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노무현 인간 노무현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은 대한민국 안에 없다고 봐도 무방할 터이다. 왜냐하면 누구도 노무현이 경험한 것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무현은 특별한 사람이다. 노무현을 이해하려면 그의 특별함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노무현은 밑바닥 하층민 세계를 경험한 사람이다. 언덕아래로 지나가는 아줌마들 일행을 향해 고추 내놓고 시시덕거리며 오줌 내갈기던 막노동자 아저씨들 사이에 서 있어본 사람이다.(자서전 ‘여보 나좀 도와줘’) 한편으로는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이 배웠다는 똑똑한 사람들 사이에도 섞여본 사람이다. 밑바닥 세계의 갸륵한 본심과 지식인 세계의 냉혹함 그리고 비정함을 동시에 맛본 사람이다. 이 세계의 양 극단을 경험한 것이다. 가장 낮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계까지 단번에 가로지르기!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은 특별한 생각을 품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인 당신이라도 그렇다. 지구상의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혼자만 경험했다면 어떨까? 에베레스트 정상에 첫발을 내디딘 노르가이와 힐러리처럼, 그리고 인류 최초로 달을 밟았던 암스트롱과 올드린처럼!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이 있다. 맨 처음 서구를 방문했던 서유견문의 유길준, 미국 교민들을 보살펴야 했던 선각자 안창호처럼. 마치 종교의 지도자와 같은 특별한 소명의식을 가지게 된다. 무슨 일을 하든 민족 단위로 생각하고 인류 단위로 생각하게 된다. 신 앞에서 단독자로서의 양심을 생각하고 신의 완전성을 기준으로 사고하고 판단한다. 자신을 운명적인 존재로 여기게 된다. 사명을 받은 사람이다. 인간 노무현에게 그것은 무엇인가? '족장의식'이다. 벙어리 마을에 유일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과도한 책임감, 과도한 결벽증을 가지게 된다. 장애인들은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앞 못 보는 사람에게 뜨거운 물을 찬물이라고 말했다가는 어떻게 되지? 농담이라도 위험하다. 벙어리들은 의사소통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가벼이 거짓말을 섞지 않는다. 보통사람에게는 장난이지만 장애인에게는 목숨을 거는 일이 된다. 노무현의 밑바닥 경험은 장애인 세계의 체험과 같다. 밑바닥 사람들도 가슴 속에 한 가닥 뜨거움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용이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대부분은 어리석은 술주정으로 날려보낼 뿐이다. 그 밑바닥 세계의 뜨거운 본심을 들여다 본 사람이 있다면?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줄 사람을 만나면 쉽게 목숨을 거는 사람이 그들 밑바닥 세계의 사람들이다. 아무런 반대급부 요구하지 않고 말이다. 그들은 대개 타락해 있지만 진정한 리더를 만나면 무섭게 변한다. 그들의 무서운 변화과정을 속속들이 지켜본 사람이라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특별한 인격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족장의식이다. 과도한 책임감, 과도한 결벽증, 과도한 미안함을 지니게 된다. 약간의 의심하는 눈초리도 참지 못한다. 타인에게 조금만 피해를 끼쳐도 어쩔줄 몰라한다. 그런 세계가 있고 그런 사람이 있다. 머리가 좋은 사람, 가진 것 있는 사람, 지식계급의 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선의를 용이하게 증명할 수 있지만 밑바닥 사람은 그렇지 않다. 배를 가르는 방법 외에는 자신의 결벽을 증명할 수 없다. 그래서 결벽증. 밑바닥 세계의 결벽성이 큰 에너지가 된다는 사실을 포착한 사람이라면? 특별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물론 밑바닥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비굴하고 야비하며 천박하다. 그들은 쉽게 거짓말을 한다. 그들은 언제고 배반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도 한번 진짜를 만나면 완전히 변한다. 전혀 딴 사람이 된다. 목숨을 걸고 맹세를 하며 그 맹세를 끝까지 지킨다. 그들이 현재 위치한 낮은 자리가 있고 올라가고 싶은 높은 세계가 있다. 그 사이에 낙차가 그만큼 크다. 약간 올라가도 크게 얻는다. 그것이 민중의 에너지가 된다. 그 낙차만큼 열정을, 믿음을, 용기를 가지게 된다. 그 거대한 민중의 에너지를 다루는 방법을 알아버린 사람이라면? 특별한 계획을 품게 된다. 선지자와 같은 사명감을 가진다. 나는 노무현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왜? 필자 역시 그 세계를 얼마간 경험했기 때문이다. 83년 겨울부터 92년 봄까지 산에서, 들에서, 바다에서, 공장에서, 건설현장에서 무수한 사람을 만났다. 대부분은 아무 생각없는 하층민이었다. 범죄자도 있었고 주정뱅이도 많았다. 대개 형편없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들의 눈이 언제 무섭게 빛나는지를. 그들이 어떻게 사람을 감동시키는지를. 내가 새파란 스무살 애송이였을 때 나이 쉰살도 넘은 아저씨가 내 손을 잡고 울었다. 뜨거운 눈물이 손등에 떨어졌다. 그런 경험이 여러번이다. 할아버지 한 분은 형편이 여의치 않아 자식들 따라 파라과이로 이민을 떠나게 되었다. 떠나면서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 ‘내가 진작에 너를 만났더라면.’ 그 말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그들은 형편없는 하층민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역시 형편없는 뜨내기다. 서로 의심하고 비웃는다. 그럴수록 진실한 사람에 대한 갈구가 크다. 나는 그분들에게서 진정한 친절을 보았다. 그 모습들이 필자의 삶에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세상을 바꾸고야 말겠다는 심중의 결의! 그때 그 시절 정 많은 아저씨의 눈빛이 여전히 내 어깨를 내리누르고 있다. 나는 차마 그분들의 속마음을 배신할 수가 없다. 필자가 경험한 것을 노무현도 경험했으리라. 최하층 밑바닥 세계에서 최고층 지식인 세계까지 단숨에 관통해버린 사람이니까! 내가 무지, 비겁, 거짓말을 혐오하듯이 노무현도 그러할 것으로 여긴다. 내게 그 선한 아저씨의 눈빛에 보답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듯이 노무현에게도 그런 생각이 있었을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 이 나라 지식인 대다수는 노무현이 경험한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들은 노무현을 오해했다. 그들은 노무현을 타고난 승부사로 여긴다. 대단한 야심가로서 세상을 향해 날선 싸움을 벌인다고 여긴다. 천만에! 노무현은 한 번도 승부수를 띄운 적이 없다. 자신의 야심을 위해 무모한 도박을 한 것이 아니다. 예컨대 정몽준과의 파토난 단일화만 해도 그렇다. 거짓야합 할 수 없어서 하지 않았을 뿐이다. 단일화합의를 깨는 고수 노무현의 승부수에 하수 정몽준이 당해서.. 단일화 깨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 된 것이 아니다. 밑바닥세계를 경험한 사람은 원래 그렇다. 노무현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인생의 어느 한 지점! 운명의 한 지점이 있다. 여기서 밀리면 내 인생 끝까지 줄곧 밀린다는 생각. 그런거 있다. 열살 즈음 덩치 큰 동네 형들에게 모욕당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 거기서 내 인생의 대강의 얼개가 이루어졌다. 나는 아직도 타인에게 물건을 빌리지 못한다. 어렸을 때 가난했다. 연필 살 돈이 아쉬울 정도로. 지우개 빌리기 싫어서 잘못 쓴 글자 지우지 않았고 몽당연필이 부러지면 필기를 포기하기도 했다. 