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는 그만 잊어버려라. 제프 베조스가 기발한 아이디어로 성공한 것은 아니다. 올바른 방향설정으로 성공했다. 아이디어가 한 개 나오면 아직 아이디어가 나온 게 아니다. 아이디어가 백 개쯤 나오면 그 아이디어들에 공통된 어떤 패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패턴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그 패턴을 지배하는 원리를 찾았을 때 비로소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말할 수 있다. 창의력은 자연의 숨은 규칙을 발견하는 능력이다. 규칙은 그 관측대상에 존재하는게 아니고 자연에 있고 우주에 있다. 진리에 있다. 가득 차 있다. 주목하는 대상과 상관없이 수학적으로 그냥 펼쳐져 있다. 어떤 구체적인 대상과 결부시켜 짜여진 아이디어는 진짜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것은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가 아니다. 등불처럼 어두운 동굴 속을 비추는 이데아를 찾아야 한다. 그 진짜 이데아는 아이디어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깨달음이다.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해서 곧 발명을 하겠다거나 혹은 작품을 쓰겠다거나 하며 설레발이를 친다면 아마추어다. 물론 그런 설레발이도 소년기의 에너지가 된다. 설레발이를 백 번쯤 하다 보면 알짜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레발이는 설레발이다. 흥분해서 밤잠을 설치곤 하지만 사흘만 지나면 시큰둥해진다. 만약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 그 아이디어의 아이디어를 파악하라. 아이디어의 자궁을 추적하라. 패턴을 발견하고 규칙성을 포착하라. 그 패턴들에서 하나의 소실점을 찾아라. 모든 아이디어에 공통된 무언가를 포착하라. 그리하여 마침내 아이디어의 대량생산 시스템을 조직하라. 잡스의 미니멀리즘이 그러하다. 잡스의 미니멀리즘이라는 하나의 소실점으로부터 등불처럼 비추어진다. 미니멀리즘이라는 등불을 앞에 놓고 피사체를 그 뒤에 두고 맨 뒤에 스크린을 설치하면 스크린에 펼쳐지는 그것이 바로 아이디어다. 뇌 안에 그 등불과 피사체와 스크린의 연쇄구조를 조직하라. 결정적으로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야 한다. 그것은 에너지원이다. 광원이 있고 다음에 등불이 있다. 양초가 있고 다음에 불꽃이 있다. 에너지원과 등불과 피사체와 스크린과 아이디어다. 잡스의 미니멀리즘이 등불이면 배후의 에너지원은 의사결정의 어려움이다. 잡스는 초기부터 퍼스널 컴퓨터는 가전제품처럼 조작하기 쉬워야 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평생동안 그 사상에 잡착했는데 나중에는 그 사상이 오히려 병통이 되고 고집이 되었지만 그런 것이 진짜 아이디어다. 잡스의 2차 아이디어인 미니멀리즘만 보고 1차 아이디어인 의사결정원리를 못 보면 바보다. 다섯 가지 아이디어가 순서대로 조직되어야 하며 각자 제 위치를 찾아야 한다. 그게 되기 전까지는 아직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말할 수 없다. 그냥 어떤 계기를 찾은 것뿐이다. 당신은 아직 아이디어를 찾은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찾도록 유인하는 미끼를 물어버린 정도이다. 이데아를 얻으려면 먼 길을 가야 한다. 광원과 등불과 피사체와 스크린을 얻지 못했다면 아직 멀었다. 만약 그것이 되었다면 아이디어는 대량생된다. 작가는 작품을 끝없이 생산해낸다. 마치 곽백수 화백이 서랍에 쟁여둔 만화를 툭 던지듯 한다고 네티즌이 농담하듯이 말이다. 머리를 쥐어짜서 작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돌려서 작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캐릭터와 캐릭터들 간의 밸런스가 그 아이디어 기계 역할을 한다. 자궁 역할을 한다. 작가라면 반드시 그것이 있어야 한다. 아마추어가 운 좋게 그럴듯한 작품을 쓸 수는 있지만 맥락을 연결하지는 못한다. 조금 하다가 곧 이문열병에 걸리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21세기 인류문명 안에서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미로에서 헤매게 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서예작품은 무조건 글씨의 굵기가 균일해야 하며 설사 불균일해도 그 안에 어떤 규칙성이 있어야 한다. 엉터리 달마도는 선의 굵기가 불균일하다. 추사의 붓은 굵기가 균일하지만 더러 불균일한 것도 있다. 그러나 그중에도 확실히 규칙성이 있다. 소실점이 있다. 기준이 있다. 방향성이 있다. 작품들 사이에 맥락이 연결된다. 그런 내막을 모르고 그냥 눈에 띄는 작품 한 가지를 출품했다고 작가로 된 듯이 깝치면 곤란하다. 작가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 그들은 머릿속에 기계를 하나씩 숨겨두고 있다. 조석도 기계가 있더라. 너무 편하게 기계에 의지하다 매너리즘에 걸렸지만. 곽백수도 기계가 있다. 고행석도 기계가 있다. 캐릭터가 있고 캐릭터들 사이에 밸런스가 있다. 대칭이 있고 대칭축이 있고 축의 이동이 있다. 천변만화로 변주가 되고 진보가 된다. 진보의 방향성을 추적할 수 있다. 광원과 빛과 피사체와 스크린과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조가 있다. 천재는 특별한 방법을 쓴다. 당신은 천재의 기계를 훔쳐야 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 써먹은 방법을 당신은 훔쳐야 한다. 자음과 모음 사이에 대칭이 있고 밸런스가 있다. 음양이 있고 조화가 있다.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보편성이 있다. 온갖 변화를 감당하는 절대 변하지 않는 그것이 있다. 그것이 없으면서 다양성을 추구해봤자 물에 물타기가 되고 술에 술타기가 된다. 아이디어는 변화지만 변하지 않는 것에 의지해서 변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