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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케네디의 길을 갈것인가 닉슨의 길을 갈것인가?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매번 첫 번째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유명한 할머니기자가 있었다. 82세의 헬렌 토머스 UPI 통신기자는 케네디 대통령 당선자를 취재하면서 백악관 출입을 시작하여, 2000년 5월 은퇴하기까지 8명의 백악관 주인을 겪어온 미 언론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기자회견장의 맨 앞줄에 앉아 그녀가 첫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기자회견을 시작하고, 그녀가 『감사합니다, 대통령각하』라는 말을 해야만 기자회견이 마무리되는 것이 백악관의 관례였다. 이 할머니기자가 최근 조지 부시 대통령을 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았다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녀는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이후 만연한 공포와 '비애국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질문을 하는 데 대한 두려움 등 오로지 공포만을 이용해서 일어선 사람』이라고 혹평하고 또 케네디 대통령에 대해서는 『미국인이 더 높은 곳을 보도록 만든』 유일한 대통령이었다고 최고의 찬사를 보낸 반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두 갈래 길이 나타나면 항상 그른 길을 택하는』인물로 묘사했다.

은퇴한 할머니기자의 토로

조지 부시는 워낙에 부실한 인간이니 그렇다 치고, 케네디와 닉슨에 대한 평가도 음미해볼만 하다. 보통 이 분야의 전문가라면 케네디대통령은 과대평가된 인물로, 닉슨은 과소평가된 인물로 평가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1994년 사망이후 한동안 닉슨 재평가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나기도 했다.

닉슨이 저지른 잘못은 하나 뿐이다. 국민이 보는 앞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 도청은 부하들의 소행이고, 당시 행정부와 의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관행이었다. 미국인들은 먼저 자기자신의 치부에 경악했고, 그 모든 것을 닉슨 한사람에게 뒤집어 씌워 희생양으로 삼았다. 이런 식으로 개인이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악의 화신』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케네디와 닉슨은 무엇이 달랐을까? 케네디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까? 케네디에 대해서도 추문을 들추기로 한다면 마릴린 먼로와의 관계부터 시작해서 단행본 몇권 분량에 달하는 가십거리가 쏟아져 나올 수 있다. 그런데도 왜 대다수 미국인들은 케네디에게 관대하고 닉슨 한사람에게만 가혹한 것일까?

재클린 케네디여사가 심어준 환상

첫째는 그 시기 폭발적으로 보급된 텔레비젼의 영향이 컸다. 둘째는 재클린여사의 활약이었다. 케네디가 잘한 일은 텔레비젼으로 백악관의 모습을 공개한 것 하나 뿐이다. 텔레비젼이 없던 시절 미국인들은 도무지 백악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던 것이다.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본질적인 차이다. 닉슨의 문제는 그 개방되고 활기찬 백악관의 이미지를, 다시 비밀스런 음모의 산실로 되돌려놓은데 있다. 그것은 순전히 이미지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케네디의 이미지 조작은 얄팍한 통치술이다.

미국은 왕실이 없는 나라이다. 영국에서 여왕이 하는 역할을 재클린이 한 것이다. 왕실이 무슨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거 뿐이다. 그 가치를 긍정적인 방향에서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도 왕실이 없다. 즉 우리는 써먹을 수 있는 대단한 정치적 자산 하나를 대통령 잘못 만나서 한번도 써먹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대통령의 준왕실 역할은 프로야구단 100개팀과 맞먹는 가치가 있다.  

코르셋시대와 샤넬수트시대

1920년대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미국의 어떤 뚱뚱한 귀부인이 36도가 넘는 낮기온에 길에서 쓰러져 죽은 사건이 있었다. 그때 그녀가 입은 옷의 총 무게는 30키로그램을 넘었다 한다. 높은 하이힐에, 여러벌 껴입은 드레스에, 무거운 코르셋과 실크햇으로 중무장하고 한여름의 무더위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미련한 짓이 당연한 상식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양차 세계대전 때 여성들이 군수공장의 무기생산에 동원되면서 코르셋은 사라졌다. 이차대전 후 샤넬수트의 대유행으로 이어지면서 의상혁명이 이루어진 것이다. 재클린여사가 한 일이라곤 고상한 취향의 새로운 문화와 의상을 텔레비젼 시청자들 앞에 선보인 것이 전부이다.