연필칼을 빌리지 못해서 연필심이 부러지면 연필 끝을 이로 물어뜯어서 쓰기는 늘 있는 일. 왜? 워낙 빌려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빌리기 시작하면 이것저것 다 빌려야 하는데 그 빌리기목록이 너무 많았다. 다 빌리지 못하니 아주 포기한 거다. 내가 입고 등교한 옷조차 급우의 것을 어머니가 빌어온 것이었으니. 한번 남에게 아쉬운소리 하면 일생동안 계속 비굴해질 것 같았다. 내 인생이 통째로 서글퍼질 것 같았다. 노무현 역시 다르지 않았으리라. 노무현은 어렸을 때부터 남의집 밥은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노무현 인생의 대략적인 아우트라인 그려진 거다. 크게 윤곽이 잡힌 거다. 그래서 정치자금 받을줄 몰랐다. 이권거래는 못하고 대신 빚보증을 서달라는대로 서주었더니 갑자기 장수천 생기고 하로동선 생겼다. 노무현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운명. 님의 유서에 씌어진 그 ‘운명’ 말이다. 그렇다! 누구나 다 하는 것을 일생동안 하지 않기로 결정해 버리면 인생이 담백해진다. 하얗게 표백된다. 무엇인가? 노무현은 초등학교 때 급우의 가방을 칼로 그은 사건 이후 줄곧 그 부엉이 바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퇴로는 원래 없었다. 보통사람, 보통정치인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노무현을 평가해서 안 된다.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식인 노무현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 밑바닥 사람들은 조금씩 결함있는 사람이다. 비유하면 장애인과 같다. 벙어리 마을에서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셈이다. 제목과 작가를 잊어서 유감이지만 20여년 전에 그러한 내용의 중편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법정의 증언대에서 자신의 심장에 장미꽃 한 송이를 꽂으려 한 사람. 벙어리 마을에서 유일하게 말할 수 있었던 사람! 마을 사람 모두가 의지했던 사람. 모두가 믿고 따랐던 사람. 성직자와 같은 사람. 보통세계와 장애를 가진 특별한 세계 사이에서 중개자로 존재했던 사람! 그렇다. 노무현은 그냥 정치인이 아니라 밑바닥 세계의 대표자로 더 높은 세계에 파견된 것이다. 에베레스트의 신을 면회하기 위해 인류의 대표로 파견된 텐징 노르가이처럼. 지구인의 대표로 달에 보내진 닐 암스트롱처럼. 그래서 퇴임후에도 자신에게 반말하는 고향형님은 여전히 동네형으로 모셨고 친구 강금원과는 여전히 친구로 지냈다. 뿌리를 잊지 못한 것이다. 신분이 높아졌음에도 여전히 운동할 때의 386들과 어울렸다. 장애인마을의 리더는 말로 통제하지 않는다. 어차피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다루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그것은 목숨을 내던지는 것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여러번 사회를 향해 구난신호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신호는 지식계급 사이에서 묵살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여러번 인터뷰한 오연호만 해도 그러한 신호를 감지하지 못했다. 노무현은 오연호를 언론지면을 소유한 권력자로 보고 몸을 낮추어 읍소했지만 오연호는 그러한 기미를 포착하지 못했다. 오연호는 노무현을 절대권력을 가진 통치자로 생각하고 자신을 상대적인 약자로 규정하였다. 권력자의 기세에 눌리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디펜스에 열중했다. 그런 식이다. 노무현의 어휘선택 하나하나에 숨은 메시지가 있었다. 지식인 집단을 향해 여러번 손길을 내밀었으나 누구도 그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오연호가 대통령을 권력자가 아닌, 하층민세계의 대표자로서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지식인 집단에 파견된 사람임을 인식했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지식세계의 공론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노무현의 본심을 이해했다면. 백낙청, 한완상, 손석희, 박원순, 최장집 이런 사람들이 노무현이 하고싶은 말을 대변해 주었더라면. 그렇다. 노무현은 망국의 왕자가 선진강국에 잠입하여 그 나라의 언론과 유력자에게 하소연하려 했던 입장이었다. 헤이그에 파견된 이준열사처럼 말이다. 이준열사는 분사했다. 슬픔이 독이 되어 죽었다. 하소연 할 곳 찾지 못해서. 소통은 불통이었다. 가엾은 조선백성은 늑대같고 범같은 서구열강을 모르고 짝사랑했던 것이다. 장애인 마을에서는 말로 떠들지 않는다.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니 바로 행동 들어간다. 장님이 모르고 뜨거운 물을 만지려 한다면 바로 몸을 날린다. 그것이 체질화 되어 있다. 위기는 언제라도 찾아온다. 응급실 의사처럼 24시간 긴장상태. 노무현은 검찰의 조사를 당하여 사회를 향해 구난신호를 보낸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이미 미래를 예감하고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여기가 응급실이라는 사실을 알리려 했던 것이다. 환자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해서는 통하지 않고 바로 달려들어야 한다고 일깨우려 했던 것이다. 말로 가르쳐서는 안 되고 행동으로 실천해 보여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봉하마을로 내려갔고 너무 서둘렀다.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조금 늦추기를 희망했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너무 떠들썩하게 진행되었다. 너무 크게 진행되었다. 촛불시위는 너무 일찍 터져나왔다. 노무현의 인기는 너무 빠르게 치솟았다. 봉하마을은 방문자들로 미어터졌고 전직대통령의 인기가 현직대통령을 능가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인터넷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다. 사실상 네티즌의 심리로는 대선불복 상태였다. 상황은 꼬여버렸다. 모든 것을 조금만 느리게 진행했다면. 좀 천천히 내려가고, 좀 천천히 사저를 건축하고, 좀 천천히 오리를 키우웠더라면. 이명박 임기 좀 지나서 촛불시위가 터져나왔다면 달라졌을 터인데.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정국이 요동쳤다. 촛불은 거세게 타올랐고 이명박은 집권허니문을 가져보지도 못했다. 그들은 모든 재난이 노무현의 배후조종 때문이라고 여겼다. 바로 파국으로 치달았다. 상황은 엄중해졌고 다들 노무현의 존재를 계륵으로 여겼다. 왜? 그 순간 노무현의 죽음은 모두에 이익이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죽으면 이명박도 잠자리가 편치는 않을건데.’ 여러 사람들의 희망이 모여서 노무현을 죽였다. 이 표현 오해말기 바란다. 님의 죽음을 바란 사람 없겠지만 님은 자신의 존재가 모두의 짐이라 여겼던 거다. 노무현이 떠나자 사람들은 곧 원기를 회복하고 대오를 정비하며 목청도 높게 대여공세에 나섰다. 자신이 해야할 일을 잘 알고 있다는듯이. 기다렸다는듯이. 울어야 할 사람은 준비한 울음을 터뜨렸다. 글 써야 할 사람은 준비된 명문을 발표하였다. 냉소할 사람은 준비된 냉소를 날려보냈고, 망언할 사람은 준비된 망언을 때맞추어 절묘하게 터뜨렸고, 탄압할 사람은 준비된 폭력을 휘둘렀다.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듯이. 다 대비하고 있었다는듯이. 세상이 다 그렇고 그런게 아니냐는 듯이. 인형극의 꼭두각시처럼 정해진 역할을 잘도 해내는 것이었다. 일터지기 전에 알아채지는 못하고 말이다. 슬프다! 꿈 속에서 봉화산 사자바위 위에 선 님을 여러번 뵈었지만 나 역시 어쩌지 못했다. 원통하다. 오백만 조문인파 그 긴 행렬을, 그 뜨거운 눈물을 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은데 몸버린 당신께서는 보지 못한다. 당신께서 보지 못하니 앞으로 탄생할 제 2의 노무현들에게 미리 보여줄 수 밖에. 