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성공한 대통령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과연 성공한 대통령인가? 당신의 자서전 ‘운명이다’에서는 ‘실패’를 언급하며 자책하셨지만 이는 당사자인 대통령 본인의 입장일 뿐이다. 그것도 퇴임한 2007년 기준일 뿐이다. 두 모습의 노무현이 있다. 지식인 노무현과 아웃사이더 노무현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실패를 자인함은 지식인 노무현의 관점이다. 그렇다. 2007년 퇴임무렵 노무현 대통령은 이 나라 지식인 집단의 지지를 획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실패를 말씀하시는 거다.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성을 이해해주는 양심적인 지식인이 이 나라에 열 명만 있었어도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당신의 입장일 뿐 유권자의 관점은 다르다. 2002년에 투표한 유권자는 ‘바보 노무현’에게 투표한 거지 ‘지식인 노무현’에게 투표한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 지식인 노무현은 절반에 불과하다. 아웃사이더 노무현의 모습이 우리의 진짜다. 우리가 노무현을 영웅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웃사이더의 대표자로 주류를 쳐서 성공사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며, 그러한 사실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이 있기 때문이고, 그 안에서 지켜가야할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의 바램을 기준으로 볼 때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의 기준으로는 충분히 성공하고도 남았다. 당선 자체가 성공이다. 아웃사이더로서 청와대까지 갔으면 많이 한 거다. 역사에 있어서는 기록자의 관점이 중요하다. 누가 역사를 기록하는가? 지식인이 역사를 기록한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할 가치가 있는 사실을 기록한다. 박정희나 이명박이 제법 도로도 닦고 유람선카지노용으로 운하 비슷한 것도 팠다고 하나 그딴걸로 역사가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역사기록자인 지식인 집단이 성공과 실패를 판정하는 키를 쥐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지식인 집단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지식인들의 배반이 당신께는 크나큰 고통이었던 것이다. 임기 5년간 지식인이 역사에 굵은 활자로 기록할 그 무엇을 남겼나 하고 자책하셨음이 틀림없다. 필자가 논하려는 바는 역사 자신의 관점이다. 대통령인 당사자 본인의 관점도 아니고, 필자와 같은 지지자의 관점도 아니고, 역사기록자인 지식인 집단의 관점도 아니고, 살아있는 역사 자신의 관점이다. 역사는 살아있다. 살아서 꿈틀대고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정하는 역사 자신에게 물어보라. 역사 본인은 무어라고 대답하겠는가? 역사는 입이 있고 말을 한다. 우리는 충분히 그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앞으로 역사가 실제로 어느 방향으로 전개해 나가느냐가 그 대답이다. 역사는 평가할 가치가 있는 것을 평가하고 기록할 가치가 있는 것을 기록한다. 무엇을 평가하고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그렇다면 ‘역사란 무엇인가’가 문제로 된다. 역사철학의 문제이다. 묻노니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라고 말한 사람은 ‘에드워드 카’다. 그건 그냥 그 양반의 아리송한 선문답일 뿐이다. 웃기셔! 참.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자빠졌나. 역사는 팩트의 무질서한 집합이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춘추필법을 제시한 공자의 입장이 밝혀져 있고, 또 이를 계승한 사마천의 준엄한 평론이 있다. 무엇인가? 역사 자신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계속성이다. 역사는 과거의 거울로 미래를 비추어 보는 것이며, 과거의 해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예측이 중요한 것이며, 우리가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를 밝히기 위해 우리가 이전에 어디에서 출발하여 왔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에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그 사실의 기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디로 가야하는지 그 비전의 제시가 중요하다. 결국 역사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하여 과거의 데이터를 수집해 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역사가 실제로 어느 방향으로 굴러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앞으로 역사가 퇴행만을 거듭한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반대로 역사가 진보로 가고 개혁으로 간다면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역사는 어디로 가는가? 