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 사회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경악, 부끄러움과 분노가 뒤범벅 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잠을 설친다. 그 한편에는 오랜 오해에서 벗어난 속시원함도 있다.
우리는 그동안 박 대통령의 언어와 행동과 결단에 대해 전혀 납득할 수 없었지만 이제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일반적인 소통과는 사뭇
다른 알 수 없는 표현이나 유머 구사, 의사결정 방식을 접할 때마다 사람들은 두 가지 태도로 편이 갈라졌다. 한쪽은 냉소와
체념이었고 다른 한쪽은 신비주의적 숭앙이었다.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면서 갈라졌던 여론이 충격과 분노라는 하나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이미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압도적이고
비현실적인 사건이라 도무지 일상을 영위할 수 없는 국가재난 상황이라 할 만하다. 현 사태를 방어하려고 내세우는 '순수'와
'선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국가를 책임지는 위치는 결코 그러한 말들로 포장돼서는 안 되는 자리다. 무지와 맹신, 어리석음으로
지난 4년 대한민국을 국가 존립의 위기에 빠뜨린 책임을 정부와 집권 여당이 아니라면 누가 져야 한단 말인가.
박 대통령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트라우마와 미신, 그리고 무지와 비합리성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순수한' 꼭두각시는
악한 자들에게 국가 전체를 제물로 갖다바치고 말았다. 국민들은 이제서야 맹신의 제단에 제물로 바쳐진 것을 알았다. 지난 4년 알
수 없는 고통과 억눌림이 그 탓이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필코 끝까지 따지고 넘어가야 한다. 어째서 이런
무지몽매한들이 이 긴박한 시대 중요한 자리에 서 있는가.
지금 세계사적으로는 미국-유럽 축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축으로 동아시아 축이 생성되는 시기다. 전지구를 삼킨 서구 패권주의에
맞설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는 새로운 패권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인지하든 하지 않든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장했던 '동북아균형자론'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세계사적 패권이 부딪히는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번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그뿐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그림은 국가적 비전이다. 아무리 번영의 비전이라도 국민들이 받아들이고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의미가 있다. 지금 방향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대의 철학이요 이념이다. 그것을 따라 과학과 교육, 그리고 문화와 예술의
융성이 흘러나온다. 철학과 이념이 방향을 잡아줘야 새 사회의 기틀이 만들어지고 문화가 뒤따라 온다. 즉, 시대의 거대담론이
필요하다. 이런 말은 탈이념의 시대, 포스트모더니즘과 문화상대주의가 지식인들의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시기에 진부한 말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허영은 이미 세계패권을 쥐고 있는 서구에게나 어울린다. 정신 차리자. 동아시아는 새로운 이념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동력이 필요하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출발해 모더니즘을 거쳐 서구문명이 완성되었다면, 우리는 유교적 세계관에서 출발한 이성과 합리성의 이념으로
문명을 완성해야 한다. 이념이란 사람을 통합시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차별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우리가 차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바로 무지와 맹신과 비겁이다.
동서 문명이 교차하는 바로 이 곳, 각성된 의사결정이 절실한 이 시대에 맹신의 무지몽매가 수면위로 부상한 것은 크나큰 고통이지만,
반대로 가장 큰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는 무지몽매의 부역자들을 모조리 역사의 뒤안길로 몰아내야 절체절명의 위기를
최선의 기회로 만들 수 있다.
박-최 게이트는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문(門)이어야 한다. 더이상 어리석음으로 대한민국호를 운전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새시대 이념의 깃발을 높여 두눈 부릅뜨고 맹신과 무지를 몰아내야 한다.
이광서 webmaster@je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