보거라! 역사상의 그 많은 영웅들의 죽음이 그러했듯이 이 나라에도 진정한 사람 하나는 있었고 사람 사는 역사는 원래 이러하다고. 노무현은 특별한 사람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밑바닥경험을 해보면 알게 된다. 비열하고 거친 모습도 보게 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또다른 논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영웅은 밑바닥에서 나온다. 왜? 전체과정을 알기 때문이다. 말로 이기고 논리로 이겨서는 소용없고 삶으로 이겨보여야 대중이 따른다는 사실을 안다. 노무현은 밑바닥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고 그것이 님의 정치인생을 결정지었다. 상민계급출신 백범이 지체높은 양반출신으로만 짜여진 임시정부에서 문지기 역할을 자처한데서 보듯이 상류계급과 문화충돌 일으키는 밑바닥 출신은 목표를 향하여 바로가서 안 되고 한바퀴 돌아서 가야 한다. 서울을 노리면 먼저 부산을 찍고와야 한다. 내가 원해서 좋은 자리 가서는 안 되고 남들이 밀어올려주어서 등떠밀려 가야한다. 혼자 가서 안 되고 대중과 함께 가야 한다. 그래야 산다. 그 이치를 아는 것이다. 나는 대통령께서 당선되기 이전에 이미 부엉이 바위 위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 유서의 ‘오래된 생각이다’는 표현에서 그 오래가 1년이나 2년은 아니다. 10년이나 20년은 아니다. 당선직후 ‘1년 안에 청와대에서 죽어나올수도 있다’고 측근에게 하신 말씀이 결코 예사말은 아니다. 예감하고 있었다. 님은 승부수를 던진 적이 없다. 처음부터 벼랑 끝에 서 있었고 거기서 벗어난 적이 없다. 애초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야하든가 치고나가든가. 최저 15프로 지지율에 정몽준 30퍼센트를 더했더니 5프로가 더 묻어와서 과반은 넘겼다. 그러나 당선직후에 지지세력 절반이 날아갔다. 정확히 말하면 당선 이전이다. 필자가 대통령 공식사이트 노하우 네티즌논객을 했을 때다. 백원우의원이 주선했던 논객모임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모인 논객들 중에 당선을 확신하는 자는 많지 않았다. 필자는 화가나서 ‘100만원 걸고 내기하자’고 소리를 질렀다. 논객들 사이에 사나운 공기가 감돌았고 어떤 자는 트집을 잡아 내게 주먹을 들어보이기까지 했다. 그 자들은 당선직후의 모임에서 웃으면서 말했다. “아시죠! 자 우리는 갑니다.” 그 더러운 썩소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들 중 일부는 취임하고 한 달이 되기 전에 이미 가장 악랄한 노무현 비판자가 되어 있었다. 정권출범 직후 광화문 근처 중국음식점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나는 말했다. 오늘 모임이 ‘최후의 만찬’이라고. 나의 예견이 맞았다. 다음 모임에는 일곱명 정도 나왔고 결국 모임은 해체되었다고 들었다. 청와대 비서가 밥사준다는데도 다들 거부했던 것이다. 님의 죽음은 그때 이미 예고되었다. 당선 자체가 죄였다. 모든 잘못은 노무현의 당선 때문에 일어났다. 그들 지식인의 익숙한 포지셔닝 게임 룰로는 당선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 당선되었던 것이다. 노무현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러한 내막을 모를 리 없다. 당신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람을 모았다. 그러나 다들 노무현을 찌를 한 방을 숨기고 찾아왔다. 청와대수석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시민단체 수장들이 청와대 찾아와서 대통령 앞에서는 묵묵히 듣고 있다가. 시민단체로 돌아가서는 다들 허풍을 떤다. 대통령 앞에서는 말 한마디 못해놓고 시민단체 사람들 앞에서는 보란 듯이 허풍을 친다. “내가 말야! 이보시오 노무현 대통령! 정치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하고 호통을 쳤지. 푸하하.” 지식인집단은 전후사정을 헤아려서 노무현을 도와야 했다. 앞못보는 사람이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려고 한다면 바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한가하게 말했다. “이보시오. 당신 그러다가 후회할거요.” 노무현식 정치는 노무현 본인이 고안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강요한 것이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상황에서 발버둥이나 쳐보고 죽자는 것이 노무현식 대응이었다. 민심이 그러한 사정을 포착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왜 노무현의 지지율이 롤러코스터를 탔는가? 민중들은 본능적으로 그러한 것을 안다. 지식인은 모르는데 민초는 안다. 말 안해도 안다. 이심전심 안다. 벙어리 마을에서 유일하게 말하는 사람이 가진 원칙을 안다. 그래서 노무현의 인기는 지식인집단이 우려할 정도로 과도하게 올라갔다. 지식인집단은 노무현이 우매한 민중을 광기로 몰아간다고 믿었다. 그리고 견제 들어갔다. 필요이상으로 노무현을 공격했다. 왜? 대화가 안되니까. 지식인집단 특유의 짜고치는 게임의 법칙을 노무현이 따르지 않으니까. 계속 엇박자가 일어나니까. 서로간에 이렇게 안 통한다면 누가 누구에게 맞춰주어야 하겠는가? 보통사람의 의식을 규율하는 논리가 있다. 그것은 ‘네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한다’는 상대성 원칙이다. 상대방의 행동을 보아가면서 자신의 대응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좋게 나오면 나도 좋게 나오고. 상대가 나쁘게 나오면 나도 강하게 맞서고. 그러나 벙어리마을에서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르다. 절대성원칙을 가진다. ‘상대방이 어떻게 하든 나는 이렇게 한다’는 규칙을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그래야 마을이 돌아가고 문제가 해결된다. 상대방이 좋게 나오면 나 역시 좋게 대하고, 만약 상대방이 나쁘게 나오면 저 사람은 더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내가 더욱 성의를 다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나는 일관된 행동을 보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벙어리 마을은 바로 붕괴되고 만다. 이는 내가 밑바닥 세계를 경험하고 터득한 것이다. 나는 노무현 역시 그 이치를 아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보통사람들과 다른 규칙을 가진 다른 사람이며 이 사회의 지식인집단이 그 다름을 알아채지 못한데 이 슬픔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보배가 많지만 사람만큼 큰 보배가 없다. 보통사람은 흔하다. 노무현 같은 특별한 체험을 한 사람은 희귀하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서 그런 사람 더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밑바닥에서 최고의 세계까지 관통한 사람 말이다. 다들 알아보는데 보배를 알아보야 할 감정사들이, 지식인들이 알아보지 못했다. 노무현은 뜻을 품었는데 그 뜻을 민중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할 지식인들이 그 뜻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래서 당신은 몸을 던졌다. - 님의 49재에 이 글을 바친다.- ∑ |
PS.. 내용 일부가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 있어 몇 자를 고쳤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당선 이전이다. 필자가 대통령 공식사이트 노하우 네티즌논객을 했을 때다. 백원우의원이 주선했던 논객모임이 있었는데 30여명 논객 중에 당선을 믿는 자는 거의 없었다.
필자는 화가나서 ‘100만원 걸고 내기하자’고 소리를 질렀다. 논객들 사이에 사나운 공기가 감돌았고 어떤 자는 트집을 잡아 내게 주먹을 들어보이기까지 했다. 그들은 당선직후의 모임에서 웃으면서 말했다.
