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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5420 vote 0 2003.02.26 (14: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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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 쪽에서 바라본 봉하리, 왼편 산자락이 끝나는 지점에 노무현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이 있다. 그 뒤로 낙동강의 지류가 흐르고 강을 넘으면 수산과 밀양이고 산 뒤편으로는 진영평야가 펼쳐져 있다.

『봄! 그대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네!』도에는 벌써 봄이 왔다는데 서울의 2월은 여전히 차다. 어제는 16대 대통령 취임식 입장권을 구했기로 여의도에 가볼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심란해져서 떠나고 싶어졌다. 입장권은 기념으로 소지하기로 하고 경부선 열차에 몸을 싫었다.

열차가 동대구 경산을 지나자 더운 공기가 확 쏟아져 들어왔다. 봄이었다. 양지쪽은 제법 파릇파릇한 것이 봄기운이 완연하다. 삼랑진역에 내려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진영읍 봉하리 노무현대통령 생가마을 찾았다. 하늘빛이 청명하지 않은데다 디지탈카메라에 익숙지 못해 사진의 질이 좋지않다.

마을 진입로가 비좁아서 자동차의 진입을 차단하므로 방문객들이 무료로 태워주는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1키로 쯤 이어지는 마을 진입로. 노무현소년은 이 길을 걸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을 것이다.

25일 하룻동안 1만여명으로 추산되는 방문객들이 생가를 방문하고 있다. 마당이 10여평도 안되는 방 두칸 짜리 작은 집이었다.

생가 지붕위로 바라보이는 해발 140미터 높이의 봉화산 정상. 작은 야산임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서리어있다.

생가에서 키우는 누렁이와 암탉. 전형적인 시골농가의 풍경이다

생가에서 5분 거리의 뒷산 자락에 있는 고려시대의 마애불. 바위가 왼쪽으로 쓰러져 있어 부처님은 가부좌 한 채 누운 모양이 되어 있다.

가야의 한 왕자가 살았다는 자왕골의 샘물이 여러 단의 작은 폭포를 만들고 있다. 소년 노무현의 자연 놀이터가 되었지 싶다

봉화산 정상에서 본 마을전경. 50여호도 안되는 작은 마을이다. 앞쪽 산자락 끝 첫 집이 노무현대통령의 생가이다. 흰색 구조물은 방문객들에게 국밥을 끓여주는 텐트들이다. 왼쪽으로 오징어가공공장도 보인다.

봉화산 정상에서 본 진영평야와 낙동강. 마을에서 사오십분 거리에 있어 여름에 홍수가 나면 물어 떠내려오는 수박 줏으러 다녔을 성 싶다.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김제 벽골제, 제천 의림지와 함께 3한시대에 만들어진 최고의 저수지인 밀양의 수산제가 있는 밀양평야의 수산읍이 아스라히 보인다.

59년 대학생 불교도들이 봉화산 마루에 세운 호미를 든 관음상, 노무현소년은 이 관음상을 보고 『부처님이 호미를 들었는데 나는 세상에 봉화를 들면 될 거 아이가!』하고 말했다고 마을 주민들은 전한다.

봉화산 정토원의 지상출현 관음성상. 관음보살이 『살 살릴 물과 혼 살릴 꽃』을 들고 지상으로 출현하고 있다. 노무현소년은 이 불상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권양숙여사와 데이트를 했던 뚝방길. 오른편 야산 기슭에 마옥당을 짓고 고시공부를 했다. 자서전 『여보 나좀 도와줘』를 인용하면

몇 킬로미터나 이어지는 둑길을 걸으면서 밤이 이슥하도록 함께 돌아다녔다. 늦여름 밤하늘의 은하수는 유난히도 아름다웠고(중략) 동화 속의 세계 같은 그 속을 거닐며 아내는 곧잘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66년 고시공부를 위해 흙으로 손수 지은 움막집 마옥당(磨玉堂)이 있었던 야산자락. 지금은 감나무밭으로 변하여 흔적을 찾을 길 없다.