그 답은 우리가 쥐고 있다. 우리가 앞으로 하기에 달려있다. 성공이나 실패를 논함은 결국 역사적 관점이어야 한다. 지식인이 역사를 기록함은 그냥 사실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집단지능을 형성할 목적인 것이며 인류 집단지능의 형성에 도움이 되는가로 판단하여 역사를 기록하여야 하는 것이다. 인류집단지능의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 진짜배기 성공이다. 한 마디로 인류의 아이큐를 끌어올렸느냐다. 그러기 위하여 좋은 성공모델을 만들었느냐다. 지식인 집단의 이해관계로 보면 2007년 노무현의 퇴임 모습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의 계속성 관점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노무현 대통령은 비주류가 주류를 치는 성공모델을 만들었다. 이건 박정희가 닦았다는 고속도로 백 개와도 바꾸지 않는 업적이다. 더 중요한 것은 세력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 세력이 노무현의 가치와 정신을 계승하여 역사의 계속성을 이어간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야 말로 공자가 춘추필법으로 떳떳하게 밝힌 바요 사마천이 사기로 평론한 살아있는 역사의 정신이다. 김영삼이 깎이는 것은 상도동의 몰락으로 그의 정치를 계승할 후계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가되는 것은 비록 동교동계가 몰락했다고는 하나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햇볕정책이 계승되었으며, 이명박에 의해 일시 좌절되었지만 결국 대한민국은 다시 햇볕정책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최후에 웃는 자가 웃는 것이며 그래서 역사의 평가라는 말이 나온 것이며,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앞으로가 어떻게 되느냐다. 노무현의 가치와 정신이 계승되느냐다. 다행히 지자체 선거에 이겨서 안희정, 이광재, 김두관이 부상했고 유시민이 버티고 있고 더욱 절대적 지지그룹인 네티즌 세력이 팽창하고 있으므로, 또 우리가 뜻을 모아 지성의 연대를 만들어가고 있으므로, 당신의 정치는 분명 계승될 것이며, 또 계승되어야만 노무현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 필자는 낙관해도 좋다고 말하는 것이다. 유비의 성공과 조조의 실패 조조만큼 평가절하된 인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유비만큼 평가절하된 인물도 없다. 연의 삼국지만 알던 필자가 정사 삼국지를 대강 훑어보고 내린 결론이 그러하다. 당시 유비는 가는 곳 마다 환영을 받았다. 도겸, 여포, 조조, 원소, 유표, 손권과 돌아가며 한번씩 손을 잡았다. 왜 다들 유비를 좋아하고 유비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을까? 많은 논자들은 유비의 교활한 이중행각에 속아넘어갔다고 말한다. 천만에. 첫째 유비에게 그만큼 명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용가치가 있으니까 다들 손을 잡으려고 한 것이다. 둘째 유비 자신이 섣불리 자립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비는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면서 그 지역과 연고를 맺어둔 것이다. 변두리에 자립하여 눌러앉을 기회가 있었지만 끝까지 황제가 있는 도성과 가까운 중앙을 맴돌았다. 지역구에 안주하지 않고 전국구로 진출한 것이다. 정치인도 이곳저곳으로 다니며 연고를 맺어두어야 표를 얻는다. 경상도나 전라도 한 구석에 눌러앉아 지역토호 노릇을 하며 다선의원으로 먹고 살 수 있겠지만 그래봤자 정치업자에 불과하다. 중앙으로 진출해야 대권을 바라볼 수 있다. 유비의 고난은 그의 커다란 야심에 의한 스스로의 선택이다. 그에게 병력이 적었던 것은 많은 병력을 거느리면 견제를 받아 먼저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삼국정립 전에 무수한 호걸들이 사라져 갔지만 그는 끝끝내 살아남았다. 그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유비를 깔보는 것은 연의가 소설의 재미를 추구하여 우스꽝스럽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관우도 연의에 의해 폄하된 인물이다. 이른바 일기토라 불리는 일대일 대결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 비슷한 것도 관우 외에 실행한 사람이 없다. 여포만 해도 수하에 장료와 고순을 비롯하여 한섬과 양봉 등 맹장을 다수 거느렸기 때문에 실력자로 인정된 것이지 일대일 대결을 한 바는 없다. 전부 지어낸 소설이다. 적진에 뛰어들어 장수의 목을 따오는 것은 관우나 하는 일이지 다른 장수들은 한 적이 없다. 중국인들의 관우숭배는 대단한 것이어서 곳곳에 관제묘라는 사당이 있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만화와 드라마에서 보는 단기돌파를 실제로 한 사람은 관우 외에 항우 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이며, 우리나라 역사에도 고려 때의 척준경과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외에는 그렇게 한 사람이 없다시피 하다. 척준경은 한국사상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인물인데 왜 드라마화 되지 않는지 궁금하다. 