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루문에 잘 묘사되었지만
자기집 놔두고 남의 집에서 자는 겁니다.
부족민은 기본적으로 가족과 생활하지 않습니다.
일본도 비슷한데 아이는 마을 공동으로 키우는 거지
직계 가족에게 명확하게 소속되지 않습니다.
부족민은 열살이 되면 자녀를 집에서 추방합니다.
게르만족은 열다섯이 되면 추방한다는데
이러한 소년추방풍속이 화랑도의 기원이라고도 하지요.
가족이라는게 하나의 의사결정단위가 아니라는 거.
혹은 대가족제도라서 누가 가장인지 모호하게 되어 있는 거.
고대 중국사를 공부해본 분은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자식은 아비를 죽입니다.
아랍의 왕들은 형제를 죽이지요.
스무명 가까이 형제를 몰살시킨 술탄도 있고.
공자도 야합으로 태어나 신분이 낮았기에
젊어서는 온갖 잡일을 다 했고
부모는 당연히 산에 내다버리거나 죽입니다.
40살 넘어간 남자는 대부분 살해되어 존재가 없습니다.
효의 의미는 100명 이상의 대집단에서
10명 이하의 소집단으로 의사결정단위가 작아진 것입니다.
100명 정도의 대집단은 근친살인을 막지 못합니다.
당연히 형제를 죽이고 아비를 죽이니까요.
그래도 어머니는 잘 안 죽입니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의 효는 무엇이겠습니까?
10명 이하의 소집단에서
5명 이하의 극소집단으로 의사결정단위가 작아지는게 효입니다.
과거에는 충효와 의리를 강조했는데
충과 의리는 100명 정도의 대집단에서의 집단적 의사결정이며
효는 10명 이하의 소집단에서 의사결정이며
현대에서 강조하는 사랑은 최소 2명까지 의사결정단위가 줄어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충,효,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사랑이고
충효의 그리고 사랑 다음에 오는 것은?
한 명이 의사결정단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강한 개인이라는 말씀이지요.
김민석!!
여기저기 동교동계 만나고 돌아다니지 말고
조용히 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