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자의 가르침이 소중한가?
말 나온 김에 언어를 보태기로 하자. 생리중인 여성을 더럽다는 이유로 창문 없는 오두막에 감금하는 네팔의 Chaoupadi 관습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 네팔사람은 죄다 바보인가 하고 한탄하게 된다. 네팔 정부에서 차우파디 퇴치운동을 강하게 밀고 있는데도 지역 무당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마을에 무슨 사건이 터진다. 농작물이 말라죽었다고 치자. 무당들이 마녀사냥을 시작한다. 차우파디 전통을 깨트려 신을 분노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신의 징벌이 내렸다고 주장한다. 부모들은 이웃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아내와 자녀를 창문도 없는 토굴에 5일간 감금한다. 음식도 제한하고 우물에도 가지 못하게 한다. 코브라에 물려죽기도 하고 추워서 불을 피우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기도 한다. 교육의 신을 분노하게 한다며 그동안 책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까? 부자유친이 있으면 부모가 자식을 챙길텐데 무당이 마을을 챙긴다는게 문제다. 부모의 권력을 무당이 빼앗은 것이다. 문제는 권력이다. 네팔에도 똑똑한 사람이 있겠지만 애초에 등을 돌리고 있으므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무뇌좌파들은 뭐든 가르치면 된다고 믿지만 권력문제가 개입해 있으면 가르쳐줘도 듣지 않는다. 왜 부부유별이어야 하는가? 근친혼 때문이다. 부족민 세계에서 미성년자에 대한 친척의 성폭행은 예사로 일어난다. 부모가 자식을 겁탈하려 한다. 이때 자녀에게 물어보자. 부모나 오빠나 사촌이 완력으로 범죄를 저지르려 할 때 피해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환영한다. 이게 문제인 것이다. 원조교제는 피해자의 자발적 의사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 그게 폭력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면 평생 부모의 심리적 감금에서 탈출하지 못한다. 무엇인가? 핏케언제도의 성범죄는 피해자들이 심리적으로 제압된 경우다. 얼마전 사회문제가 된 지적장애인 노예노동과 같다. 심리적으로 제압된 상태에서 폭력범죄를 거부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받아들인다. 지금 한국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천오백 년 전 공자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흔한 일이었다. 씨발이라는 말이 왜 욕이겠는가? 제 애기와 씹할 놈이라는 말이 줄어든 것이다. 자녀에 대한 성폭행이다. 그런 시대였던 것이다. 70년대까지 중국 운남성이나 귀주성 오지마을에서는 흔했다. 성범죄가 성욕 때문에 일어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성욕이 아니라 권력욕이며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제압할 의도인 것이다. 상대방을 고분고분하게 만들겠다는 악의가 있다.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제압하여 심리적인 노예상태로 만들려는 거다. 시골의 텃세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한다. 권력동기가 작동한다. 풀뿌리 대안운동 한다며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안이하게 접근하다가 시골사람에게 된통 당하고 환멸을 맛보는건 흔하다. 깨달아야 한다. 도시사람이 먼저 시골사람을 제압하려 했기에 상대방도 도시사람을 제압하려 한다는 사실을. 귀농인을 보면 어 호구왔는가 하고 인사를 하는 판이다. 부부유별은 부부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와 농촌, 백인과 흑인, 다수파와 소수파 등 어디든 이질적인 집단이 서로 맞부닥치는 현장에 발생하는 문제다. 생각하라. 