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절하지 마라 울산의 한 사립고교 교장이 전교생을 모아놓고, 교사의 성적조작 범죄를 대신 사과하면서 108배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사과받은 학생들 기분이 좋았을까? 왜 학생들은 교장이 108배를 하는 동안 말없이 앉아서 고개숙이고 있어야 했을까? 학생들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왜 강당에 끌려와서 앉아있어야 했을까? 충격적인 것은 그 기사에 달린 리플들이다. 다들 변태교장을 찬양하고 있다. 끔찍한 일이다. 이건 전형적인 후진국 모습이다. 어떤 이유든 인간은 절을 하면 안 된다. 제사를 지낸다거나 하는 종교적 의례는 논외로 해야겠지만 말이다. 필자가 꼬맹이였을때, 제일 역겨웠던 교육의 장면은, 부모나 혹은 선생이 자기 자식이나 혹은 자기 제자에게, 자기 종아리를 때리라고 회초리를 쥐어주는 범죄행위다. 정말 이건 끔찍한 거다. 기껏 가르치는게 폭력에 패륜인가? 평생 갈 트라우마를 심어주고 상처를 주려는 행동. 누굴 때려서도 안 되지만 더구나 부모나 선생을 때리면 안 된다. 선생을 때리느니 그 자리에서 사제관계를 끊는게 맞다. 이건 점잖지 못한 행동이며 초랭이가 방정을 떠는 짓이다. 학교는 교육의 현장이다. 교육은 법대로, 규정대로, 원칙대로 가는거지 저런 편법, 야매, 꼼수, 물타기, 야료를 가르치는게 아니다. 이건 전형적으로 봉건사회의 모습이다. 요즘 삼보일배하는 당이 있는데 패죽이고 싶다. 솔직히. 이석기 출당시키는거 하나가 힘들어서 삼보일배 하는 거다. 미친새끼들이 아닌가?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존엄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무릎을 꿇지 말아야 한다. 교장이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 교육을 패대기친 것이다. 이게 정치가의 행동일 수는 있어도, 교육자의 행동일 수는 없다. 정치는 사죄를 할 일이 있으면 사죄를 해야겠지만, 교육은 절대 그렇지 않다. 이 사건은 문제교사와 국가시스템 사이의 문제이지 그 학생들과는 상관없다. 교육부와 관계가 있다. 시험부정의 피해자는 대한민국이지 학생이 아니다. 풍림화산이란 말이 있다. 기병은 바람처럼 몰아치고, 보병은 숲처럼 질서정연하며, 장교들은 불처럼 열정적으로 움직이고,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 산은 다케다 신겐이다. 리더는 경솔하게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가? 산이 움직여서 전쟁에 패하고 만다. 부지기수다. 이괄의 난 때다. 이괄의 반란군이 도성을 점령하고 무악재에서 관군과 붙었다. 이괄은 항왜병을 주축으로 조총을 쏘았는데 갑자기 돌풍이 불어서 눈에 먼지가 들어갔다. 조총을 쏘기 어렵게 되자 바위 뒤쪽으로 진영을 조금 물리게 했다. 수帥자가 씌어진 원수깃발이 50미터 정도 뒤로 옮기자 그대로 전군이 붕괴했다. 산이 움직이면 병사는 동요되고 전군이 괴멸된다. 그대로 상황종료. 남북전쟁에서 남군은 북군을 차타누가 계곡으로 몰아붙여 북군을 전멸위기까지 몰아붙였다. 식량이 고갈되어 굶어죽기 직전에 그랜트 장군이 구원하러 왔는데, 남군은 고지에 진을 치고 북군을 고지로 유인했다. 지난번에 패주한 토마스의 부하들은 패전의 수치를 씻으려는 듯 무리하게 돌격하고 있었다. 남군의 유인전략에 속아 무리하게 고지를 기어오른 것이다. 그랜트가 군대를 정지시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전군이 붕괴할 찰나 기적이 일어났다. 고지로 북군을 유인하려던 남군이 고지를 넘어서 계속 도망가버린 것이다. 북군을 유인하기 위해 미끼 역할로 기슭에 포진해 있던 남군이 고지로 전술적 후퇴를 해오자, 후퇴명령이 떨어진줄로 착각한 고지의 남군이 그대로 도망쳐버린 것이다. 그걸로 상황종료. 이런 식의 황당한 패주는 역사에 매우 많다. 어떤 경우에도 리더는 경솔하게 군대를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비수전투는 특히 유명하다. 전진의 부견이 112만 대군을 이끌고 8만군대로 맞선 동진을 칠 때의 일이다. 