“아시죠! 자 우리는 갑니다.”
그 더러운 썩소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들은 취임하고 한 달이 되기 전에 이미 가장 악랄한 노무현 비판자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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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선 이전부터 김동렬님의 글을 읽으며 많은 것을 공부했고 공감했던 사람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논객모임에 저도 있었고요. 할 사람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첫번째여서였는지 알 수 없으나 제가 당시 사이버논객 대표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었지 싶습니다. 하지만 김동렬님이 사실과 너무 다른 이야기들을 하니 깜짝 놀라게 되는군요.
사실은 30여명의 논객도 아니고, 약 10-15명 정도 되었을 겁니다. 대부분 그 정도의 수가 모였고 많이 모이면 20명 남짓이 모였었죠. 그 자리에 있던 논객들중 당선을 믿는 자는 거의 없었다고 했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논객들은 노무현의 당선을 강하게 믿고 있었어요. 당시 논객들이 썼던 글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 논객들이 노무현의 당선을 의심했다면 어떻게 그런 글들을 쓸수가 있었겠습니까? 당시 글들은 이곳( http://knowhow.pa.go.kr/webzine/column/ulist.asp )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당시 사이버팀장이었던 백원우 현 의원이 가끔 노무현 당선에 대해서 회의적인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마다 대부분의 논객들은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노무현 반드시 됩니다' 라고 이야기했었지요. 논객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오히려 백원우씨가 몸둘바를 몰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 합니다. 저는 백원우씨가 그렇게 이야기했던 이유도 논객들에게 분발을 이끌어내기 위한 제스쳐였다고 알고 있어요. 당시 어디서 그런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장소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이야기했던 사람들 중 하나였고요.
그리고 논객들이 마지막에 그렇게 떠났던 것은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 되었으니 더이상 할 일도 없어졌고 괜히 어정쩡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것도 뭐해서 스스로들 흩어졌던 겁니다. 여의도 캠프 근처 호프집에서 있었던 마지막 모임을 기억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그들이 취임하고 한 달이 되기 전에 이미 가장 악랄한 노무현 비판자가 되어 있었다고 했는데 그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악랄한 비판자가 된 사람도 있고, 비판적 지지를 한 사람도 있고, 계속해서 변함없이 지지를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김동렬님이 지금까지 쓴 글을 대부분 읽었는데, 당시 함께했던 사이버논객들에 대해서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면서까지 폄훼하는 글을 몇번 본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그냥 지나갔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지금까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이렇게 한마디 하는 겁니다.
당시 (사이버)논객들은 이름도 빛도 없이 시대정신에 헌신했던 사람들입니다. 그 후의 행보들은 각자가 알아서 했던 것이고요. 사실과 다른 이야기로 그들을 폄훼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당시의 그 사람들은 말이지요.
기억이 잘 안나서 그렇다면 기억을 되살려 주시고, 당시 상황을 잘못 알고 있다면 앞으로는 당시 이야기는 하지 말것을 권하고 싶군요.
마지막으로, 요즘 김동렬님의 글이 읽기에 점점 불편해지는 것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랐었는데 오늘 글을 읽고나니 비로소 그 이유의 일단을 알수 있을거 같습니다. 혹시 자신이 어느순간 일정부분 오만해진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돌아보는 일은 언제라도 필요한 거라는 말씀만 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 있어서 몇 자를 고쳤습니다.
제가 '악랄한 비판자'라고 표현한 것은
내게 주먹을 들어보인 논객 일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대다수가 돌아서서 비판자가 되었습니다.
'비판적 지지'라는 말이 왜 나옵니까?
그게 노무현을 가르치겠다는거 아닙니까?
원래 지지자 아니면서 숨어들어온 간첩들이야 그렇다치고
비판적 지지 운운 하는 그런 자들이야 더 흉악하지요.
그게 말이나 됩니까?
몇이 남았습니까?
서프라이즈는 저와 서영석만 남았지요.
노하우 논객 절대다수는 변절했습니다.
물론 변절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뒤늦게 정동영, 문국현 패거리에 가담한 자도 많고.
제가 오죽하면 백만원 내기를 언급했고 오죽하면 최후의 만찬이라고 말했겠습니까?
모임이 깨진 진짜 이유는 다들 내부의 적과 얼굴 마주치기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왜? 욱하는 성질에 주먹 날아갈까봐.
아니라고 말할 자 누구 있나요?
그 변절자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죽인 겁니다.
님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그룹에 속하기를 바랍니다.
백만원 내기 이야기할 때 님은 그 모임에서 웃었는지 몰라도 저는 속으로 울었습니다.
저는 그 인간들 이중플레이 하는 모습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충격받아서
최후의 만찬 이후로는 사람들 많은 데는 피하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변희재들 변절하는 모습까지 보고 구토에 환멸.
이후로는 논객모임이라는 모임에는 아주 안 가게 되었습니다.
님은 이미 떠났는데
이미 하늘은 무너졌고 땅은 꺼졌고 당신들의 지구는 잊혀진 별이 되었는데
내가 오만해졌고 어떻고 시덥잖은 소리 하면 뭐합니까?
노무현을 죽인 그 자들이 맏상주 자처하는 그 역겨운 모습이 사람 두번 죽입니다.
맘 상하실 필요 없습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아는 것 만큼 보이고, 지가 본 것 만큼 느낄 수밖에 없으니...
언급된 숫자의 크기가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일까요.
그 숫자를 헤아리는 눈 역시 보고 느끼는 그 사람의 인식의 한계일 뿐이니...
김선생님의 일관된 논리와 그 논리의 지향점이 확고한 터,
혹 지엽말단적 초식들의 깬족거림에 말 섞을 생각 마십시오.
그저 물인지 불인지 모르고 달려드는 날파리들을 어쩌겠습니까.
....
님의 좋은 글 읽고 '감솨'하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모처럼 단비를 맞나, 물을 잔뜩 머금고 늘어진 '감나무' 가지가 연상되어...
김동렬님이 노무현은 반드시 당선된다며 100만원내기를 하자고 했다는데, 노무현 당선을 위해 모인 칼럼니스트들 사이에 사나운 공기가 감돌 이유도 없고 더군다나 트집을 잡거나 주먹을 들어보일 이유가 있나요? 오히려 그런 확신에 찬 신념에 대해 환호를 했으면 했겠지요.
제가 기억하기로도 당시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잠깐 있었지만 님이 이야기하는것과 같은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어요. 제가 이야기했듯이 그 이야기는 주로 백원우 의원과의 이야기였고 그것도 칼럼니스트들의 분발을 이끌어내기 위한 제스쳐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백원우 의원이 은근슬쩍 '노무현이 이길 수 있겠어요? 캠프에서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데요' 뭐 이런 류의 이야기를 하면 칼럼니스트들 대부분이 '무슨 소리하는 겁니까? 노무현 반드시 됩니다. 그런소리 마세요' 식으로 받았고 그러면 백원우 의원은 '그래요?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하하하' 그러면서 소주 한잔들씩 하는 뭐 그런 분위기였죠. 당시 캠프에 있었던 김민정씨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칼럼니스트들에게 '대단한 사람들' 이라는 말을 연발했던 기억도 나는데요.
마치 님을 제외한 당시 노하우 칼럼니스트들 대부분이 노무현의 당선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라는 뉘앙스의 글은 내용이 틀리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다수가 노무현의 당선에 대해서 확고한 입장이었죠.