한국만화에 흔히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무인도에 가서 몇 년간 고생하고 오는 것이다. 만화가 아니라도 대다수 소설과 드라마 초반 도입부는 주인공의 개고생으로 점철된다. 동정과 연민을 불러 일으켜 관객의 지지를 끌어내는 기법이다. 그래서 유비 삼형제는 바보로 묘사된 것이다. 이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친근한 동네형 이미지로 인기를 얻는 바와 같다. 다들 영리한 인물이지만 TV에서는 어수룩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실제로 유비는 타고난 정치가였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실제로 그의 설계대로 되었다는 것이다. 삼국지를 검토해 보면 많은 전쟁이 유비를 끼고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구조론의 밸런스 원리를 이용했다. 강자와 약자가 대결하고 있으면 약자 편에 붙어서 강자와 맞서게 한다. 처음에는 한쪽이 강하고 다른쪽이 약해서 싸움이 일어나지 않지만 유비가 개입하면 팽팽해져서 약자도 한번 해볼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비는 삼국지 최고의 방화범이다. 그는 이곳저곳에 불을 지르고 다닌 것이다. 유비는 언론을 이용할 줄 알았다. 유비가 가는 곳마다 여론이 일어나므로 다들 그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며 특히 조조는 유비가 가는곳마다 공격했다. 제갈량은 대표적으로 과대평가된 인물이다. 유비는 제갈량 한 사람을 위해 삼고초려를 한 것이 아니라, 낙양이 불타고 도성에 식량공급이 끊기자 강남으로 대거 남하해온 지식인 집단이 양양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 중심인물을 제갈량으로 보고 그를 끌어들여 지식인 집단의 지지를 얻어낸 것이다. 실은 조조와 원소의 계속된 싸움에 출세길을 잃어 전쟁에 넌더리를 내던 지식인 집단이 전쟁을 멈추게 하기 위하여 천하삼분이라는 계책을 낸 것이며, 이는 제갈량의 묘수가 아니라 널리 알려진 지식인 집단의 공론이었다. 싸움을 멈추어야 무인의 시대가 물러가고 문인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며, 그래야만 자기네의 출세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결국 천하는 3분되고 전쟁은 교착에 빠졌으며 평화가 계속되어 지식인들의 뜻대로 된 것이다. 어쨌든 역사기록자인 유가집단은 조조를 매도하고 유비를 높였다. 유비에게 없는 정통성을 만들어 억지로 관을 씌워주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정통성은 조조에게 있을까 유비에게 있을까? 중요한 것은 조조의 정치가 계승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조의 위는 계승되지 못하고, 사마씨의 진도 계승되지 못하고, 남북조시대의 혼란으로 빠져버렸다. 만약 조조에 의해 천하가 통일되어 중앙집권 정치가 계속되었다면 아무도 조조의 정통성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후 혼란이 계속되어 왕조의 수명이 30년도 못가는 일이 비일비재 하게 되었고 왕조가 너무 많아서 이름을 외우기도 곤란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니 정통성을 논하는 자체가 허무하게 되었다. 무엇인가? 그래도 유림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조조는 천하를 통일하여 민생을 안정시켰지만 인구를 늘렸다는 사실 외에 결과가 없다. 공수래 공수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유가집단은 계속 살아남아 세력을 만들고 중국정신을 계속해 왔다. 선비들은 계속 남쪽으로 내려와서 남조문화를 꽃피우게 되었다. 그들이 끝까지 살아남았기 때문에 조조는 이기고도 진 셈으로 되고 유비는 지고도 이긴 셈으로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유비가 아니다. 유비를 떠받드는 세력의 의도이다. 그들은 지식인이며 그들이 인류의 집단지능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결국 그들에게 21세기라는 이 문명의 대주주로서의 발언권이 있는 것이다. 조조 역시 폄하되었다. 조조가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잘 돌아가는 머리 때문이 아니고, 많은 꾀 때문도 아니고, 조조그룹의 집단지능 덕분이었다. 꾀 많은 조조는 소설가에 의해 왜곡된 캐릭터다. 조조의 승리원인은 한고조 유방과 초패왕의 대결에서 유방이 승리한 원인과 같다. 유방은 처음 패현에서 거병할 때부터 자신과 함께 했던 소하와 조삼, 번쾌 등을 끝까지 챙겼다. 나팔수 주발, 옷장수 관영, 마부 하후영도 끝까지 그를 따랐다. 조조도 비슷했다. 조조를 따른 초기멤버들은 후한 대접을 받았다. 허저가 조조의 고향친구 허유를 죽였을 때도 조조는 허저를 벌하지 않았다. 장남인 조앙과 조카 조안민의 죽음은 모른체 하고 부하인 전위의 죽음은 애통해 했다. 조조의 뛰어난 무장들 중에 배척된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신하들과 거리가 멀어진 원소와 다른 것이다. 조조의 판단과 행동은 조조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를 따르던 부하들과의 집단지능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하후돈, 하후연을 비롯하여 - 하후씨와 조씨는 뿌리가 같다. - 같은 집안 출신의 일족과 성이 다른 부하들 사이에 절묘한 힘의 밸런스가 성립했기 때문이다. 반면 유비는 이렇다 할 유씨 친척 부하가 없었고 원소나 손권도 마찬가지였다. 밸런스가 깨지면 구조가 불안해지고 필연적으로 갈등이 일어난다.
