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왕이 가야땅을 다 가져갔습니다.
삼국사기에는 김유신이 죄다 되찾았다고 되어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백제가 먼저 마한을 먹고,
그 연장선상에서 낙동강 서쪽의 가야를 먹은 것이며
가야사는 마한사와 함께 연구해야 합니다.
가야는 그리스 소국처럼 분열되어 있었으며
우리가 아는 그런 연맹국가가 아닙니다.
가야국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가야는 자기네들끼리 주도권 경쟁을 벌여
금관가야가 신라를 끌어들이고
아라가야가 백제와 왜를 끌어들였으며
신라군이 금관가야에 눌러앉아 낙동강 동쪽을 먹고
백제군이 아라가야에 눌러앉아 낙동강 서쪽을 먹고
왜는 백제와 접촉하여 가야를 원상회복하려 했으나
백제왕이 단칼에 거부하여 백제가 가야를 상당히 먹었습니다.
이후 대가야가 주도권을 쥐고 백제 및 왜와 접촉하고
중국과 외교하여 세를 불렸는데
그 과정에 가야에 내분이 일어났고 신라가 대가야를 침략했습니다.
그러자 의자왕이 군대를 보내 가야를 도로 빼앗았습니다.
김유신이 도로 회복했다고 되어 있는데 사실은 알 수 없죠.
어쨌든 왜가 가야를 부흥시키려 한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가야가 있어야 철을 조달할 수 있으니까.
분명히 말하면 가야연맹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신라의 왕족이 되어 가야와 백제를 토벌한 김유신이 가야계니깐.
가야는 신라와 백제 사이의 중립지대 혹은 무역거점이며
가야출신의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어 연주하며 곡명에
가야의 지방이름을 붙일때쯤 해서 가야의 정체성이 형성된 거지요.
가야가 망하고 난 다음에야 가야라는 개념이 확립된 거.
위진남북조 혼란기에 동북아 무역루트가 죄다 깨져서
무역거점도시인 낙랑과 마한과 침미다례와 가야가 일제히 망한 거죠.
도시를 지배하는 고대 무역국가에서 토지를 지배하는 중세 봉건국가로 국가개념이 바뀐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