비수 강가에 진을 쳤는데, 동진의 장수 사현은 부견에게 편지를 보내, 강가에 포진해 있는 전진의 군대를 조금만 뒤로 물려주면 강을 건너가서 일전을 벌여 끝장을 보겠다고 말했다. 부견은 동진의 군대가 강을 반쯤 건넜을 때 공격하여 섬멸할 계획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동진의 기병 8천명이 강을 건넜을 때 뒤로 조금만 물려주려고 하던 전진의 군대는 그대로 계속 뒤로 물러가서 그대로 괴멸했다. 뒤에 있던 부대가 후퇴명령이 떨어진 걸로 착각하여 무질서하게 내빼다가 좁은 협곡에서 자기편끼리 밟혀죽은 것이다. 8천명으로 100만명을 섬멸한 역사에 남을 전쟁이다. 어떤 이유든 대장은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변태교장의 사이코 행동이 진정성 없는 쇼라는 말은 아니다. 나름대로 진정성 있는 똘끼발휘다. 세상은 넓고 괴짜는 많은 법이다.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지적하는건 그 행동이 비교육적이라는 거다. 선비는 저런 괴상한 행동, 돌발행동, 다수가 합의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자와는 절대 사귀지 않는다. 그런 괴짜행동은 거기에 모인 모든 교사, 모든 학생의 합의를 끌어낼 수 행동이 아니다. 그럴수록 규정대로, 원칙대로, 법대로 흔들림없이 대처해야 한다. 어떤 이유든 사람을 놀래키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며 말이나 개도 놀래키면 안 된다. 그런 행동은 본받을 교육자의 행동이 아니라 정치가의 꼼수다. 사과는 넙죽넙죽 잘 하는 도쿄전력 사장과 같다. 말로 때우려 하고 쇼로 때우려는 것이다. 설사 선의가 있고 진정성이 있다고 해도 신문에 나올 행동, 해외토픽에 나올 행동을 하면 안 된다. 경솔한 행동이다. 그가 무릎을 꿇었을 때 대한민국의 모든 교장은 동시에 무릎꿇은 것이다. 개인의 행동이 결코 개인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사구분도 못 하는가? 외국의 국가원수가 한국을 방문할 때, 조선시대 전통군인 복장으로 사열을 하는데 병사들이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전통군인들은 철갑옷을 입은 갑사인데 두정갑을 입어서 고개를 숙일 수 없다. 숙이면 그대로 자빠진다. 옛 기록을 보더라도 병사들은 어떤 경우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육군에서 고개 숙여 경례를 하던가? 고개 숙인다는 것은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오마이뉴스에 이런 내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 지구상에 고개 숙여 절하는 군대는 없다. 고개 숙이면 무거운 투구가 벗겨지기 때문이다. 투구 엄청 무겁다. 철갑옷이라 구조적으로 무릎을 굽힐 수 없다. 게다가 병기를 들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움직이면 옆에 있는 동료병사가 창에 찔린다. 부끄러운줄 알아야 한다. 자기나라 군대에게 외국 정상에게 고개숙이라고 하는 지휘관은 매국노다. 상상할 수도 없다. 사열이란 장군과 병사가 눈을 맞추는 건데, 병사가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군기가 잡혔는지 알아볼 수가 없다. 모든 병사는 고개를 빳빳히 들고 눈을 부릅뜨고 외국 정상을 째려보고 있어야 한다. 올림픽 태권도 시합 때의 일이다. 많은 나라의 언론이 한국 태권도의 우스꽝스러운 절하기 룰을 지적했다. 창피하지 않는가? 절하면 이미 진 거다. 이미 승부가 났는데 왜 시합을 하나? 어떤 이유든 절하게 하면 안 된다. 존엄의 훼손이다. 짐승이면 괜찮다. 먹이만 주면 헤헤거리고 고개 숙이고 눈치본다. 인간은 어떤 경우라도 허리를 굽히지 말아야 한다.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무엇이 교육인가? 케냐의 어떤 백인이 원주민 마사이족을 죽게 했다. 흑인을 매질하고 기둥에 묶어놨는데 다음날 보니 죽어 있었다. 백인은 변명하기를, 흑인은 원래 손 안 대고 자살하는 능력이 있으며, 묶어놨는데 스스로 죽었다고 말했다. 죽기 직전에 ‘나 죽어버릴거야.’ 하고 소리치는걸 들었다는 목격자를 증인으로 세웠다. 