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셰프’라는 영화가 있다. 미슐랭가이드 별점에 관한 영화인데 흥행이 망해서 아마 본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 대략 이런 대사가 나온다. 싸구려 햄버거와 고급요리의 차이가 뭐냐? 햄버거는 질 나쁜 고기에 질 나쁜 빵에 질 나쁜 서비스라고 여주인공이 대답한다. 남주인공은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어차피 파리사람들은 다 그런 고기에 그런 빵을 먹고 있어. 그럼 우리가 만드는 고급요리는 질 좋은 고기에 질 좋은 빵에 질 좋은 서비스일까? 그게 전부가 아냐. 미슐랭가이드 별 셋을 받는 고급요리는 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한 창의적인 요리여야 하는 거라구. 햄버그가 싸구려인 것은 죄다 똑같기 때문이지. 공장에서 찍어낸 거잖아. 반면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해. 까먹었지만 영화가 주장하는 것은 대략 이런 음식철학인데 여기서 방향성이 드러난다. 유명 셰프를 고용하는 고급식당들은 언제라도 새로운 시도를 추가할 수 있다. 반면 햄버거집이나 피자가게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다. 뭔가 시도할 때마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직원들을 다시 교육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메뉴 하나 추가하기도 쉽지 않다. 반면 영화의 주인공은 그날의 메뉴를 현장에서 곧바로 결정하기도 한다. 그날 새벽에 들여온 재료를 보고 메뉴를 정하는 식이다. 방향성이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위하여는 방향성이 없다. 목표에 도달하면 그걸로 끝이다. 의하여는 방향성이 있다. 여진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공급되기 때문이다. 관성의 법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걸로 사건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버전으로 갈아타고 계속 가주는 것이다. 반면 위하여는 닫혀 있고 획일적이며 꽉 막혀서 답답하다. 의하여는 열려 있고 다양하며 풍성하게 계속 가는 것이다. 우리는 위하여라는 말에서 답답함을 느껴야 한다. 의하여라는 표현에서 뻥 뚫리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막힌 콧구멍에서 왕건이 코딱지를 발굴해낸듯한 상쾌한 기분을 느껴야 한다. 느끼지 못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무의미하다. 느끼려고 노력해야 느낀다. 어떤 주장이든 혹은 견해든 에너지원을 끼고 가고 방향성을 달고 가야 한다. 언어는 전제와 진술로 조직되어야 하며 전제는 에너지원을 제시해야 하고 진술은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전제도 없고 진술도 없는 잘못된 언어사용에는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그냥 이게 좋다거나 저게 나쁘다거나 하는 식은 곤란하다. 유아틱한 언어구사라면 슬픈 거다. 좋건 나쁘건 그건 지 사정이지 나더러 어쩌라고? 나와 상관없잖아. 에너지원이 있고 방향성이 있어야 내가 끼어들 건덕지가 있는 것이다. 내게 한마디 투척할 발언권이 돌아오는 것이다. 왜? 복제되니까. 복제되지 않는 언어는 필요 없다. 어디 가서 써먹지 못하는 정보는 가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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