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869 vote 0 2018.09.19 (20:31:32)


    엔트로피의 의미는 단순한 것에 답이 있다는 거다. 언제라도 외부에서 닫힌계 안으로 에너지가 들어오는 경로는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은 복잡하지만 오자병법은 단순하다. 전술은 복잡하지만 전략은 단순하다. 하부구조는 복잡하지만 상부구조는 단순하다. 물질은 복잡하지만 에너지는 단순하다. 기술은 복잡하지만 확률은 단순하다. 


    단순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의 미니멀리즘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하수는 단순하게 망하고 고수는 복잡하게 망하고 천재는 단순한 것으로 이긴다. 이발소 그림은 단순하게 망하고 아카데미파 그림은 기교 위주로 복잡하게 망하고 인상주의 그림은 단순하게 흥한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건축이든 뭐든 복잡한 것은 가치가 없다. 


    여기서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하수의 이발소 그림도 단순하고 고수의 인상주의 그림도 단순하다. 그러나 둘은 전혀 다른 것이다. 악필의 못 쓴 글씨도 단순하고 추사의 명필 글씨도 단순하지만 다르다. 악필의 못 쓴 글씨는 그냥 단순할 뿐이고 추사의 글씨는 단순한 그릇 안에 우주의 질서를 담아내고 있다. 음양의 밸런스가 있고 속도감이 있다.

   

    에너지가 있다. 고흐와 세잔의 인상주의 그림도 단순하지만 그 안에 독창적인 각자의 질서가 있다. 창의가 있다. 고흐의 질서와 고갱의 질서는 다른 것이다. 전통적인 그림이 기교가 뛰어나지만 기교로는 인간이 로봇을 이길 수 없다. 기교가 있어봤자 그 질서는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한 가지 질서일 뿐이다. 그 작가만의 독특한 질서는 없다. 


    하수 – 단순하다.
    중수 – 복잡하게 꼬아놨지만 표절이고 작위적이며 진부하다.
    고수 – 단순하지만 특별한 질서가 있고 그 질서는 새롭다.


    일본인들은 장인정신에 집착한다. 복잡한 것을 좋아한다. 중국가구의 불필요한 장식과 같다. 현란한 장식을 과시하지만 그게 단순반복이다. 조선백자는 장식이 없지만 그래서 가치가 있다. 요리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요리가 좋다. 열 시간씩 고아서 만드는 과잉요리는 지양해야 한다. 모기눈알요리처럼 희귀한 재료에다 과잉조리는 속임수다.


    왜? 질은 결합한다고 했다. 단순해야 외부와의 결합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리모컨에 버튼이 너무 많으면 조작하기 힘들다. 스마트폰에 버튼이 너무 많으면 피곤하다. 단순한 것으로 해결하려면 스티브 잡스의 인문정신이 요구된다. 조선왕조 시대에 왜구를 막기 위해 40년간 토론을 했다. 그 중간에 온갖 방법을 다 써봤으나 실패했다고. 


    육지로 유인해서 막자는 둥 바다에서 판옥선으로 막자는 둥 최무선의 화약무기를 쓰자는 둥 다양한 아이디어와 신무기가 고안되었다. 사실 간단한 문제다. 당나라처럼 절도사들에게 권력을 나눠주면 된다. 고려가 강했던 이유는 귀족들에게 권력을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영토를 나눠주면 봉건영주들이 자기 영토를 지키기 위해 방어를 잘만 한다.


    함경도를 지배한 이성계는 자기 영토가 있었기 때문에 충성스런 부하를 거느릴 수 있었다. 자기 영지가 없으면 일단 부하를 통제할 수 없다. 자기 땅이 있어야 부하들에게 토지를 나눠줄 수 있다. 부하의 충성을 요구할 근거가 된다. 단 그러다가 절도사의 권력이 강해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중앙집권 문제다. 답은 밸런스에 있다.


    이순신장군에게 실권을 주지 않고 문제해결은 불가능하다. 근본적인 해결이 정답이다. 그것은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며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사이의 균형에 도달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의 답은 단순하지만 실천은 어렵다. 항상 이런 식이다. 스티브 잡스의 미니멀리즘은 단순하지만 그 실행은 어렵다. 복잡한 디자인은 실행이 쉽다.


    단순한 디자인은 선 하나만 틀어져도 어색해지고 만다. 우리는 복잡한 것에서 답을 찾는다. 뛰어난 장수를 찾아내고 뛰어난 전술을 찾아내고 뛰어난 신무기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그냥 편제만 바꾸면 되는데 말이다. 징기스칸은 편제를 바꿔서 떴는데 말이다. 제승방략이니 진관체제니 복잡한 것이다. 복잡하게 풀려고 하니 답을 못 찾는 거다.


    장인들과 전문가에 대해 환상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쉬운 문제를 어렵게 꼬아서 해결하기 어렵게 만든다.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제승방략이라는 복잡한 제도를 연구한 것과 같다. 답은 단순한 데 있다. 그것은 부하의 충성이다. 지휘관이 부하에게 줄 것이 있어야 부하가 충성한다. 줄 것은 토지다. 이순신에게 토지를 분배할 권한은?