백인으로 이루어진 케냐 법정은 2년 동안 재판을 끌다가 흑인이 자살했을 가능성을 감안하여 과실치사로 2년형을 때렸다. 마사이족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을 죽였으면 큰 소 두 마리와 양 열 마리를 내놔야지 무슨 감옥행이란 말인가? 흑인의 피해는 전혀 보상되지 않았다. 무엇이 옳은가? 흑인의 입장은 살인자와 피해자의 일대일 관계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런가? 성폭행을 해놓고 피해자와 합의하면 그만인가? 돈만 많으면 성폭행을 아무리 저질러도 괜찮겠네? 분명히 말한다.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사건이 아니라, 사회질서와의 관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범죄는 문제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과의 사이에서, 아니 전 인류와의 관계에서 일어났다. 그는 사회의 신뢰를 파괴하여 인류를 해쳤다. 소 몇 마리 물어주면 살인해도 그만인가? 마사이족 룰로는 그렇다. 소만 내놓으면 된다. 왜 소를 내놓지 않고 범인을 감옥에 가두냐 말이다. 소를 내놓아라 하고 데모를 해봤지만 영국 법정은 꿈쩍하지 않았다. 중국학교 사진을 보자. 컨닝을 방지하기 위해 이런 짓을 하고 있다. 이게 교육적인가? 이건 교육이 아니다. 교육파탄이다. 학생을 의심했다면 그 자체로 비교육이다. 차라리 컨닝을 하게 하는게 맞다. 시험부정이 일어나면 시험을 다시 치는게 맞지, 이건 아니다. 시험부정을 막는 실용적인 대응이지만, 이미 교육은 망해 있다. 교실이 지저분하다. 가난이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빈곤해도 의관을 바로 해야 한다. 차라리 학생들에게 일을 시켜서라도 페인트칠은 해야 한다. 떨어진 쓰레기는 주워야 한다. 다같이 맨바닥에 앉아서 수업해도 괜찮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이건 교육이 아니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앉아서 굶어죽을지언정 땅에 떨어진 밥알은 주워먹지 말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배우느니 차라리 죽창들고 북경으로 진군하는게 맞다. 아닌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대의명분이 중요하다. 조조가 실용적으로 중국을 잘 통치했지만, 대의명분을 잃었기에 위나라가 망했고, 8왕의 난이 일어나 진나라가 망했고, 한족이 흉노족, 선비족, 저족, 갈족, 강족의 다섯 오랑캐를 중원으로 끌어들여서, 16국을 세우게 하니 나라이름 외느라 지쳐서 역사공부에 흥미를 잃게 만들었다. 조조 한 명의 명분없는 행동이, 중국을 200년간 콩가루집안으로 만든 것이다. 설사 박정희가 정치를 잘했다 해도 그의 졸개들인 두환, 태우, 영삼, 명박, 근혜의 떼삽질은 모두 박정희에게 책임이 있다. 윗물이 썩으니 아랫물이 썩는건 당연하다. 선비의 대의명분을 따르지 않고, 소인배의 능력과 실질을 숭상하며, 편법과 꼼수로 가면 이렇게 된다. 그 후유증은 기본 이백년을 간다. 절대 절하지 마라. 200년간 천하가 아수라장이 된다. 조조가 한 번 위를 범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 교육은 존엄에서 시작하여 존엄으로 끝난다. 더 배울게 없다. |
어린시절 교회 선생이 나한테 회초리를 쥐어주면서 "나를 쳐라!" 라고 말했을 때, 지체없이 홈런스윙을 했던 기억이 나오.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항상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시는 글!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이준익감독의 코믹역사영화 황산벌보면은 계백장군이 휘하장수들한테
'너 나랑몇년되았서'라면 묻는 장면이 문득 떠오르네요 고개를 하를쳐다보듯 장수들이 빳빳히 들고
'예 몇년되았습니다~' 라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계백의 일가족 몰살후 황산벌로 향한것을 두고 학자들은 말이 많겠으나...전 개인적으로 호남의 정신은
바로 그 계백의 정신이 아닌가...문득 생각되네요.
