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힘은 에너지의 확산방향에서 수렴방향으로 방향을 틀 때 일어난다. 개인은 확산방향이고 집단은 수렴방향이다. 개인에서 집단으로 바뀔 때 에너지가 유도된다. 집단은 가족과 부족과 국가와 인류다. 종교집단도 있다. 보통은 외부에서 적군이 침략해오면 위기를 느끼고 자신이 살기 위해서 집단을 찾는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 관찰이고 본질을 봐야 한다. 귀납을 버리고 연역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대개 심리적 동기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 어떤 것이든 심리적 동기에서 답을 찾으면 안 된다는게 구조론이다. 심리적 동기는 위하여다. 위하여는 인위적이고 작위적이다. 도덕이니 윤리니 순결이니 선악이니 우정이니 충효니 행복이니 정의감이니 이런 것은 과학의 언어가 아니다. 수준이하의 개소리라 하겠다. 아직도 학계에서 쓰이고 있는 언어이지만 미개한 시대의 봉건언어다. 그런 저렴한 언어가 강단에서 버젓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인류의 수치다. 메커니즘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메커니즘은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된다는 거다.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다. 도덕 윤리 순결 선악 우정 충효 행복 정의 이런 유치찬란한 언어는 다 문장이 아닌 단어다. 어떤 단어든 단어를 들이대면 허당이다. 마땅히 에너지의 방향성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사회에서 그것은 권력의지로 나타난다. 그것은 사건의 계속성에서 비롯되는 권력관계이며 곧 기승전결로 가는 사건의 맥락에서 앞단계가 뒷단계를 통제하는 성질이며 이는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른 에너지의 효율성에 근거한다. 사건이 연결되면 관성만큼 이득본다. 가속도가 유지되고 각운동량이 보존되어 그만큼 이득이다. 앞사람이 버린 것을 뒷사람이 주워먹으니 그만큼 이익이다. 그 이익들이 모여 세상을 이끌고 가는 것이다. 이익이 모여서 힘이 된다. 그 이익이 연결되는 구조가 시스템이다. 시스템이라고 하면 딱딱한 것을 떠올리기 쉽다. 메커니즘이라면 기계가 연상된다. 기계는 차갑다. 그래서 기계는 나쁘다. 기계는 동정심도 없잖아? 이런 식의 수준이하 개소리하는 사람은 철학할 자격이 없다. 그런 사람은 수학을 딱딱하다고 거부할 것이 아닌가? 수학이 딱딱해? 지가 수학을 모르니까 딱딱한 거다. 수학을 아는 사람에게 수학은 물처럼 부드럽다. 마찬가지로 메커니즘을 아는 사람에게 시스템은 부드럽다. 메커니즘은 때로는 불처럼 타오르고 물처럼 굽이친다. 딱딱한 시스템이 있다면 죽은 시스템이다. 역사는 진보한다. 진보하는 것은 움직인다. 움직이는 것은 살아있다. 살아있는 것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그러므로 시스템은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며 또 팔팔한 것이다. 역사는 곧 진보의 역사이고 진보라는 사건은 현재 진행중이며 관성의 법칙에 의해 앞단계가 뒷단계를 통제한다. 보존된 각운동량이 개입한다. 김연아가 활짝 펼친 두 팔을 접고 쪼그려 앉으면 갑자기 속도가 빨라진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무에서 유가 생겨난 것처럼 보인다. 외부에서의 어떤 에너지 작용도 없는데 갑자기 뱅뱅 돌아간다. 사실은 팔을 벌렸을 때 만들어진 힘을 숨겨두었다가 꺼내 쓰는 것이다. 그러려면 동작이 부드럽게 연결되어야 한다. 중간에 멈춘다면 그 힘은 빠져나간다. 사건을 끌고가는 힘은 에너지의 통제가능성이며 사회 안에서 그것은 부자간의 친함, 동료간의 결속, 보스와 부하간의 긴밀함이다. 각운동량은 부자간에 친함으로 숨어 있고, 동료간에 우정으로 숨어 있고, 보스와 부하 사이에 충성심으로 숨어 있다. 그것은 어진 마음이 아니라 그냥 물리법칙이다.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상속하는 것은 관성의 법칙이다. 사건의 각단계에서 발견되는 에너지의 의존관계를 권력의지로 표현하자. 에너지를 상부구조에 의존할 때 더 효율적이다. 김연아가 그냥 점프하는 것보다 크게 원을 그리며 한 바퀴 돈 다음에 점프하는게 효율적이다. 관객들은 김연아가 멋부리느라고 저러는가 싶지만 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문재인은 노무현에 의존하는게 더 효율적이다. 홍준표는 박근혜에 의존하는게 효율적인데 박근혜가 감옥에 가 있으므로 감옥에 의존하다가 감옥갈까봐 의존 못하고 갈팡질팡이다. 