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퇴계가 문제인가? [지난번 글 ‘퇴계를 묻어야 나라가 산다’ 편과 이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에 의해 최소한의 통제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괴물이 달리 괴물이랴. 공(公)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사(私)가 괴물이다. 종교집단이든, 이념그룹이든, 조중동 패거리든, 뒷골목 양아치든 공동체의 룰에 의해 통제될 수 없을 때 괴물의 얼굴을 가지게 된다. 사(私)를 극복하고 공(公)의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인간 존재의 진면목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럴 필요조차가 없는 경우가 있다. 모든 것을 갖춘 사람, 그래서 완벽한 사람.. 그들은 공의 광장으로 나오지 않는다. 괴물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돈 잘 버는 좋은 남편과, 공부 잘 하는 좋은 자식들에, 좋은 직장과 높은 신분.. 타워팰리스라는 안전한 성을 쌓아놓고 그 안에 안주하는 강남 아줌마들처럼. 더 이상 아쉬울 것 없는, 그래서 오만해진.. 그들의 횡포를 막을 방법이 없다. 더 높은 가치를 바라보지 못할 때.. 바로 그 때가 그대가 죽은 때이다. ### 퇴계를 뿌리로 하는 영남 남인세력을 단순히 학문적, 이념적 유파로만 본다면 곤란하다. 그거 순진한 거다. 어린애도 아니고 말이다. 알거 다 알면서 왜 이러셔! 어쩔시구리! 그게 단순한 학문적 견해 차이로 보이나? 고조선이 망하자 지배집단이 남쪽으로 내려와 삼한을 이루었다. 이후 몰락한 가야계 왕족을 중심으로 삼한일통의 이념이 제시되었다. 왜 삼한일통인가? 본래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왕족은 신(神)이었다. 백제의 서울 웅진이 곰나루로 번역되지만 잘못이다. 곰(熊)이 아니다. 공주의 이름은 ‘금성(金城)’이다. 신라 서울도 ‘금성’이다. 부여 사비성, 곧 ‘소부리’가 경주의 ‘서벌’과 같듯이 이름이 같다는데 주목할 일이다. 여기서 금(金)은 일본 말 ‘가미’와 같은 신(神)의 의미다. 단군신화를 곰토템으로 해석함은 무지의 소치다. 백두산은 개마산(蓋馬山)이고 개마는 곰이고 곰은 신이다. 백두산은 신의 산이다. 무엇인가? 왕실은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덴노를 숭상한다는 일본의 신도를 연상할 수 있다. 그런데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등극시킨 연개소문의 쿠데타에 의해 신성한 왕실의 권위가 무너지자 말갈족이 이반하게 되고 이에 고구려가 무너졌다. 마찬가지로 성골의 대가 끊어져서 종교적 권위가 소멸하자 김춘추가 그 권력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삼한일통의 이념을 제시한 것이며, 여기에 새로 진골귀족으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토착세력에게 미움받은 가야계의 김유신 일당 역시 정치적 권위를 필요로 해서 삼한일통을 내세운 것이다. 정통성 없는 김춘추와 정통성 없는 김유신이 연합하여 새로운 정치적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외세를 끌어들인 거다. 토착세력이 몰락하고 외부와 끈을 댄 세력이 승리하는 법칙은 어디나 같다. 신라가 망하자 신라귀족은 고려귀족으로 편입되었다. 경순왕의 무덤이 경주가 아닌 개성 인근 한탄강변 호루고루 뒤에 있는데서 보듯이. 마침내 한탄강을 넘지 못하고 호로탄을 내려다보며 애절하게 그곳에 묻혀 있다. 몰락한 가야계와 근거없는 김춘추가 손잡고 삼한일통을 꾀하였듯이, 마찬가지로 몰락한 신라귀족 궁예와 근거없는 해상세력 왕건이 손잡고 철원에 둥지를 틀어 북진을 꾀하게 된다. 역사는 항상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고려가 망하자 고려귀족이 조선귀족으로 편입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순조롭지 못했다. 선비들이 두문동으로 숨어버린 것이다. 이성계는 수하를 풀어 72명의 선비를 학살했다. 훈구세력과 사림의 갈등은 여기서 발생했다. 고려시대의 숱한 정변은 경주와 연결되어 일어났다. 고려는 경주(동경)를 중요시하였고, 많은 쿠데타들이 경주에서 모의되어 작당하고 위로 치고올라가는 형세로 일어났다. 경주는 신라계 고려귀족의 정신적 구심점이었던 것이다. 김부식을 비롯한 유학자들이 경주세력이었던 점이 크다. 김부식이 발해사를 배제한 것도 그렇다. 동경파와 서경파의 대립이다. 묘청을 중심으로 한 서북세력과 대립하면서, 서경천도론 등으로 인하여 그들의 정신적 구심점인 동경에서 멀어지는데 따른 두려움이 반영된 거다. 고려귀족은 순조롭게 조선귀족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조선왕조는 왕씨를 말살하려고 했다. 고려시대의 숱한 정변때 그러했듯이 저항세력은 약속이나 한듯이 경주쪽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서울에 대한 미련이 없을 리 없다. 경주까지는 못가고 태백산 기슭 영주, 안동 일대에 자리잡았다. 지금은 소백산맥으로 이름이 붙었지만 당시는 태백산 자락으로 인식되었다. 소백산 기슭의 영주 부석사도 간판은 ‘태백산 부석사’로 되어 있다. 