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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042 vote 0 2025.02.25 (15:17:58)

    구조는 깔때기다. 깔때기 속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결말은 정해져 있다. 지정학이 중요한 이유는 국경이 극단에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벼랑끝에서 한 가지 결정만 가능하다. 극단의 법칙, 마이너스 원리, 최소작용의 법칙, 엔트로피 증가, 오컴의 면도날이다.


    국경은 방어하기 좋은 곳에 그어진다. 북극의 북쪽은 없다. 거기서 물러설 곳이 없다. 몽골은 중국을 거치지 않고 석탄을 수출할 수 없다. 아일랜드는 영국을 경유하지 않고 세계와 연결할 수 없다. 강대국이 지정학적 관문을 걸어 잠그면 약소국이 빠져나갈 수 없다.


    영국이 지브롤터와 수에즈와 희망봉과 말라카 해협을 걸어 잠그고 식민지를 연결하면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이 만들어진다. 지구는 크지만, 강대국이 약소국을 잡아먹고 지정학적 요충지만 남는다. 자명한 운명과 같다. 서부로 가려는 양키의 욕망을 막지 못한다.


    늑대한테 쫓기는 사슴은 방향전환을 못 한다. 러시아에 쫓겨 우크라이나는 대선을 치르지 못한다. 하마스에 쫓기는 이스라엘은 네타냐후를 자르지 못한다. 달리는 말의 기수를 바꾸지 않고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 전쟁은 갈 데까지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전쟁에 의해 탄생하고 전쟁은 지리적 극단에서 멈춘다. 지정학은 자명한 운명을 따라 필연의 구조를 작동시킨다. 반집 차 승부에서 바둑기사가 두어야 할 곳은 명백하다. 축에 몰리면 끝까지 몰린다. 승부의 현장에서 언제나 벼랑끝 선택을 강요당한다.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안철수나 심상정은 극단에 몰린 것을 모르고 여유 부리다가 망했다. 윤석열과 이재명을 교착시켜 둘을 동시에 잡아먹을 수 있다고 믿지만, 그것은 중간에 낀 폴란드가 독일과 소련을 교착시켜 둘을 동시에 털어먹겠다는 망상과 같은 것이다.


    독일과 소련의 원교근공은 지정학적 필연이다. 지금은 미국과 러시아가 손잡고 중국을 털어먹으려고 한다. 시진핑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중국이 협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는 알 수 없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약한 고리가 발견되면 밟아버린다. 


    옐친 시절에 러시아인들은 미국에 환상을 품었다. 미국이 러시아를 구원해 주지 않을까? 돌아온 탕자가 대접받는 스토리를 꿈꾼 것이다. 옐친은 나토에 가입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세계는 러시아를 털어먹었다. 상대의 약점을 봤는데 그냥 갈 리가 없잖아. 냉혹하다.


    극우도 자기네가 극단에 몰려 있는 사실을 모르고 영하 273도에서 더 낮은 온도로 내려가려고 하지만 그곳이 막장이다. 좌파와 중도가 합작해서 극우를 털어먹는다.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을 먹으려고 이빨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극우는 협살에 걸린 줄 모른다.


    내 입에 들어간 사탕을 뱉겠는가? 상대의 자비를 구할 때는 딜이 되는 건수를 물고 와야 한다. 집단이 흥분하면 답이 없기 때문이다. 한번 만들어진 에너지는 물리적 장벽에 의해서만 저지된다. 손해를 감수하고 궁지를 피해 중원으로 기어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눈앞의 작은 이득을 꾀하여 변방으로 갔다가 길이 막혀서 말라 죽는게 보통이다. 그곳이 궁지다. 공손찬은 변방인 기주에서 역경루를 지었으니 극단에서 더 극단을 찾은 셈이다. 정주성에 고립된 홍경래의 반란군이 하비성에 고립된 여포의 군세도 마찬가지다.


    이괄은 서울을 점령하고 만족했다가 죽었다. 인조를 추격했어야 했다. 눈치보며 관망하던 자들이 이괄군의 기세가 꺾였다고 판단되는 순간 일제히 등을 돌린다. 홍경래 역시 요충지인 안주성을 점령하지 않고 후방을 지키다가 고립되었다. 안이한 형세판단이다.


    선택지가 없다. 무슨 수를 써보려고 꾀를 낼수록 깊은 수렁에 빠진다. 궁지에 몰려 압박을 받으면 순간을 모면하려 할 뿐 예정된 결말을 바꾸지 못한다. 이념은 상상이고 지정학은 현실이다. 프레임을 걸고 언플로 잠시 연명하지만, 결국 차가운 현실에 내몰린다.


    국가의 숫자는 지형의 복잡성과 비례한다. 중국은 가운데가 뻥 뚫려서 망하고 유럽은 알프스와 피레네와 북해와 라인강으로 격리되어 흥한다. 진화론의 격리설과 통한다. 풍수가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 것이라면 지정학은 국경을 틀어막고 항구를 얻는 것이다. 


    세계는 미소 양강체제에서 미중연합 대 소련으로 재편된다. 미중연합의 승리로 냉전이 깨지고 미국 일극체제가 된다. 트럼프와 푸틴의 브로맨스로 미러가 손을 잡고 중국을 견제하는 모양새다. 지정학적 대결에 선택지는 없다. 세계는 언제나 벼랑끝에 몰려 있다.


    변화는 물리적 장애물이 나타날 때까지 진행된다. 들불은 더 이상 탈 것이 없어져야 꺼지고 전쟁은 더 이상 소집할 병사가 없어져야 종결된다. 남자의 씨가 말라야 한다. 생산력 증대로 잠시 평화가 오지만, 인구증가와 지구 온난화로 귀신같이 극단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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