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은 '서로 엮여 있다'는 이론이다. '엮여 있다'는 말은 동쪽에서 터진 사건의 원인은 서쪽에 있다는 말이다. 역설이다. 간단치 않다. 복잡하다. 최초의 원인제공자보다 그다음에 사건을 키운 쪽에 도리어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턱도 없이 사건의 원인제공자가 독박을 써야 한다는 터무니 없는 사상을 신봉하고 있다. 최초에 북침이냐 남침이냐 이것 하나만 따지고 그 이후의 사정은 논하지 말자는 식이다. 그러면 625 전쟁의 원인제공자는 4.3 학살을 일으킨 이승만이다. 남쪽에서 동족을 수만 명이나 죽이고 있는데 그걸 가만 보고 있으라는 말인가? 당나라 때부터 연개소문의 동족살해는 침략의 빌미가 되었다. 이렇게 되면 논의는 점점 수렁으로 빠지는 거다. 문명인이라면 이성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핑계만 있으면, 구실만 잡으면, 빌미만 잡으면, 이유만 만들면 된다는 식은 미개한 사상이다. 초등학교라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데 가해자가 열 번을 가해해도 증거는 없고 피해자가 한 번 반격하면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뀐다. 필자라면 자녀에게는 ‘맞고 다니냐? 당당하게 맞서라!’ 이렇게 가르친다. 당당하게 맞서다가 가해자가 된다. 망한다.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 주변에 세력이 따라붙는다. 국민들은 일단 부자나 권력자가 가해자를 비호한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그냥 개인 간의 분쟁인데 정치화시켜버린다. 이렇게 되면 해결은 불가능해져서 어떤 경우에도 피해는 복구되지 않고 상처만 남게 된다. 봉건 부족주의 생존본능이다. 교양있는 문명인이라면 비이성적인 행동을 삼가야 한다. 설사 상대가 빌미를 줘도, 구실이 있더라도, 이유가 있어도 전략적으로 인내한 증거를 보여야 한다. 필자는 ‘우리 애가 학교에서 당했어요.’ 이런 말 하는 부모를 신뢰하지 않는다. 제 3자인 부모가 개입한다는 사실 자체로 불합리한 경우다. 자녀의 문제는 일단 자녀 선에서 해결해야 한다. 어릴 때 왕따를 당했고 지금도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본인에게 문제가 있다. 어린애도 아니고 성인이면 선제대응해서 능동방어에 성공해야 한다. 그걸 못한다면 인격에 문제가 있다. 상대가 나를 공격하기 전에 내가 먼저 상대를 감화시켜야 한다. 밑바닥 생활을 많이 해 본 필자의 경험으로 말하면 어떤 악당도 눈빛으로 제압된다. 공격행동은 원시의 본능이므로 역으로 본능을 건드리면 제압된다. 양아치일수록 의젓한 사람은 못 건드린다. 양아치는 주로 양아치를 노린다. 양아치에게 공격을 당했다면 양아치가 당신을 양아치급으로 판단했다는 거다. 그렇게 보였다는 거다. 처신을 잘못했다는 거다. 왜 먼저 감화시키지 못하나? 왜 양아치로 하여금 당신을 추종하게 못하나? 보배드림 사건의 경우 약간의 접촉이든 심한 추행이든 성추행이 있었던 사실은 명백하고 그 자리가 무거운 식사자리여서 사실은 경망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주변인들에게 낙인찍힐 위험이 있으므로 세력을 동원하여 양쪽 식사부대가 한 판 붙은 경우인데 사건을 키운 쪽이 책임을 져야 한다. 남자가 자기 식사부대를 개입시켰다면 유죄가 맞다. 최초의 원인제공 하나만 보자고 말하는 자는 보통 사기를 치려는 거다. 두 번째 행동이 중요하다. 주변의 평판이나 위세나 체면이나 이런 걸 끌어들였다면 그 자체로 유죄다. 사건은 사건으로 봐야 한다. 외부를 끌어들이면 안 된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세력을 동원하여 애들 싸움을 어른 싸움으로 만들면 안 된다. 외부인의 개입은 그 자체로 나쁘다. 김부선과 이재명의 경우 개인 간의 사사로운 일인데 개인적으로 만나서 풀어야지 정치사건으로 만들어서 권력적 이득을 꾀한다면 그 자체로 유죄다. 보배드림 사건의 경우 당사자 해결의 원칙을 어기고 세력화의 방법으로 사건을 키운 남자의 유죄가 맞고 형량을 정하는 것은 판사의 재량권인데 운이 나쁜 경우이다. 좋은 판사를 만났어야지. 미국이라면 판사의 권위가 높아서 엉뚱한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많던데 대통령의 통치행위나 판사의 판결은 그 개별사안에 대한 행위가 아니라 국민을 계도하고 사회의 방향을 제시하는 통치행위이므로 일단 복종해야 한다. 호미로 막을 일을 불도저로도 못 막는 사태가 되기 전에 판사나 대통령은 호미로 막을 일을 삽으로 틀어막을 수 있다. 호미로 충분한데 왜 삽 들고 설치느냐고 항의하면 피곤한 거다. 그건 판사가 판단할 일이고 당신은 닥쳐야 한다. 명판결이란 대부분 호미로 막을 일을 불도저로 막아서 더 큰 사태를 차단하는 것이다. 미래를 바라보고 한 판단이라면 존중해야 한다. 큰 시야로 봐야 한다. 범위를 좁혀서 딱 이 사안 하나만 보자는 식은 비겁한 의도를 숨기는 거다.