비단 군대의 소대장 길들이기뿐 아니라 어디든 이질적인 사람이나 세력이 맞닥들이면 말로 안하고 어떻게든 사건을 일으켜 심리적으로 제압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권력서열을 만든다는 사실을, 상대를 고분고분하게 만들려고 한다는 사실을. 그런 권력행동 앞에 지식인의 학식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공자의 가르침이 필요한 것이다. 제압하지 못하도록. 제압당하지 않도록. 소집단에서 작동하는 사설권력의 발호를 막아내도록. 문제는 현대사회에도 요소요소에 부족민이 짱박혀 있다는 거다. 기생충 서민이 바로 부족사회의 무당이다. 네팔정부가 무당권력과 충돌하듯이 문재인 권력이 엘리트부족과 충돌한다. 우리가 재벌족, 조중동족, 군부족, 기독교족, 사학족, 강남족 등 다양한 부족민의 발호를 경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간이 되어야 한다. 부족민은 배타적인 소그룹을 떠나 문명사회의 일원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래야 인간이다. 어떤 권력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인간과 비인간이 가려진다. 우리는 유교의 세례를 받았다. 그러므로 유교의 폐해만 알고 유교의 진정한 가치를 모른다. 공기 속에서 공기의 가치를 모르듯이. 한국인들이 비트코인에 과도한 쏠림현상을 보이는 것도 부자유친, 붕우유신, 군신유의, 장유유서가 과도하기 때문이다. 아들이 코인을 사면 아버지도 코인을 사는게 부자유친이다. 친구가 사면 따라서 사는게 붕유유신이다. 직원이 사면 사장도 사는게 군신유의다. 형님이 먼저 사고 동생은 나중 사는게 장유유서다. 삼강오륜은 별게 아니고 서로의 관계가 긴밀해야 한다는 거다. 한국인은 관계가 너무 긴밀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 어느 나라든 남의 말은 절대로 안 믿는데 한국인은 순진하게 믿는다. 친구가 사면 알아보지도 않고 막 산다. 구조론으로 보면 질의 결합이다. 서로의 관계가 긴밀하다는 건 일단 좋은 소식이다. 네팔이라면 정부에서 차우파디 관습을 퇴치하려고 무던히 애를 써도 안 되는데 말이다. 왜? 남의 말이라면 죽어보자고 안 듣거든. 근데 한국인은 너무 말을 잘 들어서 탈이다. 그냥 귀가 솔깃해서 코인 산다고 난리법썩. 유교 때문이다. 막연히 긴밀하면 안 되고 의사결정이 가능한 대칭과 호응 형태로 조직되어야 하므로 장유유서나 부부유별과 같이 현대사회에 안 맞는 도리도 있는 것이다. 살펴보면 부부유별은 대칭이고 장유유서는 호응임을 알 수 있다. 부부만 부부가 아니라 모든 대칭된 구도는 부부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관계도 분별해야 한다. 민주당 의원이 자유한국당 의원과 함께 노래방 가서 헬렐레 해 있으면 이건 부부유별이 아니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도 부부유별이 적용되어야 한다. 기레기와 국민의 관계도 부부유별이 적용되어야 한다. 장유유서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먼저고 국회의원이 나중이다. 국회의원이 국민 모아놓고 마이크 잡고 안 놓는다. 장유유서를 적용하여 금뺏지들은 행사장 연단에 오르지 말고 뒤에 숨어 있어야 한다. 머슴이 주제파악 못하고 연단에 오르면 곤란하다. 무대에 올라가서 한말씀 하려는 국회의원은 바로 끌어내려야 한다. 그게 장유유서다. 이런 규칙은 부단히 업그레이드 하고 볼 일이다. 현대사회에 맞는 부부유별과 장유유서가 있다. 모든 대칭에 분별이 있고 모든 호응에 서열이 있다. 네팔사람이 바보라서 차우파디를 하는게 아니다. 서민과 장정일 부류 부족장들이 부족민을 심리적으로 제압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성범죄의 진짜 목적이 제압과 굴복에 있는 것과 정확히 같다. 유시민이 정의당 같은 작은 집단에 숨으려는게 부족민 근성이다. 알아야 한다. 당신은 이미 제압되어 있다. 시어머니에 제압된 며느리도 있고, 엄마나 아빠에게 제압된 마마보이도 있고, 패거리 세력에게 제압된 엘리트도 있다. 노예는 자유를 얻어야 인간이다. 무당에게 제압된 미개인은 부족을 탈출하여 자기 중심의 긴밀한 가족을 조직하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야 인간이다. 생각하라. 당신은 이미 제압되어 있지 않은가? 그 사슬에서 풀려나와 독립해야 한다. 의사결정이 가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올바른 팀에 들어야 한다. 