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인이 참관하는 학생과학관에서의 특별수업이다. 자석에 쇠붙이를 붙여보는 간단한 실험이었는데 30분간의 실험이 끝나고 결과를 발표하란다. 한 명씩 지목하여 발표하게 했는데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자석과 쇠 사이에 어떤 힘의 방향성이 작용하고 있는데.. 여기까지 대답하는데 선생님은 무시하고 다음 사람을 지목했다. 40여 명 학생 중에 누구도 선생님이 만족할만한 대답을 못 했다. 지켜보는 참관인들 때문에 당황하여 얼굴이 벌개진 선생님이 스스로 발표한 정답은 자석이 쇠를 당긴다는 것이었다. 싱거운 답이다. 나름대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제법 근사한 답변을 제출했다고 여겼는데 선생님은 내 말을 콧등으로도 듣지 않았던 거였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는 자기장 개념을 제안하려고 한 것이다. 자석이 쇠를 당기다니? 이런 엉터리 말이 어디 있어? 당기려면 잡아야 하는데 뭘로 붙잡지? 손으로 잡나 발로 잡나? 눈에 보이지 않아도 손의 역할을 하는 무언가 있는 거야. 나는 실험실의 기구들에 흥미를 가지긴 했지만 실험실습으로 뭔가 성과를 얻은 적은 없다. 실험은 증명하기 위해 하는 것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를 발견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실험실습으로 답을 알아낼 수는 없고 다만 문제를 포착할 수는 있다. 자석에 쇠붙이를 붙여보고 답을 알 수는 없지만 자석에 쇠붙이를 붙여보고 선생님의 견해가 개소리라는 사실은 알아낼 수 있었다. 자석에 쇠가 붙는다면 자석이 반응한 것인가 쇠붙이가 반응한 것인가 주변의 공간이 반응한 것인가? 이건 까다로운 문제다. 나는 이 문제를 수년 동안 생각했다. 가시처럼 목에 걸려서 신경이 쓰였다.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느냐는 말이다. 한가하게 공부나 하고 있어도 되느냐 말이다. 그냥 선생님의 해답이 틀린게 아닌 거다.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문교부도 잘못했고 과학계도 잘못되었고 인류문명 전체가 통째로 잘못된 것이다. 이런 식의 접근은 정말이지 터무니없다. 조선왕조 시대에 잘 모르면 이게 다 귀신 탓이다 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말이다. 엄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메커니즘에 반응한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중학생 큰 형의 교과서를 읽었는데 뭔가 감명 깊었다. 왜냐하면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는 둥 하며 어린애 어르듯이 수준 이하로 쓰지 않고 제법 점잖게 써놓았기 때문이다. 독자를 존중하는 격조 높은 문체였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며 언어에 짜임새가 있었다. 과연 중학교라서 문장에 조리가 있었다. 하여간 사람을 갖고 노는 듯한 동화체 문장은 정말이지 짜증나는 것이다. 엄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제와 진술의 긴밀한 구조가 없다. 짜임새 없는 일방적 선언의 연속이다. 무슨 버들강아지가 꿈을 꾸냐고? 말이나 돼? 개똥 같은 소리를 하면 안 된다. 중학생 큰형의 교과서에서 발견한 것은 시스템과 체계와 구조와 패턴이다. 느낌 와주잖아. 와꾸가 딱딱 들어맞잖아. 틀이 잡혔잖아. 가다가 맞잖아. 이건 뭔가 되어가는 그림이잖아. 그렇지. 책을 쓰려면 이렇게 써야지. 초딩이라고 사람 무시하고 말이야. 학교 종이 땡땡땡이라니 유치하잖아. 애도 아니고 참. 애 맞긴 하지만 애 취급은 서러운 거다. 어떤 것이든 주장하려면 마땅한 체계를 가져야만 한다. 대칭되는 둘과 그 둘을 통일하는 제 3의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는 필수적인 체계의 갖춤이다. 수학공식처럼 당연히 들어가야만 하는 포지션들이 있는 것이다. 두 선수가 대결한다면 그 둘을 통일하는 배후의 주최측이 있고 반대편에 관중석이 있는 것이며 두 선수의 대결 이전에 주최측과 관중석의 대결이 있는 것이다. 괄호 안에 또 다른 괄호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색하지가 않다. 매끄럽게 넘어가준다. 주최측이 잘해야 관중석이 들어찰 것이며 관중석이 추임새로 반응해줘야 주최측도 거기서 힌트를 얻어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실상 승부는 주최측과 관중석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랑 위에서 전개되고 있는 두 선수의 치고받음은? 그것은 외부 에너지를 넘겨받아 연주하는 악기의 역할에 불과하다. 세상을 개별적 존재로 보면 안 되고 두루 연결시켜 시스템으로 보고 체계로 보는 관점을 얻어야 한다. 시스템system은 쌍sy으로 선다stem는 뜻이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 석가의 연기법이다. 2500년 전에 이미 갈파되었다. 항상 둘이 연결하여 함께 일어나는 것이 연기법이다. 자석이 쇠를 일방적으로 당긴다면 연결된 것이 아니며 함께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연기가 아니며 시스템이 아니며 그러므로 그것은 보나마나 거짓이다. 일단 언어가 아니다. 말을 하다가 말았으니 문장이 성립하지도 않는다. 말이 갖추어지지 않으니 언어가 아닌 개소리다. 언어는 다수 생략되고 함축되므로 화자가 대충 말해도 청자가 찰떡같이 알아먹으면 되지만 과학을 그따위로 하면 안 된다. 대충 씨부리기 없기다. 주변을 구석구석 잘 찾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항상 동시에 반응하는 둘의 쌍이 존재한다. 세상은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두루 연결되며 쉽게 꺼지지 않고 여진을 계속하는 거다. 맥놀이가 길게 이어진다. 반드시 아우라가 있다. 일의 다음 단계가 있다. 에너지를 타고 가며 관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 대괄호의 여닫음이 없이 그냥 툭 던져놓고 그걸로 끝내버리면 싱겁잖아. 생뚱맞잖아. 화장실에서 응가 때리고 밑을 안 닦은 기분이잖아. 노래를 불렀으면 앵콜이 떠줘야 하잖아. 박수라도 쳐줘야지. 그냥 끝나는 게 어딨어? 뜬금없기 없기다. 자연스럽지 않으면 안 된다. 치고 나가는 일의 다음 단계가 있고 에너지의 전개되는 방향성이 있어야 맞춤하다. 언제나 손잡고 함께 일어서고 손잡고 함께 쓰러진다. 완벽하다. 좋다. 그것이 메커니즘이다. 사실은 메커니즘의 형태로 기술되어야 하며 언어 또한 메커니즘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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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고 나가는 일의 다음 단계가 있고 에너지의 전개되는 방향성이 있어야 맞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