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야는 존재하지 않았다.
2) 금관가야 곧 구야국 이칭이 임나가라다.
3) 광개토대왕이 금관가야를 토벌한 후 잔존세력 일부가 대가야로 옮겨갔다.
4) 금관가야의 쇠퇴 이후 왜가 변진의 여러 국가를 임의로 묶어서 임나로 부르기 시작했다.
5) 일본이 변진 12국을 임나로 부른건 쇠퇴한 금관가야의 해상무역권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6) 금관가야는 한사군 잔존세력인 낙랑과 대방, 백제, 중국 및 일본에 철을 팔아 흥했다.
7) 철에 대한 무역권 문제로 광개토대왕이 신라와 손잡고 금관가야를 토벌했다.
8) 김수로왕의 '수로'는 '쇠나라'를 한자로 음역했을 가능성이 높다.
9) 일본이 금관가야를 수나라須那羅로 부른 것은 쇠나라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10) 가야라는 이름은 아유타국이 있었던 인도의 가야지방에서 옮겨온 명칭일 수 있다.
11) 금관이라는 명칭 역시 쇠를 관장한다는 뜻일 수 있다.
12) 금관가야의 쇠퇴 이후 가야의 철 중심에서 신라의 황금중심으로 무역권이 바뀌었다.
13) 포상팔국의 난에서 보듯이 변진소국은 금관가야를 맹주로 인정하지 않았다.
14) 가야의 주도국인 금관가야, 아라가야, 대가야(반포국)은 친신라로 기울었다.
15) 근초고왕은 대구까지 쳐들어가서 신라군을 격파하고 가야를 지배했다.
16) 가야 여러나라가 연맹을 맺고 신라에 맞섰다는건 역사가들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환상이다.
17) 가야연맹의 주도국으로 알려진 나라들이 오히려 신라를 빽으로 삼고 가야12국을 억압했다.
18) 일본에서 파견된 왜신관이 부추겨 일시적으로 가야가 연맹체 비슷하게 작동한 적이 있다.
19) 가야는 존재하지 않는데 일본이 부추겨서 변진12국을 백제와 연결하려고 했다.
20) 백제는 가야를 먹을 야심 때문에 일본의 제안을 거부하고 두 차례의 사비회의를 결렬시켰다.
21) 임나일본부는 왜신관의 일본식 표기이며 해상무역권에 따른 일정한 권력이 있었다.
22) 임나일본부 곧 왜신관은 통치기구가 아니라 해상무역권을 대표하여 왜왕이 파견한 사람이다.
23) 백제는 왜신관의 활동을 역이용하여 되레 가야12국을 백제의 지배하에 두려고 했다.
24) 대가야는 신라와 결탁하여 결혼동맹을 맺고 사실상 가야연맹에서 이탈했다.
25) 대가야는 한때 가야 12국을 지배하며 전제군주국으로 올라서려고 했다.
26) 결국 가야12국은 신라와 백제가 나눠서 먹었다.
27) 진흥왕이 가야 중에 7국을 신라토에 편입되었으나 의자왕이 도로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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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에 대한 여러가지 헷갈림은 가야연맹이라는 실체를 인정하는 실수에서 시작되었다.
가야연맹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가야가 없고, 가야가 없으므로 임나가 없고, 임나가 없으므로 임나일본부도 없다.
임나는 금관가야의 종주권을 의미하는데, 금관가야는 가야 12국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가야를 지배하지 못했다.
금관가야가 낙랑 및 대방, 중국일부, 왜와 철을 활발하게 거래했으므로 그 패권을 존중하여 임나라고 하는 것이다.
금관가야의 패권이 일시 존재했지만 그것은 무역권에 불과하며 정치적 지배권은 아니다.
광개토대왕 이후 금관가야가 신라의 속국이 되자 곤란해진 왜가 멋대로 변진의 여러국가를 임나라 불렀다.
임나는 분열과 대립을 거듭하던 가야 12국을 일본이 중재하여 백제와 연결할 의도로 일본이 지어낸 개념이다.
백제는 근초고왕때 가야지역을 모두 차지한 적이 있었던데다가
변진 12국을 모두 차지할 생각이었으므로 왜신관의 중재를 거절했다.
가야가 특별히 가야로 불린 것은 인도계 이주민이 철을 제련하고 고온에 토기를 굽는 기술을 가졌으므로
북방 유목민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고구려, 백제와의 문화적 차별성을 지적하여 만들어낸 개념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 금관가야와 다른 가야지방 소국들을 혼동하여 기록하는 바람에 모두 가야가 되었다.
전라도 지방의 장수, 무주, 여수, 광양 및 나주는 일시적으로 변진세력권에 속했다.
결론 :
가야는 존재하지 않으며 나중에 부여된 개념이다.
금관가야 곧 구야국과 대가야 곧 반파국은 가야가 아니라
그냥 구야국이고 반파국이며 가야라는 국명은 존재해본 적이 없다.
가야가 아니라 가야지방이라고 해야 한다.
가야의 쇠퇴는 낙랑과 대방이 고구려에 흡수되고
이들에게 철을 공급하던 가야를 광개토대왕이 밟아버렸으며
철을 구하지 못해 곤란해진 왜가 백제를 꼬드겨 가야를 살려보려고
왜신관을 두고 사자를 파견해 변진 12국에 여러차례 정치적 중재를 했는데
그게 유명한 안라회의 및, 두 차례의 사비회의이고 이걸 그럴듯하게 포장한게 임나일본부다.
임나일본부는 광개토대왕 이후 빼앗긴 왜의 해상세력권을 유지해 보려던 일본의 노력이었다.
처음 출발할 때 신라와 금관가야가 엇비슷했으나 신라가 황금으로 급성장하자
금관가야가 견제했으며 이 과정에 왜와 손잡았고 그러다 광개토대왕에게 털렸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는 구야국 곧 금관가야에 대한 이야기지 다른 가야국과 관계없다.
최종결론 : 황금이 철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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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최근 며칠간 가야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검색해보고 얻은 저의 결론입니다.
원래 연맹이라는건 잘 안 되는 겁니다. 일본 학자들도 인정하지 않는 임나일본부를
없다고 우기는 것도 이상한 일이며 우리는 우리식 호칭인 왜신관으로 부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