그리고 한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사실상 노무현이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고 난 후에는, 노하우 칼럼니스트들 모임은 더 이상 크게 작동하지도 않았어요.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됐으니 캠프가 확장되고 캠프로 당내 인사들이 들어오면서 칼럼니스트 모임은 자연스럽게 축소되었고 또 칼럼니스트들도 그런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각자의 역할에만 충실했던 겁니다. 저 또한 그랬고요.
또한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노하우 칼럼니스트들도 다 각자의 생업으로 돌아갔을 뿐입니다. 무슨 썩소를 날리며 떠날 이유도 없었어요. 왜 썩소를 날립니까? 지지자들에게 자부심 하나밖에 줄게 없다는 노무현의 당선 소감을 가슴벅차게 안고 생업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왜 썩소를 날리겠습니까?
물론 그 사람들 중에서 나중에 대북송금 특검과 이라크 파병등을 거치면서 비판자로 돌아선 사람들도 있었지만요. 그건 별개의 문제지요.
모르겠어요. 당시 님이 참석했던 모임중에 노하우 칼럼니스트들 모임이 아닌 다른 모임이 더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시 노하우 칼럼니스트들은 김동렬님에게 그렇게 폄훼를 당해야할 이유가 없어요. 사실과도 차이가 있고요.
아니라고 믿지만, 혹시 김동렬님이 예수의 사형을 판결한 후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라는것을 보여주기 위해 손을 씻었던 빌라도처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노하우 칼럼니스트들을 비롯한 저들에게 책임이 있지 나에게는 책임없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당시 순수하게 활동했던 노하우 칼럼니스트들과 그 모임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마왕 신해철의 말처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나, 그리고 노무현을 지지했던 우리들이라고 생각 합니다. 막말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지지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그런 죽음은 없었을 테니까요.
각설하고, 제가 보기에 김동렬님은 노하우 칼럼니스트 모임과 다른 모임을 헷갈려 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기억을 잘 더듬어 보시기 바랍니다.
단일화 앞두고 15프로 지지나오고 상황이 극도로 어려울때 당선확신해야 진짜지.
그리고 게시판에 글 쓴다는 사람이 낙관론을 쓰지 비관론을 왜 씁니까? 누구 좋으라고?
또 내가 그 말할 때 님은 그 자리에 없었나 보군요.
분위기가 어지간하면 제가 격앙되어서 고함을 질렀겠습니까?
내가 내부게시판에 쓴 글을 빌미로 트집잡아 주먹을 들어보인 자 까지 있었는데
나야 내부게시판 반응보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감을 잡았습니다만
왜 아무도 내부게시판에 글을 안쓸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내부에 적이 있는데 어떻게 씁니까?
제가 내부게시판 분위기 띄워보려고 노력하다가 (그 일과 관련해서 논객모임과 별도로 여의도 사무실에 찾아가서
그 팀장도 만나고 그랬습니다. 사이트 운영과 관련해서 상의도 하고.)
그 인간들 태도보고 접은 겁니다.
칼럼니스트 모임이 망한건 내부의 적이 분위기 살벌하게 몰아갔기 때문입니다.
그 자들이 '자 우리는 갑니다'하고 썩소 날릴 때도 님은 없었거나 못봤나 보군요.
그 자들(일부)은 당선 이전에 이미 돌아섰고 당선사실 앞에서 당황해 했습니다. 딱 한화갑 표정.
상식적으로 대통령 공식사이트 논객이라면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어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모임이 순식간에 소멸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이게 상식대로 가는 겁니까?
그냥 각자 자기 일 하느라고? 이게 말이 됩니까? 오죽하면 최후의 만찬이라고 했겠습니까?
빌라도 이야기는 왜 나옵니까? 내가 이 말을 한 것이 님도 기억하다시피 4년도 더 지난 일인데
4년 전에 노무현 죽음 예견해서 내가 그 말을 꺼냈습니까? 제발 상식대로 말하세요.
노무현 죽어서 행복합니까? 신났습니까? 좀 찔리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 사람들은 고통받아야 합니다.
오만운운 이런 말이 왜 나옵니까? 겸손하라고? 누구앞에서. 님은 떠나고 이미 게임 끝났는데 무슨 목적으로.
노하우 칼럼니스트들이 노무현 잘나갈때 당선 확신한게 아니라 아무도 노무현의 당선(당내경선 포함)을 예상하지 못했을때 그의 당선을 확신했습니다. 노무현이 잘 나갔다면 왜 캠프에서조차 노무현의 당선에 대해 반신반의했겠습니까? 노무현이 잘 나가는데......
그 모임에 있던 사람들은 이인제 대세론이 나부낄때부터 노무현 당선에 대해 확신했던 사람들이 다수였어요. 당시 글들을 찾아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당시 칼럼니스트 내부에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예를들어 진보 지지자들이나 기본적으로 정파적 지향성이 강한 정똥 성향인 인간들도 몇 있긴 했었지요. 물론 정똥 성향의 인간들은 대선 이전에 이미 변질되었다는것도 알았고 그들과 싸우기도 했었죠. 하지만 그것이 노하우 칼럼니스트들 다수의 모습은 아니었어요.
아무튼, 길게 이야기할 내용은 아니고..... 설사 당시 노하우 칼럼니스트 내부에 님이 주장하는것과 같은 일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부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다수였는데 마치 다수가 잘못된 행동을 한 것처럼 폄훼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김동렬님 자신은 그런 사람들과 차별되었다는 강변을 하려는 모습으로 보여서 한마디 했습니다. 설사 그 사람들이 김동렬님 말대로 다수가 잘못했다 칩시다. 그럼 그 모임에 참여하면서 그것을 막지 못한 님은 그 잘못에 대해 책임 없습니까?
그런 사람들 때문에 그때부터 노무현의 죽음은 준비되었다라고 한다면, 그것을 막지못한 님의 책임은 없냐는 겁니다.
내 분노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는게 본질입니다. 와신상담.. 님이 내게 무슨 소리를 하든 내게는 가시가 되고 쓸개가 될 뿐. 나는 그 쓰레기들 용서하지 않습니다.
다수가 변절 안했다구요? 그럼 존재의 증거라도 내보시지요. 대선이후 5년간 그 논객들 어디로 증발했습니까? 왜 사라졌지요? 당선되었으니 할 일 다했고 각자 자기 할 일 한다고? 이게 말이나 됩니까? 그게 유죄입니다.
목격자는 증언대에 서는 것이 바른 일입니다. 그리고 기록을 남기는게 바른 일입니다. 눈을 감고, 관심을 끊고, 모른체 하고 각자 자기할 일 하면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 면책됩니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어떤 목적이나마나, 팩트도 틀린데다가 설사 김동렬님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님부터 반성해야지요. 그런 것을 목격했고 알고 있었으면서도 결국 바꾸지 못했으니까요. 그렇게 멀찍이 떨어져서 폄훼해버리고 말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해철이 뭐라고 했습니까? '노무현을 누가 죽였나요? 납니다. 우리들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너희들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지금 2002년 대선 당시 노하우 칼럼니스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저한테 현재 그 사람들의 존재를 증명하라니 좀 뜬금 없네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저나 님이 모르는 어느 곳에선가 열심히 살고 있겠지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글이나 정치로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아닌데 뭘 더 바랍니까? 그 정도도 아주 훌륭한 역할을 한 겁니다. 물론 보란듯이 배신을 한 사람들은 제외하고요.
지금 상황에서 누군들 분노가 풀리겠습니까? 다만 쓰레기를 치우시려거든 쓰레기만 치우라 이겁니다. 멀쩡한 것까지 쓰레기라고 치우지 마시고요. 그리고 고쳐 쓸만한 것도 찾아봐야죠.
