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방법은 '토대의 공유(상부구조)가 대칭(하부구조)에 우선한다' 결국 이것뿐이다.
뇌가 자연의 무언가를 복제한다는 것은 둘과 둘 사이에 대칭을 세운다는 뜻이다.
어째서 그 단계의 대칭을 세운것이냐 하면 더 윗단계의 공유되는 토대까지는 분류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뇌가 사실판단까지만 내린 건 상부구조인 의미를 대칭으로 옳고 그름을 분류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대칭의 최종보스는 무엇인가?
모든 사유가 공유하고 있는 토대 말이다.
그것은 위 그림들에서와 같이, 중첩이 대칭을 포함하는 관계이냐 그 역방향이냐 뿐이다.
대칭은 인간의 사정이고 중첩은 자연의 원본이다.
즉 인간 사유의 한계치는 '토대의 공유로부터 대칭을 세우는 쪽으로만 진행할 수 있음'이다.
이러한 순방향을 칭하는 언어가 없으니 상부구조에서 하부구조로의 일방향성 자체를 의사결정 혹은 에너지라 칭해도 좋을 것이다.
그 반대는 어차피 사유 자체가 불가능하니(복제 불능) 이 우주의 방식이 아니므로 알러지라 하든 알레르기라 하든 우리가 알 바 아니다.
얼마 전 깨달음의 대화 댓글로 동렬님께서 모형을 제시해보라고 하셔서 시도해보았습니다.
김동렬
왜 귀납을 연역이라고 주장하는지 모르겠네요?
맞다/틀리다 이런 표현은 구조론 용어이므로 구조론의 규칙대로 써야 합니다.
그냥 일상용어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합니다.
인간은 원리판단을 먼저 하고 다음 개념판단 가치판단 의미판단 사실판단을 합니다.
다만 원리, 개념, 가치, 의미는 대개 뇌 안에서 프로그래밍 되어 있기 때문에 자각하지 못하는 거지요.
사실판단을 먼저 하는게 아니고 사실판단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쉽기 때문에
즉 원리를 설명하는 용어가 아예 없기 때문에 말할 언어가 없어서 그냥 넘어가는 겁니다.
저는 그것을 꼬치꼬치 다 말하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에 말하는 거구요.
보통은 나 왔다 하지 여차여차 해서 왔다고 꼬치꼬치 말하지 않습니다.
말 안해도 눈치코치로 대략 알아먹으니까 대충 넘어가는 거지요.
그러나 그걸 굳이 시시콜콜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접니다.
그리고 과학과 같은 엄밀한 영역에서는 그것을 다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구요.
그냥 사슴이다 해야지 나의 눈동자 망막에 사슴으로 추정되는 피사체가 하나 진입했어.
이따위로 말하는 사람과는 아무도 사귀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학은 원래 그런 식으로 고리타분하게 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