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어떤 사실을 깨닫는 게 아니다. 언어로 가리켜 지목될 수 있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거나 '오온이 공함을 깨달았다'거나 '인생이 허무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거나 하는 건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말이다. 그것은 답을 찾은 것이 아니라 의혹을 얻은 것이며 이제 한 가지 의심을 일으킨 것이니 초발심이라 하겠다. 옛날에는 그 정도만으로도 깨달음으로 쳐줬다. 석가의 제자 500 비구가 모두 깨달았다는 말은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려 있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귀신에게 홀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 시대에는 자연환경이 무서웠다. 천재지변과 전쟁과 질병의 두려움을 이겨냈다면 그 정도로 충분했다. 죽음의 두려움만 극복한다 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요즘은 과학의 발달 덕분에 다들 두려움을 극복하고 있다. 하긴 요즘도 음모론이나 가짜뉴스 따위에 홀리는 자들이 있다. MSG니 사카린이니 안아키니 하는 것들에게 홀리는 바보들이 많다. 그게 왕년의 언어로 말하면 귀신에 홀리는 것이다. 음모론에 가짜뉴스만 극복해도 좀 아는 사람이라 하겠지만 이 정도는 똑똑한 애들은 초딩 3학년만 돼도 해낸다. 과학이라는 강적이 등장해서 만사휴의가 되었다. 아직도 점 보러 다니는 바보들이 간혹 있지만 말이다. 전통적인 깨달음은 용도폐기 되었다. 문제는 일부 상태가 안 좋은 형님들과 언니들이다. 이분들은 하나씩 자기 문제를 안고 있다. 성소수자거나 아스퍼거 장애로 대인관계가 어렵거나 성격문제로 겁이 많거나 사회생활이 안 되는 형님들이 주변에 있다. 이분들은 자기네가 사회의 평균 이하이므로 평균으로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취가 된다. 반도사라 불리는 무리가 있는데 지리산 주변에 잔뜩 포진해 있다고 한다. 수백 명이나 된다고. 버글버글 하다고. 깨닫는다는 것은 엘리트의 영역이며 평균 이상으로 올라가는 것인데 이 양반들은 평균 이하로 내려가 있으면서 평균을 회복하는 게 목표다. 그러므로 작은 성취에도 감격해 한다. 평소에 위축되어 있다가 갑자기 한 소식을 들었다면서 오만해져서 반말투로 덤빈다. 며칠 전에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한 사람을 강퇴시켰다. 그런게 위축되어 있는 본인에게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그걸 과시하면 안 된다. 술이나 처먹고 폐인처럼 살면서 뻔뻔해져서 민폐를 끼치면서 다 내려놓았노라고 주장한다. 유치찬란한 거다. 누가 물어봤냐고? 내려놓았든 들고 있든 그건 당신 사정이다. 왜 떠들어? 대인관계나 성격문제 따위 개인 사정을 가지고 깨달음이니 어떻다니 하고 떠들어대면 안 된다. 깨달음은 우주의 소식이어야 한다. 애초에 당신과는 관계없는 이야기다. 21세기에 천하를 고민하고 우주를 고민하지 않는 사사로운 소승적 깨달음은 안 쳐주는 거다. 마음의 평정을 찾고 삿된 것에 홀리지 않으며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정도는 정신과 의사의 상담만 받아도 해결된다. 진짜는 무엇인가? 깨달음은 어떤 사실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존재가, 자연이, 언어가, 인간의 뇌구조가 모두 깨달음 구조로 되어 있다는 거다. 그것은 인간의 언어로 가리켜 지목될 수 없으므로 깨달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형식과 내용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랑그 속에 빠롤이 있다. 전제 속에 진술이 있다. 맥락 속에 의미가 있다. 관점 속에 팩트가 있다. 사슬 속에 사물이 있다.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절차가 있다. 에너지의 유도 속에 에너지의 처리가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떤 말을 하면 그것은 틀린 말이다. 당신이 입을 떼기도 전에 이미 허튼소리다. 언어에 담을 수 없다. 게시판에서 발톱을 숨긴 엉터리 질문하다 짤린 사람 있다. 진술을 말하는 자는 전제를 속이려는 자다. 짤린다. 의미를 말하는 자는 맥락을 속이려는 자다. 짤린다. 팩트를 말하는 자는 관점을 속이려는 자다. 짤린다. 내용을 말하는 자는 형식을 속이려는 자다. 짤린다. 이 사슬구조를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세 치 혀를 놀려 수작 부리지는 말라는 거다. 세상은 마이너스다. 어떤 말을 하든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미 틀어져 있다. 그러므로 담론은 조건문과 반복문이 이중으로 전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이 허무하다느니 색즉시공이라느니 마음을 어떻게 한다느니 하는건 모두 진술이다. 진술이므로 모두 개소리다. 무엇을 깨닫는다고 하면 전제되는 무엇이 앞에 붙었으므로 그건 이미 개소리다. 이미 한정되었고 틀에 가두어졌고 형식이 박혔고 전제의 제한이 걸렸는데 무슨 깨달음이겠느냐 말이다. 결론은 '내가 깨닫는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깨달음은 우주의 문제이지 당신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깨달았다'는 식으로 진술될 수 없다. 깨달음이 우주의 작동원리로 존재하는 것이다. 깨달음의 배에 승선을 하든지 말든지 선택할 수 있다. 개인의 문제는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거나 선배의 조언을 듣거나 부인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거창하게 깨달음타령 필요 없다. 하여간 말을 안 듣는 놈들은 깨달을 자격이 없다. 깨달음은 존재 그 자체의 전략이다. 집단의 전략을 따르고 지휘관의 전술을 따라야 한다. 대승의 큰 배에 올라타야 한다. 큰길을 함께 가는 것이 깨달음이다. 자기소개 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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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구 - 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