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훌륭하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20세기는 인종주의 시대였다. 21세기의 임무는 집단의 동원을 방해하는 인종주의 극복에 있다. 대한민국은 훌륭하다. 동원력이 가장 높다. 한중일이 뜨는 이유는 동원력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인적 자원을 최대한 끌어내서 쓴다. 물론 충분하지 않다. 여성이라는 이유 혹은 학벌과 연고 등의 이유로 동원에서 열외된다. 그러므로 더 발전할 여지가 있다. 결론적으로 국가의 인적 역량을 최대한 동원하는 의사결정구조를 갖춘 나라가 이긴다. 반대로 어떤 내부의 이유로 인적 자원을 동원하지 못하면 망한다. 인도나 아랍이 그러하다. 문화상대주의는 비겁한 짓이다. 잘못된건 잘못됐다고 말해줘야 한다. 인도와 아랍은 분명 잘못가고 있다. 국가의 역량을 동원하지 못한다. 그러다 당하는 거다. 이는 자연법칙이므로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왜 불행한가? 자초한 짓이다. 헬조선인 이유는 첫째 제사를 지내기 때문이다. 개나 소나 양반이랍시고 제사를 지내는데 꼴이 가관이다. 공자가 하지 말라는 짓은 다 한다. 차례는 차 한 잔이 적당하다. 공자는 평소 하던 만큼 하라고 했다. 흉년에 굶어서 식신이 붙었는지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린다. 그게 한풀이다. 제사대행업체에 안 맡기고 며느리를 개고생시킨다. 미친 짓이 아닌가? 이는 유교 때문이 아니고 관습 때문이다. 열등감이다. 불행한 일이다. 두 번째는 무려 아직도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집이 있더라는 거다. 미쳤다. 말이 되나?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유래한 자연법칙으로 보면 모계사회가 적당하며 어느 나라든 빌어먹을 장모 이야기가 빠짐없이 나온다. 근데 한국은 빌어먹을 장모가 아니라 시어머니가 그 자리를 떠억 차지하고 있다. 해괴한 일이다. 남자는 원래 나이 열여섯 되면 집에서 가출하여 청소년 단체 혹은 전사집단에 가담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이 본능이다. 여자는 어머니와 관계를 죽을때까지 지속한다. 그러므로 친정엄마를 찾는건 자연의 법칙이며 시부모를 찾는 것은 기괴한 습속이다. 그게 가능한가? 생판 모르는 낯선 여자와의 동거라고? 그런 식의 억지 동거는 군대나 혹은 깜방에만 있는 것이다. 또 있다. 자식을 학원에 보낸다. 자식을 상전처럼 섬기는 것은 유교도 아니다. 미개한 습속이다. 왜 이런 짓을 하지? 열등감 때문이다. 자신의 신세를 가련하게 여긴 나머지 자식을 통해 대리로 보상받으려는 짓이다. 끔찍하다. 이건 뭐 집단 정신병이다. 한국인이여! 헬조선을 탈출하고 싶은가? 대한민국 욕하지 마라. 니들이 잘못했다. 니들이 제사 지내고 시부모 모시고 학원 보낸다.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것이다. 이런 짓을 하면서 헬조선 어쩌구 하니 웃기지도 않는다. 정신차려야 한다. 행복은 환경과의 상호작용 총량에 달려 있다. 쉽게 상호작용을 늘리는 방법은 취미를 갖는 것이다. 자연인들은 숲생활이 취미다. 그 순간 평소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버섯도 보이고 더덕도 보이고 온갖 약초가 다 보인다. 그렇게 상호작용이 늘어나는 것이다. 음악에 혹은 등산에 혹은 여행에 관심을 가지면 그 분야에서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며 상호작용이 증가한다. 문제는 상호작용하지 않기 위해 특정 분야에 좁게 들어가서 상호작용을 늘리는 거다. 심해지면 망상장애가 된다. 자기집 아파트 현관문에 김대중의 지시를 받은 국정원이 독약을 발라서 10년째 외출을 못했다고 떠들던 자칭 네티즌 논객이 있었다. 그 역시 자기를 좁은 세계에 가두고 그 안에서 상호작용의 밀도를 증가시켜 온 것이다. 건프라에 꽂힌 일본인들도 마찬가지다. 