내가 너 엉덩이를 꼬집어서 불쾌하다면 니도 내 엉덩이 한 번 꼬집고 끝내면 되잖아. 이런 식이라면 미개한 야만인의 부족주의 행동이다. 공적인 판단은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신의 관점으로 보면 어떤 판단이 옳은지 알아챌 수 있다. 사건 자체는 사죄하고 끝낼 일이나 사건을 키워서 위세를 동원하면 처단이 맞다.
이런 발언은 당연히 인기가 없다. 하룻밤 사이에 20만 명이 청와대에 청원을 넣었다면 그들에게 아부하는 글쓰기가 맞다. 그러나 필자는 엘리트, 지성인, 리더를 길러낸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대중에게 아부하는 글쓰기를 할 수 없다. 만약 당신이 이 글을 읽고 불쾌하다면 자신을 소인배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당신의 책임이다. POD 출판 신의 입장 .. 책 주문하기 POD출판이므로 링크된 사이트를 방문하여 직접 주문하셔야 합니다. |
어떻게든 맞대응을 해야지 그러면 얻어맞고 다니라는 말입니까?
가해자의 폭력에 맞서면 거꾸로 가해자로 몰리기 십상이지요.
사회에서는 진단서 끊어오는 사람이 무조건 이기는데
학교에서는 그런 식으로 할 수 없습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구조론을 공부할 생각이 없으면 썩 꺼지세요.
판사가 어쨌다면 그건 별도의 다른 사건이며
다른 사건을 끌고 들어오는 반칙을 감행하는 것은
이 사이트를 X으로 보는 건데 당연히 강퇴 사안입니다.
길거리에 나가서 지나가는 남자들에게 물어보면
다 당신이 옳고 내가 틀렸다고 말할 것입니다.
당신이 옳다면 배울 일이 없는데 이 사이트에 왜 오는 겁니까?
그래도 배울 사람을 위해 제발 꺼져주세요. 부탁입니다.
이렇게 하여 조용한 해결은 없게 되었습니다
"남자가 자기 식사부대를 개입시켰다면 유죄가 맞다."
저는 이 부분이 와닿습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외적인 위세를 가져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려면 자기 아빠가 그룹 회장이고, 매형이 부장검사이고, 동생이 경찰서장인걸 말해서는 안됩니다.
역사학자 전우용의 페이스북 펌글
1. 중세 유럽 어느 자치도시에서 여성 모욕죄 재판이 열렸습니다. 원고와 피고의 증언이 일관되게 엇갈렸고 뚜렷한 증거도 없었으나, 판사는 원고의 주장만 수용하고 피고에게는 ‘뉘우치지 않는 죄’까지 덧붙여 전례 없는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드디어 정의가 승리했다고 환호했고, 어떤 사람은 유죄라도 형이 너무 과하다고 봤으며, 어떤 사람은 2심까지 기다려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어떤 사람은 판결이 너무 부당하다고 분노했습니다. 판사를 응징하기 위해 시장에게 민원을 넣자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곧 시청 앞에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줄 서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줄 서서 항의하는데도 시장이 판사를 징계하지 않는 건 판사와 한통속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또 외쳤습니다. “우리와 함께 줄 서지 않고 구경만 하는 자들도 판사와 똑같은 자들이다.” 그러자 몇 사람이 줄 밖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에게 쌍욕을 퍼부었습니다. 줄 밖에 있다가 졸지에 봉변을 당한 사람들도 그에 맞섰고, 이윽고 돌이 날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싸움에 휘말리기 싫은 사람들은 분분히 자리를 피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법 사건은 이렇게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했고, 도시 주민들은 서로 자기들만이 정의롭다고 믿는 두 패로 확연히 분열했습니다. 이 도시의 자치권을 빼앗으려 노리던 왕은 이 상황을 무척 반겼습니다.