'노예로 살바에야 죽음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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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은 충청도지요.
왜 전라도는 기본적으로 고구려출신의 백제왕실이나 귀족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았지요.
초기의 백제는 경기도가 중심이고
후기의 백제도 충청도가 중심이고 기껏해봐야 전라도는 익산정도나 백제의 중심지에 들어가지요.
계백이 전라도의 정신이라니요?
역사를 왜곡해도 한참이나 왜곡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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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충청도를 갈라보자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바로 보자는 것이지요.
호남 맞습니다.
한강유역을 신라가 빼앗았기 때문에
충주, 진천, 청주 일대는 신라가 가져갔습니다.
김유신 고향이 진천입니다.
관산성을 신라가 점령했기 때문에 대전, 공주, 당진 라인이 전선입니다.
부여에서 전북경계까지는 15킬로. 남산에서 가락시장거리밖에 안됩니다.
부여가 호남평야에 속해 있으므로 호남 맞습니다.
지금 충청도의 반은 신라영역입니다.
호남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호서지방이라고 하지요.
기호지방이라고 말하면 경기-충청-전라를 포함하지만 호남이라고 말하면 보통 전라도만 이야기 하지요.
궂이 충청도를 호서지방이라고 하고요.
지금 충북지방(관산성-옥천, 삼년산성-보은이 최전선)과 도살성(천안-증평이라는 설도 있음)이 신라의 영토이이기에 충청도의 태반이 신라영토임을 잘 압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백제의 중심지는 부여를 중심으로 당진-공주-논산-익산-서산 등이었다고 볼수 있지요.
계백이 불과 오천의 군사로 결사대로 나섰던 까닭은 지방(귀족들 사병, 대부분 전라도)의 군사들이 지원하지 않고 방관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적은 수의 군사로 결전에 나섰던 거지요.
어떻게 해석하는 가는 개개인이 판단할 일이나 호남이라고 하면 중심지는 전주-나주-광주라고 보야지요.
그리 본다면 백제를 호남이라고 하는 건 맞지 않다고 봅니다.
호남 맞습니다.
익산이 언제부터 기호지방입니까? 전북인데.
호남이니 영남이니 하는 명칭은 중국의 관습을 복사한 것입니다.
구태여 호남과 호서를 나누는건 말 지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뻘짓입니다.
지형이 산 아니면 들인데 부여부터 목포까지는 뻥 뚫린 하나의 지형입니다.
지방을 나누는 것은 지형을 보고 하는 말입니다.
조선시대에 와서 8도를 나누면서 전라도가 호남으로 구분된 것이고
옛날에는 차령이남은 같은 생활권이므로
차령부터 가옥구조가 바뀌고 곡식작물이 바뀝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신장을 기록한 데이터가 있는데 충남과 전북이 완전히 같습니다.
문화와 생활권이 같으면 같은 것입니다.
지방 군사들이 지원하지 않으면 어떻게 의자왕때 백제가 신라의 40성을 빼앗았겠습니까?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에요?
분명히 말하면 의자왕때 백제 영토는 신라의 1/3이었는데 싸움마다 다 이겼습니다.
백제가 패한 이유는 신라의 침략을 예측하지 못하고 국경에서 막지 못해서입니다.
신라군사가 보은에 있었는데 거기서 막지 못하면 더 이상 방법이 없는 겁니다.
625때 국군은 왜 인민군을 막지 못했습니까?