상호작용을 늘리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렇게 자신을 가두면 망한다. 더 넓은 다른 세계와의 상호작용능력을 잊어버린다.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한국인들도 자신만의 좁은 세계에 갇혀 헬조선 타령이나 하면서 자기를 지옥 속으로 몰아넣는다. 행복해지고 싶은가? 의사결정에 나서라. 더 넓은 세계로 나가라. 자식을 위해 희생하지 말라. 부모가 자식에게 꽂히는 순간 부부관계는 사실상 파탄이다. 원래 부족민 시절부터 아버지와 아들은 적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말이 괜히 있는거 아니다. 한국의 모든 부부들은 사실상 부부가 아니다. 그들은 부부행세를 연기하는 것이다. 자식에게 꽂힌 즉 호르몬에서는 남남이다. 인간은 호르몬을 이길 수 없다. 새끼를 키우는 암사자는 수컷에게 관심이 없다. 호르몬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수컷이 새끼를 죽여버려야 암사자가 비로소 관심을 보인다. 자녀에게 향하던 호르몬이 수컷을 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을 갖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자식을 둘씩 셋씩 낳지를 않고 하나도 버거워 한다. 부부 사이에 서로 호르몬이 나와줘야 한다. 방법은 자식에게 올인하지 않는 것이다. 옛날에는 큰 애가 둘째 키우고 둘째가 셋째 키웠다. 그런 식이어야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이다. 헬조선 타령 하지만 나는 한국인이 좀 당해봐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제대로된 시민혁명과 학생혁명을 거치지 않았으니 아직 시민도 못되고 성인도 못된다. 그들은 인격적으로 미성숙하다. 통과의례가 있는 것이다. 혁명을 거쳐야 인간이 된다. 일본인도 중국인도 제대로 된 시민혁명을 거치지 못했다. 다만 삼월과 사월과 오월과 유월의 항쟁경험이 있는 한국이 그나마 낫다. 아직도 건국절 놀음 하는 바보들이 있는 것을 보면 미성숙한 것이다. 그들은 건국을 중국 황제님께 승인 아니 유엔 나으리에게 승인받아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새누리 입장이 그러하다. 임정은 유엔이 승인을 안했으니 건국이 아니라는 사대주의다. 어느 나라도 건국을 남의 나라에 승인받지 않는다. 노예들이 그런 짓을 하는 것이다. 부끄러운줄 알아야 한다. 다른 나라의 승인을 기대했다는 발상 자체가 인간의 자격이 없는 바 개돼지의 수준을 들킨 것이다. 한국은 그나마 사정이 났다. 귀족문화가 있는 영국은 국민을 백퍼센트 동원하지 못한다. 런던의 집값이 비싼 이유는 시내의 많은 공원 때문이다. 거기에 아파트 때려지으면? 한국이라면 런던 시내의 공원을 죄다 아파트 숲으로 바꾸어 집값을 잡았을 것이다. 왜 영국은 하지 않는가? 기득권 때문이다. 런던의 기득권들은 드넓은 공원에서 선탠을 하며 즐긴다. 런던 시내에 빌어먹을 골프장이 수도 없이 많다. 쫙 깔렸다. 원래 영국이라는 나라의 의사결정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영국인들이 원래 그렇다. 영국인이 만든 브롬톤 자전거만 해도 그렇더라. 2차대전때나 쓰던 낡은 헤드램프가 붙어 있다. 고집쟁이라 하겠다. 왜 이런 짓을 할까? 시류를 따르면 권력이 교체되기 때문이다. 다 이유가 있다. 잡스가 쓸데없이 고집을 부린 것도 원리는 같다. 권력 때문이다. 박근혜는 여왕이 타던 마차를 타보는게 평생 소원이었겠지만 그게 한심한 거다. 지금 시대에 무슨 여왕이고 마차란 말인가? 염병들 하고 있네. 그딴거 다 때려치워야 한다. 유럽의 회사들에는 아직도 가족회사 형태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그래도 가족 안에는 권력교체가 된다. 삼성폰이 발전한게 90년대에 재용이가 애인에게 새 폰을 선물하려다가 그렇게 됐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유럽은 기본적으로 귀족과 하층민으로 이원화된 구조이며 그 이면에는 더러운 인종주의가 버티고 있음이 물론이다. 기본적으로 타인을 적으로 규정하는 시각이다. 