전쟁터에서 꼬맹이 하나가 수류탄 던졌다고 그 마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드는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서 한마디 한 겁니다.
제가 너무 엉겼으면 용서하시고요. 건필하시길........
인신공격이 도가 지나치시군요. 어디에 숨어 있었느냐니요? 님이 제가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 다 압니까? 모르는 부분에 대해 함부로 재단해서 이야기하지 마세요. 유명세도 이 정도면 거의 허탈한 수준이군요. 그러는 님은 뭐했습니까? 구조론닷컴이라는 동굴 파고 숨은거 아닙니까? 마치 님은 소돔과 고모라에 있었을지도 모를 그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좀 겸손해 지세요. 겸손해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고 충분히 소통할 수 있습니다.
내 일생 당신네들과 얼굴 마주칠 일 없다는 것이 내가 격하게 나가는 본질. 세치 혀 가지고 떠드는 모든 논객들에게 환멸. 나 역시 그 미운 논객들 중 하나라도 비판하고, 내가 더 나쁜놈이어도 비판하고, 그래봤자 내가 더 욕먹어도 비판하고, 내가 오늘 죽어도 비판하고, 내가 무덤 속에 들어가도 비판을 기록으로 가져갑니다. 왜냐하면 이게 나니까. 이런 사람 한 사람 쯤은 있어야 한다고 믿으니까. 그래야 떠난 님 덜 외로울거라고 믿으니까.
옳고 그름이 신해철의 '우리가'와 나의 '너희가', 그 '우'자와 '너'자 사이에 있지는 않을 터. 비판에 무슨 자격이 필요한 것은 아닐터. 확실한 것은 비판받아야 하고, 더 비판받아야 하고, 또 비판받아야 하고, 그래도 비판은 부족하다는 사실 뿐. 하긴 다음 선거 앞두고 대동단결 이딴 소리 하고 싶은 분은 내게 그만 좀 하라고 핀잔줄만한지도.
뭐 거의 이야기가 정리됐네요. 반성할것이 있다면 너나 할것없이 반성하고 비판 받아야할 부분이 있다면 너나 할것없이 비판 받아야겠지요. 또 그것과는 별개로, 사실과 다른 부분은 바로 잡아야 하고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은 또 그것대로 구제되어야 하겠고요.
그리고 갑자기 선거 이야기는 왜 나옵니까? 저를 정치꾼 비스무리하게 몰아가고 싶은 건가요? 그러지 마세요. 김동렬님답지 않게스리.....
자, 이쯤 합시다.
이곳의 글들을 통해 항상 많은 것을 배우고 또 고맙게 읽고 있습니다. 건필하시길.........
나는 대통령이 여러번 신호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1년 안에 죽어서 청와대 나올 수도 있다'고 측근에게 한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안 했겠는가? 여러번 했을 것. 아무도 듣지 못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다. 척하면 착하고 알아먹어야 하는데 먹통들이 알아먹지를 못했다.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기 하면 뭐하냐 싶지만 다시는 그런 일 안 일어나게 하려면 굵은 활자로 써서 증거 남겨놔야 한다. 그 바위 위에서 님의 떠남은 '제발 정신 좀 차리라'는 뜻에서의 물리적 타격이다. 말귀 못알아먹고 안이한 생각에 빠져 있는 우리 모두를 크게 꾸짖고 징벌한 것. 물리적 타격 이외에 인간을 정신차리게 하는 방법은 정녕 없다는 말인가?
'여보 나 좀 도와줘'라는 책 제목이 왜 내게는 '나 좀 살려줘'로 들리는지. 정말 내게만 그렇게 들리는지.
요즘 곰곰히 생각해보면 노무현은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는 혜성처럼 나타났는가 했다가도 다시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이름만 알고있는 사람에서 기억에 각인되기까지...
한 스님으로부터 노무현의 대한 일장연설을 듣고나서 ..흠..그런 사람이구나 하던 시절도 있었고,
대선 때가 되어 어떠한 광풍처럼 우리에게 다가왔고, 투표를 하고, 당선이되고...
그 뒤로 노무현 대통령을 지켜보기가 참 힘들었지요. 숱하게 상처를 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때는 5년동안 한 것도 없으면서 지키느라 힘들었다 생각했지요.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대통령 욕하면 침묵하고 참아내는 것이 잘한 것이라 생각을 한 것인지....--;
청와대 게시판은 그런 난장판이 없었고, 그런 와중에도 지율스님의 대한 이해를 구하는 글을 청와대에 계속 올렸어야 했었고,
그때는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었고 지율스님은 청원하는 입장이었기에...단식이 깊어져 가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어서
청와대 앞에 찾아 갔었지요.지금 생각하면 자의반 타의반이었지만...어쨌든 뜻 맞는 사람들끼리 찾아가서 108배를 청와대를 향하여 올렸지요. 그때 말레이시아던가..귀빈이 왔다고 파티가 끝나면 절을 해달라고 요청이 와서 그렇게 했지요.
어쨌든 청와대 앞은 요즘은 그 흔한 경찰도 없었지요.그리고 그때는 원래 그런가보다 했지요.
노무현과 참여정부를 지지하기 위해 청와대 블로그를 늘 찾아갔으면서도 제대로 댓글도 많이 못 달았고, 한편으론 청와대 게시판에서 아우성이 치는 그 난리 북새통에서 청원글을 올리면서도 늘 마음 한 구석은 무거웠지요.
지지하는 사람과 단식하는 사람사이에서... 자연환경에도 관심을 가지던 터라...
지율스님이 너무 힘겨워보이고 공사를 늦추기는 늦은감도 있었지만 옳은일이라 생각했기에 외면하기 힘들어 청원하는 글을 올리면서도,
청와대 게시판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참 너무한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지요....
그래서 언제나 노무현 대통령의 어떤 심정 같은 것이 느껴졌지요.이상하게도 그날 저녁에도 꿈을 꾸었고 대통령 내외분이 전쟁이 난 후의 어떤 폐허에서 누군가들을 치료해주고 있었지요.
꿈을꾸고 난 후 마음이 어지러워 갈등하던 그때의 마음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대통령이 바람처럼 가시고 나서 늘 마음에 걸린 것은 투표만 하고 왜 그 다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었던가? 하는 것이고,
순탄하게 잘 해결된 문제는 아니지만 지율스님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그 단식을 이해하려고 했다는 것에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지요.
물론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늘 이문제는 나에게 가슴에 걸려있는 일이었고 해서...이곳에서 처음으로 그 때의 제 심정을 풀어놓아 보았네요.
좋아하는 사람과도 갈등이 생기고,원하지 않는 갈등의 소용돌이로 들어가기도 하고...
어쨌든 세상을 살다보면 강자가 되기도 하고 약자가 되기도 하지만....
대통령이 그런 숱한 시간들 속에서 늘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그런 많은 문제들과 홀로 싸워 오셨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절실하게 여겨지니...우리를 가려주던 이가 빠져버려 이제 잇몸이 너무나 시려운 것처럼...
좀 더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방관했다는 자책감이 크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권리를 행사했으면 지켜야 할 의무도 같이 이행해야 한다는 것을 잘알지 못하여 행하지 못하였음이 참 마음이 아파옵니다.
그가 이리 큰 사람이었음을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하게 인식되어지고,
그는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 편하게,자연스럽게,그냥 그런갑다...하는 사고는 어디에서 기인된 것인지,주인된 것인지...?