의존하는게 더 효율적이므로 의존하게 되는데 그 의존대상을 잘못 찍으면 망하는 거다. 역사를 추동하는 힘은 자연의 에너지 효율성이 사회에 반영된 권력관계가 유전자 역할을 한다. 생물은 유전자 복제에 의해 진화한다. 우주는 물질복제에 의해 진화하고 사회는 권력복제에 의해 진보한다. 원본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 복제본을 통제하는 것이 진보의 본질이다. 그 복제과정에 각운동량이 전달되고 관성의 힘이 전달되니 부자간에 혹은 스승과 제자간에 혹은 보스와 부하간에 서로 친함이 있는 것이며 친하면 효율적이고 효율적이면 오래가고 오래가면 큰 사건을 일으킨다. 큰 사건을 일으키려면 큰 계획을 세워야 하고 큰 계획을 따라가면 역사는 진보한다. 집단의 구성원 간에 서로 친한 의사결정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친함은 가족주의나 부족주의, 국가주의, 종교의 교리, 정치의 이데올로기로 나타난다. 서로 친한 집단의 의사결정구조를 주장한 사람이 공자다. 친해서 관성의 힘을 전달하여 써먹으면 사회가 더 효율적이다. 그냥 너희들은 친해야 한다고 선언하면 종교다. 서로 의존하는 긴밀한 의사결정구조를 경쟁하는 것이 역사의 진보다. 권력관계를 잘 디자인하는 나라가 진보하는 것이며 가족간 동료간 부부간 상하간 타인간 권력관계를 잘 디자인하는 나라가 있으며 유교나 기독교나 게르만의 종사제도나 유대인의 관습이나 나름대로 그런 것이 하나씩 자리잡고 있다. 일본의 봉견영주 중심 장로제나 그리스의 민회나 몽골의 쿠릴타이나 그런게 있다. 아프리카의 족장제도나 인디오의 추장제도는 과장되었고 사실은 허당이다. 추장은 실권이 없어 언제나 암투를 벌인다. 암투를 벌이는 과정에 에너지가 소모되어 에너지 효율성을 상실한다. 유명한 추장으로 알려진 시팅불이나 크레이지 호스가 실제 추장이란 근거는 없다. 추장이라고 해도 무방한 정도의 권력을 가진 마을의 유력자였던 것은 분명하나 그들은 무시로 모이고 흩어지며 유지되지 않는다. 전쟁을 하다가도 엄마를 돌봐야 한다며 티피로 가버리는 것이 인디언 전사다. 조폭들도 오야붕과 꼬붕과 삼촌과 똘마니로 된 구조가 있으며 군대라도 간부과 하사관과 병으로 이루어진 역할분담 구조가 효율성을 달성한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와 같은 의사결정구조의 핵을 만들고 복제하는게 중요하다. 집단의 코어를 형성하고 외연을 확대해 나가기다. 이런 구조는 정당에도 있고 회사에도 있고 어디에나 있다. 이사회, 간부진, 평사원, 노조로 구조가 만들어져 있으며 어떤 사람은 부모를 잘 만나서 애초부터 이사회에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일찍 간부로 낙점받는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일을 잘해도 평직원에 머무는 신분이 주어진다. 집단의 의사결정구조에 따른 권력관계 디자인이야말로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라 할 것이다. 사람은 서로 친하고 믿을 수 있을 때 강해진다. 진짜 친구 다섯만 있으면 세상을 엎어먹을 수 있다. 유관장 삼형제에 제갈량 조운이 있으면 창업할 수 있고 정당을 만들 수도 있고 뭐든 할 수 있다. 거기까지 가주는 나라가 잘 없다. 보통은 서로 반목하고 암투를 벌이고 내분을 일으켜 지리멸렬해진다. 로마는 패트런과 클라이언트 관계로 양자를 들여 강해졌는데 오늘날 마피아의 동력이기도 하다. 옥타비아누스를 양자로 들인 카이사르가 그러하다. 일본인은 사위를 들여 가업을 잇게 하는 관습이 있다. 중국은 꽌시를 맺어 그런 구조의 핵을 만든다. 유태인도 나름 비슷한 구조가 있다. 교회가 그 역할을 하는 나라도 많다. 어느 나라든 코어를 형성하고 집단의 구성원이 결속시키는 구조가 있다. 그 구조가 처음에는 잘 되는 듯하다가 어느 지점에서는 한계를 보인다. 작은 패거리는 유지가 되는데 큰 세력을 결집하지 못한다. 한국의 재벌가문처럼 재벌 2세까지 그럭저럭 굴러가는데 3세가 되면 망한다.
민주주의 힘으로 그러한 한계를 넘어설 때 끝없이 발전할 수 있다. 공자가 그런 점에서 힌트를 줬다. 유관장 삼형제처럼 스스로 의를 이루어 권력을 조직해야 한다.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는 서로 대결하여 실력순으로 서열을 정한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차이대로 역할을 나눠가졌다는 점이 각별하다. 니체의 권력의지는 그런 시스템 개념이 결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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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체오 과학의 언어가 아니다. ->오자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