나쁜 무리와 얽히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족은 의사결정이 애매한 무리다. 평판공격을 받으면 인간이 망가진다. 가족은 숫자가 적어 안전하다. 때로는 부족도 필요하다. 네이버 웹툰족을 들 수 있다. 조석과 김규삼을 비롯하여 몇몇 작가들이 소부족을 조직하고 추장놀이 하고 있더라. 좋은 현상이다. 그런데 부족은 깨진다. 돈 많이 버는 만화가와 돈을 못 버는 만화가로 계급이 갈라진다. 부족이 망해서 가족이 된다. 아직도 조석과 몇몇은 가족관계를 유지할거다. 예술가로 성공하려면 뉴욕을 가야 한다. 세계 곳곳에서 모인 실력자들이 부족을 조직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시너지 효과로 이득을 누린다. 서로 표절하는 거다. 나도 네것 베낄게 너도 내것 베껴. 이런 그룹이 만들어지면 막강해진다. 그러나 결국은 다 깨진다. 구조론으로 보면 의사결정구조는 점점 작아져야 한다. 인상주의 화가들도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세력을 이루었다. 그러나 깨져야 한다. 이외수처럼 문하생을 거느리고 있으면 안 된다. 권력을 오로지 하려고 하면 안 된다. 퇴행이 시작되는 거다. 문단부족 안에 문단권력 작동한다. 충무로패거리 안에 영화권력 작동한다. 무슨 사단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처음에는 좋다. 점차 나빠진다. 결국 이수만 족장, 양현석 족장처럼 욕을 처먹게 된다. 처음에는 좋지만 기득권을 지키려 하는 순간 타락이 시작되는 것이다. 새로운 권력을 조직하고 낡은 권력을 타도해야 한다. 이수만 추장은 추악한 노예산업 때려치워야 한다. 작고 배타적인 패거리를 만들어 족장노릇 하고 싶은 심리 극복해야 한다. |
부족민이 아니라 천하인이 되라는 가르침은 사카모토 료마의 탈번 이야기나 손정의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학행을 간것이 떠오릅니다. 패거리를 떠나야하고, 천하인의 패거리 혹은 진보세력에 가담해야 한다.!
부족이란 부정적으로 쓰는 표현입니다.
긍정적으로 쓸 때는 제가 팀이라고 하지요.
진보는 질에서 입자, 힘, 운동, 량으로 계속 내려가는 겁니다.
계속 질 단계에 머무르면 안 됩니다.
아기는 순수하지만 계속 아기에 머무려면 백치죠.
신대륙에 처음 가면 교회를 짓습니다.
부족을 만드는 거지요.
계속 교회에 머무르면 안 되고 정부를 구성해야 합니다.
산업을 일으키고 일을 하고 축제를 합니다.
계속 전진하는 거지 머무르면 안 됩니다.
야구도 스토브리그는 프런트가 나서고
시즌이 개막하면 감독이 나서고 시합이 진행되면 선수가 나섭니다.
제가 프런트 야구를 강조하니까
시합도 선수가 아닌 프런트가 한다는 식이면 곤란합니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계속 가는 것이며
팀플레이가 강조되는 단계는 기 단계입니다.
물론 사건 속에 또다른 사건이 있고
그러므로 계속 팀이 강조되지만 하나의 사건 안에서는
계속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전개해 가는 겁니다.
그 과정은 마이너스입니다.
부족이 아예 없어도 안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부족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다만 고착화 되서
새로운 부족의 탄생을 막으면 안된다고 이해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신산업내에서 사업을 할때도
새로운 경쟁자 혹은 경쟁부족의 탄생을 막지않으면서도 이익을 증가시키려면, 상위포지션의
모델을 만들어서 새로운 진입자들이 하위포지션으로 들어올때 오히려 효율을 공유할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판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경쟁자 진입 허용 > 과당경쟁으로
인한 시장질서 혼란 방지 > 경쟁자들의 진입이 이익이되는 포지션우위 비즈니스 개발 >
시장성숙으로 인한 자연적 경쟁질서 (규모의 경제로 큰 회사들만 생존) 순으로 판이 돌아간다고
보입니다. 네이버 웹툰이라면, 해외판로개척 > 웹툰용만화형식 학원비즈니스 > 만화가지망생 부족화
게임업계라면 넥슨이 직접개발을 하는것이 아니라 해외 퍼블리싱 역할을 하고 중소개발업체를
키워 m&a 하는 전략도 비슷한 이야기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