가족도 아닌데 형이라고 부르며 엉기는 한국인과 다르다는 말이다. 그들은 왜 인종주의를 버리지 못할까? 공자의 인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렉시트도 본질은 인종주의다. 2차대전때 워낙 깨져서 겉으로는 인종주의를 말하지 않지만 본질은 인종주의다. 인종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여왕이 있는 것이다. 혈통의 증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북유럽도 신세가 암담하기는 마찬가지다. 북해의 석유와 핀란드의 펄프에 의존하지만 그 시스템으로 오래가지 못한다. 상승하려는 야심을 꺾어버리기 때문이다. 풀뿌리 운운하며 생태 운운하며 쇄말주의로 흐르면 망하는건 필연이다. 인간의 관심이 인류문명의 중심이 아니라 자기가 사는 공동체 내부의 잡다한 소식에 매몰되니 축제나 하다가 망하는 남미나 인도가 그렇다. 축제의 주최자는 마을이다. 그들은 마을매니아다. 마을에 꽂혀서 마을사람 누가 무슨짓 하는지 감시한다. 일본인도 비슷한게 마을을 열심히 감시하며 이지메 대상을 찾는다. 이지메 안 당하려고 청소는 열심히 한다. 거리가 깨끗해졌다. 마을에 꽂히면 망한다. 마을을 떠나야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인은 여러 가지 이유로 집단에 최대한 동원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불행을 피할 수가 없으며 벗어나려면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단이 있다. 그 집단은 국가이기도 하고 회사이기도 하고 가족이기도 하다. 어디에든 한국인은 동원된다. 군인이라는 이름으로 동원되기도 하고, 회사의 행사니 혹은 회식이니 야유회니 하며 동원되기도 하고 가족행사에 제사니 결혼식이니 하며 동원되기도 한다. 동원이 지나치기 때문에 그들은 불행한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하고 싶으면 동원을 거부하라. 회사 회식 금지시켜라. 동원과정에서 에너지가 유도되는 법이다. 동원이 하나의 점으로 수렴되면 흥하고 마을축제니 종교행사니 해서 산만하면 망한다. 유럽은 산만해졌다. 귀족은 귀족끼리 골프를 치고 서민은 서민끼리 축구장에서 난동부린다. 혹은 축제에 빠진다. 그것으로 그들은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망해간다. 한국인의 불행도 그들의 행복도 밸런스에서 멀어졌으니 해결되고 또 치유되어야 한다. 잘 먹고 잘 사는게 답은 아니다. 인류 전체의 밸런스를 찾아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찌되었던 한중일 삼국이 뜨는 이유는 한국일본중국이 여러 가지 이유로 국가에 혹은 회사에 혹은 가족에 동원되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법칙이라서 어김이 없다. 그리고 동원될수록 불행해지니 한국인들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동원을 거부해서 남탓하지 말고 각자 자기 행복을 찾아봐야 한다. 이제 진실을 말하자. 대한민국이 이토록 헬조선인 이유는 백퍼센트 당신 탓이다. 국가탓 아니다. 남탓하지 마라. 숲 속에 사는 자연인들은 다들 행복하게 산다. 왜? 그들은 결코 동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자연인이라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가? 그들은 예비군 동원훈련에도 안 나갈 위인들 아닌가? 그래서 행복한 거다. 그러나 착하디 착한 당신은 어떤가? 얄짤없이 동원되고 있다. 국가의 부름에 동원되고, 회사의 요청에 동원되고, 교회의 행사에 동원되고, 가족의 요구에 동원되고, 친구의 부탁에 동원되고, 형님의 전화도 잘만 받는다.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간다. 엉덩이로 밤송이도 깐다. 고거 참 희한하다. 집단의 요청에 응하여 착실히 동원되고 그 동원구조 안에서 지위를 누리고 체면을 얻고 위신을 세우고 자기를 파괴했다. 이것이 당신의 진실이다.
