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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500 vote 0 2024.10.13 (12:16:42)

    긍정 아니면 부정인데 사람들은 부정에 주목한다. 동서고금 거의 모든 철학은 부정의 철학이다. 긍정의 철학은 공자, 맹자, 원효, 율곡 정도다. 대중적인 인기가 있는 노자, 니체, 프랑스 철학은 모두 부정의 철학이다. 서점가 처세술 코너는 그 자체로 부정이다.


    독일 관념론 철학은 긍정과 부정이 반반이다. 헤겔의 정반합이 그러하다. 그러나 분열된 독일의 통일 과정이 긍정일 뿐 통일 후에는 패권을 추구하면서 부정주의로 변질되었다. 다윈의 생존경쟁 영향이다. 일본식 허무주의가 부정이면 유교의 군자론은 긍정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긍정주의에서 희소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유교의 긍정주의 정사론正邪論이 골수에 사무쳐 있어서 벗어날 수 없다.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나 중국의 찬쉐는 정사의 판단을 회피한다. 모든 것을 애매하고 모호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부정에 몰입하는 이유는 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긍정과 부정은 둘 다 필요하지만, 아는 사람은 긍정으로 부정까지 통제할 수 있으므로 긍정에 주목한다. 전기차 원페달 드라이빙은 브레이크가 필요 없다. 명필은 지우개가 필요 없다. 부정은 바보 인증이다.


    우주의 근본 원리는 부정의 원리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으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부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연스러운 처세술은 철학이 아니다. 글라이더가 이륙한 이후로는 나쁜 것을 제거하는 부정만 가능하다. 추가로 동력을 조달하는 긍정은 불가능하다.


    인간이 부정적 사고에 매몰되는 이유는 그렇게 만들어진 동물이기 때문이다. 총을 주고 적을 조준하여 쏘게 하면 쏘는 병사는 15퍼센트 이하다. 훈련하면 80퍼센트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긍정은 특별히 훈련해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아홉 살 때 인류가 다 틀렸고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30억 대 1의 대결이다. 당시 지구 인구가 30억이었다. 정사론正邪論은 그 상황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에서 영혜가 굴복하지 않듯이. 남들 눈치 보고 묻어가는 처세술은 부정이다.


    정사론은 오로지 정을 추구할 뿐 사는 필요 없다. 헤겔의 정반합 물타기 필요 없다. 구조론으로 보면 질에서 물꼬를 터주면 입자, 힘, 운동, 량은 에너지 낙차를 따라 자동진행이다. 흐르는 물은 스스로 물꼬를 찾아간다. 긍정만 필요하다. ‘예스’로만 대화해야 한다.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상대방 질문에 대답하는 포지션에 서면 이미 ‘노’가 되어 있다. 부정은 인간이 갑이 아니라 을에 위치한 사태다. 이미 망해 있다. 정상에서 전모를 보는 눈이 아니면 긍정은 불가능하다. 우주는 에너지고 에너지는 그 자체로 긍정이다.


    단, 정상에서 눈을 굴리는 때만 그러하다. 기슭에서는 무슨 수를 써도 긍정이 불가능하다. 아기는 긍정한다.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긍정하는 상황은 세력에 포함되었을 때다. 종교가 긍정한다지만 헌금을 강요할 때만 그러하다. 보통은 사탄을 부정한다.


    동성애 비난, 이교도 비난, 공산당 비난, 음주흡연 비난, 성생활 비난 거의 비난밖에 하는 게 없다. 왜?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실력이 없고 세력에서 밀려나고 환경이 나쁘면 긍정은 불가능하다. 반대로 철학은 실력자가 세력을 얻고 환경이 좋을 때 하는 것이다.


    철학이 고픈 배를 채워주지 않는다. 철학에서 돈이 나오지 않는다. 철학은 도구를 가졌을 때, 기운이 있을 때, 무리가 모였을 때, 물이 들어왔을 때, 그 상황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다. 간단하다. 1+1=2다. 이게 되는 사람은 진작에 뜨는 주식 샀고, 비트코인도 샀다.


    인류의 90퍼센트는 1+1=2가 안 된다. 호르몬 때문이다. 총을 쥐여줘도 쏘지 못한다. 적이 나를 쏘는 대도 쏘지 못한다. 윤석열한테 모욕을 당해도 맞대응 못 한다. 그냥 당한다.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는 것을 행하려면 철학이라는 이름의 훈련이 필요하다.