노무현의 선산. 이곳에 있는 진영단감은 형 노건평씨와 함게 임업시험장에 몰래 들어가 뽑아온 것인데  감나무묘목을 쌌던 신문지에 난 사법고시 예비시험 공고를 보고 고시공부를 결심하게 된다.

한때 이회창의 부친 홍규의  묘로 몰려갔던 전국의 풍수들이 뒤늦게 이곳으로 달려와 무릎을 치며 명당을 외쳤다고 한다. 묘역은 특별히 명당으로 보이지 않으나, 이어진 봉화산 자락은 조선시대 지리지에 나올 정도로 풍수지리상의 특별하게 거론되는 성스런 장소이다.

낙동강변에서 바라본 봉화산. 진영평야 너머 멀리 낙타등처럼 보이는 오른쪽 봉우리가 봉화산이다.

봉하마을에서 10키로 쯤 떨어진 무척산, 해발 700미터로 인근에서 가장 높다. 광산노씨들이 인근의 『새실』로 이주해서 집성촌을 이루었으므로 『새실노씨』라고도 부른다. 마을 촌로들 중에는 노무현대통령이 무척산 남서쪽 기슭의 사촌마을에서 태어났는데  노무현이 강보에 싸인 아기일 때 큰아버지가 살던 봉하마을로 이주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무척산은 음기가 센 산이어서 인근 마을의 남자들이 기를 펴지 못한다고 한다. 노무현이 무척산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면 참여정부는 여성공화국이 될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늘 ‘무현이는 봉화산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 부정타니까 태몽을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너희는 그게 이뤄지는 걸 볼 거다’라고 말했다.』(작은누나 영옥)

『백말이 말뚝에 매어있는데 할아버지가 고삐를 주면서 타고 가라 했다. 엄청나게 큰 말이 발굽을 내딛는 소리가 우렁찼다.』 (형 건평씨의 노무현의 태몽에 대한 증언)

노무현은 1946년 음력 8월 6일, 진영읍으로부터 10리쯤 떨어진 봉하리에서 아버지 노판석(盧判石)씨와 어머니 이순례(李順禮)씨의 사이에 3남 2녀 중 3남으로 출생했다. 봉우리가 봉화대로 사용된 봉화산과 가야시대 왕자가 살았다는 자왕골을 등에 지고 있는 이 마을에서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노무현의 표현으로는 『까마귀가 와도 먹을 것이 없어 울고 돌아가는 마을』이라고 했지만 낙동강을 등지고 평야가 제법 넓다. 봉화산 정상에 오르면 낙동강이 휘감아도는 진영평야와 밀양의 수산제로 알려진 밀양평야가 있는 수산까지 한눈에 보인다.

필자가 생가를 방문하고 싶었던 이유는 봉화산 마루에 세워졌다는 『호미를 든 관음』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확인해 보니 1959년 피폐한 자유당정권때 농촌계몽운동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멘트 불상이었다.

고려시대의 마애불을 비롯하여 주민이 50여호도 살지 않는 깡촌의 외진 마을 치고는 기이한 볼거리가 많았다. 봉화산은 해발 140미터 남짓한 작은 야산에 지나지 않으나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진영평야와 밀양평야를 지키는 파수꾼처럼 우뚝 서 있는데 곳곳에 바위절벽이 있어 신령스런 기운이 산허리를 휘감고 있었다.

봉화산 정상에 서면 김해, 밀양, 수산, 진영, 창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끝없이 너른 진영평야와 밀양평야를 휘감아 도는 낙동강을 바라보노라면 호연지기가 절로 솟아남직 하다. 봉화산 정상에 봉화를 피워 올리면 낙동강 건너 아스라히 보이는 밀양에서 응답했을 것이다. 대통령노무현의 기개가 어디에서 얻어졌는지 알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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