국군은 개성을 막고 있는데 개성은 임진강 북쪽입니다.
임진강 북쪽의 국군은 황해도 장단에서 고립된 겁니다.
인민군이 국군 주력을 우회해버리고 국군은 황해도에 갇혀버린 겁니다.
그때 38선이 지금 휴전선과 다르거든요.
호남 귀족이 백제를 돕지 않았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이건 전쟁의 기본을 모르는 백치들이 하는 소리입니다.
전쟁이 애들 장난입니까?
전선이 뚫리면 게임끝입니다.
서울이 함락되었는데 임경업은 왜 의주에서 놀았을까요?
왜군이 올라오는데 왜 신립장군은 서울에서 병사 300명 밖에 못데려 갔을까요?
계백은 그래도 5000인데 신립은 300이고
625때 채병덕은 동두천에 투입한 병사가 7000입니다.
한국인구가 3000만인데 국군이 고작 7000밖에 없었습니다.
다 어디갔죠?
그게 다 전쟁이 뭔지도 모르는 초딩들이 하는 소리입니다.
고구려도 요동성 함락되면 바로 평양성 떨어집니다.
호남귀족이 등을 돌렸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은
오마이뉴스 또라이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전부 날조된 이야기이며
전쟁에 전자도 모르는 자들의 헛소리입니다.
백제는 담로제인데 담로는 전부 왕의 친척입니다.
백제는 왕족들이 전라도 촌구석까지 완벽하게 지배했고
당시 전선이 당진에서 옥천을 거쳐 소백산맥 산속이라서 그쪽에 병사가 있습니다.
전남에는 병사가 없고 있을 이유도 없습니다.
임진왜란때 이순신은 바로 옆의 원균을 돕지 않았습니다.
원균이 상관이고 이순신이 부하인데도 가지 않은 겁니다.
그때문에 원균이 이순신을 미워한거죠.
위수지역 벗어나면 사형입니다.
지방 장군들은 절대 자기지역을 못 벗어나며
자기지역 벗어나면 바로 반역으로 몰립니다.
실제로 그 때문에 억울하게 처형당한 의병장들이 임진왜란때 많습니다.
왕의 허락이 떨어져야 병사들이 움직이는데
전란이 일어나면 일단 소집이 안 됩니다.
전쟁은 상비군으로 하는 것이며 상비군은 일선에 있고
의자왕이 신라군의 침입루트를 확인했을 때는 이미
전선의 백제군들은 황해도에 갇힌 국군 꼴이 된 겁니다.
사전에 모르면 방법이 없습니다.
병력지휘권은 전부 지방 성주들이 쥐고 있고 이들은 모두 왕의 친척이며
이들이 사전에 연락받지 못해 움직이지 못하면 끝입니다.
전부 자기지역만 지키는 시스템입니다.
전선이 뚫렸는데 전방의 병사들이 2선의 서울을 구하러 출정한 예는
인류 역사상 없습니다.
당시 백제 인구를 감안하면 계백의 5000은 많은 숫자입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가 있는 군사를 다 긁어모아서 5만이라고 합니다.
백제영토가 신라의 1/3이니까 백제군은 많아야 2만명인데
보통 7 대 3으로 나누어 7이 왕을 지키고 3을 전선에 보냅니다.
당나라군을 막는데 1만, 신라 막는데 5천, 왕을 지키는데 2만
최대한 동원하면 이 정도 되는데 중과부적.
전선에서 막거나 부여성에서 막거나 공산성에서 막거나 중의 하나인데
의자왕이 빨리 결단을 못한 겁니다.
계백이 차라리 부여성을 지키는게 나았을지도 모르는 거죠.
신라군을 막으려면 옥천에서 막아야 하며 옥천이 뚫리면 끝입니다.
신라군이 우회할지도 모르는데 옥천에 많은 군대를 투입하는 것도 무리수죠.
왜곡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무지에서 비롯된 글입니다.
당당님이나 동렬샘처럼 어떤 근거에 의해 호남이다 충청이다 규정지은것은 아니고...
