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장군이 한강 방어선을 지켜 인민군을 막아냈는데
하필 폭우가 오는 바람에 미군이 한강 철교를 폭격하지 못해서
인민군이 빗속을 뚫고 반파된 철교에 밤샘공사로 전차 13대를 기차로 실어날라 영등포를 점령했다.
미군의 삽질
1) 이승만의 북진을 걱정한 미군이
대전차포를 전부 압수해서 창고에 넣고 자물쇠로 잠가놓았다.
춘천 쪽의 대장이 대전차포 2문이 고장났다고 거짓말을 해서 빼돌린 것으로 춘천 홍천에서 인민군을 막았다.
2) 미군의 2.5인치 바주카포는 제원상으로는 T34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26방을 명중시켜도 전차가 파괴되지 않았다.
미군이 급히 3.5인치 신형을 가져왔는데 6월 25일이 시제품이 나오는 날이었다.
그러나 이후 9월에도 2.5인지 바주카로 T34전차를 잡은 기록을 본다면
국군이 T34가 아닌 장갑차를 쏴놓고 전차를 잡았다고 거짓말을 했거나
원래 2.5인치 바주카로 전차를 잡을 수 있는데 탄약이 불량이거나 뭔가 알려지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미군은 계속 국군의 훈련부족이 원인이며 충분히 전차를 격파할 수 있다고 우겼다.
그러나 북오산에서 스미스부대가 멸망하자 뒤늦게 바주카 성능을 인정하고
소련군이 북한에 전차를 넘길 때 장갑을 덧댔나보다 하고 둘러댔다.
3) 맥아더는 소련군의 참전을 유인할 목적으로 한국을 지킬 의사가 없는 것처럼 가장한다고
방어하지 말고 대전으로 후퇴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전선에서 방어하고 있으면 월북하여 인민군에 가담하려고 그러나 하고 의심받는 판이었다.
4) 7월초 폭우로 미군이 한강 철교를 폭격하지 않는 바람에
인민군이 야간에 철교보수작업을 강행하여 한강방어선을 뺏기게 되었다.
미군은 여러 차례 삽질로 개망신을 당하자 김홍일 장군을 뵐 면목이 없어서
장군을 바꾸지 않으면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엄포를 놔서 별 수 없이
육이오날 밤샘 술 파티 하다가 사단을 잃어먹고 부하도 없이 혼자 한강을 건너 도망온 패전왕
백선엽이 영어와 일본어 좀 하니까 지휘하게 만들어서 사실상 미군이 다부동을 지킨 셈이 되었으니
미군의 공적을 빛나게 하는 백선엽을 좋아할 수밖에.
미군이 백선엽을 좋아하는 이유는 백선엽의 전공은 상당부분 미군의 것이기 때문이다.
백선엽은 수암산과 유학산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고 하룻만에 인민군에게 뺏겼는데
국군 1만 명을 희생시켜 13일 만에 원래 지키게 되어 있는 수암산과 유학산을 되찾았다.
백선엽이 지키기로 했다가 지키지 못하고 도망친 후 미군에게 야단맞고 갑자기 빡 돌아서
권총 차고 혼자 적진으로 돌격하는 쇼를 미군 앞에서 연출했는데 그게 다부동 전투다.
다부동 전투의 의의는 그때까지 도망만 치던 국군이 병력이 충분하면 반격할 수도 있다는걸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가까운 대구에서 피란민을 징집해서 사단 인원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군이 줄곧 도주하는 이유는 포위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데
이는 다른 부대간의 수평적 연결이 안 되었기 대문이다.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장군이 김홍일인데 미군은 영어 못한다고 김홍일을 잘랐다.
즉 좌우의 다른 부대를 절대 못 믿고 좌우에 몇 명이든 인민군이 들어오면 무조건 후퇴를 한 것이다.
인민군은 국군의 약점을 알고 사단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데 그 속에 들어온
인민군을 포위 섬멸할 수 없는게 이웃부대는 다른 사단이고 관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등신 삽질을 4년 내내 반복해 왔는데 문제는 이게 미군의 고질병이라는 점이다.
미군은 원래 관할 따지다가 망하는 군대라서 이게 안 된다.
한국은 김홍일 같은 노장이 모든 사단장을 제압해서 합동작전을 할 수 있는데 미군은 원래 그게 안 된다.
독일이 서부전선을 막을 수 있다고 본 것도 몽고메리와 브래들리가 맨날 관할 가지고 싸워서
죽도밥도 안 된다고 보고 과감하게 벌지전투를 일으킨 것이다.
미군은 아직까지도 대규모 합동작전을 못하고 삽질하는데
육이오 초창기 국군을 오폭하고 민간인을 학살한게 그런 오만함 때문이다.
그동안 미군이 현대판 당나라 군대였던 것이 어떤 면에서는 참 다행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