그는 정말 대단한 삶을 살아왔고, 정말 해내기 어려운 삶의 여정을 거쳐왔고, 어쩌면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위대하다고 생각한 그 모든 사람들의 삶 그자체이지 않았을까...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 같은 삶, 영웅보다 더 영웅같은 사람...
그동안 왜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을까...? 살아있을 때는 그저 같이 한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그런한 것이 객관적으로 비춰지지 않는 것일까..?
봉하사저 앞에서 V자를 그리며 포즈를 취하는 한 전직 대통령이 바로 우리앞에 있는 멋진 영웅이자 참된 사람이라는 것을 왜 알지 못했을까...? 우울하다가도 대통령 사진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생겨나게 하는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현재의 상황은 슬픈데...대통령의 개구진 여러 사진들을 보면 미소가 저절로 생겨난다.그래서 미소지으며 코끗이 시큰해지곤 한다.....'
한 인간으로의 삶, 한 가족으로서의 삶, 한 사회인으로서의 삶, 한 민족으로서의 삶, 한 인류로서의 삶....
그가 삶을 대면했던 방식으로 인하여 이 나라 사람들은 많은 정화와 함께 사람으로서의 산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돌아보게 하는 시간적 여유를 얻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나 악착같이 달려가고 어디론가 바삐 숨이차도록 뛰어가는지..뒤에서 오는 사람은 넘어졌는지,죽었는지에 대한 아무런 관심도 없이...
정말 악다구니 같은 시간들...너무나 마음들이 거칠게 흘러온 시간들....이제 겉 모양은 다소 거칠고 혼란스러워 보일지라도 마음만은 한템포 숨을 고르며 사람답게 살아야 할텐데...하는 생각이 드네요.
먼저 바람처럼 가신님께 어찌 인사를 올려야 할지 막막해서.....몇자 적어보았습니다.()
그분이 있었기에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을 이리 보낼수 밖에 없는 국민들에게는 아주 과분한 분이시지요.
동물세계처럼 적자생존의 우리나라 정치계에서 인간이었던 분...아니 인간이고자 했던 분.. 그런 분 대한민국에 다시 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특별한 분이시고.. 그래서 결국 국민을 얻었지요. 국민을 위해서 그토록 자신을 아끼지 않았던 분에게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당시 글을 검색해봤소. 서프에서 옛날에 봤던 글이오.
그전에 동렬님 말고 다른 분도 논객들이 대통령 당선을 확신하지 못했었다고 쓴 글을 본적있어서 찾다가 이글을 가져왔소.
노공님 당선되고 덕평에서 노사모 모임이 있었을 때 대통령님이 '이제 여러분 머하실거예요?'
했을 때도 '감시'라고 외쳤었죠..
그때 노공님이 자기를 감시할 사람 많다고 자기 편들어달라고 (정확한 단어는 기억나지 않소만) 했었죠.
이 사람이 노하우논객은 아닌거 같은데 하여튼 감시로 돌아설 준비하고 있었던 자들 많았소..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했소이다.
어제 동영상 시청하고, 대부분 이해가 가는 듯 했어도, 현실에서 그런 사례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나? 하고 궁금해 했는 데...
오늘 "내가 아는 노무현", 이 글을 다시 읽고, 댓글까지 관전을 하면서, 현실적 사례 치고는 아조 100% 완벽한 사례를 감상함으로서, 일시적이었으나마 동영상 관련 어제의 궁금증이 완전히 해소됐음을 선언하는 바이올시다.
암튼, 찬조 출연하신 모모님께 스파링 파터너로 고생하셨음에 깊은 애도와 위로를 드리고 싶다.
큰 원칙의 논리로 무장된 뿌리 깊은 남긔와 감나무 밑에 누워 쌩감 홍시되어 자유낙하 할 때까정 눈빠지게 기둘리는 짐승수준의 모습이 적나나하게 대비되는 장면... 튼실한 원칙 앞에서 개박살 나는 반칙의 가련한 모습... 스스로 생각해도 나라는 인간도 때로는 의외로 잔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만 하면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실증사례를 보여 주셨으니, 더 이상 같잖은 자의 궤변에 말을 섞는 일이 없기를 당부드립니다.
아무튼 어딜가나 이런 잉간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정말이지 이런 잉간형은 어딜가나 있었던것 같다. 지금 김동렬님과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팩트가 무엇인지, 왜 이런 논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사고의 개념이 없이 그저 진영논리에 매몰된 이런 인간........ 구조론을 유심히 눈팅했던 입장에서 구조론 게시판에서 이런 잉간을 본다는건 실망이다. 이런 잉간이 좋은 곳에 서식하면서 행여나 물을 흐르고 좋은 사람들을 떠나보내게 될까 안타까울 뿐이다. 구역질이 난다.
자신을 다 드러내놓고 (목숨걸고)글쓰기해온 분에게
어디선가 숨어서 지켜만 보다가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진위를 떠나)
시비거는 것은 사람으로서의 예의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바둑고수들의 숨막히는 한 수 한수 그 순간에 누군가가
" 방금 그 한 수... 바둑돌 소리 시끄러우니 바둑돌소리 하나도 안 들리게 바둑두세요!" 라고 고함치는 것 같은......
하여 저도 한마디 " 기왕 깨셨으면 멀리 가세요. 당신 코고는 소리 에 명국관전 방해됩니다 ..."
(님이 그렇게 들리듯이.... 저에게는 지금 이순간에도 ' 나 좀 살려줘' 로 들려 눈물이.....................)
한결같이 노무현 대통령을 이해하고 진정성을 전달하려 했으니까요. 저 역시도 김동렬님의 영향을 받아 노무현 대통령을
다시 평가하게 된 것이 사실이니까요. 노무현 대통령 집권 당시 언론이나 국민들 어땠습니까? 한결같이 흠집내고 욕하느라고
정신없었지요. 제 주변 사람들도 노무현 대통령만 나오면 욕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뭐가 그렇게 마땅잖은지..
제가 설득을 하려하면 저 보고 '노사모'회원 아니냐고 했지요.
그때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성을 끊임없이 글로 전하고자 했던 분이 아마 김동렬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임기 말에는
노사모 회원중에서도 지지를 철회한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고...
저는 남들이 다 욕하던 그 임기 말에 노무현 대통령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잘못되면 모든 것이 노무현 대통령 탓이었던 시절..
부동산값 오르는 것도 노무현 대통령 탓이었고 언론들이 그렇게 유도해 갔습니다. 전세계 부동산값이 다 올랐는데
언론이 노무현 대통령 탓이라고 하면 국민들은 앵무새처럼 따라서 읊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우매하고 어리석은 국민들을 사랑한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이었으니 국민들이 지금에 이르러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것이겠지요.
국민이 등을 돌린 후 노무현 대통령 곁에서 한결같이 변명하고 믿어 주고 신뢰를 보내주며 그 가치를 끊임없이 전하고자 했던 사람이 아마 김동렬님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김동렬님의 애통함은 저와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입니다. 상실의 그 깊이와 넓이가 얼마나 될지 도저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안되면 메일주셔요,....
왜 수박 껍데기만 열심히 핥아대지요?
속살은 달콤한데 아무 맛없는 껍데기를 핥으면서
수박의 맛을 함부로 얘기하는군요.
1894년 동학혁명 당시 그쯤에 무언가 이루어 졌어야
오늘의 이런 저런 꼴이 훨씬 줄었을텐데.........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진정성"
모든 사람의 화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후 논객들이 이런저런 핑계대며 딴소리할 때마다 사실 조마조마 했습니다. '이번에는 혹시 김동렬도...?' 하며 말입니다. 파라독스님 딴소리 한 사람들만 변절이 아닙니다. 대통령 안하면 안락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을, 5년내내 주구장창 좌우로 린치를 당하고 있는 사람을 두고 슬그머니 사라진 것도, 그리고 불현듯 이렇게 찾아오는것도 변절입니다.
