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글 일부라도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검색으로 클릭하면 보여도 복사해서 링크로 올리면
권한 문제로 못 보는 경우가 있네요.
원문을 찾아 주소를 다시 올렸습니다.
지금 클릭하시면 될 겁니다.
http://cafe.daum.net/nonukeprofessor/N0fY/546
이런 글도 있네요..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7318
서울고 마피아 라는 용어도 있군요..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111626
김기춘 대 방상훈? 아니면 홍석현 대 방상훈?
쉽지는 않을 듯.....
프랑스라고 하니까
막연히 뭔가 있어보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건 수준이하라도 너무 수준이하입니다.
1.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의 주인인가?
2.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인가?
일단 문법적으로 비문에 가까운데
뭐 그건 한국인 번역자의 잘못이라 해도
차라리 ‘예술이란 무엇인가’, 혹은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가는게 맞죠.
왜 이게 철학이 안 되느냐 하면
주인이라는 개념이 예술이라는 개념에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질문 자체에 이미 가치전도가 나타나 있는데
예컨대 ‘때려죽일 공산주의는 빌어먹을 윤창중이 짓인가?’
<- 이렇게 문제를 냈다면 이걸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냥 말도 안 되는 정신병자의 난동이라고 하는게 맞겠죠.
주인이라는 개념이 예술이라는 개념에 선행하므로
이미 잘못된 방향으로 사고를 규격화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체를 제시하고 부분을 묻는게 모든 질문의 공식입니다.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물리법칙이므로 어기면 안 됩니다.
예컨대 ‘과일 중에서 사과를 고르시오’는 말이 되지만
‘사과 중에서 과일을 고르시오’ 이건 말이 안돼재요.
이건 뭐 정신병자의 개수작입니다.
2번 문제 역시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집어넣고 있습니다.
행복은 개인의 특정 시공간적 지점에서의 심리반응이고
‘사는 것’은 개인을 넘어선 집단적 대응입니다.
‘총을 쏘기 위해서 전쟁은 터지는 것인가?’
이런 식으로 엉터리 질문을 하는 놈은 마빡을 500대 때려줘야 합니다.
‘공동체적 삶의 어느 지점에서 개인의 행복은 도출되는가?’
이런 식으로 전체를 앞에 놓고 부분이 따라붙어야 문제가 됩니다.
일단 언어적으로 맞지 않는, 문장 자체가 불성립인,
정신병자의 난동에 다들 놀아나다니 참 한심무지로소이다.
틀린 질문
1.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의 주인인가?
2.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인가?
맞는 질문
1.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장 안에서 어떻게 자신이 그 세계의 진정한 주인이 될 때
예술작품의 대중적인 소통가능성은 획득되는가?
2. 공동체적 삶의 어느 지점에서 개인의 행복은 도출되는가?
1.번질문은 예컨대 싸이가 유튜브에 진출한 바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예술의
대중화를 끌어내는가를 미디어 이론 중심으로 풀어내면 정답.
미디어의 발달사는 상호작용의 밀도증가와 대중적인 확산과의 함수관계로 설명됨.
2.번 질문은 집단의 성취와 개인의 행복을 예컨대
월드컵 4강진출이 개인을 행복하게 했는지를 논증하면 됨.
결론적으로 바깔로레아는 인간을 정신병자로 만들 뿐 철학과 아무 관계없음.
독서인구를 늘리고 문장력을 발달시키는 효과는 있겠지만.
저걸 철학이라고 우기는 넘은 때려죽여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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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에! 프랑스철학은 죽은 철학입니다. 지적 사기죠. 철학이 잘못됐기 때문에 이런 헛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프랑스가 바깔로레아로 인류의 진보에 기여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프랑스 영화가 팔렸나요? 프랑스 음악이 팔렸나요? 프랑스 디자인이 잘 나가나요? 잘못된 프랑스 철학이 프랑스를 죽이고 있는 겁니다. 바깔로레아가 제대로 기능한다면, 지금 한국인들은 죄다 프랑스차를 타고, 프랑스옷을 입고, 프랑스 가구를 쓰겠지요. 프랑스음악을 듣고, 프랑스 영화를 보겠지요. 철학과 예술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철학이 죽으면 예술이 먼저 죽습니다. 예술과 산업 역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인류의 실질적 삶과 겉도는 철학은 거짓입니다. 그건 철학을 빙자한 허무한 퍼포먼스일 뿐. 조선시대 과거제도처럼 잘못된건 잘못된 겁니다. 과거제도가 잘 된 제도인가요? 천만에. 영조이후 실질적으로 과거제도의 인재를 발굴하는 기능은 완전히 정지되었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사기입니다.