    강자는 철학이고 약자는 처세술이다. 약자의 철학은 없고 강자의 처세술도 없다. 약자는 세력을 모아 강해지는 방법으로 철학할 수 있다. 긍정의 철학은 있고 부정의 철학은 없다. 프랑스 철학은 처세술이다. 철학은 도구를 가진 사람이 도구를 사용하는 기술이다.

 

    칼이 있어야 무사의 철학이 있고 펜이 있어야 작가의 철학이 있다. 개나 고양이는 당연히 철학이 없다.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추론이 철학이다

2024.10.13 (13:41:16)

긍정 = 새가 비행을 할 때 처음에 에너지를 사용하여 기류를 타기 까지의 과정 

부정 = 비행 중 기류를 최대한 이용하면서 에너지를 절약하는 과정

부정의 철학은 에너지가 적게 들고 에너지가 적은 사람들은 긍정의 철학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랑 대화를 해보면 대부분 에너지는 적지만 권력은 얻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데


볼츠만의 자살에 대해 검색해 보니 주요 인물로 마흐가 등장하는데

마흐는 경험주의, 실증주의자로서 당시 볼츠만이 주장하던 엔트로피 이론에서 입자에 대해

딘순히 봤냐? 실증적이냐고 따지면서 볼츠만의 이론을 깍아내릴 뿐입니다

거기에 과학자들이 환호하며 합류했고

그게 학회의 움직임이 되어 대중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쳐 볼츠만을 괴롭게 했습니다

볼츠만은 자신의 이론이 인정되게 하려고 철학과 교수가 되어 노력해 봤지만

결국 인정되지 못하고 자살했다고 합니다 


긍정의 철학이 무언가를 비판한다는 건 그것이 틀린 이유는 더 좋은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를 얘기해야 하는데

마흐는 그런 실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틀렸다 그 이후를 얘기할 수 없고

지식은 권력을 획득하는 도구 정도로 인식하여 적은 비용으로 남을 까내리며 권력을 얻고자 하며

거기에 학회의 지식인들과 대중까지 합류해버리는데

볼츠만이 어떻게 하면 그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에게 구조론을 얘기하려고 해도 모든 논리의 근거가 엔트로피이며

그것은 과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같은 학문에도 적용된다고 얘기하면

엔트로피가 과학의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유사과학 아니냐 이렇게 나오더군요

왜냐면 그 사람들은 학문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믿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흐름을 따를 뿐 새로운 흐름을 만들거나 받아들일 생각은 없습니다

학회가 구조론을 인정하면 사람들이 구조론을 인정한다 이렇게 되게 되는데

볼츠만의 입장을 보면 지적 사기꾼들이 판치는 학회에서 인정되는 것도 불리한 게임일 수밖에 없다 생각이 듭니다

볼츠만의 통계역학, 수학적인 증명 왜 했을까? 결국 학회가 수학적 증명을 요구했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수학적으로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24.10.13 (15:45:50)

바보들과 대화할 필요도 없고 그들에게 인정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구조론은 바보들을 무시하고 원점에서 지식의 빌드업을 새로 시작합니다. 


인류에게 구조론이 과분하다면 그것은 인류의 잘못입니다.

지와 무지의 차이, 문명과 야만의 차이, 


긍정과 부정의 차이, 철학과 반철학의 차이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이유입니다.

뽕짝은 음악이 아니고, 이발소 그림은 그림이 아니고, 지하철 시는 시가 아닙니다.


하루키의 대중문학은 잘 팔려도 노벨상을 못 받고

파엘로 코엘료나 아멜리 노통브는 인기가 있어도 노벨상을 못받고


엉뚱하게 밥 딜런은 문학이 아닌데도 문학상을 받고 그러는게 다 이유가 있습니다.

진짜 문학이 가짜 문학에 인정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진짜는 문학이 아니라도 문학상을 받습니다.

물리학이 아니고 화학이 아니고 인공지능인데 물리학상 화학상을 받습니다.


진짜가 가짜를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것은 매우 이상합니다.

엔트로피는 구조론의 근거가 아니고 구조론이 엔트로피의 근거입니다.


수학으로 물리학을 써먹는데 물리가 수학의 근거가 아니고

수학이 물리학의 근거입니다. 수학의 근거는 수학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2]이상우

2024.10.14 (14:30:56)

불경기만 예측하는 미네르바 글에는 열광해도, 어떻게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선 침묵하거나

자기도 잘 모르니 원론에서만 머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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