한다. 김원웅 유시민 정도의 개혁성을 가진 사람은 민주당에 수도 없이 많다.
우리는 민주당과 비교해서 약간의 비교우위를 가진 당이 아니라 본질에서 다른 당을 원한다. 당신네들의 당 말고 우리들의 당을 원한다.
정치개혁은 원내정당을 지향하고 있다. 원내정당은 지구당없는 정당을 말한다. 지구당이 없다는 것은 당의 주인이 당료가 아니라 의원이라는 말이다.
개혁당은 정치개혁을 지향한다. 즉 당료들의 당이 아니라 의원들의 당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의원들 봉노릇 하려고 당을 하는가? 나는 의원없는 당을 원한다.
개혁당은 정치인을 양성하고 배출할 뿐 정치하지 말아야 한다. 개혁당 출신 국회의원은 있어도 개혁당 소속의 국회의원은 없어야 한다.
그렇게 컨셉을 잡아가지 않는다면 인터넷당, 개미당, 형식이 다른 당, 미디어가 다른 당으로서의 개혁당은 의미가 없다. 그냥 기성정당이 하나 더 있는 것이다. 민국당도 있고 개혁당도 있고 몽준당도 있고.
하긴 정계개편 때 까지 개혁당은 존재할 것이다. 그것도 성과라면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