조선초의 숱한 정치적 갈등은 서울세력과 영남세력 사이에서 일어났다. 금성대군의 역모가 그러하다. 그 정서의 뿌리가 퇴계 문하의 영남 남인으로 이식되었다. 오죽하면 정조임금이 도산서원 앞에서 도산별시를 열었겠는가? 중앙에 문제가 생기면 일단 경주 쪽으로 튄다는 이심전심이 있다. 퇴계는 태백산 아래에 근거지를 마련함으로써 중앙과의 대결구도를 취한 것이다. 진부한 고려귀족의 패턴을 답습한 것이다. 이로서 조선사의 큰 틀거리가 마련되었다. 조선왕조사는 한 마디로 노론과 남인의 대결이며 노론은 조선을 개국한 서북세력이고, 남인은 고려귀족을 계승한 동경세력이다. 가야귀족≫신라왕족≫고려귀족으로 이어지는 면면한 흐름에 기대고 있다. 이러한 본질을 꿰뚫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영남 남인의 우월의식은 바로 거기에 있다. 지금은 매국 한나라떼의 경상도 우월주의로 변태하고 있다. 노론은 조선초의 개국공신 그룹과 일부 신흥사림의 결합이다. 이들은 서울세력이다. 남인은 고려귀족의 잔당이다. 이들 사이에는 절대로 넘어갈 수 없는 강이 있다. 우월의식이라는 강 말이다. 노론은 조선을 건국한 주체로서의 우월의식을 가졌고 남인 역시 고려귀족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군자당, 소인당 운운하는 유교이론과는 상관이 없다. 본질은 지역과 혈통이다. 중국의 주자학 역시 마찬가지다. 유가나 법가는 북쪽 도시에서 일어났고 도교는 남쪽 시골에서 일어났다. 여기에는 넘을 수 없는 정서의 벽이 있다. 만리장성보다 더 높은 심리의 벽이다. 주자의 심학은 공자의 유교와 완전히 다른 신유학이다. 거기에는 남쪽에서 수입된 불교와 남쪽에서 자라난 도교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남쪽의 우월주의로 무장하고 북쪽의 여진, 몽고족과 대결하고 있다. 주자학의 본질은 도교전통에 뿌리한 남쪽 중국인과 북쪽 금나라, 요나라와의 차별화다.(중국의 뿌리는 황하에 있으나 여러 전란을 거치며 엘리트들이 대거 남쪽으로 이주했다.) 중화와 만이를 구분하자는 것이다. 주자의 이기론은 공자의 가르침에 없던 거다. 그래서 주자도 한때는 이단 취급을 받았다. 퇴계의 차별적 이기론도 송나라 지식계급의 심리와 같은 것이다. 금나라가 일어나자 남송으로 쫓겨온 망국의 한과 마찬가지로 소백산 남쪽으로 쫓겨온 고려귀족의 한이 반영되어 있다. 여러 정변에 무식한 군인들이 득세하자 꼴을 못봐주겠다는 거다. 상종하지 않겠다는 거다. 돌아앉았다. 고려 왕씨는 해상에서 중국과 무역한 서북의 신흥세력이고 이성계 역시 함경도로 진출한 서북의 신흥세력이다. 이들이 개경과 서울을 근거로 일어나 신라귀족≫고려귀족 세력과 대결구도를 취한 것이다. 조선왕조를 개국한 신흥세력을 사림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남인의 입장이다. 우리는 흔히 보수적 훈구귀족과 개혁적 사림세력의 대결로 묘사하지만 이는 권력에서 배제된 남인의 저항적 입장일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신흥세력과 경상도로 도망간 고려귀족 잔당의 진부한 대결이다. 김시습이 왜 경주로 내려갔고 금성대군은 왜 순흥에서 모의하였는가? 그 지역이 일종의 정신적 해방구였던 것이다. ### 19세기 자본주의 초창기에 부르조아 계급 사이에서 갑자기 도덕붐이 일어난 데서 보듯이 동서고금의 지배집단은 지배의 근거를 만들기 위하여 위선적인 도덕으로 무장하는 경향이 있다. 차별화의 수단인 거다. 미국도 그렇다. 요즘은 ‘진보=히피’ 이렇게 되어 있다. 조중동 수구떼가 개혁세력을 바라보는 입장도 같다. 부르조아 계급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차별주의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조중동이 노무현그룹의 도덕적 우월성에 대해 극도의 분노를 표출하며 흠집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진보=히피’.. 이것이 남인이 노론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들은 일관되게 비타협적인 유교근본주의 노선을 고수했다. 일체의 평등주의와 사회적 신분이동을 반대한 것이다. 왜 노론은 1년상이고 남인은 3년상인가? ‘3년이 아니고 1년이라니 히피놈들이 아닌가’.. 이게 조중동 마인드다. 차별주의는 분명히 있다.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빼고 단순히 오바마와 매케인을 놓고 인기투표를 한다면 9 대 1로 오바마가 이겼을 것이다. 그럼에도 50대 50에 근접한 결과가 나온것은 백인들이 매케인에게 몰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생각이 있는 상층부 20프로를 제외하고 볼 때, 백인은 거의 전부 매케인에게 투표했다. 그들은 가치로 투표하지 않았다. 패거리로 투표했을 뿐이다. 백인우월주의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 우월주의는 어디가나 있다. 어떤 형태로든 우월주의가 없는 곳은 없다. 정면으로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월주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의 룰에 의해 통제되면 긍정적인 자부심이고 통제되지 않으면 괴물의 얼굴을 한 우월주의다. www.drkimz.com. ∑ |
공동체를 이끌어 한다는 선민?의식도 일부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