보통 백제하면 호남사투리 신라하면 경상도사투리로 인식되어있기에,
짧은 지식으로 짧게 썻네요.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왜곡의 의도를 가지고 쓴글은 아닌것만은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역사에 관심은 많지만 띄엄띄엄 알고있어서...미안하군요..
일단 백제의 역사를 언제부터 볼 것이냐부터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만 통상 기원전후로 보므로, 백제전체역사를 680년으로 보면, 초기 500년은 한성백제(인천,송파,내포 중심설이 있으나, 대략 그 삼각점을 그은 지역 중심), 이후 180년은 부여,공주 중심으로 보고 있습니다.
백제의 전성기를 4세기 근초고왕시기로 보므로, 680년 역사의 중간 정도시기의 최대 영토를 기준으로 백제의 지역성을 파악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그 위치는 대략 경기중심으로 충청, 전라를 망라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제동맹 폐기(475)이후의 후기백제만을 놓고 볼 때도 여전히 웅진(공주), 사비(부여)의 금강유역이 백제문화의 중심이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런 식의 고대사 축소조작은 친일사대주의 모리배들이 하는 겁니다.
장난하는 거에요?
중국은 중세시대인데 한국은 원시시대?
통치술은 같이 가는 겁니다.
그건 마치 영국왕이 독일인이니
영국은 독일의 식민지다 하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정신 나간 소리입니다.
봉건시대는 30년만 집권해도 나라가 기틀을 잡습니다.
지배기술이 있는데 백제를 마사이족으로 보고 통치술이 없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바보입니까?
일제가 36년 조선을 지배하면서 완벽하게 통치했습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호남은 차령이남, 금강이남이며 당시 백제영토의 80퍼센트가 호남입니다.
옛날에는 서울이 개성이므로
호서는 제천 의림지 서쪽 경기도와 충청일부고
충남연산은 전라도이며 옥천 보은은 경상도이고
지금과 달랐어요.
제발 지도책좀 보세요.
차령산맥 때문에 호남 빼고 금강유역은 존재가 없습니다.
신라군대가 진천에 있는데
공주는 지금으로 치면 휴전선에 가깝고
부여는 금강에 있으며
백제가 수도를 옮기려 했던 익산은 전라도입니다.
호남을 부정하려는 악의에 찬 모략극입니다.
신립장군이 왜 문경새재에서 막지 못했나? 이런 개소리들은
역사나 전술에 대해서 완전히 꽝 무식한 사람들이 하는 소리입니다.
원래 전쟁은 동래성 떨어지면 바로 서울 함락이지
그 중간에 전투한 역사가 동서고금에 없습니다.
그게 다 군대의 소집절차를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그냥 병사야 모여라 하면 모이는줄 압니다.
권율은 왜 행주에 3000명 밖에 안 데려 왔을까요? 한 십만명 데려오지.
전선이 당진-진천-옥천이므로
지금의 전남지역은 군대를 배치할 이유가 없고
가야가 망하면서 백제와 신라가 반씩 나눠가졌는데
가야가 백제에 붙었을 때는 거창까지 서부경남은 전부 백제권이었고
가야계인 김유신이 선동하여 가야가 신라에 붙었지만
지리산 부근 합천, 거창, 산청 쪽은 의자왕때 백제에 붙었던 가야땅이라
신라의 침입루트가 될 수 없고
신라군은 옥천으로 올 수 밖에 없습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차령이남부터
가옥구조와 식물의 북방한계선과 곡식의 작물이 같습니다.
동백꽃의 북방한계선이 충남서천 홍원항입니다.
호남과 충청을 분리한건 조선시대고
고려만 해도 서울이 개성이고 지금 경기도는 충청도였습니다.
충남 일부 금강남쪽은 전라도였고 충북 일부는 경상도였습니다.
부여에서 광주까지 120킬로 말 타고 달리면 한나절 거리인데
한 나절거리를 통치못할 정도로 원시, 족장, 부족민시대라는 겁니까?
부여에서 방귀뀌면
조금 과장해서 30분 되기 전에 제주도까지 냄새가 갑니다.
고개숙이기 불가능
고개 숙이다가 앞으로 자빠져서 못 일어납니다.
무게가 기본 70킬로 됩니다.
