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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010 vote 0 2017.12.16 (18:48:17)

    인류사의 몇 가지 지적인 충격이 있다. 지동설의 충격, 상대성이론의 충격, 정신분석학의 충격, 진화론의 충격들이다. 양자역학의 충격은 다른 것이다. 우리의 직관적 인식체계 전반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아직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의 경험적 직관과 다르다는 정도의 표현으로 살짝 테두리를 핥고 넘어갈 뿐이다.


    인간의 경험적 직관이라는 게 뭐지? 얼버무린 표현이다. 양자역학의 문제는 그것이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주체의 문제라는 데 있다. 중국의 어떤 농부가 산기슭에서 어미를 잃고 울고 있는 강아지를 한 마리 주워와서 길렀다. 그런데 곰 새끼였다. 놀랄만한 일이긴 하지만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인간이 곰이었다. 이건 꽤 치명적이다.


    자신이 색맹인 줄 모르고 살이왔다가 어느 순간 그것을 알게 되었다면?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다면? 자신이 친자식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입양된 자식이라면? 단지 자신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까지 모두 부정하게 된다. 근본적인 의심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짜고 나를 속이고 있다면? 내가 게임 속의 아바타라면?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세상은 어떤 것이 아니다. 어떤 대상을 가리켜 지시되는 그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식 주체인 인간의 문제다. 이것을 깨달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 인간의 눈이 삐었다. 전반적인 것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던져야 한다. 인간은 눈으로 보고 언어로 표현한다. 과연 인간의 눈과 언어와 사유를 믿을 수 있나?


    플라톤의 유명한 동굴의 비유다. 동굴에는 죄수들이 묶인 채 벽면을 향해 앉아 있다. 햇볕이 들어오면 벽면에 그림자가 비친다. 죄수들은 자신들이 보는 것을 실재라고 믿는다. 죄수 중의 한 명이 동굴을 탈출하여 마침내 진실을 알아냈다. 그는 다시 동굴로 돌아가 죄수들에게 사실을 말해주지만, 죄수들은 그를 미치광이로 여기고 믿으려 하지 않는다.


    여기서 그림자냐 실재냐가 문제가 아니라 묶여있는 게 문제다. 죄수처럼 인간은 묶여 있다. 눈코귀입몸이라는 감각기관에 묶여 있다. 인간은 언어를 쓴다. 그 언어에 묶여 있다. 인간은 뇌를 사용한다. 타고난 뇌구조에 묶여 있다. 풀어야 한다. 감각을 버리고 언어를 버리고 뇌를 넘어서야 한다. 죄수들이 보고 있는 동굴의 벽면은 영화의 스크린과도 같다.


    그림자는 어떤 원리로 동굴에 비치는가? 영화는 어떤 원리로 스크린에 영상을 비추는가? 죄수는 어떤 원리로 동굴에 묶이게 되는가? 인간과 자연의 의사결정은 어떤 원리로 일어나는가? 우주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그것은 같다. 그림자가 동굴 벽면에 비치는 절차와 죄수가 동굴에 묶이는 절차는 완전히 같다.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원리 하나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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