나는 교만한 한국인들이 조금 더 당해봐야 한다고 믿습니다. 나는 그들이 불행해지도록 내버려두고 거듭 약올릴 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불행할수록 인류에게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확률이 그러합니다. 구조론의 생존전략에 따라 한국인들은 인류를 위해 자기를 마루따로 삼아 희생시키기로 작정한 셈입니다. 그렇게 정했으면 그 방향으로 가는 겁니다. 최소한 전설은 남겠지요. |
딱 하나
신의 부름에 응답하기
옳은 말씀이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합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감당도 못하면서
오지랖도 넓게 무리수를 저지르므로 불행한 것이죠.
국가도 회사도 가족도 친구도
거기에 자신의 건강까지 다 챙기는것도
능력이 되면 하는 거지만
능력도 안 되면서 깝치면 망하는데
국가 안에 이상한 부족을 만들면 망합니다.
북한처럼 인류 안에서 지들만 별종이다 이런거 있죠.
귀족들이 자기들끼리 폐쇄적으로 논다거나
빈민들이 자기네끼리 산채 틀어놓고 이상한 본부놀이 하거나
보통 후진국들은 국가 아에 자기들만의 국가 비슷한 구조를 만듭니다.
특히 집시들이 그런 짓을 열심히 하죠.
인도의 불가촉 천민도 일종의 그런 것이었고.
족장을 모시고 국가 흉내를 내는 거죠.
필리핀의 반군들도 원래의 이념을 잊어먹고
지금은 그냥 본부놀이 하는 거.
반군족이라는 부족을 만들어낸거.
보통 이런 짓 하면 망합니다.
중간그룹을 배제하고 신과 다이렉트로 연결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신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는 개인주의가 필요한 거죠.
저는 아직 유딩, 초딩 수준에서 --;;
지긋지긋하던 입시를 보내고, 대학에 들어가니, 다시 고시바람이 불고 있더군. 도서관만봐도 구역질 나던차에 그러더이다.
팔뚝질도 시원찮게 느껴지던 차에, 대체, 이 아수라장 같은 애들 놀이는 언제쯤 끝날까 싶어, 해외로 탈주.
1.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
또한 추가해야 합니다. 대학을 잘가고, 고시를 잘붙어서, 공동체에 도움을 준 예가 얼마나 있는지.
권력에 아부하거나, 변태 사위족이 된 우병우나 키워낸 한국의 중산층 등신 세레나데.
먹고사니즘은, 공희준처럼 외칠게 아니라, 유태인처럼 정교하게 보험과 이자율로 치밀하게 제어되어야한다. 우선, 먹고 살수 있게 하고, 중산층이상을 공략해서, 착취하면서, 생육번성이라는 보상물을 부여하는것. 하층민들을 중산층으로 갈수 있도록 유도하고, 최상층부는, 국가 넘어로 닭짓 못하도록, 국제사회 외교로 통제.
대한민국은 훌륭하다.
Sarcastic 글이로군요.
저도 늘 그런말 하고 다닙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아직도 정신을 덜차렸다.
아직도 좀 더 털려야 하고, 좀 더 바닥을 쳐야 정신차린다.
사실 끝까지 가봐야 거기가 끝인 줄 알고 오는 부류들이 있습니다.
일초면 아는 사실을 평생 가보고 여기가 아닌가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정말 끝까지 가야 하는 거겠지요.
글 중에 집단 이야기를 많이 하였는데, 집단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
집단의 수준이 문제인겁니다.
우리가 집단 지성을 말할 때, 거기에는 집단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몫을 내 놓고, 서로 상승작용하는 집단이라야 집단 지성이 제대로 작동하는 거고,
그 집단 지성이 되려면 사람들을 무작정 많이 모아 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일대일로 신과 대면해 본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맞짱을 뜰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여하튼 대한민국은 대단한 나라입니다.
틀림없습니다.
개인주의로 가되, 신의 부름에 동원되면 됩니다. 동원되는 집단의 크기로 따지만, 가정은 유딩때까지, 국가는 초딩때까지, 세계는 중딩때까지 머물다 가면 되고, 고딩쯤 되면(10대 후반) 신의 소집에 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밸런스는 어중간하게 맞추는 게 아니라 개인주의를 극한으로 밀어붙여 신과의 1:1 만남까지 가야 합니다.