2. 중세 아시아 어느 시골에서 마을 재판이 열렸습니다. 여러 죄목으로 고발당한 피고를 두고 주민들의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일부는 죽도록 때린 뒤 즉시 추방해야 한다고 단정했습니다. 일부는 유죄의 심증은 있으나 마을에서 추방할 죄까지는 아니라고 봤습니다. 일부는 사실 관계가 확실해진 다음에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일부는 피고가 무죄라고 믿었습니다. 주민들이 두런두런 의견을 주고받는 중에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저놈을 당장 매질해서 쫓아내는 게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또 외쳤습니다. “저놈을 쫓아내는 데 주저하는 자들은 옛날부터 저놈과 한패였던 놈들이다. 저놈과 한패인 나쁜 놈들도 마을에서 다 쫓아내야 한다.” 몇 사람은 자기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이 때문에 재판은 뒷전으로 물러났고 마을 광장은 졸지에 싸움판이 돼버렸습니다. 한심한 작태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 일부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처음에 다른 사람들까지 죄인으로 몰았던 자들도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갔지만, 싸움은 밤새 계속됐습니다. 이 싸움으로 감정이 상한 사람들은 그 뒤로도 서로를 원수처럼 대했습니다. 오랫동안 농민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애쓰던 사람들이 ‘나쁜 놈’으로 지목받자, 지주는 무척 즐거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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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걸음 떨어져서 보거나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되돌아보면 한심한 일이지만, 당장 당시에는 거기에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 사람은 언제나 있습니다. 역사에서 ‘희극적 비극’이 반복되는 건, 옛날에도 자기와 똑같이 어리석은 짓을 한 인간이 수없이 많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https://www.facebook.com/wooyong.chun/posts/2188401314565479?__xts__
이 사태에 가담해 아부하는 소리를 듣기 좋아하는 이들이 보고 반성해야할 글이네요.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들이 적으로 설정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글이지 자기들은 문제 없다 느낄겁니다.
이 사이트에 오는 사람은
자신을 특별한 엘리트로 규정하고
일반 대중과는 차별화 하겠다는 의도를 가져야 합니다.
바보들과 똑같이 휩쓸려 다녀야만
마음이 편안하다는 소인배들은 이곳에 오면 안 됩니다.
천하인의 관점, 신의 눈높이를 배울 생각이 없다면 냉큼 꺼지세요.
자신이 판사라고 생각하고 판결을 통해서
이 웃기고 자빠진 대한민국에 한 방을 먹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과
잘난 판사 검사 변호사 사짜 붙은 대가리들 때문에 열등감 느끼고 피곤하다는 자들은
애초에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것이며
구조론은 약자의 시선이 아니라 강자의 시선을 요구하는 사이트입니다.
약자의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사람은 한경오를 알아보심이 적당하오.
'공동체가 어떻게 유지되고, 사회를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런 사건은 한낱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시군요. 하긴 실제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했는지는 그 배우들만이 알겠지요. 그 남자는 사회의 유지를 위해 소진되는 캐릭터에 불과, 판사는 이 드라마에서 일종의 악역을 수행한 것에 불과, 법원은 프로덕션에 불과. 청와대 청원 20만은 아침 드라마 보고 떠들어 대는 아주마들에 불과. 그러므로 드라마 배역 맡은 배우들 욕하는 시정잡배 무리에서 벗어나라는 말씀. 잘 알겠습니다.
군중들이 일제히 A 방향을 보고 있다면
지도자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B 방향을 봐야 합니다.
나는 지도자가 아닌데?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도자를 키우는 사이트에 오면 안 됩니다.
이런 것은 의도적으로 훈련해야 합니다.
이재명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하고
이상한 판사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계명구도의 고사로 유명한 맹상군입니다.
당연히 사마천은 그런 맹상군을 깠지요.
그러나 민주주의는 맹상군 시스템입니다.
내가 일찍이 설읍을 지난 적이 있는데 공자(孔子)의 고향인 노나라이나 맹자(孟子)의 고향인 추나라와는 달리 그 풍속이 문란했다. 설읍의 노인에게 물어보니 맹상군이 있을 당시 어진 이들뿐 아니라 간악한 자들도 몰려들었다 하니 가히 짐작할 만하다.[사마천의 사기]
그리스는 도편추방제를 사용해서
이상한 사람을 죄다 탄핵하여 국외로 추방시켰는데
그래서 소크라테스를 죽이고 망했습니다.
지금 도편추방을 열심히 떠드는 자가 누구입니까?
사회는 견제와 균형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가해자가 열 번을 가해해도 증거는 없고 피해자가 한 번 반격하면 피해자가 가해자가 바뀐다.]
=> '가해자로'가 맞는 것 같습니다.
[명판결이란 대부분 호미로 막을 일을 불도저로 막아서 더 큰 사태를 차단하는 것ㄴ이다. ]
=> 것이다.
[필자라면 ‘맞고 다니냐? 당당하게 맞서라!’ 이렇게 가르친다. 당당하게 맞서면 가해자가 된다. ...]
=> 이 부분이 조금 이해가 안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