결국 조조와 유비, 손권의 대결은 부하들과의 관계를 절묘하게 조정하여 밸런스를 이룬 조조가 집단지능의 힘으로 승리한 것이며, 이는 구조론의 질이 입자를 이기는 원리가 된다. 반면 유비는 유비삼형제의 결속력이 입자를 이루었을 뿐 질의 역할을 할 집단지능을 이루지 못한 채, 제갈량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역시 입자 역할을 한 제갈량과 역할이 겹쳤다. 관우의 죽음은 그러한 역할의 중복과 관계가 있다. 관우는 제갈량 밑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위로 올라설 수도 없는 난감한 위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가 높이 평가되는 것은 제갈량을 지식인 집단의 대표로 보기 때문이다. 즉 제갈량 한 사람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지식인 집단 전체의 집단지능이 제갈량을 고리로 유비진영에 들어간 것이다. 결국 조조는 그를 따르던 추종세력의 힘을 결집하여 강력한 집단지능을 이루었고 유비는 보다 폭넓은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느슨한 집단지능을 이룬 것이며, 유비의 집단지능이 더 높은 레벨이었으므로 단기적으로는 강력한 결집의 조조가 이겼지만 장기적으로는 유비가 더 역사의 입장에서 기록할 가치가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유비를 기록해야 집단지능이라는 역사의 흐름이 계승된다는 것을 역사기록자는 파악했던 것이며, 그것이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계속성이다. 지금 이명박그룹은 조중동을 위시하여 재벌과 기득권 세력의 지혜를 결집하여 강력한 집단지능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네티즌을 중심으로 느슨한 집단지능을 만들고 있다. 그들은 이익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고 우리는 의를 중심으로 느슨하게 모여 있다. 누가 이길 것인가? 승부는 세계사의 향방에 달려있다. 한국호가 어디로 가느냐이다. 어디서 혁신이 일어나고 어디서 정보화 신대륙이 개척되는가이다. 결국 머리 좋은 쪽이 이긴다. 답은 나와 있다. 역사는 변방에서 중심을 치는 부단한 도전이다. 구조원리상 우리가 이기도록 세팅되어 있다. 게는 껍질을 벗어면서 성장한다. 그들은 껍질이고 우리는 속살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기도록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무현은 다시 부활한다. 왜냐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시대를 앞질러가서 100년 앞의 미래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당신께서 먼저 선수를 쳤다. 미래에 이기게 되어 있는 쪽을 선택해버린 것이다. 예전에 여러번 했던 이야기가 있다. 알렉산더가 왜 역사상 최고의 영웅이냐고?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아랍의 도서관에 쳐들어가서 뺏어온 많은 책들을 펼쳐보니 많은 책들이 ‘위대한 알렉산드로스 대왕께서는..’.으로 서두를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암흑시대 게르만족은 글자가 뭔지도 몰랐다. 살라딘과의 대결로 유명한 사자왕 리처드조차도 문맹이었을 정도다. 그들은 생전 처음으로 책이라는 것을 구경했는데 그 책의 첫 페이지는 대개 알렉산더 대왕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일종의 각인효과다. 아기들은 처음 본 것을 따른다. 알렉산더 등장 이전의 그리스는 유권자 인구 일 만명 남짓한 도시국가들이 대부분이어서 이렇다 할 지식이라곤 없었다. 지식의 절대량이 많지 않아서 그냥 암기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알렉산더가 동서세계를 통합했기 때문에 갑자기 지식이 처치곤란으로 양적 팽창을 이루어서 어쩔수 없이 파피루스에 기록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알렉산더로부터 시작해서 알렉산더의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바로 그거다. 앞으로 많은 일들이 노무현의 이름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비주류의 포지션으로 출발하여 주류를 치는 성공모델을 제시했고, 그러한 전복은 한국 안에서 충분하지 않는 것이고 우리는 그 전복을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성공시켜야 하며, 21세기가 그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고 우리에게는 그것을 실행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에 일본은 무력의 힘으로 러시아를 쳐서 세계를 놀래켰다. 