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퍼센트 이상의 격차가 났다는구먼유.
원래 후발주자가 선두를 추격할 때는 단번에 추격해야 합니다.
어떻게 되는지 보자는 거품 지지가 있기 때문이지요.
거품지지는 애초에 태도를 바꿀 의사를 가진 사람의 지지입니다.
이는 구조론의 마이너스 원리 때문인데 인간은 NO로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즉 NO를 하기 위한 사전동작으로서의 YES였다는 거죠.
왜 YES를 할 수 없는가 하면 상대가 먼저 질문해줘야 YES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반대는 상대가 질문하든 그러지 않든 NO를 할 수 있습니다.
남자 "나랑 사귀자."
여자 "NO"
여기서 여자가 YES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 YES라고 하면 안 되고 YES 다음에 오케이가 와야 합니다.
YES 다음에 이어갈 말이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무조건 NO일 수 밖에.
남자 "나랑 사귀자."
여자 "YES! 나도 진작부터 네게 사귀자고 말하고 싶었어."
이게 정답이라는 거죠.
그래서 다시
남자 "나랑 사귀자."
여자 "YES! 나도 진작부터 네게 사귀자고 말하고 싶었어."
남자 "근데 왜 진작 내게 사귀자고 말하지 않았니?"
여자 "뭐 이런 미친 새뀌가.. 너 말 다했어?"
이건 아니잖아요.
뭔가 잘못되었어.
남자 "나랑 사귀자."
여자 "NO. 뜬금없이 이건 아니잖아. 분위기 좋을때 다시 정식으로 고백해 준다면 몰라도."
이게 속마음이지만 이렇게 말할 수도 없잖아요.
언어에는 주도권이라는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YES 하는 순간 주도권 상실 끌려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NO를 구사해서 자신이 주도권을 잡은 다음에
대화를 자기중심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남자 "나랑 사귀자."
여자 "NO."
남자 "어 미안해."
여자 "흠 한 번 지켜볼께."
뭐 이렇게 가야 하는 거죠.
고백은 타이밍이라는 건데 타이밍이 맞을 확률은 잘 없으므로
일단 기본은 NO라는 거죠.
YES를 얻고 싶으면 사전에 힌트를 줘야 합니다.
문재인이 호남에 한 번 거절당하고 다시 왔듯이 그런 절차가 필요하다는 거죠.
마찬가지로 핵발전소의 위험을 알고도 침묵하는 권력자는 책임이 크죠,
권력자뿐 아니라 우리 일반인도 책임이 큽니다.
핵폐기물 때문에 후손들이 위기에 처하는 걸 알면서도
그 미래를 수탈해서 쓰고 있는 양심파괴적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