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부정적 사고를 못 한다. 투수는 '힘 빼고 던져라'고 배운다. 왕년의 배영수 선수는 말했다. '힘 빼고 던지는데 10년이 걸렸어요.' 초보 스키어는 나무를 피하라고 배운다. 기어코 나무에 박는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기어코 코끼리를 생각한다. 힘을 빼고 던지라고 하니까 힘을 빼기 위해 힘을 모은다. 간호사는 말한다. ‘근육에 힘을 빼세요.’ ‘힘 안 줬는데요?’ ‘힘줬잖아요. 보세요. 주사기 바늘이 안 들어가잖아요.’ 인간은 긍정적 사고를 못 한다. '밸런스의 결을 따라가라.'고 긍정어법으로 말해줘야 한다. 강정호 선수가 알려준 바와 같다. 하체에서 골반을 거쳐 상체로, 어깨로 순서대로 액션이 전달되어야 한다. 힘을 빼라는 말은 골반이 움직이기 전에 팔이 먼저 나가면 안 된다는 말이다. 보통은 한꺼번에 나간다. 힘을 주면 몸이 굳어서 인체 전체가 같이 움직인다. 왜 환자는 근육에 힘을 빼지 못할까? 긴장하기 때문이다. 긴장 풀고 딴생각을 하라고 긍정어법으로 말해야 한다. 의사는 똑똑한데 왜 긍정어법을 가르쳐주지 않나? 사실은 멍청하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스키 강습반 코치들이 아는 것을 프로야구 코치는 모른다.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긍정이든 부정이든 생각 자체를 못한다. 지구에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없다. 머리에 힘주다 우연히 생각이 떠오른 것은 가짜다. 뭔가 생각을 해낸 사람은 긍정어법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부정의 부정을 통해 결국 긍정에 도달한 것이다. 부정어법은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다. 상대가 막대기의 왼쪽 끝을 쥐면 나는 오른쪽 끝을 쥔다. 반대쪽을 쥐어야 지렛대가 된다. 반대쪽을 잡으려고 하므로 긍정어법을 구사하지 못한다. 막대기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특별히 훈련되어야 한다. 부정어법을 긍정어법으로 바꾸려면 궁극적으로 신 개념이 필요하다. 인간이 신을 부정할 수 없는 이유다. 인간은 추상적 사고에 약하다. 긍정은 추상을 통해서만 도달된다. 색은 부정이고 공은 긍정이다. 색은 눈에 보인다. 공은 고도의 추상을 통해서만 도달된다. 모든 추상의 궁극적 소실점이 신이다. 거기서 동력이 조달된다. 모든 의미의 근거다. 인간은 막연히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만 의미는 권력의 반대편에 있다. 껍질을 부정해야 알맹이를 찾는다. 권력을 부정해야 의미를 찾아내는 식이면 부정어법을 벗어날 수 없다. 권력을 긍정하면서 의미를 찾으려면 권력의 권력을 긍정해야 한다. 그것이 신이다. 자사는 성誠이라고 하고, 퇴계는 경敬이라고 하고, 왕양명은 심心이라고 했지만, 신神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권력의 권력을 부정어법이 아닌 긍정어법으로 말하고 싶었던 거다. 모세의 십계명은 부정어법이다. 부족민의 터부는 부정어법이다. 다들 무엇을 하지마라고 가르친다. 왜? 인간은 긍정어법을 구사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르기 때문이다. 내부 동력을 조절하는 능동적 사고가 아니라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수동적 사고다. 6살까지는 긍정한다. 7살만 되면 말대꾸를 시작한다. 부모가 되면 긍정어법으로 바꾼다. 제대로 긍정어법으로 바꾸기 어렵다. 한동훈의 부정어법이 국민에게 외면받는 이유다. 부모 포지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이 배운 젊은 스님이 산중의 노스님을 설득한다. 노스님은 외면한다. ‘쟤는 아냐.’ 쟤는 아니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그냥 아니라고 할 뿐 맞는건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배운게 없는 노스님은 긍정어법을 모르기 때문에 말하고 싶으나 말할 수 없다. 강아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견주에게 전달할 수가 없다. 젊은 스님은 산중의 토굴에서 생활하며 물정을 모르는 노스님이 꽉 막혀서 말이 안 통하는구만 하고 투덜댈 뿐 조금도 설득하지 못한다. '쟤는 아니'라는 말은 젊은 스님이 부정어법으로 말해서 대화가 안 된는 의미다. 부모가 자식을 돌볼 때는 긍정어법을 쓴다.
'넌 왜 화가 나 있냐?' 하고 부정어법을 쓰지 말고 '크리스마스 선물은 무엇을 줄까?' 하고 긍정어법으로 바꿔야 한다. 애를 좀 키워봐야 그런 것을 안다. 자기 안의 동력을 조절할 수 있을 때 긍정어법은 가능하다. 나무를 피하라를 피하라는 말은 이중부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