일전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어떤 화랑 운영자에게 들은건데 독일화가들은 그림은 조금 그려놓고 말로 때운다고 하더군요. 관념미술인가 뭐 그런거. 노가다 한 정성이 안 보이는 거. 이미지는 일단 덩어리로 제압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독일그림이 망했지요. 학승과 선승에 대해서 논하고 있지만 학승은 가짜입니다. 그건 안쳐주는 겁니다. 신학은 가짜입니다. 성경은 가짜입니다. 불경은 가짜입니다. 말로 때우는건 그림이 아니고 사기입니다. 속임수입니다. 그림에 왜 설명이 필요한가요? 1초 안에 관객의 물리적 반응을 끌어내지 못하면 실패입니다. 왜 프랑스 그림, 독일 그림이 미국에 밀릴까요? 그게 본질에서 사기이기 때문에 밀리는 겁니다. 프랑스는 바깔로레아 거국적 사기 때문에 망하는 겁니다. 학승은 가짜입니다. 물리적 반응이 아니면 가짜입니다. 미국은 조잡해도 진짜고 프랑스는 정교해도 가짜입니다. 가짜는 진짜를 이길 수 없는 거지요. 프랑스가 거짓 철학의 환상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한 독일과 스칸디나비아가 유럽을 점령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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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일본인은 고기를 못 먹습니다.
그렇다면 음식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죠.
고기도 못 먹는 놈들은 꺼져! 맛의 달인? 꺼져! 신의 물방울? 닥쳐!
중국인은 회를 못먹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음식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죠.
프랑스인이 회를 먹는지 모르지만
숟가락이 없으면 뜨거운 국물요리를 먹을 수 없죠.
숟가락 없이 맨손으로 먹는 인도인은 요리를 말할 자격이 없죠.
뭐든 식용유에 담가버리려 하는 영국인은 애초에 주방 근처에 올 수도 없습니다.
미국과 프랑스를 비교한다면
미국은 숟가락도 있고, 고기도 먹고, 생선회도 먹고 별게 다 있는 것과 같고
프랑스는 '음식은 맨손으로 먹어야 제맛이지' 하면서 자의적인 규칙을 내걸어
스스로 제한을 걸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건 관념이고 가짜이며 속임수입니다.
그런건 누가 지어낸 환상이고 음식은 먹어본 사람만이 발언권이 있습니다.
안 먹어봤으면 닥쳐!
근데 프랑스 이새뀌들은 안 먹어보고 논하는 자들이라 말입니다.
전부 가짜죠.
음식이든 문화든 디자인이든 음악이든 마찬가지.
안 먹어봤으면 닥쳐!
외국사이트에 많이 올라오는 엽기음식은 한국의 번데기
번데기를 역겨워 하는 그 자들 중에 먹어본 자는 없죠.
안 먹어봤으면 닥쳐!
다른 건 잘 모르겠고 프랑스 철학인지 예술인지가 프랑스영화 말아먹은 건 백 번 맞습니다.
프랑스영화는 프랑스사람들도 안 봅니다. 왜냐? 재미가 없거들랑요. 영화에서 철학하고 예술하고 자빠져 있는데 재미가 있을리가... 프랑스사람들도 자기네 영화 안 보고 재미있는 할리우드 영화 봅니다.
비유로 말하면 싸이의 유튜브 동영상 오빤 강남스타일을 딱 보고
저게 음악이냐? 웃긴 동영상이지 하고 간단히 무시해 버린다면?
그거 말됩니다. 그거 진짜 음악 맞습니까? 근데 그런 식으로 제 팔
과 다리를 점점 잘라내면 왜소해지는 거죠. 음악이 풍성해져야 하
는데 점점 말라비틀어져서 사망.
철학의 의미가 의사결정능력의 향상에 있다면, 프랑스인은 의사결
정능력을 키웠을까요? 세월호와 같은 상황이 프랑스에서 일어난다
면 과연 그 300명의 희생자중에 아는 사람이 딱 나타나서 300명을
구출했을까요? 천만에.
나는 오히려 악랄한 미국놈이 잘난척 하는 프랑스놈보다 그 상황에
서는 더 현명하게 의사결정을 한다고 봅니다. 입으로만 떠들지 현장
에서는 못합니다. 물론 그래도 한국보다는 낫겠지요. 한국도 독재교육
으로 조졌지만.. 특히 정신병자 광해군이나, 왕정복고로 앙시앙레짐을
실현한 반동분자 나폴레옹 3세와 같은 영조와 정조 쓰레기를 대단한
인물처럼 평가하는 썩어빠진 한국교육이니, 한국교육도 망했지만
프랑스 철학교육도 마찬가지로 망했습니다.
한국인의 식탁도 점점 메인은 없고 스끼다시만 있죠.
밑반찬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