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는 다음이다. 먼저 겉을 만나고 다음에 속을 만난다. 속은 마음이다. 마음은 전략이다. 전략은 차원이다. 차원의 높은 단계가 낮은 단계를 장악하고 조절하는 것이 권력이다. 권력을 쥔 자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대본대로 가야 한다. 권력은 조절한다. 속은 겉을 조절하고, 마음은 몸을 조절하고, 전략은 전술을 조절하고, 주인은 하인을 조절한다. 그 반대의 경우는 없다. 겉이 속을 칠 수 없고, 몸이 마음을 칠 수 없고, 전술이 전략을 칠 수 없고, 하인이 주인을 칠 수 없다. 하극상은 불가하다. 권력의 대전제는 핸들을 놓지 않는 것이다. 속은 겉을 버릴 수 없고, 마음은 몸을 버릴 수 없고, 전략은 전술을 버릴 수 없고, 주인은 하인을 버릴 수 없다. 권력을 가질수록 선택지는 좁아진다. 판도는 단순해진다. 명백한 운명에 지배된다. 대본을 놓을 수 없다. ### 존재가 별도로 성질을 가지는게 아니라 성질이 곧 존재임을 안다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열린다. 우리가 존재로 아는 것은 자연의 실재가 아니라 인간의 관측방식이다. 그것은 빛이 아니라 그림자다. 플라톤이 처음으로 그것을 꿰뚫어 보았지만 혼선을 유발했다.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은 다른 곳에 별도로 무엇이 있다는 생각이다. 천만에. 알맹이는 껍질 너머에 있다. 다른 곳에 있는게 아니라 바로 그곳에 있다. 진실이 거짓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실은 거짓 너머에 있다. 거짓을 초월해야 진실을 만날 수 있다. 그림자는 인간이 보는 것이고 빛은 빛 자신이 보는 것이다. 인간이 관측하는 존재는 거짓이다. 존재가 관측하는 존재가 진짜다. 진짜는 스스로 빛나는 자발성이 있다. 내부에 의사결정구조가 있다. 차원이 있고 전략이 있고 마음이 있다. 마음으로 봐야 보인다. ### 옛사람들도 어렴풋이 본 것은 있다. 물심양면이라 했다. 물과 심이 동전의 양면임을 알았다. 물物이 아니라 심心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다. 느낀 것이 있다. 문제는 이분법적 사고다. 심은 물 반대가 아니다. 심은 물과 물 사이다. 그들은 차원을 이해하지 못했다. 공空은 색色 반대가 아니다. 색과 색 사이가 공이다. 진보와 보수의 관계, 선과 악의 관계, 빛과 어둠의 관계가 그러하다. 진정한 진보는 보수를 반대하지 않고 초월한다. 선은 악을 초월하고 빛은 어둠을 초월한다. 더 높은 단계에 올라서서 장악하고 조절한다. 보수는 진보를 반대할 뿐 조절하지 못한다. 악은 선을 반대할 뿐 조절하지 못한다. 빛은 어둠을 조절하지만 어둠은 빛을 조절하지 못한다. 이들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주인과 손님은 평등하지 않다. 차원이 다르다. 주인은 더 높은 단계에서 손님을 조절한다. ### 빛은 스스로 빛나지만 그림자는 사람이 봐야 보인다. 선은 스스로 선하지만 악은 누군가를 만나야 악하다. 절대성은 스스로 존재하지만 상대성은 관측자에 의지하여 겨우 존재한다. 공유냐 사유냐다. 공유하는 것이 절대성이라면 사유하는 것이 상대성이다. 모든 존재는 무언가를 만난다. 내부에서 스스로 만나느냐 아니면 외부에서 타자와 만나느냐의 차이다. 모든 진실은 안에서 스스로 만나고 모든 거짓은 밖에서 타자를 만난다. 자기 자신과 만나는 것이 마음이듯이 존재가 자기 자신과 만나는 것이 차원이다. 스스로 만나면 조절할 수 있고 타자와 만나면 조절할 수 없다. 절대성이 상대성 반대는 아니고, 이차원이 일차원 반대는 아니고, 전략이 전술 반대는 아니다. 차원이 다르면 만나는 방식이 다르다. 주인은 스스로 불러서 만나고 손님은 누가 초대해야 만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