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독일전을 이긴 것은
첫째 기성용이 빠졌기 때문이고
둘째 문재인 대통령의 격려 덕분입니다.
대통령의 격려는 심적으로 큰 영향을 줍니다.
보통 팀들은 어떤 형태든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이것을 선택하면 저것이 울고 저것을 선택하면 이것이 울고
그러나 지도자의 역량이란 그런 상황을 교통정리 하는 것입니다.
빠른 손흥민과 느린 기성용의 충돌인데
빠른 손흥민 중심으로 가야 하는데 손흥민은 아직 어리고
손흥민 중심으로 갔다가 팀에 내분이 일어나거나
지나치게 손흥민에 의존해서 역으로 상대편의 손흥민 올가미 전술에 당하거나
이렇게 될 수 있으므로 감독은 딜레마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딜레마를 타개하는 것이야말로 감독의 역량이라 할 것입니다.
독일의 몰락도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를 타개하려다가
역으로 징크스에 된통 걸려버린 것인데 역시 교통정리 문제입니다.
노쇠한 지난번 승리주역에 의지하면 감독이 바보되고
명성을 떨치는 선수가 지나친 권력을 휘둘러서 내분으로 망하는 징크스인데
독일은 역으로 지나친 세대교체를 해서 팀의 구심점이 사라졌습니다.
구조론으로 보면 스쿼드가 강해야 하며 이는 팀 안에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감독은 질이고 선수 중에 누군가 입자가 되어야 하는데 기성용이냐 손흥민이냐
스웨덴 전은 수비중심으로 가야하니 손흥민이 윙백으로 내몰려 물을 먹더라도
기성용 중심으로 수비를 굳건히 하고 키가 큰 전봇대 김신욱으로 스웨덴의 높이를 막는다?
말 되는 것 같지만 이게 개소리인게 키 대 키로 붙으면 평균 키가 큰 쪽이 이깁니다.
높이의 스웨덴과 높이로 붙으면 당연히 지는 거죠.
높은 대신 느린 스웨덴은 빠른 손흥민으로 잡는게 정답입니다.
그러므로 손흥민 중심으로 가야하는데 손흥민이 어려서 문제입니다.
어린 선수는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아서 큰 경기에서 위축되는게 보통입니다.
그러나 영국에서 뛰는 손흥민이 위축된다는게 말이 됩니까?
반대로 월드스타 손흥민을 처음 구경한 한국선수가 감동한 나머지 얼어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풀어주는게 바로 감독의 역할입니다.
펠레도 그런 심리문제 때문에 경기에 투입하지 말라는 여론이 있었는데
감독이 첫 시합을 망치고 궁지에 몰려 별수없이 어린 펠레와 가린샤를 넣었는데
실제로는 둘 다 개념이 없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펄펄 날았지요.
한국영화 및 영화의 멸망공식은 한국축구의 멸망공식과 같은데
각본을 허술하게 쓰고 본질과 무관한 정치를 끼워팔기 해서 면피하려는 것입니다.
독재정권을 겪으면서 엘리트 지식인들이 대중을 계몽할 의도로 이런
어긋난 끼워팔기 짓거리를 하게 되었는데 전통으로 굳어졌습니다.
히어로물을 한다고 해서 봤더니 용산참사를 이야기한다거나 하는 식이지요.
축구는 그라운드 안에서 답을 내야 하고 영화는 각본 안에서 답을 내야 합니다.
떡밥을 던지고 회수하는 데서 대칭과 호응을 촘촘하게 조직하는 거지요.
근데 미국영화와 드라마는 이런 쪽으로 너무 발달해서 클리셰 백화점이 되었고
한국영화는 정치를 암시하는 쪽으로 백화점이 되었는데
이명박근혜 10년간 야당쪽에서 정치적으로 암시를 하니까 박근혜가 개입해서
명량이니 인천상륙작전이니 국제시장이니 하면서 반공의 깃발을 내걸고
자유한국당 지지를 암시하는 것으로 맞불을 놓는 처참한 지경까지 갔습니다.
이제 정권을 찾아왔으므로 그 나쁜 버릇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옛날에는 일단 박근혜 한 번 까고 명박이 한 번 까고 영화를 봐야 제맛이었지요.
한국영화가 찌질해진 이유는 박정희 이명박 김영삼 박근혜 까야가야 하니까
일단 찌질이 컨셉으로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거지요.
각본으로 승부하고 영화 안에서 대칭과 호응을 촘촘하게 직조하는
제대로 된 영화는 아직 한국에 나온적이 없습니다.
박근혜 돌려까고 생태 환경 이런건 한번쯤 암시해주면
정의당 당원인 평론가와 언론기자들이 좋게 써주니까
대강 쓰레기 만들어도 흥행은 무난.
마녀가 제대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답은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