지금 우리는 집단지능의 힘으로 세계를 놀래킬 수 있다. 중국의 부상에 의해 그만한 에너지가 비축되어 있다. 오바마가 걸핏하면 한국을 들먹이는 것이 우연은 아니다. 돌고도는 역사의 순환패턴은 항상 이런식인 것을 그도 배워서 알기 때문이다. 역사는 언제라도 역사 자신의 맥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우리가 그 맥을 이어가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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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렬님께서도 언젠가....노무현 대통령 평전을 내셔도 좋을듯....^^
지난 시간을 되돌려보고, 지금을 생각하고, 또 앞을 바라 보았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더 깊은 외로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람은 깊게 파고 들어가서 얘기하다보면 서로가 비슷한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도...
정작 표층만을 얘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사람들의 진짜 마음을 못보게 되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한눈에 그 사람을 알아볼 정도의 안목도 없지만, 한눈에 알아볼 정도의 식견을 가진 사람도 드물기 때문이겠지요.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는 그분이 제시하는 비전을 그대로 받아들여...조금은 바르게 제대로 살아보자 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면,
현재는 그분은 안계시고 나름대로의 길을 찾아야 하는데...어쩐지 그분이 제시하는 길과 모두 만나게 되어 있다는 생각도 들어서...
앞으로의 방향은 그분이 제시한 그 길속에서 우리가 채워 넣어야 될 것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동안 역사를 타고 쭈욱 일관되게 흘러오는 그 에너지를 우리가 받아야 하고, 그 받을 그릇들이 제대로 모양을 갖춰야 하는 것이기에,
결국 우리가 가는 길이나 찾아내는 그 길도 하나로 쭈욱 관통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구요.
도도하게 흐르는 그 역사에 고여있는 에너지에 우리가 올라타는 것이겠지요.
그러고 보면 없던 것이 생긴 것이 아니라 흐르고 있는 에너지를 발견하는 것이 되겠지요.
노무현 대통령은 그것을 보았고, 그것이 보이니까 모두에게 같이 보자고 한 것이고 보면, 이제는 모두 그 흐름에 올라타고 같이 가야 하는 것이고 보면...비전이란 없는 것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흐르고 있는 그것에 새로움이란 살을 붙이고, 이름을 붙이고 함께가는 것인가 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미국의 힘에 의존하면 외교와 경제에 중차대한 영향을 줍니다.
전시작전권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무현의 꿈은 강대국의 힘은 인정하되 우리 스스로 우리를 지키고 중립외교를 통해 한반도의 중심국가로 우뚝 서는 것입니다.
동렬님 말씀처럼 지금 대한민국은 '노무현의 가치'에 대해 깨어가는 과정입니다. '돈'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 간다면 동북아 중심 국가로써 성장해 나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0년전에 우리는 벌써 아이폰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리끼리 서로 불합리한 싸움에 매몰되어 그것을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노무현'이라는 아이폰을 통해 네티즌들이 아이폰을 만들어 놓았음에도 활용하지 못한게 아쉽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아이폰의 핵심은 쌍방향 커뮤니티입니다. 혼자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능력에 맞게끔 대우해주는 구조 그리고 '소통'의 진정성을 묵과해 버린게 아쉬울 뿐입니다.
동렬님께서 보시기에도 '아이폰'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소통을 방향성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왜 실행하지 못하고 실패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