재클린 시대 백악관은 높은 사람들이 어두운 얼굴로 시가를 피우며 국정을 논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가족들은 잔디밭에서 애견을 껴안고 뒹굴고, 실내에서는 세련된 음악이 흐르고, 곳곳에는 우아한 미술품이 걸려있는 등 백악관을 고급한 문화의 산실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의한 통치권 차원의 결단
 
김대중에게는 닉슨의 이미지가 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긴 김영삼 때도 그랬고, 노태우 전두환 때도 그랬는데,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달라진 것이라곤 청와대의 식기 밖에 없다는데, 그 잘못을 김대중 한사람에게 물을 수는 없다.

아니다. 보통 역사는 역대의 누적된 잘못을, 재수없게 지뢰를 밟은 한 사람에게 전부 뒤집어 씌운다. 관행이라 해서 용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면 역사의 응징을 당한다. 문제는 그러한 시대의 변화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다는 점이다.

두갈래 길이 나타나면 닉슨은 항상 그른 길로 갔다. 왜? 나는 이 할머니 여기자의 평가가 공정한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그는 정책이 아니라 백악관의 문화를 본 것이다. 월남전을 끝내고 중국과 수교한 닉슨의 결단 보다는 닉슨의 반문화적인 통치스타일을 본 것이다.

현대가 2000억원을 개성공단에 투자한 일은,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의한 통치권자의 결단』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 방법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국민이 모르게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닉슨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정권 들어 사건은 늘 주말 오후에 터지곤 했다. 다음날 신문이 발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연휴를 앞두고 터져서 국회의 공세를 피해가는 타이밍이 절묘하다. 이런 작은 잔머리 하나하나가 누적되어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것이다.

물론 이 사건에 박지원이 개입했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동안 한두번이 아니었지 않는가? 이런 박지원식 잔머리는 쓸수록 손해임을 왜 모를까? 결국은 언론을 다루는 방법이 문제다. 『두 갈래 길이 나타나면 그 앞에는 늘 언론이라는 사냥개가 지키고 있다. 그 언론이라는 사냥개를 피해보려다가 늘 그른 길로 가는 결과가 반복된 것이다.』

두 갈래의 갈림 길이 나오면 바른 길로 가라

케네디의 길을 가야한다. 그것은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문화는 의사소통구조와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국민과 의사소통하는 통로를 바꾼다는 것이고, 바뀌지 않은 쪽은 그 의사소통라인에서 배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언론을 다루는 방식의 문제이다.

닉슨과 김대중은 두 갈래 길이 나타나면 늘 그른 길로 갔다. 케네디는 반대였다. 그는 문화를 바꾸었다. 그 바꿔진 문화가 바로 언론이 필요로 하는 정보였다. 언론은 케네디에 의해 순한 양처럼 길들여졌다. 재클린은 날마다 화제거리를 생산해 냈고, 언론은 착한 강아지처럼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다.

음모가 따로있는 것이 아니다.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면 그것이 음모다. 혼자서 고독한 결단을 내리기 위해 아무도 개입하지 못하게 사전에 차단해 놓는 것이다. 이는 지도자가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식과 연결된다.

위대한 지도자는 스트레스를 잘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보통 지도자는 인의 장막을 치는 방법으로, 혹은 적절하게 환경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업무량을 미리 줄여놓는다. 지도자의 결단은 늘 ○× 둘 중 하나다. 성공확률은 50%다. 열번 판단했는데 열번 다 꽝이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전에 스트레스의 소지를 줄여놓는 규칙으로 하나로 보면 열번 다 일관된 규칙에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일관된 규칙은 보통 여우를 피하려다가 늑대를 만나는 일의 반복이다. 언론을 피하려다가 언론에 끌려다니기의 반복이다. 이 한가지만 확실히 깨우쳐도 성공한 대통령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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