조선시대 갑사가 있는 갑옷들도 안에 철판이 들었습니다.
조선시대 갑옷. 왼쪽이 진짜고 오른쪽은 가짜입니다.(갑옷은 가죽이나 나무도 있었음)
저거 입혀놓고 30분만 세워놓으면 죽어버릴 거.
햇볕에 철판이 노출되면 온도가 70도까지 올라가서 사망.
그래서 열차단 목적으로 전포라고 하는 망또를 걸칩니다.
10여 년 전엔가 어떤 아이가 엄마 시체와 함께 6개월인가 1년 인가를 동거한 일이 있었소.
그 일이 알려지자 하나같이 그 아이의 효성을 칭찬하는 기사와 댓글이 신문과 인터넷을 뒤덮고 각계에서 그 애에게 온정이 답지했소.
나는 눈을 의심하고 귀를 의심하고 현실을 의심했소.
썪어가는 엄마의 시신과 1년 가까이 동거한 것이 효성이 되는 세상, 누구 하나 그 일의 괴기성을 언급하지 않는 사실에 나는 한국사람들에 대해 그 어떤 공포심 마저 느꼈는데....
비슷한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소.
학생에게 절하는 교장도 그렇고 모 여가수의 전 남친 색희가 비열하기 그지없게도 자기와 좋아 지내던 시절에 여자가 찍게 해준 누드사진을 "엿 먹어봐라!!"하고 유포했는데 그 넘의 색희 뭐라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다수가 누드사진 찍은 여가수만 성토하고 있소.
대가리는 모자 쓰려고, 베개 베려고 달고 다니는지??
그나마 김동렬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셔서 이런 칼럼을 써주시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절'이란 뭔가? 절 잘하는 유치한 애들 그리고 유치한 종교인과 그 신도들의 생각은, 절하면 돈이 나온다 라고 믿고 있다. 이 놈 이거 딱 그 수준이다. 인간이란게 먹고 사는 문제에 걸리면 굳이 저렇게까지 안하거나 못할 일도 없다! 궁민의 대표라는 구캐우원들도 절로써 표 받고 당선되는 날 부터서는 더 이상 궁민의 대표 아니다. 이것도-역시 하나의 먹고 사는 문제라서 저런 식으로- 절 하나는 잘들 하고, 자비심 많은 중생들에게서 부터 돈도 역시 잘 나온다!! , 이렇토록 멋진 나라에서 저 철가방을 누가 과연 버릴 수가 있겠나? 구케우원이야 그래도 자기가 투자한 돈이라도 있기에 임기 내에 땀 빼서 챙기겠지만, 師-字 달린 놈은 그러면 , 학생들은--돈 다발 / 교장은 유치원생 ㅋㅋㅋ ,뭐 그런 것인가? 이것도 나쁘진 않네---ㅎㅎㅎ
그 교장이 교육적인 것은 개판이지만
정치적인 처신은 기막히게 한 건 사실이지요.
그 교장은 그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외친겁니다.
그 선생놈이 잘못했지 나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놈의 학교가 잘못되었지 나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놈의 선생놈과 그놈의 학교를 처벌하라.
나를 처벌하지는 말라.
나는 학교의 관리자고 대표자고 선생놈의 관리자인데 그건 빠지고싶다.
그건 모르는척 해주라.
일종의 성동격서지요.
잔머리가 기막히게 돌아가는 교장놈이지요.
아마 교장놈은 그 목적을 달성할듯싶은데요.
지휘관 하나가 잘못 움직여 궤멸 당한 대표적 사례. 6.25 전쟁의 현리 전투.
"임진왜란 당시의 칠천량 해전, 병자호란 당시의 쌍령 전투와 함께 역사상 최악의 3대 패전으로 꼽힌다."
http://ko.wikipedia.org/wiki/%ED%98%84%EB%A6%AC_%EC%A0%84%ED%88%AC
http://mirror.enha.kr/wiki/%ED%98%84%EB%A6%AC%20%EC%A0%84%ED%88%AC
PS) 두개 글을 찬찬히 보았는데, 당시 3군단장 유재흥이 도망갔느냐부터 시작해서 평가에 대해 설이 좀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