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는 단순한 것으로 이긴다. 이것이 엔트로피의 의미다. 구조론으로 보면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다섯 매개변수 중에서 가장 높은 질과 가장 낮은 량은 단순하다. 질과 량은 에너지가 들어오고 나가는 절대성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중간의 입자, 힘, 운동은 복잡하다. 대칭을 운용하는 상대성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빈곤한 이공계 출신들은 중인들의 전문지식에 꽂힌다. 장인정신에 꽂힌다. 실패다. 중간의 입자, 힘, 운동으로 이겨봤자 잠시 이길 뿐 곧바로 상대방이 맞대응을 해서 원래상태로 돌아가는게 보통이다. 제갈량의 공격은 사마의가 막아내고 나폴레옹의 공격기술에는 웰링턴의 방어기술이 맞선다. 롬멜의 신출귀몰이라도 몽고메리와 패튼이 한꺼번에 덤비면 승세가 오래가지 못한다. 전술이 노출되어 언제나 걸맞는 맞수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주코프의 종심작전을 막을 사람은 없다. 징기스칸의 맞수는 원리적으로 없다. 카이사르의 맞수는 없는 거다. 그들은 에너지가 들어오는 입구 부분을 해결한다. 오자병법이 강조하는 압도적인 에너지 우위는 맞대응 방법이 원리적으로 없다. 손자병법의 전술은 맞대응이 가능하지만 오자병법의 전략은 맞대응이 불가능하다. 다만 한 사람만 그 위치에 갈 수 있다는 점이 함정이다. 이공계 워즈니악은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인문지식의 스티브 잡스는 인류 중에 한 사람만 된다. 워즈니악은 컴퓨터를 연구했지만 그 시점에 이미 10만 명이 컴퓨터를 연구하고 있었다. 잡스는 컴퓨터와 인간의 접점을 연구했다. 그는 인간을 파악한 것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인간은 단순하다. 그러므로 천재는 단순한 방법으로 이긴다. 그 단순한 방법이 사실은 어려운 방법이기도 하다. 조선왕조가 군사적으로 약했던 이유는 토지를 나눠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지를 나눠주면 봉건영주가 생긴다. 고려시대의 문벌귀족이 된다. 선비의 나라 조선이 귀족의 나라 고려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해결책은 없다. 그 길 없는 곳을 용감하게 가는 사람이 천재다.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뚝심이 있어야 한다. 미련한 유비는 가지만 영리한 제갈량은 절대 못 가는 길이다. 모르는 사람은 고수의 단순함을 하수의 단순함과 구분하지 못한다. 고흐의 인상주의 그림을 이발소 그림과 구분하지 못한다. 천재 노무현을 바보 노무현으로 착각한다. 세 치 혀로 천하를 주물렀던 유비를 쪼다 유비로 오해하는 고우영 화백의 실패다. 고수의 단순함은 중수의 복잡함을 거친 후에 최종적으로 완전성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일부 그런 측면도 있다. 복잡하게 가다가 늘그막에 원숙해지는 사람도 있다. 아니다. 중수의 복잡함을 거쳐 말년에 이르러서야 고수의 단순한 경지에 도달하는 사람은 뛰어난 수재일 뿐 천재가 아니다. 처음부터 고수의 단순함으로 가는 사람이 천재다. 물론 처음에는 단순함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시행착오를 거치기도 하지만 이 방향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꿋꿋하게 밀어붙여 결국 성공하는게 천재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인문계 유비처럼 단순하게 가다가 중간의 복잡함에 부딪히면 이공계 제갈량을 영입하면 된다. 워즈니악과 팀쿡과 조너선 아이브를 영입하면 당신도 잡스가 될 수 있다. 조조는 조씨와 하후씨 성을 가진 친족과 성씨가 다른 외부인을 일대일로 배치하는 복잡한 견제구조를 만들어냈지만 유비는 민중에게 직접 호소하는 단순한 구조를 만들었다. 조조시스템은 곧 사라졌지만 유비의 도원결의는 아직도 남아있다. 복잡한 중간기술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외주를 주면 된다. 천재는 에너지를 끌어오는 사람이지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아니다. 에너지를 끌어오려면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며 그것을 운용하는 중간기술은 전문가와 기술자와 장인들에게 부탁하면 된다. 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하지 말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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