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주어 뒤에 동사가 붙는게 아니라, 언어 위에 언어가 건축된다. 그것은 평면의 실내장식이 아니라 입체의 공간건축이다. 문학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영화든 깨달음이든 공간 위에 건축되지 않은 것은 가짜다. 언어 위에 올라가지 않은 언어는 언어가 아니다. 중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풀려나가는 방향성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의 정석 61회] 언어는 동사가 모여서 명사가 된다. 모든 언어는 동사에서 출발한다. 움직이지 않아도 인간에게 보였으면 이미 동사다. 인간의 보는 행위가 동사이기 때문이다. 동사에 동사를 곱하면 명사가 된다. 보이는 행위의 동사와 그것을 지시하는 행위의 동사가 합쳐져서 명사가 된다. 그러므로 명사 역시 동사의 본질을 감추고 있다. 명사와 명사가 합쳐져서 주어가 되고, 주어와 주어가 합쳐져서 명제가 되고, 명제와 명제가 합쳐져서 담론이 된다. 계속 대칭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층위가 상승한다. 차원이 높아진다. 근원에 도달한다. 근원은 위치 에너지다. 위치에너지는 확산방향을 수렴방향으로 바꾼다. 민 위에 사가 있다. 사 위에 귀족 있고, 귀족 위에 왕 있다. 왕 위에는 다시 민이 있다. 그 민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다. 여기서 사건은 완결된다. 민은 확산방향이다. 수렴방향으로 바뀌면 민의 집단이다. 민의 집단에서 시작하여 민 개인으로 끝난다. 민에서 민으로 끝나니 만물은 순환한다. 민의 집단에서 민 개인으로 가니 일방향이다. 에너지로 보면 만물은 일직선으로 간다. 순환하지 않는다. 만물의 순환을 보고 그 순환 안에서 에너지의 일방향성을 보면 깨달음이다. 노자는 순환을 보았고 공자는 방향까지 보았다. 동사만 보고 명사를 못 보는 데서 실패가 있습니다. 동사에만 주의가 쏠리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상대방의 말에 대꾸하려는 의도가 앞서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의식하지 말고 자기 언어를 완성시켜야 합니다. 동사 앞에 명사를 세워야 합니다. 명사 앞에 주어를 세워야 합니다. 주어 앞에 전제를 세워 명제를 이루고, 명제 앞에 조건문을 세워 담론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추론입니다. 추론을 마친 다음에 비로소 말해야 합니다. |
[생각의 정석 61회] 소설을 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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