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선과 선의 대결이라는
전쟁철학의 문제입니다.
비행기와 전차를 중심으로 하는
현대전의 개념이 없었던 거죠.
그럼 현대전의 개념으로 바꾸면 될 게 아니냐고요? 천만에.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소련은
모두 제국주의를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스페인 내전을 눈여겨본 독일과
핀란드와 겨울전쟁을 벌인 소련은 현대전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군부의 세력화를 걱정해서
숙청에 몰입하느라 전쟁철학을 바꿀 수 없었고
독일은 육군본부의 세력화를 걱정해서
결정적인 순간에 히틀러가 발목을 잡는 바람에
덩케르크 철수를 방조한 셈이 되었고
일본은 육군과 해군의 내부갈등을 해결하지 못했으며
모든 제국주의는 식민지 지배를 위해
감투정신을 찬양하고 전쟁에서는 그저 죽는 게 최고다 하는 사상에 빠져 있었으며
1차대전 때 배운 학살대결의 연잔성상에서
나는 100만 명의 병력이 죽어도 눈도 깜짝 안 한다는 전쟁광의 논리로 무장했으며
이는 당시의 인종차별주의와 연결되어
그냥 줄 서서 죽는 용감한 전쟁을 겁내면 비난을 받았으며
크림전쟁에서 포화 속으로 질서정연하게 걸어가서 전멸한 바보 영국군은 크게 찬양을 받았으며
진정한 전쟁이란 바보처럼 줄 서서 죽는
죽음의 미학에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전쟁의 철학을 바꾼 게 히틀러와 롬멜의 하층민 사상인데
이들은 출신이 천하기 때문에 용감하게 줄 서서 죽는 엘리트의 죽음의 전쟁미학을 거부하고
죽는 전쟁이 아니라 사는 전쟁을 꾀했는데
주코프도 할힌골 전투를 통해 이런 것을 알고 있었죠.
문제는 이런 잘못된 죽음찬양의 전쟁철학을 바꿀 수 없다는 거죠.
왜? 빌어먹을 인종주의 때문에.
우리 위대한 영국인들은 아무리 포화가 빗발쳐도
절대 후퇴하지 않고 그냥 죽는다네 대단하지. 역시 영국인은 위대해.
이런 사상을 바꾸는 즉시 식민지인의 봉기에 직면하게 되므로
당시 인도인 300만을 학살하고 있던 살인마 드골은 바보전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프랑스는 너무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던데다가
전쟁철학을 바꾸는 즉시 모든 식민지가 봉기할 것이므로
소련 역시 당시 거대제국이라서 흡수된 주변국가 인민을 제압하려면
바보전쟁의 철학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독일은 식민지가 별로 없었던데다가
하층민 출신의 히틀러와 롬멜이 아리안족 제일주의라는 슬로건을 걸고
전쟁은 절대로 최고지휘관의 통제에 따라야 한다는 당시의 지상명령을 깨고
현장에 있는 지휘관의 직접 정찰에 의한 판단을 중요시했는데
이는 독일 육군본부의 과도한 자신감을 불러일으켰고
히틀러는 공군을 통해 이런 육군의 오버를 깨려고 괴링에게 덩케르크를 맡겼고
즉 육군이 공을 세우지 못하게 막아버린 거죠.
그 이유는 육군본부에 구 프러시아 귀족이 잔뜩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전쟁철학이 바뀌지 않으면
미국의 압도적인 물량전이나 영국의 고지식한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의 문제가 있다는 거죠.
모든 원인은 구조에 있고 구조의 뒤에는 철학이 있으며
그 철학의 배후에는 인종주의가 있습니다.
인종주의를 버리면 식민지를 포기해야 하는 거죠.
마지노선의 진짜 의미는 식민지를 포기할 수 없었던 프랑스인의 비겁한 생각이 숨어 있다는 거죠.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송영길 의원의 경우, 당일 새벽 2시 전후 여야 원내 사령탑 수준에서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다음 과정은 무난히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 하에 이미 예정된 지방일정을 진행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광주를 거쳐 진주를 향하는 시점에서 자한당의 자작극이 유발되면서 비상이 걸렸던 것이랍니다.
다행히 지방에서 예정됐던 일정은 무난히 치뤄졌고, 덕분에 러시아 특사로 다녀온 생생한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답니다.
2시간여의 토크쇼를 진행하는 내내 충혈된 눈과 지친 모습에서 짠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