    단순한 것에 답이 있으며 그 답은 전술에 있지 않고 전략에 있다. 전술은 전장 안에서 답을 찾는다. 전략은 전장 바깥에서 답을 찾는다. 왜구를 내륙으로 유인해서 격파할 것인가 바다에서 판옥선으로 막을 것인가 화포를 쓸 것인가. 편전으로 이길 것인가 이런 것은 전술적인 것이며 하부구조에 속한다.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의 균형은 전략이다. 


    전장 바깥의 것이다. 에너지를 끌어내는 문제다. 진정한 답은 전략에 있고 전장 바깥에 있고 상부구조에 있고 단순하게 있다. 에너지를 끌어내면 된다. 부하가 상관에게 충성하는 구조를 만들면 된다. 땅을 나눠주면 된다. 그러려면 중앙집권을 깨야 한다. 민주주의도 단순한 거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충성하도록 하기 위해 권력을 나눠준 거다.


    선조가 중국군대를 끌어온 것은 단순한 해결책이지만 진짜다. 내친김에 누르하치 부대까지 불렀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만한 역량이 안되지만 말이다. 답은 단순한 데 있고 역사의 천재들은 단순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그것을 실천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단순하다. 이거 아니면 저거다. 물질이 아니면 시공간이다. 50 대 50이다.


   그냥 찍어도 50퍼센트 확률로 맞출 수 있다. 필자도 17살 때 그냥 찍어봤다. 그러자 구조론이 만들어졌다. 눈감고 찍으면 된다. 어차피 이판사판이라 이거 아니면 저거다. 이게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므로 저것이 맞다는 사실 역시 명백하다. 얼마나 쉽냐? 단지 에너지가 들어오는 경로를 슬쩍 바꿔주기만 하면 된다.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가?


    장인의 현란한 기교에서 나온다? 아니다. 인상주의는 다르다. 작가가 제안하는 독창적인 질서에서 나온다. 추사의 글씨에는 그 질서가 있다. 규칙성이 있다. 간단하게 파악이 된다. 글씨를 아무리 잘 써도 한석봉 글씨에는 독자적인 규칙성이 없다. 다른 사람의 글씨를 잘 베꼈을 뿐이다. 사건 안에 에너지를 끌어오는 경로는 하나뿐이니 쉽다.




   

     POD 출판 신의 입장 .. 책 주문하기 


    POD출판이므로 링크된 사이트를 방문하여 직접 주문하셔야 합니다.


[레벨:17]눈마

2018.09.19 (21:06:46)


"The role of a magician is to make simple things appear mysterious. The role of a teacher is to make mysterious things appear simple."


http://www.rle.mit.edu/dspg/people_faculty.html

[레벨:9]회사원

2018.09.19 (21:16:08)

고수의 단순함은 오히려 더 만들어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게 하수의 단순함이라 오판하는데, 고수의 단순함은 중수의 복잡함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완전성에 도달한 사람들에게서만 나오는 것 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8.09.19 (22:14:08)

중수의 복잡함을 거쳐 

고수의 단순함에 이르는 사람은 수재일 뿐 천재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고수의 단순함으로 가는 사람이 천재지요.

물론 처음에는 단순함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시행착오를 거치기도 하지만


꿋꿋하게 밀어붙여 결국 성공하는게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유비처럼 단순하게 가다가 중간의 복잡함은 제갈량을 영입하면 됩니다.


워즈니악과 팀 쿡과 조너선 아이브를 영입하면 잡스가 될 수 있습니다.

조조는 친족과 외부인을 일대일로 배치하는 


복잡한 견제구조를 만들어냈지만 

유비는 민중에게 직접 호소하는 단순한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레벨:9]회사원

2018.09.19 (23:12:46)

아 그렇군요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432 김기태의 복수야구 1 김동렬 2019-05-22 4140
4431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1 김동렬 2019-05-21 4486
4430 천국은 없다 4 김동렬 2019-05-20 4513
4429 돈은 찍어내고 봐야 한다 5 김동렬 2019-05-19 4420
4428 제프 쿤스 그리고 4 김동렬 2019-05-18 4713
4427 천재도 유행을 탄다 2 김동렬 2019-05-17 4628
4426 만남이 천재를 결정한다 6 김동렬 2019-05-15 8600
4425 아인슈타인의 직관과 보어의 입장 image 5 김동렬 2019-05-14 4627
4424 최단경로가 이긴다 1 김동렬 2019-05-13 4442
4423 구조론은 순서다 1 김동렬 2019-05-12 4261
4422 위하여는 배척된다 17 김동렬 2019-05-11 4393
4421 수학적 직관이 답이다 3 김동렬 2019-05-10 4438
4420 있음과 없음[수정] 10 김동렬 2019-05-09 4693
4419 장이 정답이다 5 김동렬 2019-05-07 4522
4418 질문은 성의있게 해야 한다 4 김동렬 2019-05-07 4203
4417 실체냐 관계냐? 1 김동렬 2019-05-07 3689
4416 있음과 없음 7 김동렬 2019-05-06 4135
4415 구조론 다음은 없다 1 김동렬 2019-05-06 3764
4414 허무는 없다 1 김동렬 2019-05-03 4662
4413 악의는 없다. 1 김동렬 2019-05-02 4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