한두마디 팩트가 다를지언정 큰 맥락에서 보면 맞는 소리 아닌가요? 님이 그 변절자에 님이 포함될수도 아닐수도 있습니다만 그게 중요한가요? 김동렬님 글이 무슨 법적효력을 갖는 판사의 판결문인가요?
그런 이유로 해서 제게, 어떤 '직관적 통찰'들이 '논리적 판단'들과 비슷한 무게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제가 경멸해 마지 않던 수많은 준-종교적 잠언들을 재발견하게 된 겁니다. 잠언의 선각자들은 분명히 진리의 어떤 부분과 맞닿아 있었음을. 어떻게 그곳에 이르게 되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거나, 하지 못했을 뿐이지...
칼럼니스트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여전히 피상적이지만, '네트워크'와 '협업'의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누군가는 직관으로 가설을 제시하면 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가설을 검증해 이론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문명은 그렇게 구축되어 왔다고, 저는 보았습니다.
십수년 방랑 끝에 겨우 '신앙'을 얻었는데, 제게 영감을 준 위대한 지성은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버렸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고, 아직도 아픕니다.
본질에서 말하면 사실이지 매우 어려운, 수준이 높은 글입니다.
단지 쉽게 풀어서 썼으므로, 또 누구나 다 아는 단어로 썼으므로
피상적으로 보면 쉽게 보여질 뿐. 먹물티내는 전문용어 섞어 쓰지 않으니까.
물론 제 글들중 과거 서프라이즈에 쓴 정치칼럼 중 다수는 30분 안에 쓴 가벼운 글입니다.
그 글들은 일정한 정치적 맥락 안에 있기 때문에 그저 정치판 게임의 구조만 가볍게 드러내면
되는 단순한 글입니다. 그 안에는 'A가 이렇게 가면 B는 이렇게 간다'는 게임의 규칙이 있습니다.
그 게임의 규칙을 보지 않고 내려진 결론만 보면 주술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게임의 규칙이 유발하는 뇌간지럼증에 중독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 규칙은 한번 만들어놓고 반복적으로 재활용되므로
글마다 반복하여 쓰지 않고 대충 그러한 패턴이 있다는 사실만 드러내므로
대충 수박겉 훑어보면 그 숨은 논리를 포착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조중동의 칼럼들은 대개 원고지 10매 이내로 승부해야 하기 때문에 쉽습니다.
어려운 글을 종이신문에 쓸 수 없지요. 누가 읽겠습니까? 오마이뉴스라도 마찬가지.
대부분 신문보도를 따와서 서두에 나열한 다음 이쪽의 정해져 있는 정치적 입장으로 반박해주고.
다시 조중동의 과거글 퍼와서 달라진 현재입장과 대비시키는 방법으로 그쪽의 모순을 지적해주고
다시 한번 이쪽의 정치적 입장을 밑줄그어 강조해주고 끝내기. 공식이 있지요.
그러나 진정한 것은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단어를 조직하여 설명해 낼 수 없습니다.
진정한 작가는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 개념을 새로 만들어냅니다.
직관적 통찰은 광장에서 떠드는 선전처럼 저의 논리도구가 쓸모있음을 알리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 통찰을 이끌어내는 과정에 사용된 도구가 제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물론 그런 진짜 글을 서프라이즈에 쓰지는 않지요.
감히 제가 낄 자리가 아니지만 30플을 채우기 위해 낑겨봅니다.
노무현을 죽음으로 내몬건 조중동이라거나 이명박정권이나 검찰이 아니라 진보나부랭이들이라고 봅니다.
이런 주장은 제가 몸담은 회원 수십만명되는 클럽에서도 줄곧 주장한 바입니다.
노무현은 그런 집단을 두려워 하거나 버거워하지 않았습니다.
조중동이나 한나라나 이명박 정권들 상대는 오히려 노무현의 존재의 이유였고 목적이였지.. 그들때문에
투신까지 할 대상은 아니였다고 봅니다.
환자가 없으면 병원이 필요 없고 죄수가 없으면 감옥이 필요없듯이 그들이 없으면 노무현은 실업자가
될 처지입니다.
물론 이상은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지만 그런 시절이 오면 잠시는 같이 춤출수 있으나 길게는
노무현의 가치가 빛을 발할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발걸음을 같이 했던 진보들의 야멸찬 공격은 노무현으로서는 설 자리를 없애버렸습니다.
그저 검찰이 흘려준 상식적으로 말도(논두렁시계등등) 않되는 내용을 받아쓰며 하이에나때처럼
수구들과 같은 방식으로 공격을 가해오고 친지동료들이 대거 고통 받을때 영향력 있는 어떤 인사가
어떤 매체라도 그런게 아니다고 한마디 해 주면......
그러나 아무도 그런 역활을 하려 하지 않고 오직 공격앞으로만 나갔습니다.
이역활을 진보들이 해야하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어요. 왜그랬을까요?? 밥줄이 우선이였나 채면이 우선이였나
동렬선생은 포지션이라고 하셨는데 왜 무엇을 위해 그자리를 지켜야 할까 생각해 보면 결국 밥줄??채통??
좀 그럴듯 한 표현으로 정체성?? 그럼 그 정체성은 왜 지켜야 할까 생각하면 역시 밥줄??
뭐~ 그게 그거겠네요.
결국 공익 보다는 사익을 우선시 하는.... 모두가 잘사는 것 보다는 내 개인만 생각하는... 그래서 노무현과는
가치관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일뿐..
저는 파라독스님이 누군지 모르나 비판적 지지자란 말씀에 화가 났습니다. (파라독스님 개인감정 아님)
예전에는 그런 말이 알송달송하고 그럴듯 하게 들렸는데 지금은 사람 죽이는 말같이 들립니다.
전임 대통령이 죽은 마당에 이젠 그런말 하지 말고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저는 예전이 논객님들 사이에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어쨌거나 우리 사회를 위해 고뇌하신 그분들 모두 존경하고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런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구나 생각하지만 이젠 그 방법을 좀 바꾸여야 합니다.
그렇게 실패 하고도 또 그런말 그런 방법을 고수한다면 발전을 없습니다.
시간에 쫏기고 쓰다보니 두서가 없지만 어줍잖은 졸필 이만 줄여야겠습니다.
사람 하나가 없었기 때문에 멸망한 것.
신과 맞설 사람 하나가 없었기 때문에 멸망을 피하는 몇명은 있었어도, 공동체는 멸망에 이르고 말았다는 이야기.
신과 만났던 그 사람 하나가 입으로 다섯을 말하고 말을 멈추는 순간, 소돔과 고모라는 이미 멸망.
노무현은 신의 필멸선언과 맞선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옥조이고 있는 인류가 만든 필멸구조와 맞선 것.
신은 멈추었다.
목숨을 끊어, 신의 절차를 멈추고,
육신을 깨뜨려 동지들을 깨운 것.
신과의 팀플이 유일한 길.
넘치도록 노무현을 낳아내는 것.
지켜내는 것.
그것이 노무현을 아는 이들이 가야할 길.
그날 지키지 못한
님을 곁
나누지 못한 한모금의 연기가
심장에 아로새겨진 이들.
끊어진 님의 숨결로
님이 우리에 준 시절을 제대로 살아내는 외 길.
깨어난 이들이 살야갈 이유.
그냥 저랑 똑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